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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음식문화

현곡 이종수 2018. 7. 21.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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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華의 음식문화


이종수(李宗秀)

< 요약문 >

 

유사이래 강화도는 한반도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특히 고려시대는 몽골항쟁을 위하여 개경에서 강도로 천도하여 39년간 도읍지였다. 조선시대는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맞고, 조선 말기에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맞은 지역이다. 고려시대는 예성강 나루터인 벽란도 길목으로 주요한 조운의 통로였으며, 벽란정(관사)을 운영하기도 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심도(心島, 심장의 의미)’라는 異名을 가지고 있다. 강화는 13세기 고려 중, 후기 무신정권의 강도(강화도성) 구축 후, 충선-공민왕대의 몽골문화가 이입되었으며, 그 주요 내용은 13-14세기 죽간 기록, 마도호와 무인관료 사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탕이나 냉면 사례, 평양속담에 선주후면(先酒後麵), 개성의 추어탕 등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본 연구는 21세기 국제 해양화시대 바다중심의 해항도시(sea port city)지역음식 문화특성을 도출, 13세기 강도와 고려 개성 음식문화 관계분석, 고려와 원제국의 음식문화 유사 상이점과 고려와 강도 및 현재 강화도 음식문화 특성분석을 토대로 현대적인 강도 음식문화 스토리텔링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주제어 : 강도음식문화, 향토음식, 음식문화 특성, 음식스토리텔링

 

 

. 들어가는 글

 

강화()는 한반도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고려시대는 몽골항쟁을 위하여 개경에서 강도로 천도하여 39년간 강도로서 기능하였다. 고려시대는 예성강 나루터인 벽란도 길목으로 주요한 조운의 통로였으며, 벽란정(관사)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심도(心島, 심장과 같다는 의미)’라는 異名을 가지고 있었다. 11세기 전후 고려 무신정권이 수립된 이후, 충선-공민왕대의 몽골문화가 급속도로 이입된다. 12-13세기 죽간 기록이나 마도호와 무인관료 개인 분석 및 서긍의 고려도경을 참조하여 강화, 개경, 탐라음식(유목민의 육회, 생간 식용, 천엽, 작은창자 물회, 돼지새끼 식용 등) 등과 몽골제국의 음식문화 연결고리를 탐색한다.

본 연구는 21세기 국제 해양화시대 바다중심의 해항도시(sea port city)지역음식 문화특성을 도출하여 13세기 강도와 고려 개성 음식문화 관계를 분석하고, 고려와 원제국의 음식문화 유사 상이점과 고려와 강도, 현재 강화도 음식문화 특성분석을 토대로 현대적인 강도 음식문화 스토리텔링 방안을 중심으로 강화음식 체험 공감, 심신치유, 휴식과 충전기회의 제공 등을 천착하는 체계적인 접근 방안 제시가 주요 연구 목적이다.

본 연구방법은 필자의 선행연구(이종수, 20122017)와 전문학술지 등을 참조하고, 인천 강화도 현지를 방문하여 자료를 입수, 분석하였다. 분석의 시점은 원제국과 고려 관계가 밀접했던 12세기 전후를 대상으로 한다. 그 이유는 이 시대를 전후하여 우리가 오늘날 향유하는 우리의 음식문화의 원형이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 음식문화 특성의 이론적 접근

 

1절 강화도 입지와 문화

 

1. 13세기 해양 강도

 

서해의 연안항로는 선사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해양문물교류의 허브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1123년 송나라 국신사 서긍에 대한 국가 차원의 영접행사가 이뤄진 곳이기도 하다. 강화는 특히 고려, , 원제국 해상 교통의 중심지였다.고려도경에 의하면 송나라 서긍 선단은 중국 영파(명주) -> 주산 -> 흑산도 -> 고군산 -> 영종도 -> 벽란도(서동인 외 : 200-201)가 목적지였다.

서긍의 군산도 입항에는 주사, 심기, 동접반 김부식 등의 영접기록과 군산정 뒤에는 2개의 봉우리(망주봉)가 있다고 기록했다. 徐兢使行과 객관 이용 사례를 보면 군산정 도착과 군산도 입항절차가 나오며, 대접음식은 국수, 해산물 등 10종을, 그릇은 은기, 청자 등을 사용함을 기록했다. 동접반 김부식이 서긍 일행을 영접하고, 술은 접반이 친히 따랐다. 徐兢使行과 객관(윤용혁, 2010 : 30-38) 관련 군산정과 군산도 입항절차 등과 대접음식의 종류는 국수, 해산물 등 10종이었다. 그릇은 은기, 청자, 등을 사용함을 기록한다. 서긍은 중국 영파에서 출발하여 흑산도, 고군산에 정박했다(이종수, 2017.7).

서긍은 김부식(金富軾: 1075~1151)에 대해 김부식은 풍만한 얼굴과 커다란 체구에 얼굴이 검고 눈이 튀어나왔다. 널리 배우고 많이 기억해 글을 잘 짓고 예와 지금의 일을 잘 알아, 학사들에게 존경을 받기로는 그보다 앞설 사람이 없다”(고려도경8 인물조)고 하였다. 1142(인종20) 김부식은 현직에서 사퇴한 후 왕명으로 삼국사기를 편찬하기 시작해 1145(인종23) 완성한다.

벽란도의 교통기능, 교역기능(이병희, 2012 : 51-58) 내용은 예성강곡이나 이숭인의 시, 권근, 조준, 이규보, 이곡, 이색, 정몽주의 시 등에서 확인된다. 관원배치 등의 사례 등과 무역과 조운의 중심지였던 예성강 나루터인 벽란도 길목으로 주요한 조운의 통로였다. 벽란정(관사)을 운영하기도 한 곳이다.

중국과 한국 항로는 3개를 이용하였는데, 북중국 연안항로, 황해 횡단항로, 동중국해사단항로 등이다(서동인 외 : 198-199). 중국 명주, 가거도, 홍도, 대흑산도, 고군산군도, 태안 마도, 강화도, 예성강, 급수문, 벽란도, 개경이 주요 항로였다(서동인 외 : 199).

강화도 인근 한강 하구는 예성강 임진강 한강 등 남북 3개의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다. 밀물에는 해수가 되고 썰물에는 강물이 채워져 담수가 되는 곳이어서 숭어 실장어 등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고려시대에는 국제무역항으로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드나들던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 입구다. 벽란도에 출입하려는 무역상들이 출입증을 받아야했던 남산포가 교동도의 남쪽 해안에 있다.

 

2. 강화도성 문화, 특성

 

최우는 1232, 강화도성을 건축한다. 그의 강화 천도 이유는 몽골기마병 대적, 침입 곤란, 개성 인접, 조세 등 미곡반입 용이 등이다. 1259년 원종이 몽골에 항복한다. 1270년 승화후 온을 추대, 항전한 삼별초는 1273년 탐라에서 섬별된다.

1258년 최씨 무신정권의 마지막 인물인 최의가 제거되고 6차 침공에서는 20만이 넘는 고려인 포로가 발생하였다. 한편, 고종의 뒤를 이은 원종은 원나라를 등에 업고 새로운 무인 실력자 김준 등과 갈등하였으며 임연과 임유무가 제거되면서 무인정권도 막을 내린다. 강화는 몽골(蒙古)의 침입 때(1232) 40년 가까이 피난수도 [강도(江都)]로 자리하면서 대몽항쟁의 중심을 이루어 그 위상이 극에 달하였다. 고려가 몽골의 지배 아래 놓이면서, 또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1392) 강화도에 이룩하였던 모든 문물·시설과 인천지역 경원부의 위용이 흔적조차 찾기 어렵게 되고는 말았지만, 고려 500년 동안의 인천지역사회는 명실공히 수도 개성에 다음가는 번화했던 지역이었다(강화뉴스, 2016.11.10).

강화도의 지리적 특성이다. 강화도, 석모도, 교동도로 구성된 강화도는 1) 고려 수도 개경과 가깝다 2) 조선시대 한양, 서울과 지척이다. 3) 고려 강도(江都)39년 존립 지역이다. 4) 한강, 임진강, 예성강, 염하 등의 합류지역이며, 5) 규모는 국내 4번째로 큰 섬으로, 6) 농업, 수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많고, , 인삼, 젓갈, 한우, , 순무 등이 주요 특산물이다.

 

2절 강화도의 향토음식

 

1. 몽골 지배 이전의 고려음식

 

통일신라 후기의 제도와 풍속을 계승한 고려시대는 불교를 더욱 발전시켜 국교로 삼았다. 살생을 금지하였기 때문에 육류나 생선류 이용 대신 채식을 주로 하는 식생활이 발달되었다. 어업이나 양축이 금지되어 양곡증산의 필요성이 증가되었기 때문에 권농정책으로 식량의 증산과 비축에 더욱 힘을 쏟았다. 고려시대의 전, 후기 특성을 정리한다.

첫째, 몽골지배 이전의 고려음식은 고려도경을 통해 일부 확인할 수 있다(윤덕인 1990). 불교국가여서 육식을 정책적, 제도적으로 금지하거나 삼가고 채식을 중시했다. 도축법도 발달하지 못했으며, 관리들의 봉록도 생쌀과 채소를 줬다.

둘째, 채소음식의 발달과 조미료 사용이다.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채소음식의 발달을 가져왔고 침채형 김치의 체계가 잡혀 한국김치의 전통이 확립되었다. 오이, 가지, , , 아욱 등 많은 채소가 이용되었는데 이들 식물성 식품을 더욱 맛있게 먹는 법이 강구되어 기름과 향신료의 이용도 많아졌다. , 조미료의 종류가 다양해져 이 시기에 초를 만들어 이용하고 참깨의 재배로 참기름도 사용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셋째, 차와 과정류 발달이다. 부처님께 차를 바치는 헌다(獻茶)의 예와 풍류로 차를 즐기게 되어 다도의 예절도 생기게 되었다. 차를 마시는 풍습은 과정류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이들 음식은 연등회, 팔관회 등 불사를 위한 국가행사와 혼례, 각종잔치의 필수음식으로 이용되었다.

 

2. 몽골 지배 이후의 고려음식

 

고려 후기에 몽고의 지배를 받아 도살법과 여러 가지 육식조리법도 배우게 된다. 이 때의 공탕이 지금의 곰탕의 원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맹물에 고기를 삶는 조리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려 후기에 육식이 본격화되면서 개장국, 쇠고기를 쓴 육개장, 설렁탕 등이 나타났다. 고기라면 쇠고기라는 육식관이 싹텄다(이종수, 2013). 지금도 갈비탕, 육개장, 설렁탕, 갈비찜 등은 전국적 탕문화의 실예다. 상차림의 기본구조 형성과 조리법의 발전이다. 고려시대에는 곡류, 채소, 과일 등 이용된 식품이 아주 다양했고 조리법과 상차림이 발달하였다.

첫째, 13세기 세계의 중심지였던 대원제국의 大都(캄발룩, 북경) 새벽거리는 북적대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뜨거운 양고기와 거위고기, 여러 가지 탕 종류와 뜨거운 음식으로 요기한다(이종수, 2015). 몽골의 공탕(šǜlen)문화는 양이 으뜸이다. 공탕은 양고기 국물로 스프()국이다(Buell 2003). 국물문화의 중심이다.

둘째, 찜요리는 몽골의 대표 음식으로 꼽힌다. 몽골 사람들은 설날에 찐만두 보츠를 빼놓지 않고 먹는다. 만두소는 양고기를 다져서 넣는다.

셋째, 도살법과 순대문화다. 도살법(屠殺法)은 칭기스칸 대법전에 의했다. 파복법이다. 유목 생활을 했던 원나라에는 채소나 곡식보다는 고기를 사용한 음식이 많이 발달했다. 요즘 우리가 즐겨먹는 설렁탕과 순대, 만두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음식 중의 하나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인 소주도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이종수 2013.6). 그러나 몽골은 유목민족이기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고 그러므로 육식이 주 식생활이었다.

넷째, 마유주와 양고기문화다. 몽골비사에는 마유주와 양고기 이야기가 가장 많이 실려 있다. 13세기 몽골 지배영역이 확장되면서 동서문화 교류의 확대 및 상호간 영향이 증대된다. 몽골비사에 나오는 음식 중요도는 1) 마유주 2) 양고기(슐랭), 제사(음식) 등이다(이종수, 2013).

다섯째, 고려 후기에 몽고의 지배를 받아 도살법과 여러 가지 육식조리법도 배우게 되어 고려 초 불교의 영향으로 육식을 절제했던 식생활에 많은 변화가 왔다. 또 원나라를 통해 찐빵의 일종인 상화(霜花)가 들어오고 술을 증류하는 소주법도 널리 알려지면서 몽고군이 주둔하였던 개성, 안동, 제주 등이 소주의 명산지가 되었다.

고려의 고기요리는 고래로 구이로 시작하여 찜과 곰으로 발전한다. 설렁탕과 같은 국물이 헐렁한 국물요리가 시작된다(윤서석 2008, 196). 고려 후기에는 몽고풍의 요리가 전해져 고기를 물에 넣고 삶아 그 우러난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는 지금의 설렁탕, 곰탕이 생겨났다. 고기 조리법도 이 때 몽고인에게서 전수되었는데, 대표적인 방법이 공탕(空湯))이다. 이 때의 공탕이 지금의 곰탕의 원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맹물에 고기를 삶는 조리법을 의미한다. 따라서 고려 후기에 육식이 본격화되면서 개장국, 쇠고기를 쓴 육개장, 설렁탕 등이 나타났다.

몽골의 탕은 자양두(煮羊頭), 나복갱(蘿蔔羹), 완증양(碗蒸羊), 건함시(乾鹹豉), 양행교(羊䯒膠) 등이다. 고려시대 양고기 식육은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양의 사육에 적합지 못한 기후풍토 때문에 쇠퇴되었다(이종수, 2014).

여섯째, 상차림의 기본구조 형성과 조리법의 발전이다. 고려시대에는 곡류, 채소, 과일 등 이용된 식품이 아주 다양했고 조리법과 상차림이 발달하였다. 우리나라 상차림의 기본인 밥과 국이 나타나 상차림의 기본구조가 형성되었다. 고려도경에 최초로 국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데 설농탕 외에도 토란국, 아욱, 다시마국, 미역국 등의 이름이 보인다. 콩을 가공한 콩나물과 두부가 이 시기에 이용되기 시작했고 조리기법도 발달하여 기름에 지지거나 튀기는 조리법을 이용하였다.

 

3. 무인정권과 마도 3호선

 

무인정권과 마도 3호선사례로 태안서 발굴 '마도 3호선' 목간이 중용한 단서가 된다. 충남 태안 앞바다에 침몰한 13세기 고려 선박 '마도 3호선'에서 몽골 항쟁에 앞장선 비정규군 삼별초의 조직과 지휘관의 품계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는 유물이 나왔다. '우삼번별초도령시랑(右三番別抄都領侍郞)'이라고 먹으로 쓴 목간이 열쇠다. '우별초 삼번의 도령(지휘관) 시랑(4품 장군)'이라는 뜻이다(한국일보, 2011.10.6.)

지금까지 이 배에서 수습한 유물은 목간 32, 젓갈 등을 담은 도기 항아리 28, 곡물류, 사슴뿔, 장깃돌 등 287. 특히 목간은 사료가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는 고려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목간의 기록으로 보아 이 배는 고려가 몽골의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천도해 있던 1260~1268년 경 전남 여수를 출발해 강화도로 가다가 침몰한 것으로 보인다. '아무개 댁으로 무슨 물품을 얼마만큼 보낸다'고 한자로 쓴 목간들에 등장하는 두 인물, 시랑(4) 신윤화와 유승제(승제는 왕의 비서관에 해당하는 정3품 벼슬)가 열쇠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신윤화가 시랑으로 재직한 때는 1260년 전후이고, 이 무렵 승제 유씨는 유천우가 유일하다. '여수현(呂水縣) 부사심(副事審) 댁에서 거둔 곡식 몇 말'이라고 쓰인 목간에서 '呂水'는 지금의 전남 여수(麗水). '사심'은 고려 때 중앙 관리가 자신의 본관인 지역에 연고권을 행사해 부역 등을 지휘하던 업무를 가리킨다.

목간에는 고려 말 최씨 무신 정권을 무너뜨린 최고 권력자 김준도 등장한다. '사심 김영공님 댁에 올림'이라 적힌 목간의 '영공(令公)이 김준이다. '영공'은 고려 때 왕실의 제왕에게만 붙이던 극존칭인데, 1260~1268년 일반 관리로서 영공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은 김준 뿐이고 여수가 그의 연고지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3절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1. 선행연구 분석

 

먼저 윤서석(1997)은 한국의 식생활문화 전반을 분석하였으며, 개성과 한양의 음식문화 측면은 북한음식문화연구원(2012) 등이 주로 북한지역을 초점으로 삼았다. 둘째, 최근 이종수(2012)는 지역음식문화와 특성의 음식스토리텔링 방안을 사례 비교적인 내용으로 제시하였다.

고려 후기 대원(大元)제국 지배하의 문화적 영향과 관련된 주요 선행연구는 이종수(2010 ; 2012 ; 2013.12a) 등과 설렁탕(김기선 2008)과 소주문화 연구(윤서석 2008 ; 이종수 2013.8, 173 ; 이종수 2013.8, 167) 고려도경에 기록됐다.

고려사에는 몽골의 육식풍습이 전국에 파급되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최근의 선행연구들은 몽골제국의 음식문화가 고려에 끼친 영향을 밝히고 있다. 강화도의 음식문화 특성화 분석을 위한 음식문화와 기존연구와의 차별성을 < 1 >에 제시한다.

< 1 >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

구 분

선행연구 분석

연구목적

연구방법

주요 연구내용

음식

문화와 변동

윤덕인(1990), 고려도경의 음식문화

사료 분석

서긍의 고려도경내용분석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2012), 북한의 전통음식 조사

설문조사

개성의 음식문화 분석

이종수(2012), 탐라와 몽골의 음식문화

질적분석

탐라와 몽골의 음식문화 변이 분석

이종수(2013.8), 서울음식문화 정체성

서울의 설렁탕문화 분석

이종수(2014.4), 부산과 인천의 음식문화 변동 분석

부산과 인천의 음식문화 변동분석

이종수(2014) 인천과 개성, 한양 음식

인천,개성, 한양의 탕 문화

이종수(2015) 13세기 개성과, 탐라음식

개성, 안동, 탐라의 탕문화

이종수(2015), 부산과 왜관의 음식문화

부산과 왜관의 음식문화

이종수(2016), 13세기 탐라와 원제국 음식문화

탐라와 원제국의 음식문화

본 연구의 차별성

강화의 탕음식문화 유래와 개경, 원제국 관련성 변동 분석

실증분석, 질적 분석

13세기 강화 음식문화 특성, 탕문화 시사점 분석

 

2. 분석의 틀

 

강화도는 동, 서양이 만나 새로운 근대가 만들어졌던 역사적 공간이자 고려시대의 아픈 이야기가 녹아있는 장소이다. 따라서 강화 역사의 한 지류인 강화 음식문화 변화사 고찰은 강화시민의 삶의 변화를 살필 수 있는 유효한 접근이 될 수 있다. 강화도성 음식문화의 분석의 틀의 주요 내용은 12세기 고려시대 서해 강화도성 관련 역사자료 사실관계분석을 통한 강도 음식문화 주요 특성과 스토리텔링을 제시한다.

본 고에서는 고려기의 몽고 지배를 전후한 고려 전기는 불교국가로 육류가 금지되다가, ,후기부터 원의 문화유입으로 쇠고기 식용이 정착되고, 쌈문화가 발달하면서, 특히 끓여서 나누어 먹는 탕문화가 주축을 이루게 됨에 따라서 한반도의 탕문화 토착화와 강화도의 추어탕 등 탕문화의 전개, 특성과 유사, 상이점 및 발전과제를 분석한다.

 

. 강화도 향토음식 문화 분석

 

1절 강도의 향토음식

 

1. 강화도 향토음식의 의의

 

(1) 의의

 

강화의 향토음식으로는 특히 추탕은 고려시대 이래 전통적인 향토음식이다(이종수, 2015 : 200). 몇 가지를 예시하면 호박삼계탕, 전통장어요리, 벌버리 묵, 갱국, 인삼 식혜, 밴댕이회, 물텀벙이 탕과 찜, 시래기밥 칼싹둑이 등이다(인천광역시, 1999). 고려시대는 새우젓이 중요한 식재료이자 수출품이기도 했다. <추탕>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인 탕인데 견주어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끓인 탕이라는 점이 다르다(김양수, ?기호일보?, 2009.4.6.).

고려의 고기요리는 고래로 구이로 시작하여 찜과 곰으로 발전하고, 설농탕과 같은 국물이 헐렁한 국물요리가 시작되고(윤서석 2008, 196), 고려 후기에는 몽고풍의 요리가 전해져 고기를 물에 넣고 삶아 그 우러난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는 지금의 설렁탕, 곰탕이 생겨났다(이성우 1983, 35 ; 박용운 외 2001, 93). 고려시대 만두는 귀족음식이었으며 상화(霜花)라고 하고, 몽골인의 일상식이었다. 설렁탕은 서민음식이었다.몽골비사124절은 두살난 거세양의 국(술렝)을 잘 끓여 새벽의 음식물이 결핍되지 않게 하며, 숙박지(宿營)에도 그 운반이 뒤처지지 않게 하겠습니다고 했다.

조선 시대 요리서의 기본인 산림경제(1715)의 요리편의 고기 요리는 60%가 원나라 초기의 가정백과사전인 거가필용(居家必用)에서 그대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여기에 나타나는 고기요리법은 8090%가 굽는 요리다(이성우 1983, 61). 이것은 과거 수천 년 전의 맥적(貊炙)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이란 한국인들이 즐겨먹는 것으로 미리 조미하여(儀禮) 꼬챙이에 꽂아서 불 위에 굽는 것(禮記)이다. 한족(漢族)들은 미리 조미하지 않고 굽거나 삶아서 조미료에 무쳐먹는 데 반하여 예맥(濊貊)족은 미리 조미하여 구워서 먹었다. 이것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거의 같다. 전문가에 의하면 상하기 쉬운 고기는 부추나 마늘로 조미하였다고 한다(이성우, 24).

이 글에서는 향토음식이란 지방 특유의 전통음식으로 유사한 개념의 전통음식은 각 해당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각 국가 지역민들이 향유해 온 지역고유의 음식이라고 본다(이종수, 2013 : 149). 굳이 구분한다면 전통음식은 역사적 시간적 맥락의 음식문화라면, 향토음식은 지리적, 지역적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다. 본 고에서는 강화의 향토음식이란 강화를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 지리적으로 생명력을 지니며, 현대에서도 주민들로부터 사랑받는 강화지역 토착음식으로 정의한다.

 

(2) 음식의 종류

 

첫째, 고려기 이래 강화도호부 주요 전통음식들은 소금, 농어, 홍어, 넙치, 밴댕이, 조기, 참조기, 민어, 준치, 병어 등이었으며, 강화도호부의 경우 홍어, 쌀새우, 조개, 토화, , 낙지, 소라, 숭어, 중하, 파리, 참조기, 소금 등이다(()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2012, 204). 소어(밴댕이)는 탕과 구이가 모두 맛이 있고 회로 만들면 맛이 준치보다 낫다. 단오 후에 소금에 담그고 겨울에 초를 가하여 먹으면 맛이 좋다(증보산림경제; 오한샘 외, 309-310).동의보감은 숭어를 먹으면 위가 편안해지고, 오장을 다스리며, 몸이 튼튼해진다고 했다. 강화도에서는 숭어의 맹장국과 껍질요리, 구이와 튀김, 어란, 숭어 만두, 숭찜등이 강화인들의 자랑거리이다(KBS <한국인의 밥상> 2011.11).

옛날에는 이름난 향토음식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의 하나가 <추탕>이었다. 요즘, 말하는 <추어탕>이라고 불리는 것인데 원래, 인천과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추탕>이라고 했지 <추어탕>이라고 하지 않았다. <추어탕>이라고 하는 말은 6·25 이후 남쪽 지방에서 옮겨온 말로 남쪽 지방 사투리가 인천의 <추탕>을 밀어낸 말이다. 그런데 <추탕><추어탕>은 한 가지가 다르다. <추탕>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인 탕인데 견주어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끓인 탕이라는 점이 다르다(?기호일보? 2009.4.6). 인천도 여전히 설렁탕과 곰탕집은 많다. 다만 특성이 약할 뿐이다. 개성 추어탕은 미꾸라지에 두부, 고추를 넣고 끓이는 점이 타 지역과 다르다(()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2012, 210).

둘째, 강화음식의 특성으로는 소어(밴댕이) 밴댕이는 탕과 구이가 모두 맛이 있고 회로 만들면 맛이 준치보다 낫다. 단오 후에 소금에 담그고 겨울에 초를 가하여 먹으면 맛이 좋다(증보산림경제 ; 오한샘 외 : 309-310). 나이가 들수록 혀끝을 자극하는 맛보다 어린 시절 밥상 머리에서 마주했던 소박한 맛을 그리게 된다. 뇌리에 각인된 맛, 어머니의 손맛과 고향의 맛에 대한 기억이다. 강화도에서는 그런 맛을 내는데 숭어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숭어는 콜라겐이 풍부하다. <자산어보>에서는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 제일이라 했고, <동의보감>은 숭어를 먹으면 위가 편안해지고, 오장을 다스리며, 몸이 튼튼해진다고 했다. 강화도에서는 숭어의 맹장국과 껍질요리, 구이와 튀김, 어란, 숭어 만두, 숭어찜등이 강화인들의 자랑거리이다. 만청(蔓菁), 곧 강화 순무는 영국의 콜웰 대위가 고종이 마련해 준 거처뒷마당에 씨앗하나를 심는다. 보랏빛이 도는 영국의 순무 종자를 우리 땅에 처음 심었다. 이후 흰 뿌리가 특징이었던 조선의 토종 순무와 만나면서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없는 오늘날의 강화순무가 탄생한다. “이상한 일이여, 이 순무가 강화도만 벗어나면 그 향과 색깔이 바뀌어져 버려.” 강화도 순무 김치는 무의 달콤한 맛과 배추의 알싸한 향을 함께 지닌다.

 

< 2 > 강화도 향토음식

구분

주요 종류

향토음식

강화도호부의 경우 홍어, 쌀새우, 조개, 토화, , 낙지, 소라, 숭어, 중하, 파리, 참조기, 소금

특색음식

강도 육미(江都六味)’는 밴댕이(반지낙지·깨나리·동어(숭어 새끼순무·장준감(씨없는 감)

특산음식

강화(개성) 추어탕은 미꾸라지에 두부, 고추를 넣고 끓이는 점이 타 지역과 다르다(()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2012, 210).

출처 : 이종수(2013.5) 참조.

 

셋째, 위어(葦魚)라는 물고기가 있다. 웅어(熊漁)라고도 한다. 흔하진 않지만 지금도 봄철이면 더러 볼 수 있다. 위어의 '()'는 갈대다. 초봄 갈대 사이로 다녀서 붙인 이름인지 아니면 생긴 것이 갈대같이 약해보여서 붙인 것인지 모르나 조선시대 위어의 위세는 대단했다.

궁중 사옹원에서 지금의 행주대교 언저리에 위어소(葦魚所)를 차리고 직접 위어를 잡아 궁궐로 직송했다. 위어 운반에 필요한 얼음도 특별히 관리를 했다. 위어를 잡는 사람들은 군역이 면제되었다. 요즘으로 치자면 '위어 잡이 공익요원'쯤 되었던 셈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위어 냉장용 창고의 얼음을 두고 궁궐에서 있었던 논란과 고양, 양천, 김포 등의 위어 잡이 민가 숫자에 관한 내용들도 있다.

양천현감을 지냈던 겸재 정선은 이 위어 잡이를 소재로 그림을 남겼다. 바로 '행호관어(杏湖觀漁)'이다. '행호'는 행주산성 언저리의 한강을 이르던 말이다. '행호관어'는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언저리, 조선시대 양천현에서 바라본 행주산성 언저리의 한강과 위어 잡이를 그린 그림이다(황광해).

넷째, 강화도는 지금은 인천이고 예전엔 경기도였지만 음식 문화는 황해도와도 가깝다. 백령도도 가깝고 실제 강화도에서 서울(한양)이나 개성까지의 거리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물길로는 황해도 해안과도 그리 멀지 않다. 황해도 음식 중에 '호박김치'가 있다. 익지 않은 애호박으로 담근 김치였을 텐데 현재는 긴 호박, 이른바 주키니 호박으로도 담근다. 호박김치가 시큼하게 익으면 돼지고기와 무청, 두부 등을 넣고 찌개를 끓인다. 바로 황해도 전통음식인 '호박김치찌개'.

강화도에는 늙은 호박과 꽃게를 넣은 찌개가 있다. '단호박게찌개' 혹은 '단호박꽃게탕'이다. 늙은 호박을 큼직하게 썰어서 냄비 밑바닥에 깔고 그 위에 꽃게를 올리고 각종 나물을 얹은 다음 탕으로 끓인다. 늙은 호박과 꽃게의 단맛과 구수한 맛이 냄비 안에서 어우러진다. 호박과 박을 이용한 음식은 황해도와 강화도를 거쳐서 안면도 등 충남해안까지 나타난다.

서산, 안면도 일대의 특미인 '박속밀국낙지탕'도 결국은 '+국수(밀국)+해물(낙지)'의 결합이다. 단호박꽃게탕은 강화도의 '충남서산집'에서 만날 수 있다. 강화도의 '호박+꽃게'탕을 파는 음식점 이름이 재미있게도 '충남서산집'이다. 음식과 음식점 그리고 주인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다. 결국 호박이나 박과 해물을 결합시킨 비슷한 음식이다.

늦가을의 강화도 화도면에 가면 '토가'의 맛있는 '새우젓순두부찌개'를 먹을 수 있다. 봄철이면 지난 가을 수확한 콩으로 두부를 만들고 제법 묵힌 새우젓을 사용한다. 외형으로는 아주 간단한 음식이지만 퍽 오랜 연륜이 쌓인 음식이다. <증보산림경제>에는 '자연포법煮軟泡法'이 있다. '자연포법''두부나 무, 고기 등을 넣고 끓인 맑은 장국'이다.

강화읍내에는 소설가 성석제가 예찬한 국수집이 있다. 이름도 '비빔국수집'. 성석제가 그의 글에서 언급한 후, 이집은 '소설가 성석제가 이야기한 국수집'이라는 꼬리표를 얻었다. 내공은 만만치 않다. 40년의 업력을 넘겼다. 메뉴는 두 가지. 멸치국수와 비빔국수다. 고려시대 개성의 국수는 제물국수, 온면, 비빔국수, 녹두면, 깔싹두기 국수가 유명세를 탔다. 그 문화가 강화에 남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2. ‘江都 六味

 

강화도의 맛을 대표하는 음식 6가지를 일컬어 강도 육미(江都六味)’라 부른다. 강도 육미는 밴댕이·낙지·깨나리·동어(숭어 새끼순무·장준감(씨없는 감)이다. 강도 육미는 드넓은 갯벌,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 비옥한 간척지, 해륙풍 등 강화도 천혜의 자연이 만든 산해진미이다(경인일보, 2015.6.4).

첫째, 강도 육미 중 6월이 제철인 음식은 밴댕이다. 산란기인 5~6월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지난달 29일 강화도 화도면 후포항 청강횟집 앞. 가족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손님이 여러 종의 물고기가 담긴 횟집 어항을 가리키며 밴댕이가 어떤 건가요라고 물었다. 청강횟집 사장 이성배(77) 씨는 “(어항에) 밴댕이 없습니다. 냉장고에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손님들이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자 이성배 씨는 속상한 일 있으면 밴댕이를 먹고 참으세요. 안 그러면 밴댕이 소갈딱지(소갈머리)’ 소리 듣습니다라며 넉살스럽게 웃었다. 1983년 문을 연 청강횟집은 밴댕이회의 원조집으로 널리 알려졌다. 밴댕이는 다른 생선에 비해 내장이 매우 작고, 그물에서 꺼내자마자 죽어버리기 때문에 성질 급하고 속 좁은 사람에 비유하곤 한다. 활어(살아있는 물고기)가 아니므로 횟감으로 쓰이지 않고, 구워 먹거나 무침 요리를 해먹었다. 잡은 지 오래되면 젓갈을 담는다. 옛 우리말에는 변변치 않지만 때를 잘 만났다는 의미인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이 있듯 5~6월에 강화에서 잡히는 밴댕이를 최고로 치기 때문이다.

소어(밴댕이) 밴댕이는 탕과 구이가 모두 맛이 있고 회로 만들면 맛이 준치보다 낫다. 단오 후에 소금에 담그고 겨울에 초를 가하여 먹으면 맛이 좋다(증보산림경제; 오한샘 외 : 309-310). 나이가 들수록 혀끝을 자극하는 맛보다 어린 시절 밥상 머리에서 마주했던 소박한 맛을 그리게 된다. 뇌리에 각인된 맛, 어머니의 손맛과 고향의 맛에 대한 기억이다.

강화도에서는 그런 맛을 내는데 숭어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숭어는 콜라겐이 풍부하다. <자산어보>에서는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 제일이라 했고, <동의보감>은 숭어를 먹으면 위가 편안해지고, 오장을 다스리며, 몸이 튼튼해진다고 했다. 강화도에서는 숭어의 맹장국과 껍질요리, 구이와 튀김, 어란, 숭어 만두, 숭어찜등이 강화인들의 자랑거리이다.

둘째, 세계 5대 갯벌로 꼽히는 강화갯벌(353)의 영양분을 듬뿍 먹고 자란 강화 뻘낙지는 다른 지방 낙지보다 유달리 크다. 조규호 씨는 분오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 거리의 바다로 나가 있다가 물이 모두 빠지면 삽으로 갯벌을 파서 낙지를 잡는다. 하루 평균 20마리씩 잡힌다고 한다.

셋째, 강도 육미에 속해 있으나, 최근에는 구경하기 힘든 생선도 있다. 바로 깨나리라고 불리는 멸치과 생선 싱어. 강화도 선수포구(후포항) 근해 등에서 많이 나는 깨나리는 다른 지방에서는 거의 보기 힘든 생선이다. 현재는 따로 그물을 쳐서 잡지 않고, 다른 어종을 잡기 위한 그물에 걸리는 대로 모아서 어시장에 팔고 있다. 1820년 실학자 서유구가 쓴 어류백과사전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는 깨나리에 대해 강과 바다가 서로 통하는 곳에 나는데, 이를 그물로 잡으며 파주와 교하 사람은 물릴 정도로 많이 먹는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인기 있는 생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넷째, 강화도에서는 숭어 새끼를 동어’(冬魚)라고 부르며 별미로 즐긴다. 동어는 12월에서 2월 사이가 제철인데, 굵은 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다. 조선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고 전해질 정도로 맛과 영양을 고루 갖춘 겨울철 보양식이다. 강화에서는 숭어를 모치(길이 6이하), 동어(8이하), 글거지(13이상) 11개 사투리로 부르기도 한다. 바다에서 나는 나머지 강도 육미는 꼽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가무락(모시조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새우젓(추젓)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다섯째, 보랏빛 뿌리의 순무는 강화 땅이 준 선물이다. 강화 순무는 무같이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나면서도 약간은 매콤한 독특한 맛을 지녔다. 우리나라에서 순무는 강화 땅에서 재배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강화에서는 가장 일반적인 김치의 재료이나, 다른 지방에서는 매우 귀한 채소다. 특히 밴댕이를 넣은 강화 순무김치는 순무의 겨자 향에 밴댕이 특유의 맛이 더해져 천하일품으로 평가된다.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는 순무의 효능에 대해 황달을 치료하고 오장에 이로우니, 순무 씨를 아홉 번 찌고 말려서 오래 먹으면 장생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눈과 귀를 밝게 하고 소화를 돕는다고 기록돼 있다. ‘동의보감에서 언급한 순무는 삼국시대 무렵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건너와 재배된 종으로 뿌리가 흰색이다. 뿌리가 보라색인 강화 순무와는 차이가 있다. 현재 강화에서 재배하는 순무는 1890년대 영국에서 들여온 종이 토착화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10년째 강화 순무 농사를 짓고 있는 황성용(59)강화는 토질이 좋고, 바다 쪽에서 육지로 불어오는 해륙풍이 바닷물 속 유기물질을 육지로 가져오기 때문에 농작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이라며 강화도를 한 발짝만 넘어가도 순무 맛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이상한 일이여, 이 순무가 강화도만 벗어나면 그 향과 색깔이 바뀌어져 버려.” 강화도 순무 김치는 무의 달콤한 맛과 배추의 알싸한 향을 함께 지닌다.

끝으로, 강화도 장준감은 1530년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강화의 대표적인 특산물로 기록될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토산품이다. 팽이를 거꾸로 세워 놓은 것처럼 뾰족하고 씨가 없는 게 특징인 장준감은 일반 감보다 당도가 매우 높다.

 

2절 영향 관계

 

1. 강화음식문화의 외부영향

 

13세기 개성은 몽골문화 전당이었다. 몽골의 문화와 고려식이 혼존하면서 몽골 만두, 소주, 국수, 육식문화와 후추, 설탕 등이 도시에 퍼졌다. 개성은 지금까지도 고유의 음식문화가 잘 보존되고 있다. 조랭이 떡국, 홍해삼, 보쌈김치, 설렁탕, 추탕 등의 귀족문화 음식과 새우젓 다용 등은 음식정체성이 강하였다는 점을 알게 한다.

개성은 고려의 수도로서 음식이 사치스러웠고 격식이 까다로웠다. 음식의 양은 적었으나 가짓수는 많았고, 양념을 많이 했으며, 중간 정도의 간을 했다. 개성시는 인삼 닭곰, 설렁탕, 추어탕, 약과 등을 지역특산물로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개성편수(만두)는 서울의 편수처럼 네모지게 빚는 것이 아니라 둥근 껍질에 아기 모자처럼 속을 많이 넣어 통통하게 만든다. 소로는 쇠고기, 닭고기를 모두 쓰고 두부, 배추김치, 숙주 등을 함께 빚는다(()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2012, 210). 개성소주는 당시 원()으로부터 유입된 술이 아랍식 증류주 소주(燒酒, 阿刺吉酒). 이색은 목은집(牧隱集)에서 阿刺吉酒 半杯를 마시면 뼈까지 불길이 다다른다고 표현했다(고경희 2009, 118). 이색은 관직에서 밀려나 있을 때 권밀직(權密直)이 보내준 술, 쇠고기, 백미를 받고, 살진 고기를 제일 기뻐했다(윤성재 2009, 89). 끝으로, 개성 추어탕은 미꾸라지에 두부, 고추를 넣고 끓이는 점이 타 지역과 다르다(()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2012, 210).

강화는 13세기 전후 원제국, 고려의 개방성, 강도와 개경, 탕 음식문화의 융합, 추어탕과 해장국이 보편화 된다. 강화음식은 개성음식(김영복, 2016) 등은 대체로 유사하다.

강화도호부는 토란국, 뱅어국, 추어탕, 신선로, 설렁탕, 강화도 젓국갈비(돼지고기와 새우젓) 등이 지금도 개성과 유사점이 많다. 원제국의 영향으로 선지국, 설렁탕, 갈비탕, 편육 등이 성행했다(이종수, 2014)

 

< 3 > 개성(경기도) 지방의 전통음식

음식 종류

음식 이름

,

오곡밥, 약밥, 장국밥, 잣죽

화전, 단자, 대추계피떡, 우메기, 개떡, 조랭이떡, 송편

만두

편수

국수

제물국수, 온면, 비빔국수, 녹두면, 깔싹두기

무장, 찹쌀고추장

설렁탕, 신선로, 토란국, 추어탕, 흑임자국, 닭고기국

김치

보쌈김치, 나박김치, 방아다리 배추김치, 룡인오이지, 석류김치, 고구마줄기김치

반찬

갈비찜, 양지머리 편육, 갑회(소내포회), 오징어순대, 갈비불구기, 고기장덩이, 조기젓, 청어젓, 오징어젓, 녹두나물, 무채, 무청장아찌, 깻잎장아찌, 배추꼬랑이

당과 음류

다식, 제호탕, 약과

기타

구기자차, 배화채

자료 :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2012, 208.

 

개성 음식문화 변동의 시사점을 정리하면, 13세기 개성은 몽골문화 전당이었다. 몽골의 문화와 고려식이 혼존하면서 몽골 만두, 소주, 국수, 육식문화와 후추, 설탕 등이 도시에 퍼졌다. 쌍화점의 만두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고려가요쌍화점에 쌍화사러 가고 신대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어이다라는 대목을 보면 당시 몽골제국의 회회아비들이 고려에 유입되고, 쌍화(만두)전문점이 개점하는 등 개성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손정우, 49). 또 목축기술의 발달과 도살법의 도입으로 육식문화가 일반화되기 시작하고, 소주문화가 정착됐다. 개성은 지금까지도 고유의 음식문화가 잘 보존되고 있다. 조랭이 떡국, 홍해삼, 보쌈김치, 설렁탕, 추탕(이종수, 2015) 등의 귀족문화 음식과 새우젓 다용 등은 음식정체성이 강하였다는 점을 알게 한다.

 

이상의 주요 내용을 <4 >에 정리한다.

 

< 4 > 강화 음식문화의 변동과 유지

구분

개성

국제화와

음식변동

고려, 몽골 본당

만두, 소주, 설렁탕

유지

쇠고기, 탕국 중시

추탕(미꾸라지, 두부, 고추를 넣어 끓임),

밴댕이회

젓국갈비(새우젓 다용)

국수 문화

 

자료 : 이종수(2014) 참조.

 

2. 개성, 강화도성, 원제국 음식문화의 차별성

 

지역별 향토음식의 기본은 지역특성, 원제국, 개성의 영향과 지역적 정체성의 결합으로 이 연구를 통하여 육류의 보편화와 탕중심 음식문화의 확산은 고려시대 대원제국 문화에서 유래되어 강화, 개성, 한양에서 토착화되어 오늘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종수 2013.8, 138 ; 168). 첫째,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선조들은 식사시에 국물을 중시해 왔으며, 고려 후기 몽골의 영향으로 육식과 채식문화가 결합되어 민족의 음식문화 정체성이 형성되고, 조선시대 들어 양반을 중심으로 한 곰국과 백성을 중심으로 한 설렁탕 문화가 자리잡아 현대의 일품요리로 계승되어 속풀이와 해장국 용도 등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

둘째, 문화적 영향측면이다. 깊은 맛을 추구하는 한국요리의 특징은 탕 요리에서도 잘 드러난다. 전 세계에서 한국만큼 탕이나 찌개 요리가 발달한 나라도 드물 것이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곰탕, 설렁탕에서부터 해물탕, 꽃게탕, 각종 전골 요리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종류의 탕과 찌개가 있다. 특히 곰탕이나 설렁탕 등은 뼈 속의 골수를 우려내는 맛이 있다. 맛이 있고, 몸에 좋고, 식재료를 구하기 쉽고, 경제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후손에게 전수되어 토착화된다. 몽골에서 양고기를 지금까지 상식 하듯이, 우리는 소, 돼지, 닭고기 식용문화가 보편적이다. 개성, 인천, 강화 등의 추탕은 미꾸라지, 두부, 고추를 넣어 끓인는 점이 동일하다. 개성 추탕이다(이종수, 2015 : 200).

끝으로, 강화도와 개성, 원제국 음식문화의 결합, 융합으로 탕, 추탕 등 탕문화가 정착, 토착화되어 오늘날까지 강화, 인천 등과 전국 각지에서 일상화 된 것이다. 강화도, 인천, 개성은 원제국과의 문화적 교류와 영향으로 탕음식이 정착된다(이종수, 2013.12 : 208, 2014). 매운탕도 원제국의 영향으로 지역에 맞게 채소, 된장, 어류 등을 변용하여 정착된 것이다.

 

. 강화도 향토음식 상품화 방안


1절 스토리텔링

 

1. 특성화 전략

 

첫째, 고려, 강화, 개경, 몽골음식 연결에 다크투어리즘(틈새관광) 방법을 적용한다. 몽골 흔적과 고려시대 강화도 -> 진도 -> 제두 항파두리, 일본의 대마도 사례와 연계 코스화 할 수 있다. 예컨대 동북아 역사공동체 조성을 통한 접근이다(류지성, 김형수, 2008.12).

서울 광진구의 몽고박물관과 울란바토르시 문화센터’, 화성시의 몽골문화체험장운영, 울란바타르의 서울의 거리남양주의 거리’, 남양주에 몽골문화원과 같은 자원을 상호 활용하여 체험과 음식문화를 연계화하는 것이다.

둘째, 호동면은 6·25 전쟁 후 바다가 휴전선이 되기 전까지는 38선 이남 경기도에 속해 교동면 주민이 마음대로 오가던 곳이었다. ‘바라보고도 못가는 고향일세인간이 최고라더니 날짐승만도 못하구나. 새들은 날아서 고향을 오고 가건만. 목숨을 부지하려 허둥지둥 나왔는데 부모 형제 갈라져 반 백년이 웬 말인가. 고향 친구들 뿔뿔이 흩어지고 백발이 돼 저세상 간 사람 많은데 남은 사람 발 디딜 날 그 언제일까.’(동아일보, 2018.5.5).

강화도를 서쪽 교동도(喬桐島)의 인사리 북진나루에서 북한 황해남도 호동면까지는 불과 2.6km 떨어져 있다. 38선으로 남북이 분단될 때 연백군(현재는 연안군과 배천군)의 남쪽은 경기도에 편입됐지만 19537월 휴전 이후 바다가 휴전선이 설치된다. 피란 온 3만여 명의 연백군 주민들은 고향의 연백시장을 그대로 본떠 전통시장 거리를 조성했다.

실향민 2세로 교동도에 살면서 교동 평화의 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김영애 우리누리 평화운동공동 대표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대표했던 교동도가 분단의 상징에서 화해와 교류 협력의 관문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맞고 있다고 기대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회담 후 발표된 10·4 선언(‘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5항에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북핵 문제가 잘 풀려 남북 협력 시대가 되면 한강 하구 및 교동도 주변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곳이라고 했다.

나들섬개발계획의 대상지인 한강 하구는 예성강 임진강 한강 등 남북 3개의 강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다. 밀물에는 해수가 되고 썰물에는 강물이 채워져 담수가 되는 곳이어서 숭어 실장어 등 어족 자원이 풍부하다.

 

2. 강화음식 스토리텔링

 

첫째, <추탕>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끓인 탕인데 견주어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끓인 탕이라는 점이 다르다. 인천해물전골, 꽃게탕, 전통장어요리, 향토자장면, 밴댕이회, 물텀벙이 탕과 찜, 시래기밥 칼싹둑이, 쫄면, 동어튀김이다. 특히 숭어는 콜라겐이 풍부하다. <자산어보>에서는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 제일이라 했고, <동의보감>은 숭어를 먹으면 위가 편안해지고, 오장을 다스리며, 몸이 튼튼해진다고 했다. 강화도에서는 숭어의 맹장국과 껍질요리, 구이와 튀김, 어란, 숭어 만두, 숭어찜등이 강화인들의 자랑거리이다.

이상한 일이여, 이 순무가 강화도만 벗어나면 그 향과 색깔이 바뀌어져 버려.” 강화도 순무 김치는 무의 달콤한 맛과 배추의 알싸한 향을 함께 지닌다.

둘째, 강화육미 스토리텔링으로 소어(밴댕이) 밴댕이는 탕과 구이가 모두 맛이 있고 회로 만들면 맛이 준치보다 낫다. 단오 후에 소금에 담그고 겨울에 초를 가하여 먹으면 맛이 좋다(증보산림경제 ; 오한샘 외 : 309-310). 나이가 들수록 혀끝을 자극하는 맛보다 어린 시절 밥상 머리에서 마주했던 소박한 맛을 그리게 된다. 뇌리에 각인된 맛, 어머니의 손맛과 고향의 맛에 대한 기억이다. 강화도에서는 그런 맛을 내는데 숭어가 빠지지 않는다. 특히 숭어는 콜라겐이 풍부하다. <자산어보>에서는 맛이 좋아 물고기 중에 제일이라 했고, <동의보감>은 숭어를 먹으면 위가 편안해지고, 오장을 다스리며, 몸이 튼튼해진다고 했다.

셋째, 고려 후기 무신 김준사례로 마도호 목간에는 고려 말 최씨 무신 정권을 무너뜨린 최고 권력자 김준도 등장한다. '사심 김영공님 댁에 올림'이라 적힌 목간의 '영공(令公)이 김준이다. '영공'은 고려 때 왕실의 제왕에게만 붙이던 극존칭인데, 1260~1268년 일반 관리로서 영공 칭호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은 김준 뿐이고 여수가 그의 연고지라는 점에서 그리 본다. 마도 3호선의 화물은 고려인의 일상 생활을 보여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각종 젓갈, 말린 생선, 육포, 곡물 등 먹을거리가 대부분이어서 당시 권력자들이 즐긴 음식을 짐작케 한다. 개고기, 상어고기 육포와 전복 등 고급 조개류, 지혈 등에 약재로 썼던 홍합 수염이 많이 나왔다. 선원들이 썼던 것으로 보이는 장깃돌은 작고 납작한 돌에 차, , 장군 등의 한자를 먹으로 써놨다.

끝으로, 강화 고수레란 공희의식이다. 강화도는 퇴기시레라고 한다. 원제국 문화의 잔재이다. 고수레(高壽寬), 고시레 등으로 불린다(이종수, 2014 ; 김창수 외, 2015 : 170). 호기심 체험프로그램으로 개발할 수 있다.

 

2절 프로그램

 

1. 하드웨어

 

첫째, 음식문화 플랫폼 구축(김창수, 2015)과 스토리텔링 종합계획 수립 및 시법사업 실시 등을 제도화 한다. 광역적 대응으로 부산의 회국수와 밀면 등과 연계한 누들로드 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이종수, 2014).

, 해양음식 네트워크 관련 지중해 등 유사 해양지역과 국제교류 추진한다. 고려시대 강화 도성 음식과 이웃했던 개성음식과 관련있는 스토리를 체험할 수 있는 테마음식을 개발하는 것도 한 수단이라고 본다. 음식관광 네트워크 구축이다. 차이나타운, 강화, 옹진군 등의 특산식품 코스를 연계하는 방안을 들 수 있다(이종수, 2014).

끝으로, 강화음식의 발전과제로는 개항과 연계된 음식관광 프로그램 개발, 강화와 옹진군의 특산물 가공판매 확대, 냉면, 돼지 젓국, 추탕 등을 대상으로 한 스토리텔링 코스를 개발하고 활용할 일이다.


2. 소프트웨어 측면

 

서긍 항로는 고려시대 원나라 사신 서긍이 해상을 통해 고려를 방문할 당시 이용한 항로였다. “서긍 항로를 한·중 양국을 연계한 해상 고속도로로 건설해 한·중 해양협력, 해양문화유산 보호 협력 등 양국이 상생할 수 있는 전략 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유럽의 유관광서비스 실태등과 쾰른 미디어 파크, 헬싱키의 버추얼 빌리지, 코펜하겐, 아일랜드의 디지털 파크 등의 유시티(u-city) 공원 사례를 들 수 있다.

강화음식의 발전과제로는 특히 개성의 국수와 추탕, 인천의 쫄면, 냉면, 부산의 회국수와 밀면, 제주도의 고기국수 등과 연계한 누들로드 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 나가는 글

이 연구는 21세기 강화지역음식 문화특성을 도출하고 그런 음식문화 특성에 영향을 미친 요인을 분석하였다. 주요 연구문제로는 강화의 향토 음식은 무엇이며, 향토음식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일까, 왜 그런 특성을 띄게 됐나, 어떤 요인에 의해 변화가 야기 되었는가 등을 13세기 고려 개성, 강화, 원제국의 상호관계와 음식문화를 중심으로 규명하고 주요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강화는 외세의 유입과 전쟁 등의 관문 등의 지역적 특색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향토음식을 형성, 유지하기를 어렵게 했다. 이처럼 강화의 개항 역사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탄생하고, 묻혀 버린 인천의 수많은 특산물과 강화 고유의 향토음식과 그 발전과제를 제안하였다.

본 고는 전통음식 문화적 관점에서 주로 해항지역의 음식비교 문화적 관점에서 비교적으로 접근하고 문화적 측면의 유사, 상이점을 분석하였다. 식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보다도 자연과 사회 환경이다. 자연환경과 전통적인 제례 등에 따라 음식 정체성이 정립되고 유지되거나 외세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한다.

추후의 연구과제는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개성과 안동, 탐라의 음식문화 등 13세기 음식문화의 원류를 횡적으로 비교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하여 반도의 탕문화의 보편성을 밝힐 수 있으리라고 본다. 동시에 고려의 탕 음식, 몽골 탕과 조선의 설렁탕의 근원과 그 비교에 대한 문헌적, 비교 사례적 분석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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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

 

The article is organized as follows. The first clarifies research questions, the purpose of study and methodology about the Kang-wha's(江都) local food culture storytelling. The second deals with methods of study, literature review, previous research and theoretical background of the Kang-wha's local food culture storytelling. The comparative variables of a characteristic of food culture are similarity & difference of Kangwha, Koryo & Mongghol's food culture in 13 century. This paper analysed effects among Kang-wha's local food culture storytelling. The third presents comparative analysis about Kang-wha's local food culture storytelling. The forth suggests interchange direction for fostering Kang-wha's local food culture storytelling. The last concluded that there are fundamentally similar on Kang-wha's local food culture storytelling.

 

Key-words : Kangwha's local food culture, local food, culture acculturation, culture storytel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