13세기 탐라와 몽골의 음식문화 변동 분석
Analysis of Food Culture Acculturation of Tamra in 13 Century
이종수(李宗秀)
< 요 약 문 >
이 글은 13세기 대원제국의 문화가 탐라의 음식문화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 탐라(제주) 식문화가 주체적으로 변용시키면서 생존을 유지시켜 온 변동 과정과 영향측면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탐라는 몽골의 직접 지배기간이 가장 길었으며, 그들이 직접 관료를 파견하여 지배하므로서 타 지역에 비하여 몽골문화가 가시적으로 많이 남아 있는 지역이다. 본 고는 이 중 정체성이 강한 음식요인을 분석대상으로 삼았으며, 분석을 위한 주요 연구문제는 어떻게 해서 몽골음식인 게데스가 수애가 되었으며, 슐렝(šűlen)이 몸국으로, 마유주가 ‘쉰타락크’가 되었는지등을 분석한다. 연구의 방법은 13세기 고려에 대한 몽골지배의 선행연구 분석 및 문헌연구와 필자의 음식문화 선행연구 결합을 통한 양 지역 음식문화 비교분석이며, 분석의 범위는 대상지역의 음식문화 교류적 측면에서 분석한다. 대원제국의 왕족 등 지도부와 원나라 장군 등의 숙식 등에 대한 관련 자료를 토대로 음식문화 사례를 분석하였으며, 그들의 문화와 음식문화는 『몽골비사』, 『음선정요』, 『거가필용』등에 전해지며, 기타 관리와 이주자들이 지배지에 전래 시켰던 사례를 분석하고, 현재 습속도 유사함을 밝혔다. 연구 결과 주요 유사점은 음식삶기, 찌기, 탕, 순대 등에서 확인되며, 상이점은 재료와 자연환경의 상이점 등에서 양 지역의 특성과 차별성을 분석하였다.
국문주제어 : 음식문화, 몽골의 육식문화, 탐라음식문화, 음식의 유사점과 상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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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들어가는 글
이 글에서는 대원제국(이하 몽골과 혼용) 문화가 탐라지역 음식문화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고찰하고, 탐라(이하 제주와 혼용) 식문화가 주체적으로 변용시키면서 생존을 유지시켜 온 변동 과정을 찾아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고려시대 탐라는 몽골의 직접 지배기간이 가장 길었으며, 그들이 직접 관료를 파견하여 지배하므로서 타 지역에 비하여 몽골문화가 가시적으로 남아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예컨대 1276년 탐라 다루가치가 둔전병(屯田兵)과 주민에게 호마, 우량소 목장을 개설하여 사육하게 하였다(이성우, 1984 : 31).
2006년 노무현 정부의 양국 국교정상화 이래 몽골과의 교류가 확대되는 가운데, 문화적 친연성과 그 확대를 위한 프로그램 개발이 요청되는 시점에서 몽골관광객 제주입도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11년 현재 2125명이 다녀갔다(오영주, 2015 : 115).
이 연구는 이 중 정체성이 강한 음식요인(이종수, 2013.8)을 분석대상으로 삼았으며, 국가지역별 음식문화 비교를 통해 당해 지역의 사회적 특성을 도출하고, 양 지역의 음식문화의 유입과정과 내용을 분석한다. 주요 연구문제는 어떻게 해서 게데스가 순대(김천호, 2012), 수애(제주농업기술원, 2007)가 되었으며, 슐렝(šűlen)이 몸국으로, 마유주가 ‘쉰라락크’가 되었는지(이종수, 2010) 등을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방법은 13세기 고려에 대한 몽골지배의 선행연구 분석 및 문헌연구(김천호, 1997, 1999, 2002, 2003, 2012)와 필자의 음식문화 선행연구(이종수, 2009 ; 2010 ; 2011 ; 2012a,b) 결합을 통한 양 지역 음식문화 비교분석이다. 분석의 범위는 대상지역의 음식문화에 한정하여 비교한다. 몽골과 탐라(고려)의 소주와 육식문화, 설렁탕(湯)과 순대(탐라의 고소리술과 수애)의 관계를 음식교류적 측면에서 주로 왕족 등 지도부와 원나라 장군, 관료, 목호 등의 숙식 등에 대한 관련 자료를 토대로 음식문화 사례를 분석한다. 12∼13세기 팍스몽골리카와 그들의 음식문화는 『몽골비사』, 『飮膳正要』, 『居家必用』, 『거가필용사류전집』등과 조선시대 『林園經濟志』, 『山林經濟』등에 전해지며, 기타 관리와 이주자들이 지배지 전파 및 그 문화는 현재습속에도 동일하게 확인되고 있다.
따라서 그 130여년의 지배장소 탐라에서 음식문화와 사회습속적 잔재(殘滓)들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문화 변동과 토착화 실제 사례를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방법은 13세기 고려에 대한 몽골지배의 선행연구 분석 및 문헌연구와 필자의 음식문화 선행연구(이종수, 2009 ; 2010 ; 2011 ; 2012a,b,c,d) 결합과 필자의 경험 및 2012년 7월 1주일간 몽골 현지방문을 통한 양 지역 음식문화 비교분석이며, 분석의 범위는 대상지역의 음식문화 변동과 토착화 사례를 분석하고자 한다.
제2장 음식문화 변동의 이론적 배경
제1절 음식문화의 변동
1. 음식문화의 변동과 유지
음식문화변동의 구분은 통합, 동화, 분리, 주변화 등으로 구분된다(전경수, 1999 : 224). 사람과 관습 등의 문화가 접변속에 상호영향을 주고 받는다. 영향이 크면 흡수하고, 적으면 동화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문화인류학의 문화변동 연구 개념은 문화접변 또는 변동(acculturation)이다. 문화변동과 변용 또는 문화접변은 상이한 문화를 가진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이 계속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양방 집단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문화형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문화의 종족성(ethnicity)을 특징지우는 경계(boundaries)는 타집단과의 만남을 통하여 서로 대조되는 상황에서 타집단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부각되고, 구성되고 유지된다.
문화변용에는 강제적 식민지 등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화의 동화(assimilation)와 동등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화변이(transculturation) 등이 있다. 식민지는 주로 전자의 의미이다. 문화적응 양태는 통합(integration), 동화(assimilation), 분리(separation), 주변화(marginalization)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자국의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새 문화를 받아 들이는 통합(integration)은 주류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고유문화(culture of origin)의 문화적 정체성 및 전통을 유지하는 전략으로써, 이중 문화적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유형이다. 둘째, 문화 동화란 이주민이 자신의 고유 문화와 전통,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보다 새로운 주류사회와 상호작용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동화는 한 나라나 민족의 문화가 다른 나라나 민족의 기층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 문화의 동화는 일순간의 급격한 문화 접촉을 의미하며 어떤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일어나는 데 일제 식민지하 대부분의 문화현상들이 이에 해당한다. 강압, 정복 등이 주요 수단이다. 이문화 등 외래문화에 대한 적응은 접촉, 갈등, 적응으로 진행되었다. 자국의 문화를 유지하면서도 현지 문화를 받아들이는 동화(assimilation) 는 한 나라나 민족의 문화가 다른 나라나 민족의 기층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말한다. 문화의 동화는 일순간의 급격한 문화 접촉을 의미하며 어떤 강제적인 힘에 의해서 일어나는 데 일제 식민지하 대부분의 문화현상들이 이에 해당한다. 강압, 정복 등이 주요 수단이다. 이문화 등 외래문화에 대한 적응은 접촉, 갈등, 적응으로 진행되었다. 셋째, 자국의 문화만 유지하고 현지문화를 배척하면 분리(segregation ; separation), 넷째, 자국과 현지문화를 모두 배척하면 주변화다(marginalization). 셋째, 분리형태와 넷째, 주변화는 나타나지 않는다.
2. 음식문화 변동의 정의
본 고에서는 문화변동이란 상이한 문화를 가진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이 계속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양방이 집단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문화형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으로 보고, 탐라의 음식문화변동이란 탐라지역민과 내방자(지역민과 군인, 목자 등)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음식이 대원제국의 목마장과 군대 주둔지로 종속되면서 다양한 몽골인들의 내왕과 교류에 따라 탐라지역으로 모여든 유입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또한 이들의 식사해결에 대응하고, 적응하면서 탐라지역에 정착된 시대적인 변동 음식문화로 정의하고자 한다. 그것들이 몸국, 고소리술, 만두, 수애, 쉰다리, 빙떡, 상외떡 등이다.
제2절 몽골과 탐라의 음식문화
1. 몽골음식문화의 패턴과 특성
(1) 패턴
『몽골비사』에 보면 몽골의 음식문화 변천이 1) 몽골의 전통식생활에서 2) 대외적 정벌에 따른 문화교류와 상호 영향, 변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3세기 이후 현대까지 몽골은 원제국의 전통적인 의식주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음식도 차강이데와 올랑이데를 유지한다.
13세기 이후 현대까지 몽골은 원제국의 전통적인 의식주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여름철의 하양음식(차강이데)는 가축의 젖 및 유주 등이며, 겨울철의 빨강음식(올랑이데)은 각종 고기류다. 의식주 등 옛관습이 타국가들에 비하여 적잖이 원형으로 남아 있다.
첫째, 차강이데문화다. 음식 특성으로는 유목을 생업으로 삼기 때문에 유목의 산물인 젖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것이 한랭기후와 척박한 토양에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젖을 이용한 음식(수우, 으름 등), 육류 음식(삶은 음식, 말린 음식, 만두)와 찜, 순대 등이 발달하였다. 차강이데의 타라크(요구르트)는 유제품으로 만든 발효 식품으로 보관과 운반이 용이하다. 제주의 ‘쉰타라크’(쉰다리, 필자주, 먹다 남은 밥류에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가 유사하다(서혜경 외, 2000).
둘째, 올랑이데문화다. 몽골주식의 패턴을 일별하면 여름의 ‘하얀 음식’(차강이데 : 유제품, 흰색, 여름 주식)과 겨울의 ‘빨간 음식’ 올랑이데(육류, 붉은 색, 겨울 주식), 곡류인 밀가루 음식으로 구분된다. 음식 특성으로는 유목을 생업으로 삼기 때문에 유목의 산물인 젖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것이 한랭기후와 척박한 토양에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젖을 이용한 음식(수우, 으름 등), 육류 음식(삶은 음식, 말린 음식, 만두)와 찜, 순대 등이 발달하였다.
(2) 특성
첫째, 마유주와 양고기문화다. 『몽골비사』에는 마유주와 양고기 이야기가 가장 많이 실려 있다. 13세기 몽골 지배영역이 확장되면서 동서문화 교류의 확대 및 상호간 영향이 증대된다(김천호, 2003 : 184-199). 몽골족의 『몽골비사』에 나오는 음식 중요도는 1) 마유주 2) 양고기(슐랭), 제사(음식) 등이다. 13절, 19절, 보르츠와 병사식량 43절, 70절(飮福), 124절(마유주), 193절(국, 슐랭, 설렁탕과 동일), 229절(슐랭), 279절(슐랭)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13세기 음식의 특성과 오늘날의 음식패턴과의 연관성을 유추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둘째, 고릴(면)문화다. 몽골인들은 국수도 즐긴다. 양고기를 넣고, 소금을 간하여 먹는다(김광언 외, 1993 : 245). 몽골에서는 면(麵)을 고릴이라고 하고, 밀가루로 만든 요리를 고릴타이숄(GoriltaiShol)이라고 한다. 칼국수보다 가는 건면을 고에몽이라고 한다. 고기우동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으로 면을 먹는 형태이고, 이것을 숄테이홀이라고 한다. 제주의 고기국수와 일맥상통한다. 숄테이홀은 양고기 국물에 면, 고기 조각, 만길이라는 야생파, 후무루라는 부추를 넣고 끓인 것이다. 조미료는 소금이며, 저녁에 먹는다(서혜경 외 : 258). 한편 고릴테 슬은 감자, 양파, 파, 양고기에 칼국수를 넣은 것으로 거의 매일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셋째, 국(sulen)문화다. 몽골은 지배기간동안 우리나라에 많은 육류음식을 퍼뜨렸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설렁탕이다. 몽골인들이 고기를 즐기는 모습은 『고려사』에 “몽골인들은 고기를 놓고 서로 다투어 먹어 승패를 겨루기도 한다”고 고기를 즐겨 먹는 습성을 기록하고 있다. 설렁탕 등 국물요리는 많은 고기를 함께 넣고 오래 동안 끓일 수 있는 큰 솥이 있을 때 가능하고 고기가 충분히 많이 있을 때 가능한 고기음식이다. 고려 후기부터 오늘날의 설렁탕, 갈비탕과 같은 음식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후추가 필수 향신료가 되어 1389년 류구(류구)에서 후추 300근을 수입한다.
거세한 2년생 양고기는 맛있고 국물도 일품이다. 뼈, 내장, 고기 등을 통째로 넣고, 끓여 먹는다. 우리의 설렁탕과 같다. 슐랭은 몽골인들의 아침 주식이다(김천호, 2003 : 193-195). 탕은 주로 소의 뼈, 내장, 고기 등을 통째로 넣고 끓이는 조리법이 동일하다(『몽골비사』 124절 ; 이종수, 2012.9 : 20). 아침식사를 고기국물인 슐렁이라고 할 정도로 유목민들에게 아침에 먹는 뜨거운 탕이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몽골비사, 192절). 탕(湯)은 주로 소의 각 부위를 이용하고 통째로 끓이는 방법을 쓴다.
넷째, 개경 이북에 사는 사람들은 만두(霜花)를 잘 만들어 먹었다. 만두는 몽골인들의 상식(常食)으로 고려에 전래된다.
다섯째, 소주 문화다. 소주는 고려시대 몽골 군인들이 일본 원정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했을 때 개성, 안동, 제주도 등 주둔지에서 처음으로 빚기 시작했다. 소주는 페르시아, 몽고, 만주를 거쳐 고려후기에 유입된다(김삼수, 1980 : 43). 칭기스칸이 적의 화살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부하가 먹여서 살려낸 것이 아이락(마유주)다.
여섯째, 구이보다 찜문화다. 백성들은 양고기 탕, 백숙 등 찜을 선호했다. 백숙이나 찜이 주류다(김천호, 2003 : 199). 군인들은 굽기를 선호했다. 편리해서다. 식재료는 목축 외에 사냥을 통해 획득했다. 사냥은 생계수단임과 동시에 군사훈련으로도 행해졌다.
일곱째, 羊 直腸(게데스 순대)문화다. 몽골(군)인들이 한경(고산아이막)과 성산(수산아이막) 전마장(戰馬場)에 100여년 이상 거주하며 자기들의 고유음식을 먹었다. 양의 내장인 직장으로 ‘게데스’라는 순대를 만든다. 제주의 ‘수애’와 같다. 피와 곡식가루도 함께 넣는다. 양의 피를 넣고, 소금 간을 해서 솥에서 삶아 낸다. 매우 부드럽고 구수하고 영양도 풍부하다. 양의 직장으로 만드는 게데스는 양의 피와 약간의 메밀가루를 넣고 소금 간을 해서 솥에서 삶아 낸다. 야생 파나 마늘, 메밀 등 곡식가루를 넣기도 한다. 1960-80년대 까지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만드는 방법이나 과정이 똑 같다. 다만 제주에서는 돼지의 직장을 사용하는 것만이 다르다.
원나라의 요리서 『거가필용』은 순대를 관장(灌腸)이라 부르는데, 순대를 만들려면 먼저 창자를 씻어냈기 때문이다. 몽골에는 게데스라고 하는 순대요리가 있는데 군대의 전투식량으로 많이 먹었다. 오순덕(2012, 2014)은 조선시대 순대고찰(2012)에서 순대의 기원을 『제민요술』과 『거가필용』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서긍은 『高麗圖經』에서 멥쌀, 보리, 밀, 수수 등을 먹었고, 면은 잔치음식으로 썼다고 밝혔으며, 고려도경에서 국(羹)이 처음 언급된다. 순대문화의 기원은『제민요술』과 『거가필용』,『임원십육지』에서 찾아진다.
제3절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1. 선행연구 분석
이성우(1978, 1984)의 고려 이전의 한국식생활연구 등과 사료로는 『高麗史』,『高麗史節要』 및 『高麗圖經』,『居家必用』, 『飮膳正要』,『齊民要術』등에 전해지고 있다. 조선의 『山林經濟志』는 거가필용의 조리법을 대다수 원용하였다(한복진, 1998). 또한 조선시대 이원진의 『耽羅志』와 이종수(2012)의 탐라의 몽골문화 분석, 이종수(2008, 2009, 2010, 2011, 2012, 2013)의 안동 소주 스토리텔링, 탐라와 몽골의 음식문화 등과 허남춘 외(2005) 등 등을 제시할 수 있다. 최근 부산항의 음식문화 특성(이종수, 2015.6)을 초량과 자갈치시장을 분심으로 비교분석하였다.
고려 후기 대원(大元)제국 지배하의 문화적 영향과 관련된 주요 선행연구는 이종수(2010, 2012 ; 2013) 등과 설렁탕(이이화, 1999 ; 김기선, 2008 ; 최기호, 2009 ; 박원길, 2001, 2010 ; 유원수, 2004)과 소주문화 연구(김천호, 2003 ; 이종수, 2013.8 : 173 ; 이종수, 2013.8 : 167 ; 이종수, 2014, 6, 8) 및 서긍의『高麗圖經』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원대의 가사협의 『齊民要術』, 홀사혜(1314)의『飮膳正要』, 작자미상(1200년대)『居家必用』, 『거가필용사류전집』, 조선시대 김유(1540)의 『需雲雜方』, 홍만선의『山林經濟』, 이행, 홍언필의『新增東國輿地勝覽』, 서유구의『林園經濟志』, 이원진의『耽羅志』 등과 기타 중세사, 중국사, 『원사』, 『고려사』, 조선시대사, 탐라사, 음식문화사 등의 고문헌 등을 참고하여 분석한다.
본 연구의 차별성은 몽골지배와 탐라의 음식문화 변동과 적응내용을 13세기 이래 식용되어 온 토속음식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는 점이다. 이상의 내용을 < 표 1 >에 정리한다.
< 표 1 >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
구 분 | 선행연구 분석과 차별성 | ||
연구목적 | 연구방법 | 주요 연구내용 | |
몽골문화와 탐라 문화 | 김일우(2005), 고려시대 제주사회 변화 | 사료분석 | 탐라사연구 |
이성우(1978), 고려이전 한국식생활사 | 사료분석 | 고려이전과 이후 식생활사분석 | |
김동전(2010), 조선 후기 제주거주 몽골족 가문사례 분석 | 사례분석 | 탐라의 몽골본관 분석 | |
고병익(1999), 고려와 원과의 관계 분석 | 사료분석 | 정동행정연구 | |
고병익(1962) 정동행성 | 사료분석 | 정동행정 연구 | |
고창석(1984) 려,원과 탐라관계 분석 | 〃 | 원과 탐라관계 분석 | |
국립제주박물관(2006), 원과 탐라관계분석 | 〃 | 원과 탐라관계 분석 | |
김기선(2008), 한,몽 교류사 분석 | 질적 분석 | 한,몽관계 연구 | |
배숙희(2012), 원나라의 탐라 통치와 자취 | 사료분석 | 몽골지배의 문화적 흔적 분석 | |
허남춘(2005), 제주의 음식문화 | 질적 접근 | 제주음식의 사회문화적 의미 | |
이종수(2010, 2012), 탐라와 몽골의 음식문화분석 | 질적분석 | 탐라음식문화의 연원과 특성 분석 | |
이종수(2014.12) 인천, 개성, 한양의 음식 | 〃 | 고려 탕음식 유래분석 | |
이종수(2015.6), 부산항 음식문화 변동분석 | 〃 | 부산항의 음식문화 분석 | |
본 연구의 차별성 | 13세기 탐라의 음식문화 변동과 적응분석 | 질적 분석 | 원제국의 탐라지배와 음식문화 변동 분석 |
2. 분석의 틀
본 연구는 13세기 팍스 몽골리카(박원길, 2001 ; 잭 웨더포드, 2005)와 고려의 몽골복속 체제와 그 여파를 중심으로 정치경제 사회문화 측면과 음식문화 측면으로 구분하고, 문화의 변동과 유지의 특성을 분석한다. 구체적으로는 몽골제국의 세계와 고려지배 결과를 토대로 탐라(高麗)에 미친 음식문화적 영향과 파장을 문화변동과 유지 측면, 차별성 측면을 중심으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 표 2 > 분석의 틀
국가지역별 | 변동요인 | |
환경요인 | 변동요인 | |
몽골과 탐라(고려) | - 팍스 몽골리카와 ‘육사’ - 다루가치, 탐라총관부 노(路)행정 | - 변동 - 유지 - 차별성 |
제3장 13세기 탐라의 음식문화 특성 분석
제1절 13세기 전후의 탐라의 음식문화
1. 대원제국 지배 이전 탐라 음식
첫째, 중국의 『후한서』, 『三國志』, 『고려사』 등에는 제주의 건국사정을 기록하고 있다. A.D 1세기 경 탐라국이 건국된다. 5세기에 백제에 복속되고, 이후 신라에 복속된다. 13세기 경 고려가 지방관을 파견하면서 독립국으로서의 주권이 상실된다. 13세기 후반 몽골에서 말이 들어오고, 다루가치 지배를 100여년 이상 받는다(허남춘 외, 2007 : 73). 몽골 지배 이전의 탐라는 농, 어업 중심사회였다(정광중, 2002 : 52-56). 탐라국시대의 주거생활상은 먼저 보리, 콩, 조 팥 등의 농작물과 조개류, 해초류 등에 의존하고, 소, 말, 닭, 돼지, 개 등을 사육했다. 가축은 가정경제의 근간이었다.
둘째, 대원제국 지배 이전은 농, 수산물 중심으로 곡물과 채식 중심이었다가 보리, 조 등 오곡과 수산물 중심 생활로 변동되어 갔다. 특히 탐라는 수산물을 주요 식품으로 삼았다. 예컨대 생선, 미역, 전복, 소라, 귤 세공, 갈치, 고등어, 자리돔 등이다. 11세기 고려 판관 김구가 돌담으로 경계를 삼았다고 한다. 또한 목축 등에 의존한 사회경제 구조였다.
2. 대원제국 지배 이후 고려시대 탐라의 음식문화
첫째, 13세기 중반 이래 몽골의 침입으로 그들의 식육문화가 유입되고 고려 음식문화가 정립된다. 13세기 세계의 중심지였던 대원제국의 大都(캄발룩, 북경) 새벽거리는 북적대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뜨거운 양고기와 거위고기, 여러 가지 탕 종류와 뜨거운 음식으로 요기한다(김종래, 2009 : 200). 몽골의 공탕(šǜlen)문화는 양이 으뜸이다. 공탕은 양고기 국물로 스프(탕)국이다(Buell, 2003). 국물문화의 중심이다. 공탕선호는 『몽골비사』에도 자주 나온다. 몽골의 설렁탕 유사 음식은 ‘막흐테셜’(박환영 2005, 370)과 반탕이다. 이 둘의 조리법이 한국 설렁탕과 같다. 오늘날 몽골의 설렁탕 유사음식 반탕(Bantan)은 몽골해장국인 양고기 스프죽이다.
찜요리는 몽골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거가필용』의 철속탕(撤速湯)은 우리의 설렁탕 조리법과 유사하다. 몽골인들은 양고기 국(羊羹)을 가장 선호했다(國學基本叢書本, 『飮膳正要』卷 第1, ‘驟珍異饍’ 19, 34쪽).
둘째, 도살법과 순대문화다. 도살법(屠殺法)은 칭기스칸 대법전에 의했다. 파복법이다. 유목 생활을 했던 원나라에는 채소나 곡식보다는 고기를 사용한 음식이 많이 발달했다. 요즘 우리가 즐겨먹는 설렁탕과 순대, 만두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음식 중의 하나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인 소주도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몽골은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그러므로 육식이 주 식생활이었다. 특히 육류 조리에 있어서 원나라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성우는 조선시대 『산림경제』(1715)의 육류조리법은 60% 이상이 『거가필용사류전집』에서 인용하였다고 한다.
셋째, 6세기 저술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순대를 ‘관장(灌腸)’이라고 했다. 『제민요술』은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농업기술서로써 북위의 가사협(賈思勰)이 저술한 책이다. 『제민요술』에는 양의 피와 양고기를 다른 재료들과 함께 양의 창자에 넣어서 삶아먹는 요리가 소개되어 있다(가사협, 2006). 원나라의 요리서 『거가필용(居家必用)』은 순대를 관장(灌腸)이라 부르는데, 순대를 만들려면 먼저 창자를 씻어냈기 때문이다. 원대의 『음선정요(飮膳正要)』에도 ‘호포육(胡炮肉)’이라고 하여 페르시아에서 전래됐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양의 피에 소금, 밀가루, 천초가루를 섞어서 선지순대를 먹는다.
넷째, 아자길주가 유입되어 고소리술이 된다. 홀사혜의『飮膳正要』와 『거가필용사류전집』은 아자길주 증류법을 기록한 최초의 저작물이다.
< 표 3 > 탐라의 음식문화 특성과 변동
구분 | 대원제국 지배 이전 | 대원제국 지배 이후 |
특성 | 농, 수산물 중심 곡물과 채식 | 농, 수산, 목축업 곡물과 채식 및 육식, 유목문화 유입 |
변동 | 보리, 조 등 오곡과 수산물 중심 생활 | - 돼지, 닭, 소, 말 등 식용과 생간과 천엽 등 내장 식용 - 몽골의 영향을 받은 음식으로는 쉰다리, 돗순대(수애), 몸국, 빙떡, 상애떡, 돔베고기, 돼지국수, 소주 등 유입 |
이종수(2014.12 : 46).
3. 영향 측면
첫째, 몽골지배 이후는 목축과 육식문화 영향을 크게 받는다. 몽골 전통식과 전쟁음식이 탐라에 유입됐다. 1271년(원종 12) 김통정이 삼별초를 거느리고 제주에 들어와 약 2년 반 동안 항전하다가 여·몽연합군에 의해 토벌되었다. 당시 군사들을 위한 단체 급식, 각종 의례 음식 등 일련의 음식 만들기가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이 조리에 동참하여 육지의 음식 문화를 집단적으로 학습함으로써 고려 말 대원제국 문화를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한국향토문화대전, 2014.4.14).
둘째, 1300년대 수도 개경에는 탐라인 1000여명이 거주했다. 제주인구의 약 1/10(당시 제주인구는 약 1만여명)이다. 개성과 탐라의 활발한 문물교류를 암시한다(진영일, 2008 : 250-252). 당연히 제주에 고려 개성과 대원제국의 문화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몽골군 병참관리가 주된 일들이었다. 병참은 군사들의 음식, 의복, 거주지 및 말(馬) 사육과 마료(馬料) 등의 생산, 관리가 주된일이었다. 말은 戰馬, 驛馬, 外交, 農耕 등에 사용되었다(『高麗史』, 卷 27, 世家 27 元宗 13년 正月 辛未條). 목장업은 국가와 관인지배자가 독점했다(남도영, 1969 : 669). 몽골식 목장 설치는 목장관리제도가 크게 발전하고 마종(馬種)의 개량으로 양마(良馬)가 산출되는 등 마정사(馬政史)상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셋째, 개경 이북에 사는 사람들은 만두(霜花)를 잘 만들어 먹었다. 만두는 몽골인들의 상식(常食)으로 고려에 전래되어 변용된다.
넷째, 소주 문화다. 안동에 원나라 군대가 오래 주둔하면서 안동에 몽골소주가 전해진다. 군이 가면 음식이 따라 간다. 고려시대 몽골 군인들이 일본 원정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했을 때 개성, 안동, 제주도 등 주둔지에서 처음으로 빚기 시작했다. 소주는 페르시아, 몽고, 만주를 거쳐 고려후기에 유입된다.
< 표 4 > 음식문화적 영향
구분 | 몽골 음식문화적 영향 |
탐라의 음식문화 변동 사례 | - 육식, 탕, 떡, 술, 순대 등 - 메밀유입과 빙떡 개발 - 목호들의 상애떡 - 몽골군사의 소주(제주 고소리술) 증류주 정착 - 양고기국이 몸국(탕)으로, 제주 올래 돼지국수 - 탐라의 순대(수애) 발전 |
이종수(2014.12 : 53)
제4장 13세기 탐라의 음식문화에 미친 영향과 과제
제1절 음식문화의 변동과 토착화
1. 주요 사례
첫째, 탕(국)문화다. 게다가 고려 후기에는 몽고풍의 요리가 전해져 고기를 물에 넣고 삶아 그 우러난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는 지금의 설렁탕, 곰탕이 생겨났다. 고려 후기에 들어온 공탕은 『거가필용』에 소개된다(작자미상, 1200년대). 곰탕과 설렁탕에 원조인 공탕, 상화도 이때 유입된다. 이는 맹물에 고기를 삶는 조리법을 말한다. 따라서 고려 후기에 육식이 본격화되면서 개장국, 쇠고기를 쓴 육개장, 설렁탕 등이 나타났다.
유목민인 몽골인들이 제주에 들어오면서 고기음식이 성행하였고, 양고기를 이용한 ‘슐루’가 유래된다. 몸국 등 육류, 채소류, 어패류, 해조류를 이용한 ‘국문화’가 더욱 활성화된다. 2015년 9월 제주국제공항에서 먹어 본 말고기탕은 곰탕 맛과 비슷하였다. 몽골인들은 고기우동(숄테이홀)을 양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다. 탕(湯)이란 국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고기, 생선, 채소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이다. 다른 점은 몽골은 유목민이라 양을, 제주는 농경민이라 돼지를 쓴다는 점 뿐이다.
둘째, 메밀칼국수 전래측면이다. 먼저 메밀칼국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메밀반죽을 얇게 밀어 편 다음 손가락 길이로 굵게 썰어서 무채와 함께 끓인 음식을 말한다.
셋째, 소주, 오메기술문화다. 소주는 고려시대 몽골군인들이 일본 원정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했을 때 개성, 안동, 제주도 등 주둔지에서 처음으로 빚기 시작했다. 소주는 페르시아, 몽고, 만주를 거쳐 고려후기에 유입된다. ‘아이락’이란 명칭은 훌레그 서정군이 압바스조 이슬람제국을 공략할 때 그곳 증류주인 ‘아락’을 맛보면서 그것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짐작된다. 원대 홀사혜(忽思慧)가 펴낸 궁중 식보(食譜)인 『음선정요(飮膳正要)』(1330)에 의하면 당시 몽골에서는 발효한 젖술(마유주)을 증류시켜 무색투명하고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을 빚는데, 아랍어의 증류란 의미의 ‘아라끼’를 따다가 ‘아랄길’(阿剌吉, 아라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유주 말고도 요구르트를 끓여서 증발시킨 후 액화시킨 아르히라는 술도 있다, 알코올 농도는 약하지만 은근히 취하게 하는 마법의 술이다(경향신문, 2009.6.17.).
넷째, 상애떡과 빙떡문화다. 상애떡은 몽골인들이 목마장 작업중 휴식시간에 먹던 음식이다. 탐라는 부조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걸명(멩) 특이하다. 몽골에서는 말고기를 식용하고, 마유(馬乳)를 즐긴다. 마유로 차, 치즈, 과자, 부식들을 만들어 먹는다. 제주인들도 말고기를 식용하는데 몽골식(食)의 제주 전이다. 제주인들이 즐기는 빙떡도 몽골에서 전래된 메밀을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이다. 제주인들은 2013년 현재도 막걸리로 상애떡을 만들어 먹고 있다. 대정현은 ‘빙떡’, 정의현은 말아놓은 멍석과 같다하여 ‘멍석떡’, 서귀포 지역은 ‘전기떡’이라고 했다. ‘걸명’도 특수하다. 상애떡은 몽골인들이 휴식시간에 먹던 떡이다.
다섯째, 순대(수애=게데스)문화다. 羊 直腸(게데스 순대) 문화였다. 양의 직장으로 만드는 게데스는 양의 피를 넣고 소금 간을 해서 솥에서 삶아 낸다. 야생 파나 마늘, 메밀 등 곡식가루를 넣기도 한다. 1960-80년대 까지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만드는 방법이나 과정이 똑 같다. 다만 제주에서는 돼지의 직장을 사용하는 것만이 다르다. 탐라의 ‘수애’눈 돼지의 내장(장)에 피와 약간의 메밀가루 그리고 소금간만으로 섞어서 삶아 낸다. 지역과 종교에 따라 가축과 사용하는 향신료나 곡류, 채소류가 다를 뿐이다. 반농반목지역(탐라, 고려 등) 몽골족은 돼지나 말에 찹쌀이나 밀가루, 잡곡류, 그리고 파, 마늘, 부추, 숙주나물 등을 넣기도 한다.
여섯째, 고시레 풍습이다. 고수레(高壽寬), 또는 고시레란 산과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나 이바지가 왔을 때 음식물을 조금 떼어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 또는 그렇게 하는 행위이다. 흔히 '고시래'라 하고, 강화도 지역에서는 '퇴기시레'라 한다. 이는 신에게 바치는 공희(供犧) 의식인데, 잡신에게 제물을 떼어주고 달래어 쫓는 한편, 먼저 제물을 바쳐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수레는 주언(呪言)과 공희 행위가 함께 이루어지는 주술이다. 마치 주문(呪文)처럼 "고수레!" 하고 외치는 소리가 곧 고수레다. 몽골인들은 술을 마실때도 새끼손가락에 술을 묻혀 하늘을 향해 세 번 튕긴다.
일곱째, 쉰다리=타라크문화다. 누룩을 이용한 쉰음식의 재활용 습속으로 제주음식 ‘쉰다리’가 있다. 몽골비사 145절에도 유사한 타라크 음식이 전해진다.
끝으로, 마구(馬具)와 허벅, 아기구덕문화다. 여자들이 물긷는 허벅은 몽골의 가죽 물병 ‘허버’에서 유래했다(국립민속박물관, 2008 : 95)는 설이 있다. 아기 구덕은 대나무로 만든 아기 요람이다. 흔들어 잠재우는 기구다.
2015년 현재 탐라의 음식습속과 몽골의 음식특성을 < 표 5 >에 제시한다.
< 표 5 > 탐라와 몽골음식
구분 | 탐라 | 몽골 |
탕 | 몸국, 놈삐국, 갈치호박국 등 | 슐렝 |
소주 | 고소리술, 오메기술 | 마유주, 아이락 |
떡 | 상애떡, 침떡 | 상애떡 |
순대 | 수애 | 게데스 |
제사음식 | 떡, 새미떡 | - |
돼지국수 | 돼지 국수 | 양 국수 |
고시레 | 코시 | 고시레 |
마구 구르마,달구지 | 馬具 | 馬具 달구지 |
간장 | 몽골간장(마산, 합포) | 몽골 군용 |
출처 : 이종수(2014.12 : 20) 참조 재구성.
2. 음식문화의 변동과 토착화
문화 간 접촉과 변용 사례 측면이다. 첫째, 음식문화적 측면에서는 100여년 간의 탐라의 몽골접촉은 다양한 문화적 변이를 불러왔다. 유목민의 특성인 ‘탕 문화’ 등에서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설렁탕(슐루)은 서울의 명물 음식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근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 몽골제국의 유목민식 양고기를 중심으로 한 육식문화가 농경민인 소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음식문화로 정착한 것이다. 설렁탕의 기원 분석 측면이다(김기선 2008, 192-195). 설렁탕(solontan)은 ‘맛있는 고깃국’이란 의미다.
셋째, 13세기 몽골 침공은 사냥의 발달, 목축의 발달 등과 요리법 수용으로 양고기 중심 요리법을 쇠고기 요리법에 응용하게 했다(유애령, 229-232). 쇠고기 식용 전통이 확립된다. 몽골의 탕은 자양두(煮羊頭), 나복갱(蘿蔔羹), 완증양(碗蒸羊), 건함시(乾鹹豉), 양행교(羊䯒膠) 등이다. 고려시대 양고기 식육은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양의 사육에 적합지 못한 기후풍토 때문에 쇠퇴하고, 쇠고기로 대체되었다.
최근 김봉석(2014 : 117-129)은 몽골로부터 유래된 음식으로 설렁탕과 안동소주를 지목하고, 몽골과 고려의 음식문화교류사 교재화를 모색하고 있다.
제2절 주요 영향과 발전과제
1. 양국의 음식문화 유사, 상이점
(1) 유사점
첫째, 역사적으로 몽골과 한국은 음식을 조리할 때 탕을 위주로 한다. 이는 기름에 튀기는 것을 위주로 한 중국이나 바비큐를 위주로 한 돌궐이나 유럽과는 큰 차이를 갖는다. 이런 음식문화의 유사성으로 인해 원대에는 고려 음식인 생선탕이나 송편, 인삼주 등이 몽고에서 유행했다.
둘째, 한국은 대원제국의 지배영향으로 육류의 뼈와 내장, 머리에서 꼬리까지 국을 끓여 먹는 문화가 발달하여 숟가락이 필요하였다. 고기를 삶아 고기를 중심으로 먹는다. 제주는 고기와 국물을 동시에 활용한다. 찜요리로 순대와 만두를 들 수 있다.
셋째, 식사도구는 숟가락(스픈), 젓가락, 포크 등을 항상 패용하며, 음식도구는 무쇠솥, 가마솥, 주전자 등이다. 제주의 무쇠솥과 가마솥 등은 과거 1980년대 까지만 해도 도처에서 볼 수 있던 흔한 풍경이었다. 몽골은 양의 젖을 상용하고 분은 연료로 썼다. 제주인들도 소와 말고기를 식용하는 한편 소똥과 말똥은 말려서 연료로 썼다. 곶자왈(화산분지의 척박한 땅)을 가다 오다 올레길 돌담 구멍에 던져져서 건조해 가는 ‘牛馬糞’이 일상이었다.
넷째, 또 다른 유사성은 갈비문화이다. 세계적으로 갈비를 즐기는 민족은 한국과 몽골뿐이다. 여름에 흑염소를 보신재로 쓰는 것도 동일하다. 한국은 고대 맥족(고구려)의 후손으로 ‘맥적’(貊炙)을 즐겼다. 몽골에서는 말고기를 먹고, 마유(馬乳)를 즐긴다. 마유로 차, 치즈, 과자, 부식들을 만들어 먹는다. 제주 ‘조랑말’은 몽골어 ‘조르모르’에서 유래되었으며, 말을 부리는 이들을 ‘테우리’라 하는 데, 소테우리, 말테우리 등으로 현재도 남아 있다. 1960∼80년대 시골 목동을 ‘테우리’라 하였다.
다섯째, 순대는 추운 평안도와 함경도에서 많이 해먹던 음식으로 돼지 창자를 뒤집어 깨끗이 씻어 내고 소금으로 주물러 씻어 하룻밤 물에 담가 놓는다. 찹쌀은 충분히 불려서 삶고, 숙주도 데쳐서 다지고 물기를 꼭 짠 다음 찹쌀밥을 식혀서 먼저 선지를 넣어 섞은 다음 준비한 채소를 섞고 갖은양념을 한다.
여섯째, 몽골 제국은 야채를 무조건 소금에 절여서 날로 먹던가 아니면 국에 넣어서 푸욱 끓여 먹었다. 더군다나 장기 행군으로 인하여 소금에 절인 야채가 썩지는 않고 푸욱 삭을 경우는 적절하게 초원 지역에서 얻을 수 있는 각종 푸성귀를 첨가해서 독특한 신맛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일곱째, 몽골의 육포 문화이다. 세계를 점령하고자 했던 칭기즈칸의 몽골 기마군단이 서아시아와 유럽 지역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말 달리는 속도와 기동성이었는데 이러한 기동성도 배가 고프면 불가능한 법이다. 이 기동성에 가장 큰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 바로 이 몽골 군사들의 비상식량인 보르츠(Borcha)라는 육포̓다. 그래서 고려는 육포와 어포가 발달하였다.
여덟째, 제사 후 신과 산 자가 하나가 되면서 복을 받는다는 음복(飮福)습성이다. 특히 제주사람들은 지금도 제사 후에 복을 받는다고 음식과 술을 조금씩 나누어 먹고 집에 가지고 간다.
(2) 탐라문화, 몽골문화 차이점
첫째, 상이점(차이점)으로는 탐라는 잡곡류, 어류, 엿 등이 발달되어 있고, 향신료 사용이 부위별로 다르다. 향신료는 마늘, 파, 부추, 산초 등의 향신료와 콩을 발효시킨 된장을 이용하여 고기의 향미를 높인다는 점이다. 탐라는 농경, 해양음식문화 전통이 자주적으로 계속된 특이한 지역이다. 모자반 등 해초를 즐기는 국가는 한국과 일본 뿐이다. 해초는 알긴산과 섬유질 덩어리로 성인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약산성인 돼지고기와 알칼리성인 모자반의 ‘환상적 결합’인 셈이다. 그럼에도 제주를 제외하면 그 어디에도 이와 같은 궁합이 없음은 생활환경과 전통적 지혜를 융합한 제주인의 지혜인 것이다.
둘째, 몽골은 여름과 겨울음식이 확연히 다르다. 몽골 주식패턴은 1) 여름의 차강이데(유제품) 2) 겨울의 올랑이데(육류), 곡류 등으로 구성된다. 몽골은 여름과 겨울음식이 확연히 다르며 유제품과 육류를 기본으로 한다. 유목생활, 이동생활로 간소하고, 한꺼번에 많이 만드는 특성을 띤다. 몽골은 가축기름덩이를 매우 선호한다. 특히 여름에는 유제품을 상용하고, 겨울에는 육고기 요리를 상용한다.
셋째, 탐라의 식문화는 바닷가라는 지역특성과 기후, 습성, 전쟁기지 등의 영향을 받아 생성된 문화다. 이렇게 본다면 탐라의 대표음식들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환경적, 사회적, 문화적 통합적으로 탄생한 지역음식이다. 제주는 농경, 해양음식문화 전통이 자주적으로 계속된 특이한 지역이다. 탐라는 정착, 군집생활 등으로 어류와 밭작물에 의존하였으나, 몽골은 유목생활, 이동생활로 간소하고, 한꺼번에 많이 만드는 특성을 띤다. 몽골은 가축기름덩이를 매우 선호한다. 특히 여름에는 유제품을 상용하고, 겨울에는 육고기 요리를 상용한다. 유류음식(수우, 으름, 아를, 아이락)과 육류음식은 5축(양, 염소, 소, 말, 낙타)을 주로 한다. 이상 양지역의 음식문화 유사점과 상이점을 < 표 6 >에 정리한다.
< 표 6 > 유사, 상이점
구분 | 탐라 | 몽골 |
유사점 | - 굽기, 삶기, 끓이기, 순대문화, 소주 - 모자와 의복, 신발에 모피사용, 牧馬에 능숙, 馬具, 牛馬糞 연료사용, 모피는 몽골 모자 형태, 들에 돌을 쌓음(오부), 牛馬犬의 귀자르기, 濟犬 수렵, 요람(아기구덕), 바람을 이용 穀食을 選穀함, 언어의 공통점 등 | - 문화적 특성으로 삶기, 찌기 등 - 굽기, 삶기 등 모자와 의복, 신발에 모피사용, 牧馬에 능숙, 馬具, 牛馬糞 연료사용, 모피는 몽골 모자 형태, 들에 돌을 쌓음(오부), 牛馬犬의 귀자르기, 濟犬 수렵, - 가축의 전 부위를 활용 순대와 탕 문화 |
상이점 | 직화구이 잡곡류, 어류, 엿 괸당(친척)문화 우영팟 채소와 수산물 식용 발달 자연재료 활용 | 차강이데 올랑이데 고기류, 우유 등 중심 마유주, 면류 발달 몽골의 순대는 양과 염소의 장을 사용함. 군사음식인 탕, 고치구이, 바비큐, 소시지, 포, 소주가 발달 |
2. 몽골음식문화의 시사점
첫째, 정치 사회 문화적 시사점이다. 약소국가들의 식민지배 경험은 정치, 경제적인 착취이겠으나 문화적으로 보면 양방향 교류가 된다. 즉 문화적 변용이 이루어진다. 이 때 문화모방은 외형을 받아들이면서 내용은 자국의 것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한다.
둘째, 삼별초 토벌 후 몽골군의 진수에 따라 農蠶法이 전래되고 몽골과 개경문화 유입 및 불교의 발전이 이루어진다.
셋째, 문화적 영향측면이다. 몽골에서 양고기를 지금까지 상식 하듯이, 탐라는 소, 돼지, 닭고기 식용문화가 보편적이다. 이러한 국물중심의 식문화는 조선보다 고려에 그 원형을 두고 있으며, 그 식문화의 유래는 유목민 음식문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몽골의 양고기 보다는 쇠고기 중심의 반도적 특성을 가미한 ‘탕 문화’가 가미된 독자적 음식문화라고 판단된다. 탕(湯)의 원류와 관련 유목민들은 초원중심의 식생활 기반인 양과 염소, 소 등으로 발달되고, 한국은 농경문화와 경작문화로 소와 돼지, 닭고기 중심의 음식문화로 발달되었으며, 설렁탕 등 탕 중심의 음식문화가 이어지고 있다.
넷째, 숟가락과 젓가락 사용의 탕국문화가 중심에 자리한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국물(탕)문화의 발달이유(정수현, 정경조, 2014 : 60)는 주식인 밥을 부드럽게 넘어가게 하기 위함이며, 가난한 서민들의 배를 국으로 채워 포만감을 유지케 하고, 온돌의 발달로 남는 열을 이용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다섯째, 몽골의 최상류층문화가 유입되는 한편 몽골문화와 인종의 결합이 급격히 진행된다. 제주문화의 국제성 신장의 계기가 되고, 본토와의 차별적 문화 정착 및 음식문화의 독자성 정립 계기가 되었다.
여섯째, 제주음식문화 정체성은 조선보다 고려에 그 원형을 두고 있으며, 그 음식문화의 유래는 유목민 음식문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쇠고기, 돼지고기 중심의 반도적 특성을 가미한 ‘탕문화’가 가미된 독자적 음식문화이다.
끝으로, 발전과제 측면이다. 몽골 ‘칭기스터너 캠프’ 는 몽골 ‘13세기 전통마을’(공원)을 재현했다. 匠人종족(무기, 검, 방패 등 제작 현장), 몽골族 아이막(책궁전, 차강이데, 흰음식 체험), 牧者종족(유목민의 하루, 야생마 길들이기 등), 무당 종족(무속 체험), 왕의 궁전(몽골식 식사), 나무심기 체험 등으로 프로그램화했다. 제주의 경우 탐라총관부, 게르촌 공원화, 목마장과 음식체험 코스화를 구상해 볼 수 있다.고산과 성읍 목마장 재현으로 13세기 문화 체험장으로 활용한다. 몽골음식문화 체험거리 조성, 교육과 문화체험장으로 활용으로 제주 동서아막 유적지 보존과 관광프로그램 복원도 요청된다. 둘째, 양왕자터와 백백태자 등의 재조명 작업이다(오영주, 2015 ; 이종수, 이병렬 : 284). 이원진의 『耽羅志』나 『朝鮮王朝實錄』에 의하면 이들이 살았으며, 무덤이 된 지역은 서귀포시 하원동 산 21번지다.(『태조실록』 4년 1395 ; 『태종실록』 졸기, 8권 4년 1404 갑신). 셋째, 제주 전통과 전통음식의 현대화와 삶의 터전과 양식 재현 프로그램 제공이 필요하다. 넷째, 한몽거버넌스 구축 측면이다. 먼저 한,몽 역사테마명소개발이다. 예컨대 안동, 제주와 몽골교류, 강화도 등의 몽골문화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역사, 문화교류의 활성화이다. 그 수단으로 몽골군의 양조 현장이나 목마장 등을 가시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제5장 나가는 글
이 연구를 통하여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선조들은 식사 시에 국물을 중시해 왔으며, 고려 후기 몽골의 영향으로 육식과 채식문화가 결합되어 민족의 음식문화 정체성이 형성되고, 조선시대 들어 양반을 중심으로 한 곰국과 백성을 중심으로 한 설렁탕 문화가 자리잡아 현대의 일품요리로 계승되어 속풀이와 해장국 용도 등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음을 밝혔다.
본 연구는 13세기 대원제국의 耽羅의 문화적 특성에 미친 영향을 음식문화의 유사, 상이점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몽골 지배층의 문화가 탐라에 이입, 전통과 융합하며 제3의 음식문화로 변이 변동되었음을 분석하였다. 음식문화란 정복(지배)층의 문화와 기존 토착민 문화가 문화의 변증법적 발전을 거쳐 토착화된다. 탐라의 음식문화는 몽골의 육식, 목축기술문화와 고려의 어로, 농업문화의 접점에서 개화된 음식문화다. 구체적인 사례로 육식과 목축기술의 도입과 2013년 현재 문화적 영향으로서의 국물음식 탕, 육식과 포 문화, 순대와 떡 문화, 소주 문화, 상애떡, 빙떡 등의 관련성에서 유목문화의 일단을 찾고, 상호 영향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려의 ‘탕국 등 설렁탕’과 탐라의 ‘수애’ 등의 음식의 전래와 토착화 실태를 분석하였다.
본 연구는 21세기 한식의 일부분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육식문화의 원류를 이루고 있는 국물(탕국)문화를 조명하였다는 점에 연구의 의의가 있다. 13세기 몽골 대제국의 세계와 탐라에 미친 경제사회적, 음식문화적 영향과 파장을 문화변동과 유지 측면, 사회문화적 측면과 음식문화적 측면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700여년 전의 몽골지배문화와 오늘의 제주문화의 오랜 기간의 지배 결과에 따른 문화의 토착화 사실을 확인해 준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 막연히 타문화 특성을 배척하는 것은 국수주의적인 근시안적 태도라고 할 것이다. 근원이 어딘가는 분명히 알고 자신에 맞게 발전시키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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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ysis of Food Culture acculturation of Tamra in 13 century
The article consists of five sections. The first clarifies research questions, the purpose of study and methodology about analysis of food culture acculturation of Tamra in 13 century. The second deals with methods of study, literature review, previous research and theoretical background of analysis of food culture acculturation of Tamra in 13 century. The analytical variables of the study were Pax Mongolia, culture acculturation, cultural adaptation, so forth. The third presents analysis variables about analysis of food culture acculturation of Tamra in 13 century. The forth section suggests research effect & limitations of the study. The last section concluded and proposed some suggestion & expectation effect, so forth. The results and these findings give us suggestions that it was useful to investigate analysis of similarity & differences of Tamra & Mongolia's food culture in 13 century.
Key-words : food culture, Mongolia meat eating culture, Mongolia culture acculturation, cultural adaptation, Tamra Food Culture Similarity & Differences of Food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