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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조선경국전'의 10차 개헌 시사점

현곡 이종수 2018. 2. 12. 08:16

三峰朝鮮經國典10次 改憲 示唆点

 

이종수(서울대 총동창신문 논설위원)

- 목 차 -

. 서 론

.朝鮮經國典의 의의와 구조

.朝鮮經國典의 독창성과 영향

.朝鮮經國典의 제10차 개헌 시사점

. 결 론

참고문헌

 

. 서 론

 

조선창업 사상을朝鮮經國典에 담은 삼봉의 국가제도를 정초한 지혜와 시사점을 民本思想과 제도적 왕권 견제책인 臺諫制度(司諫院 ) 및 반 자율적 주민통제 제도인 鄕憲 등의 제도형성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삼봉 정도전(1342-1398)의 권력제도의 근원은 민본(民惟邦本)에서 유래했다(진희권, 2004 : 68 ; 이종수, 2014 : 121). 삼봉은 백성, 국가, 군주의 순으로 그 중요성을 자리매김한다(한영우, 1972 : 788).

그의 사상의 맹아에는 백성을 가장 중시한 民本思想이 깃들어 있다. 삼봉의 위민, 경세, 실학사상은 조식에 전수되고, 이어 윤휴, 허목에 영향을 미쳤으며, 후기 실학자 유형원과 다산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인 민본사상과 윤리 도덕성의 내용은 백성을 주로 하고, 임금과 재상에 대한 대간의 견제를 통한 균형의 유지를 중시한 것으로,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오늘날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개헌논의의 이론적 준거의 틀로 삼을 수 있다.

조선경국전의 구조가 중국의 주례와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사공학 등을 창조적으로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는 점이다(서정화, 2017.4). 조선시대 삼봉의 민본사상의 조명을 통하여 선조 대의 민본사상의 근원과 원류, 현시대의 적용방안과 효과 등을 모색한다. 현대의 지방자치와 주민참여, 국가권력 견제를 위한 민본사상, 대간제도 등의 핵심을 10차 헌법개정에 반영하도록 한다. 삼봉은 신왕조의 정권을 이론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하여 광범한 헌법적 원리를 구상하였다(최종고, 1997 ; 김경록, 2004 : 112).

9차 개헌(1987)이후 약 30여 년의 기간이 경과되는 동안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사회적, 제도적 한계와 딜레마에 빠져 있다. 정권마다의 게이트와 최근 박정부의 최씨 게이트, ‘미르재단사례 등은 단임제,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과 그러한 절대 권력 하에서 대통령의 독주나 의회 정치의 종속화 등이 심화되었으며(이종수, 2017.5-6 : 33), 동시적으로 공직을 농단한 공직사유관 등에 대한 민심의 반영 필요성 등도 절실해 졌다. 荀子君舟民水, 水能載舟, 亦能覆舟라고 하여, 백성이 군주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2016년 교수신문은 사자성어로 군주민수(君舟民水)를 선정했다.

이하에서는 여말 선초 새로운 사상을 조선경국전에 담은 삼봉 정도전의 헌법사상을 재조명하여 국가제도를 정초한 지혜와 시사점을 民本思想司諫院(제도적 왕권견제), 鄕憲(반자율적 주민통제)등의 제도형성에서 찾아보고, 이를 토대로 10차 헌법개정의 사상적 토대로서 그의 법치사상의 시사점을 중심으로 재조명하여 혼란한 사회를 재구조화 시킬 수 있는 개헌의 진로를 삼봉의 백성, 국가(관료), 군주의 순으로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개헌의 초점과 시사점은 국민기본권, 복지권, 언론권, 지방자치, 시민권 등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 朝鮮經國典意義構造

 

1절 조선 건국과 법제

 

1. 조선경국전구조

 

(1) 의의

 

첫째,조선경국전과 헌정이념(양승태, 2008 : 123-125) 관련 조선경국전은 새 왕조의 치국지침이었다(문철영, 2011 : 101). 헌법의 문언적 의미는 법 ()’과 법 ()’이 결합한 것이므로 법의 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래는 영어의 Constitution을 번역한 것으로서, ‘조직하는 것이란 뜻을 가진다. 게오르크 옐리네크(Georg Jellinek, 1851~1911)모든 지속적인 단체의 의사를 형성하고 시행하며, 그 범위를 확정하고, 구성원의 지위를 규정하는 질서를 헌법이라고 한다. 국가에다 옐리네크의 말을 적용하자면 국가의 조직과 작용의 원리 및 국민과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거나 형성하는 기본법이 헌법이 된다. 그러나 헌법에 의한 통치라는 입헌주의가 정착하기까지는 헌법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국민들이 정치구조를 선택하고 그에 따른 헌법을 제정하고 개정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둘째, 근대헌법의 맹아가 된다(양승태 : 126). 조선경국전은 조선 개국공신인 정도전(1342~1398)1394년 태조에게 지어 올린 사찬(私撰) 법전이다. 국가 운영 요체를 담은 '조선왕조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책이다. 관제·군사·호적·경리·농상 등 각 분야의 제도를 기술해 조선의 건국 이념,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대한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조선경국전경제육전(개국 초 반포된 공식 법전, 1397, 1412), 육전등록(1426)의 토대이며, 조선의 기본 법전이자 국가운영서인 경국대전(1485)의 모체가 됐다. 태조는 조선경국전을 지은 공로를 인정해 정도전에게 '유학으로도 으뜸, 나라를 일으킨 공으로도 으뜸'이라는 의미의 '유종공종(儒宗功宗)'이라는 글을 하사한다.

셋째, 국호 조선 관련 왜 국호를 조선으로 정했느냐 하면, 삼봉의 이상국가는 나라여서 삼봉은 조선을 동주(東周)로 만들고자 했다. 고조선의 天孫사상 이념인 홍익인간 사상이 그 출발점이다. 檀君조선보다 기자조선에서 국호 조선을 가져왔다. 檀君을 동방의 첫 受命君主로 여겨 평양부에서 祭祀, 해금 時祭등이 있었다. 즉 단군을 천손자손이라고 보고, 기자조선과 중국문화의 이입(김비환, 2008 : 492), 삼국시대의 포괄성, 민족 통합적 관점에서 조선을 국호로 정하게 된다(신병주, 2015 : 8).

 

(2) 조선경국전구조

 

朝鮮經國典은 상·2권으로 된 삼봉의 필사본으로 치국의 지침을 삼기 위해 六典에 따라 조선왕조의 모든 관제의 대강을 서술했다(라용식, 1988 : 21-22 ; 정호훈, 2006 ; 정긍식, 2015 : 101-107). 체계는 크게 (定寶位·國號·定國本·世系·敎書)과 정부 六典體系(治典, 賦典, 禮典, 政典, 憲典, 公典)이다.

조선경국전의 상권은 왕과 관련 사항 및 치전, 부전, 예전을, 하권은 정전과 헌전의 내용이다. 조선왕조의 개국과 초기 개혁정책을 주도한 인물인 정도전은 조준과 함께 이 책을 찬술하여 왕에게 바쳤다. 그러나 공식 법전으로 채택되지는 못했고, 3년 후 조준이 책임자로 편찬한 경제육전이 공식법전이 되었다.

 

(3) 조선경국전 내용

 

삼봉(13421398)이 중시한 건국사상의 핵심은 백성, 국가, 군주 순이었다. 먼저 백성측면이다. 삼봉의 민유방본(民惟邦本) 본고방령(本固邦寜)’서경주례에 근거한 말이다. 즉 민본사상(民本思想)은 민심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으로,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며, 이념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에 이르도록 지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둘째, 삼봉은 국가권력의 근원과 관련 첫째, 군주는 백성을 하늘로 검겨야 하며, 둘째, 권력은 인()에 의해 제약되어야 한다고 했다. 셋째, 권력남용방지를 위해 여러 기관에 권력을 분배해야 한다고 했으며, 넷째,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권력남용방지를 위해 여러 기관에 권력을 분배해야 한다고 했으며,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주대의 삼공체제와 유사한 三宰相合議體制를 유지코자 하였다. 재상은 군왕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임명하고, 재정관리권, 군사 통수권 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삼상(領相, 左右相)제도는 조선 500년 동안 시행되었다. 그의 재상제도는 3정승(,,우의정 : 1), 4명의 좌우찬성(1), 좌우참찬(2) 7명의 재상이 중심이 되는 구조였다.

삼봉이 재상중심주의 제도를 주창한 이유는 자신과 동료들의 권력 강화 목적도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이 불확실한 세습군주의 전제정치로는 民本政治를 보장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기초한 것이었다(민병학 외, 1998 : 116).

군주를 보필하는 재상은 백관을 관리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소임으로 삼았다. 즉 군주의 부족한 부분을 보상한다는 의미의 과 백관들이 자신의 직분에 어긋나지 않도록 제한한다는 의미의 자로 구성됐다(조선경국전, 치전, 김윤기, 2006 : 112). 삼봉이 재상중심주의 제도를 주창한 이유는 자신과 동료들의 권력강화 목적도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이 불확실한 세습군주의 전제정치로는 民本政治를 보장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기초한 것이었다(민병학 외, 1998 : 116). 셋째, 조선의 臺諫制度는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대간이란 백관들의 감찰 임무를 맡은 대관(臺官)과 국왕에 대한 간쟁의 임무를 맡은 간관(諫官)을 합친 말이다. 시정(時政) 득실을 논하고, 군주·백관의 과실을 간쟁 탄핵하며, 관리 인사에 대해 서경권(署經權)을 행사하는 등의 일들이 주 임무다. 군주 견제장치로서의 간관의 주 임무는 군주의 비행을 탄핵하는 일이다. 간관은 人身의 과오보다 心術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을 더욱 중시했다. 간관은 임금이 무엇을 취하고, 버려야 하는지를 충언함으로써 임금을 바르게 하는 일을 한다. 삼봉은 자유롭게 임금에게 말하는 직위는 재상과 간관밖에 없다고 보았다. 간언은 국왕의 행위나 정책결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근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왕권을 규제하는 기능 역시 중요한 것이었다.

經國大典에는 사간원 업무를 간쟁과 논박(論駁)으로 규정했다. 간쟁은 국왕에 대한 견제이고, 논박은 일반 정치에 관한 언론 활동이다. 조선왕조 500년 유지 비결의 핵심 중의 하나인 대간제도는 국왕과 대신들의 독단을 견제하고, 시정의 풍속을 바로잡으면서 관리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감찰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부정부패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간관에게는 신분 보장과 특별한 예우가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포폄(褒貶)을 받지 않거나, 당상관도 정중히 답례를 하도록 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의정부나 6조에 얽매이지 않은 사간원은 독립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넷째, 지방통치구조에서 관찰사는 직계권, 국왕직속, 수령에 대한 지도, 감독, 직권남용 견제, 포폄권 등을 보유하고, 권농과 주민안집, 조세와 전곡관리, 교육 및 기타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관찰사는 수령을 잘 다스려야 하고, 올바른 고과로서 수령의 능력을 바르게 평가해야 했다. 즉 관찰사는 소관지역을 순력(巡歷)하여 수령의 성적을 공정하게 고과하고 등제계문(等第啓聞) 하는 것이 가장 주된 임무 중의 하나였다. 관찰사의 관할수령과 관원에 대한 고과의 기준은 수령칠사(守令七事)였으며, 등제계문의 경로는 관찰사가 고과내용을 밀봉하여 국왕에게 올리면 친히 열람하고, 이조(吏曹考功司)에서는 이를 기록해 두었다가 고과에 참고하였으며, 접수한 이후 사헌부로 移牒되었다.

삼봉은 經濟六典에서 수령은 近民之職이라고 했다. 군수, 현령은 백성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정도전은 한, 당시대의 수령제도를 참조하여 수령의 자질과 평가 덕목을 초안하였다. 삼봉은 백성을 유교정치 목적으로 상정하고, 백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다스리는 군수와 현령은 백성의 근본으로서 백성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贓吏(장리)를 석서(碩鼠)라고 하여 엄히 평가하고자 했으니 삼봉의 법치사상은 순자와 유사하다.

 

2. 조선경국전경제문감

 

삼봉은 자신의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경제문감별집등에서 국가구조와 왕과 관료의 역할을 정립한다(진희권, 2004 : 59). 삼봉의 새로운 국가구상은 朝鮮經國典經濟文鑑에서 구체화 된다. 그는 이 두 권에서 조선이 나아갈 정치철학과 이념, 제도들을 제시하였다. 전자가 제도나 법령, 주체에 주력했다면, 후자는 치자층에 중점을 뒀다(정호훈, 2006 : 192).

첫째, 朝鮮經國典에서 삼봉은 국가제도를 백성중심의 민본사상(民本思想)과 국가, 군주 등의 순으로 중요성을 제시하고, 제도적 왕권 견제책인 대간제도(司諫院, 司憲府 ) 및 반 자율적 주민통제 제도인 향헌(鄕憲) 등을 제도화 하였다.朝鮮經國典經濟六典을 거쳐 뒷날 經國大典이 성립되는 모체가 되었다. 조선이란 국호는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기원한 것으로 곧 조선은 동주(東周)임을 강조한다.

삼봉의 朝鮮經國典書經, 周禮에 토대하여 중국제도를 조선에 적용한 사대주의적 요인을 부정할 수 없으나 그의 위민의식과 자주의식(철령위, 요동정벌)은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의 대내, 외적 자주의식사상의 뿌리가 되었다. 예컨대 그의 법치사상과 관료제 사상에는 성리학적 사상과 유배생활에서 체득한 백성중심 사상으로서의 위민의식이 강하게 베어 있다.

朝鮮이란 국호는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기원한 것으로 곧 조선은 동주(東周)임을 강조한다. 經濟文鑑經國濟世經世濟民을 제목으로 삼은 서적이다. 주요 내용은 관리로서의 태도와 책무 및 宰相제도의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서술하고, 이어 재상의 직책과 進退의 자세를 기술하고 있다. 재상의 역할은 정책의 중심기관이어야 한다고 했다. 재상은 군왕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임명하고, 재정관리권, 군사 통수권 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기타 臺諫衛兵監司首領의 직책을 논했다.

유가의 이상제도인 주례의 체제를 본떠 6전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조문은 전하지 않고, 6전마다 총서(摠序)와 항목별 개요라고 할 수 있는 소서(小序)만 남아 있다. 6전의 명칭은 원나라 법전인 경세대전 經世大典을 따랐으나, 내용적인 연관성은 크지 않다. 정도전은 조준(趙浚)과 함께 조선왕조의 개국과 초기 개혁정책을 주도한 인물로 이 책을 찬술하여 왕에게 바쳤다. 朝鮮經國典經濟六典(1397), 육전등록(1426)의 토대이자 조선의 기본법전이자 국가운영서인 경국대전(1485)의 모체가 됐다.

둘째, 경제문감은 經國濟世 내용으로 치전을 보강한 내용이다(정호훈, 2006 : 188).

셋째, 경제문감별집 군주론에 초점을 둔다(김인호, 2005 ; 도현철, 2000).

 

3. 內容 分析의 틀

 

이상의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은 조선개국기 통치 철학과 주요 내용을 담은 삼봉의 조선경국전과 경제문감을 중심으로 개헌을 위한 시사점을 백성, 관료제 및 군주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제언한다. 분석의 틀은 10차 헌법개정의 사상적 토대로서 그의 법치사상의 시사점을 중심으로 재조명하여 혼란한 사회를 재구조화 시킬 수 있는 국가제도적 측면의 제도개선을 위한 백성, 국가(관료), 군주의 순으로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 조선경국전의 독창성과 영향

 

1조선경국전의 독창성과 차별성

 

1. 제도적 독창성과 특징

 

첫째, 조선경국전의 헌법적 가치 측면이다(양승태, 2008 : 123-127). 朝鮮經國典經濟六典(1397), 육전등록(1426)의 토대이자 조선의 기본법전이자 국가운영서인 경국대전(1485)의 모체였다.

둘째, 외래사상의 독자적 주체화이다. 조선경국전의 구조가 중국의 주례와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사공학 등을 창조적으로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는 점이다(서정화, 2017.4). 朝鮮經國典周禮의 육전체제를 조선의 현실에 맞게 조정한 법제정책이었으나周禮에서는 재상제도와 과거제 등을, , 당제도에서는 집권구조와 군사, 군현 제도 등을, 大明律에서는 형법제도를 조선시대에 맞게 도입한 삼봉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과 동등한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민족적 자주의식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토대가 된 것이며, 또한 육전 체제를 따라 부분별로 제도화 한 우리의 전통적 방법에 기초하여 입법화됐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서정화, 2017.4). 이것이 오늘날 민족적 자유의식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토대이다. 이러한 삼봉의 민본적 법치사상, 통치체제의 균형, 군주의 견제와 자기 수양 측면의 주요 내용들이 제10차 헌법개정의 사상적 토대로서 충분히 논의되고,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셋째, 삼봉의 법치체제의 특징과 평가 측면을 보면, 먼저 정도전은 자기 정체성의 기반인 정통 주자학뿐만 아니라 주자학에서 배격한 사공학(事工學·실제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실용적인 경세치용의 학문) 계열의 사상도 적극 활용했다. 정통성리학과 경세론 제도론을 확대강화한 조선의 정치체제를 정립코자 한 것이다. 그는 주자학, 사공학, 경세학을 원용하여 왕조의 통치질서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법치체제의 특징으로는 자기 정체성의 기반인 정통 주자학뿐만 아니라 주자학에서 배격한 사공학(事工學·실제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실용적인 경세치용의 학문) 계열의 사상도 적극 활용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경제문감에 중국 남송 대 저술인 주례정의’·‘산당고색’·‘서산독서기’·‘주관신의등의 내용을 원용했다. 이 책들은 주자학이나 주자학과 일치하는 사공학 계열의 저서들이었으며, 정도전은 특히 산당고색(군서고색후집)’을 토대로 주자의 주례관을 원용하며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와 재상정치론을 제시했다. 삼봉은 성리학의 원래이념에 보다 충실함으로써 개혁을 달성코자 하였다. 정통성리학과 경세론 제도론을 확대강화한 조선의 정치체제를 정립코자 한 것이다. 그는 주자학, 사공학, 경세학을 원용하여 왕조의 통치질서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사공학은 왕안석 기준의 국가조직 경영관리 방안으로 경세학적 내용을 주로 한다.

넷째,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삼봉이 생각하는 경세제민이란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쉬우면서도 그 혜택이 일반백성들에게 미치는 실용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첫째, 民本政治賢人政治爲民政治 같은 것이 통치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면, 삼봉이 경제문감에서 고민한 것은 어떻게 그 이상을 성취할 것인가 하는 보다 쉽고도 구체적인 문제였다.

특히 오랜 유배생활을 통하여 백성들이 원하는 세상이 학자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정도전은 정치란 윤리·도덕을 실현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경제생활의 안정이 필수로 경제생활의 안정이야말로 통치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성리학의 원래이념에 보다 충실함으로써 개혁을 달성코자 하였다(도현철, 2009 : 26-27). 정통성리학과 경세론 제도론을 확대강화한 조선의 정치체제를 정립코자 한 것이다. 세론적 유교이념의 실천적 적용(이종수, 이병렬 : 141).

 

2. 삼봉사상의 차별성

 

첫째, 조선시대 유학에서 정도전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 및 사상적인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정통 성리학에서 중요시하지 않거나 논란이 되는 이론을 받아들여 조선사회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정도전은 사서오경 가운데 의례보다는 주례를 강조하였다. 주희는 의례를 경으로 보고 중시했지만, 정도전은 주자학적 정치이념을 주례를 중시하여 신 국가 정치체제 기본골격으로 삼고자 하였다.

둘째, 정도전의 개혁사상은 고려말 국가적인 시련과 사회적인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양인(良人)을 근간으로 하는 국가의 건설과 자주국가의 확립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그는 주례(周禮)를 기본모델로 하여 성리학 사상을 받아들였다. 고려 말 사회의 모순은 인간 상호간 증오심의 격화, 즉 윤리의 타락이 원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윤리의 재건이 필요하며, 윤리를 실현하는 수단이 정치이고, 그 전제조건이 경제의 안정이었다. 그는 상하(上下존비(尊卑귀천(貴賤)의 명분이 바로 서고, 인간마다 자기의 분을 지키면 사회 질서가 확립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상하질서의 확립을 위한 윤리도덕이 삼강오륜(三綱五倫)이었다. 이를 위한 사상질서로서 성리학만이 유일한 정학(正學)이고 실학(實學)이라는 신념으로 불교가 현실을 부정하는 형이상학적 종교이며 농장주의 공리(功利)만을 추구하는 이기적 사상체계라고 맹렬히 비난하고, 인류를 금수로 몰아넣는 이단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도덕윤리의 실현과정으로서 정치는 인간을 바르게 하는 것이며, 정치의 주체로 윤리도덕을 체득한 자를 설정했다.

셋째, 물질적 기초로서 국가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농업생산이 진흥되어야 하고, 또한 토지소유관계가 재조정되어야 했다. 고려말 사회적 모순의 가장 큰 원인은 토지소유의 극단적인 불평등에 있으므로 먼저 토지제도의 전면적 개혁이 요청되었다. 이에 따라 중국 삼대(三代)의 공전제(公田制)에 이상을 둔 철저한 전제개혁을 통한 계민수전(計民授田)에 의한 자작농의 창출과 경제적 평등의 실현을 목표로 했다.

넷째, 빈민구제를 위한 정책으로서 의창(義倉) 및 혜민전약국(惠民典藥局) 제도가 도입되어야 하며, 전쟁이나 흉년을 대비하기 위하여 최소한 3년을 쓸 수 있는 저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다섯째, 정침의 의 내면화이다. 삼봉은 정침의 에서 혁명사상 단초를 다진다(문철영 : 403). 고려 후기 정침(鄭沉)은 나주(羅州) 사람이다. 이 고을에서 벼슬하여 호장(戶長)을 하였는데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잘하고 집안 살림살이는 돌보지 않았다(정도전, 국역 삼봉집, 1376 ‘정침전’). 홍무(洪武) 4(공민왕 20, 1371) 봄에 전라도 안렴사의 명()으로 제주도의 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내는 축문(祝文)과 폐백(幣帛)을 받들고 바다를 건너 가다가 왜적(倭賊)을 만났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의논을 하였는데, 다른 사람 모두는 두려워서 항복하자고 하였지만 오로지 정침은 불가를 외쳤다. 그는 적들과 싸우기를 결심하고 활시위를 잡아당기니, 적들은 활시위의 소리에 따라 거꾸러지고 감히 다가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화살이 떨어져서 일이 여의치 않음을 알고 관복(官服)과 홀()을 갖추고 바르게 앉아 있다가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 배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적에게 항복하였고 죽은 사람은 정침뿐이었다.

정선생(정도전)이 이를 듣고 매우 슬프게 생각하여 전()을 지었다. 사람들은 이따금 죽음에 대하여 돌아가는 것처럼 생각하는데 이것은 의리와 이름을 위해서이다. 저 자중하는 선비들은 의리로 보아서 마땅히 죽어도 여한이 없는 명분이 있을 때, 아무리 끓는 가마솥이 앞에 있고, 칼과 톱이 뒤에 설치되어 있고, 화살과 돌이 위에서 쏟아지고, 흰 칼날이 아래서 서리고 있을지라도 기꺼이 부딪히기를 사양하지 아니하고, 내딛기를 피하려하지 않는 것은 의리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죽음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연 글 잘하는 사람이 뒤에 이것을 적어 서술하여 서책(書冊)에 나타낸다면, 그 영웅스런 명성(名聲)과 의열(義烈)이 사람들의 이목에 밝게 비치고 사람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킬 것이니, 그 사람의 몸은 비록 죽었지만 죽지 않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하여 기록하여 후세에 전하지도 않으니, 정침의 충의는 물결과 같이 흘러가고 말 것이다.

정침은 한낱 시골의 아전의 신분으로 적에게 항복하는 것이 의가 아님을 알았으며, 아무리 다급한 상황에서도 그 바른 자세를 잃지 않고 정장을 갖추고 죽음을 기다려 적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으니, 그 충성되고 씩씩한 기백이 흉악한 적들의 마음을 감복 시켜서이다.

적이 이미 해치지 못하자 자살을 결단하여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물에 몸을 던져 털끝만큼의 더럽힘도 없이 조용하게 의열(義烈)을 이루었으니, 강개(慷慨)롭게 몸을 희생한 것은 옛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모두가 천품이 아름다운 것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름을 좋아하는 선비가 목적한 바가 있어서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그 충의의 열렬함이 이러한데도 세상에 알아주는 자가 없다. 사람이 난처한 사태를 당하여 그 바른 길을 잃지 않는 것은 다행히 한 번 죽는다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상과 현실의 조화와 제도적 실천이다. 유학의 비조 공자도, 역성혁명을 주장했던 맹자도, 신유학의 태두 주자도, 그 어느 유학자도, 서양의 정치학자 마키아벨리, 경제학자 마르크스도, 조선시대 퇴계나 다산도 국가를 건국하여 유교이념을 제도적으로 실천하지 못했으나 오직 삼봉만이 유교이념의 정치적 실천과 국가 통치선상에서 치열하게 몸부림친 유자로 살았다. 삼봉과孟子의 만남이야말로 한국의 정신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맹자사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왕도는 치세에 적합한 통치사상이고 패도는 난세에 그 유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가경영의 치도관에서는 왕도적 비전과 패도적 전망을 사상적 충돌 없이 융합하고 있다(권행완, 2012).

 

2조선경국전평가

 

1. 제도 측면

 

첫째, 조선의 최초의 헌법에 해당한다. 유교적 법치론에 토대했다.

둘째, 삼봉은 조선의 정치 체제 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초를 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삼봉이 살았던 고려후기, 조선 개국기는 멸륜 해국의 불교폐단, 권문세가의 횡포와 백성들의 피폐와 태생적으로는 그의 외조모가 노비출신이라는 사회적 냉대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극심한 가난 및 9년간의 유배생활 과정에서 다양한 민초들을 만나 초야에서 생활하고,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만들기 위한 공전(公田), 재상중심사회 등을 꿈꾸며, 세상을 周禮의 실천 대상으로 인식했다. 특히 혈통상의 문제가 그의 혁명관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래서 백성의 경제적 안정(민생) 수단으로 철저한 정치개혁, 전제개혁을 통하여 핍박받던 일반백성을 위해 살았던 혁명가요, 실천적 성리학자로 57세를 살았다.

셋째, 고려사회의 절박한 문제의식과 노재학풍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 실천윤리에 대한 관심이 주자 성리학의 사회 기능적 측면으로 수용된다(문철영, 1982 : 117).

넷째, 그의 태생적 한계와 극심한 가난 및 9년 간의 유배생활 과정에서 다양한 민초들을 만나 초야에서 생활하고, 성리학적 이상 국가를 만들기 위한 공전(公田), 재상중심사회 등을 꿈꾸며, 세상을 周禮의 실천 대상으로 인식했다(이종수, 2014.8). 특히 혈통상의 문제가 그의 혁명관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평가되며, 동시에 오랫동안의 유배와 방랑 속에 백성을 해방시킬 역성 혁명으로 비화한 것이다. 삼봉은 백성, 국가, 군주의 순으로 그 중요성을 백성에 두고 백성의 경제적 안정(민생) 수단으로 철저한 정치개혁, 전제개혁을 통하여 핍박받던 일반백성을 위해 살았던 혁명가요, 실천적 성리학자였다(이종수, 이병렬, 2014).

그의 사상의 맹아에는 백성을 가장 중시한 民本思想이 깃들어 있다. 삼봉의 위민, 경세, 실학사상은 조식에 전수되고, 이어 윤휴, 허목에 영향을 미쳤으며, 후기 실학자 유형원과 다산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상적 토대인 민본사상과 윤리 도덕성의 내용은 백성을 주로 하고, 임금과 재상에 대한 대간의 견제를 통한 균형의 유지를 중시한 것으로,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오늘날 난국을 돌파하기 위한 개헌논의의 이론적 전거의 틀로 삼을 수 있다.

다섯째, 朝鮮經國典은 정치이론서이면서, 동시에 조선왕조의 최초의 헌법에 해당하며, 근대헌법 이념의 핵심적 요소를 구비했다고 평가된다. 朝鮮經國典은 한국사상사 상 관념과 의지가 일치를 이룬 대표적인 지행합일의 저술로서 훌륭한 정치학원론이 되었다. 이후 經國大典, 續大典, 大典會通등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은 큰 틀에서의 변화없이 500여 년 동안 유지되는 데, 이것은 조종성헌주의(祖宗成憲主義)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조종성헌주의는 후대 왕이 선대에 만든 법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이다. 예컨대 朝鮮經國典은 근대헌법의 전문의 성격을 보유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F.Hegel(17701831)은 동양에는 헌법(Verfassung)이란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조선에서 14세기에 유교적 통치원리에 의한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가 구상, 실천되었다는 사실은 세계의 법사상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여섯째,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君主論(1513) 보다도 118년이 앞섰고, 그 내용상의 심오성은 물론 훨씬 진보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도덕을 구별하고, 군주의 통치술을 강조했지만, 삼봉은 정치와 도덕을 연결시켜 도덕정치의 표준을 세웠다는 점이 독창적이다(한영우, 2014 : 152).

 

2. 경제적 측면

 

첫째,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으로 토지 국유화와 가구의 크기에 따른 토지의 재분배를 주장했다. 또한 왕권을 제한하고 정치 권력을 수상에게 부여하는 정치구조를 주장한 저명한 성리학자로 근대 역사학자들에게 매우 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 정도전은 수기치인을 유학의 두 중심으로 파악했고 양자가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정의롭지 않은 정치개혁도 성공하기 어렵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도덕적 정의만 고집하는 정치도 능사가 아니라는 점을 정도전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정당한 정치의 실현을 목표로 하지 않는 도덕적 수양은 그 자체만으론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수기보다는 치인의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이러한 정도전의 치인중심적 정치인식은 부당한 왕권을 교정할 지식인의 책임을 강조해 정치의 공공성을 높이려는 발상의 소산이었다. 삼봉은 도덕이 몸과 마음에 온축한 것(修己)을 유자라고 이르고, 교화를 정사에 베푸는 것(治人)을 관리라고 하였다(조흥욱 : 68).

 

3. 삼봉의 민본중심 전제개혁

 

전제개혁론의 역사적 측면은 첫째, 고려 후기 원대 성리학 영향측면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사전의 공전으로의 변화다. 둘째, 유배시기 촌로들과 애민 체험 및 권문세가들에 대한 분노 측면에서의 민본관이다. 9년간의 유배와 방랑생활에서 백성들의 생생한 애환을 같이 겪으며, 개혁 마인드를 키웠다. 셋째, 역성혁명과 유교적 이상국가 건설을 통한 민본사상 구현 측면이다. 혁명과 민본 이념은 맹자에서 차용했으나, 맹자의 혁명이론은 개인과 개인 사이에 이루어지는 선양(禪讓)과 방벌(放伐)의 두 가지 형식을 말했다. 그러나 삼봉은 선비나 백성의 집단이 그 주체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김정기, 2007 : 160). 삼봉의 통치, 혁명사상은 철저한 민본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민본 중심의 민사상은 현대의 정치 행정사상으로 재조명되어 한국적 민본정신으로 이어져 나갈 필요성이 있다(조항덕, 2012 ; 이원명, 2013). 넷째, 그의 혁명관과 관련 숭유억불정책의 제시와 도,불교 폐해의 봉쇄 측면이다(조준하, 1998 : 165). 배불이론의 집대성, 유교적 합리주의, 기복종교관의 극복, 유교적 인식론의 확립이다(이영춘, 1998).

삼봉의 개혁사상으로 전개된 과전법의 의의는 첫째, 려말 대토지 소유문제를 저지하고, 조선개국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된다(홍영의, 2001 : 229). 둘째, 국가토지지배 체제로서의 과전법이 정비된다. 셋째, 소농민의 안정화를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

 

. 조선경국전의 제10차 개헌 시사점

 

1절 삼봉 헌법사상의 영향

 

1. 백성측면의 영향요인

 

삼봉 법치사상의 현대적 시사점과 민본사상의 현대적 의의이다. 삼봉이 중시한 건국사상의 핵심은 백성, 국가, 군주 순이었다. 먼저 백성측면이다. 삼봉의 민유방본(民惟邦本) 본고방령(本固邦寜)’서경주례에 근거한 말이다. 즉 민본사상(民本思想)은 민심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으로,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며, 이념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에 이르도록 지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조선경국전은 민본주의로 관청 여자 노비가 출산하면 출산휴가 80일을, 남편에게도 15일 휴가를 허락했다.

 

2. 관료제 측면

 

재상중심주의(이진표, 2000 : 202)측면과 관련 참다운 선비(眞儒)가 행정을 맡아야 한다는 점이다(권행완 : 79). 도덕윤리의 실현과정으로서 정치는 인간을 바르게 하는 것이며, 정치의 주체로 윤리도덕을 체득한 자를 설정했다. 그러한 자격자가 성리학자인 사()로서, 진정한 사는 윤리·도덕가일 뿐만 아니라 성리철학자여야 하고 천문·의학·지리·복서(卜筮) 등 기술적인 학문에도 능통해야 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교육자이고 역사가이며, 의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지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는 고정된 세습신분이 아니라 자질이 뛰어난 자라면 누구나 교육을 받아서 사가 될 수 있으며, 농사를 겸할 수 있는 계층이라고 역설했다.

 

3. 군주 측면

 

백성을 섬기고, 인정을 베풀고 신하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했다.

 

2절 시사점 측면

 

1. 삼봉 조선경국전사상의 현대적 시사점

 

사상적 측면의 주요 영향(김일환, 2007 : 161-164)으로는 성리학을 정치적으로 재해석하고, 백성을 정치의 목적으로 재발견하였으며, 조선 정치제도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민본사상을 제시하였으며, 통치권의 기반이 된 朝鮮經國典등 주요 저술을 남겨 조선의 법적 토대를 마련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조선시대 삼봉의 백성중심의 민본사상은 현대의 지방자치와 주민참여, 국가권력 견제를 위한 대간제도 등의 핵심을 10차 헌법 개정 반영 필요성을 제기한다.

첫째, 민투표, 주민 참여제도 보완이다. 지방정부의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 주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보장할 필요가 있다(이종수, 2015). 1400년대 초반 함흥에서 시행한 효령과 삼봉의 鄕憲은 현대적인 주민자치의 嚆矢가 된다.

둘째, 조선시대의 에 대한 간쟁과 論駁을 통하여 전제적 왕권을 견제했던 司諫院의 기능을 현대적으로 부활시켜 절대 권력을 순화시키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셋째, 적폐 청산과 관련 삼봉은 뇌물받은 장리(贓吏)는 사람 마음의 커다란 해충이라고 했다. 그 뿌리를 제거하여 뻗어 나가지 못하고 하고, 그 가지를 쳐서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삼봉집, 박진훈 역, 2011 : 114-115). 탐욕스러움이 이리처럼 많고 미워하고 음흉함이 사나운 짐승같다고 하여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하고, 구체적으로 포폄제도를 개발하였다(이종수, 2001, 2016).

적폐(積弊, accumulated evils)를 오래 동안 쌓여 온 폐단이라고 보면, 부패(corruption)는 일반적인 비리들의 통합체로, 관료병(public service illness)은 보다 개인적으로 물질에 집착하는 과도한 성향이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적폐청산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으로 전직 대통령과 고위공직자 부패, 부정청탁, 뇌물, 재취업, 민폐, 그리고 낙하산 인사 등 등을 깨끗하게 척결한다는 의미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간과하고 있는 것은 적폐, 부정부패의 근원적 온상은 정부 관료제의 의사결정과 집행, 평가, 피드백에서 시작되고 종결되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적폐는 정부부처와 직접 연관된다는 점이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 등의 부정부패와 도덕적 해이 등에 대한 죄의식이 전혀 없다. 한국사회의 부패 정도는 87.5%. 그들의 주요 적폐는 뇌물 수수(44.5%), 이권 개입(24.0%), 권한 남용(22.0%), 인사 청탁(8%) 등이며, 중앙정부의 경우 특권을 너무 누림(86.7%), 사회 불기여(68.9%), 법 준수 않음(80.5%) 등의 형태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관예우=전관범죄라는 등식으로 이어지며, 전관예우가 극심한 분야는 금융(94.3%), 법조(88.6%), 조세(69.3%), 국방(30%) 순이다.

정부부패의 경제적 비용은 세계 GDP2%에 이르며, 부정부패는 공적인 권한을 사적 이익을 위해 남용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퇴계(退溪, 15011570)는 재물과 이익에 집착하면 게걸병(貪慾病)이 생긴다고 하였다.

2017년 중앙 지방공무원수는 약 936,000, 공기업 직원을 포함하면 약 1,207,000 여명이다. 10여 년 전 임실군 인사비리로 구속된 임실군수는 지방자치단체장의 70% 이상이 승진대가를 받고 있다, 사삼서오부패 문화를, 장학사 매관매직 관행으로 불거진 교육계는 장천감오구습이, 교수직 매매가는 '5천만~2억 원' 이상이며, 2017년 현재 공기업 채용비리의 주요 사례는 지인 청탁, 낙하산 맞춤형, 여성지원자 고의 탈락, 금품 수수 등으로 나타났다.

이상과 같은 적폐 척결 없이는 1인당 3만 불을 넘어서 5만 불 이상의 부국으로는 갈수가 없다고 세계 경제학자들은 말한다. 싱가포르는 부정부패를 확실하게 뿌리 뽑아 1인당 GDP 3만에서 5만 불 이상인 부국이 되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왕()이 뱀에 물린 팔을 잘라내는 장사단완(壯士斷腕)’의 결단이 요청된다.

부정부패 방지는 현재의 제도와 법규로는 무력하다. 블록체인 도입만이 확실한 방법이다. AI 대체직무의 확대 등이다. 미국과 중국 등의 주요기업의 약 90%가 이미 인공지능(AI) 기술을 기업 운영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기업 운영에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된 AI 기술로는 머신러닝(52%), 컴퓨터 비전(48%), 자동 추론(43%), 로봇공학(41%) 등이 꼽혔다. AI와 인구 절벽시대 공무원 증원이야말로 새로운 적폐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신분과 보수구조의 메리트(연금, 신분보장 등)를 없애지 않는 한 공시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공직제도 강점인 신분보장과 연금(보수의 안정화)구조 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 대선의 5개년 간 ‘17만 명 채용공약이행은 재수정하여 20만 명 내외 수용분야를 지역정책과 연계하여 재구상 해야 한다. 매관매직 당사자 처벌근거법 제정과 공익정보제공자 보호 등을 들 수 있다. 제도적인 매뉴얼을 통해 공인들에게 구체적인 행위와 수수가 어떻게 처벌받는지를 공지하고, 뇌물수수 시 개인의 형사처벌 범위를 명시한다. 공무원 채용의 폐쇄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5급 공무원임용제도를 폐지한다. 그 효과는 공무원 조직 내의 계파, 학파, 지역, 고시 기수 등을 혁파하는 효과와 퇴직 후 공무원 낙하산 문제 해소, 관피아 문제 해소, 고시 낭인 방지효과 등을 기대할 수 있다. 비리척결백서발간과 대국민 보고회를 개최하여 부패척결 결과와 효과를 만천하에 공개하여 백성들의 동의를 구하고, 재발방지를 제도화할 것을 제언한다.

 

2. 10차 개헌의 접근법

 

첫째, 한국형 접근 대안으로 지방자치 분권형 개헌국민회의’(가칭)를 제안한다. 각 분야별로 일정 수의 국민을 추첨을 통하여 선출하고, 개헌국민회의에서 개헌내용을 논의하고, 결정하게 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혼란한 사회를 여하히 안정화시킬 수 있는 국가 제도적 측면에서 삼봉의 통치사상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한다.

둘째, 접근방법측면에서 먼저 아이슬란드 국민회의(헌법회의)아래로부터의 헌법시대, 시민 참여형 개헌을 끌어냈다(한겨레신문, 2017.1.1.). 아일랜드, 남아공 등도 시민주도의 개헌을 추진한다. 아일랜드 시민의회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셋째, 10차 헌법개정의 사상적 토대로서 여말 선초 정도전의 헌법사상을 재조명하여 국가제도를 정초한 그의 백성, 국가, 군주 순위 사상 중심에는 백성을 가장 중시한 민유방본(民惟邦本)의 사상이 자리한다. 삼봉의 사상적 토대인 민본과 도덕성을 중시한 개헌초안을 국민이 참여하여 선택하게 한다. 한국형 접근 대안으로 지방자치 분권형 개헌국민회의’(가칭)를 제안한다. 각 분야별로 일정 수의 국민을 추첨을 통하여 선출하고, 개헌국민회의에서 개헌내용을 논의하고, 결정하게 할 것을 제안한다.

넷째, 국회의원과 몇몇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타협하여 헌법을 만들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반복되어온 헌법 개정의 역사를 이제는 바꾸어야 한다. 개헌은 국민 스스로 헌법의 존재 이유와 우리가 지닌 헌법적 권리에 대해 묻고 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새로운 헌법은 국민이 논의 과정과 결과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정치개혁이 전제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 국민은 정치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불신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국회의 개헌 논의는 권력 나눠 먹기가 아니냐는 우려와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국민이 지지하는 개헌이 되려면, 먼저 정치를 개혁하고 국회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는 정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승자독식의 선거제도를 고쳐, 국민의 정당 지지율이 정확하게 의석수로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국민 헌법 발안권의 복원 및 국민참여 헌법 절차의 마련이다. 현행 헌법은 헌법개정 절차가 국회에게 독점되어 있다. 주권자에게는 국민투표에서 찬반투표를 할 수 있는 권한만이 부여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우리 헌정사에서 국민에게 헌법발안권이 분명하게 존재해 왔다. 불행히도 국민의 헌법발안권은 유신정권의 등장과 함께 별다른 이유없이 사라졌다. 헌법제정 및 개정권력자인 주권자에게 헌법발의권을 다시금 부여하는 것은 현행 헌법을 보다 민주화하는 데 가장 큰 이정표라 할 것이다. 아울러 개헌절차에 관한 국민의 참여를 필수적으로 보장하는 헌법 개정 및 법률 제정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국민개헌넷, 2018.1.25).

 

. 나가는 글

 

조선개국기 삼봉은 朝鮮經國典에서 국가의 규모와 운영방식을 중국 고대의 다양한 시각을 조화롭게 엮어 대안을 조선에 알맞게 엮어 대안을 제시하고, 조선시대의 근본국가통치철학인 경국대전의 모체를 제시하여 국가론 차원의 통치내용과 방법 등을 제시하였다.

특히 그의 사상, 민본사상 등과 국호, 홍익인간 사상 등 이것이 오늘날 민족적 자유의식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토대이다. 이러한 삼봉의 민본적 법치사상, 통치체제의 균형, 군주의 견제와 자기 수양 측면의 주요 내용들이 통치구조 개선을 위한 제10차 헌법개정의 사상적 토대로서 충분히 논의되고,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조선경국전에서 국가제도를 정초한 그의 백성, 국가, 군주 순위 사상 중심에는 백성을 가장 중시한 민유방본(民惟邦本)의 사상이 자리하였음을 상기하여, 삼봉의 사상적 토대인 민본과 도덕성을 중시한 개헌초안을 국민이 참여하여 선택하게 한다. 한국형 접근 대안으로 지방자치 분권형 개헌국민회의’(가칭)를 제안한다.

각 분야별로 일정 수의 국민을 추첨을 통하여 선출하고, 개헌국민회의에서 개헌내용을 논의하고, 결정하게 할 것을 제안한다. 특히 혼란한 사회를 여하히 안정화시킬 수 있는 국가제도적 측면에서 삼봉의 통치사상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개헌내용에 결합시킬 수 있는가를 찾아 봤다는 점에 연구의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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