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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개성, 서울의 탕 음식문화 융합스토리텔링
Suwon, Gaeseong & Seoul's Tang(湯) Food Culture Fusion Storytelling
이종수(중앙대 연구교수)
< 요약문 >
〇 4.27 남북회담, 6.12 북미 회담, 6.21 한러회담 등의 데탕트 물결 속에 국내, 외적으로는 핵시설 파괴, 비핵화 시동 등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군사 회담, 미국과 한국 연합훈련 중지 또는 연기 등의 국제, 국내적 변화가 촉발되고 있음. 〇 이러한 해빙물결 속에서 “남북통일은 밥상 문화에서”라는 말도 들려옴. 4.27 정상회담에 평양 옥류관 냉면이 전격 등장. 북한은 옥류관의 수석 요리사를 파견, 평양냉면을 만들어 만찬장으로 배달하는 장면을 TV로 중계. 그날 이후 서울과 전국에서 옥류관 냉면이 조명을 받음. 남한의 평양냉면 열풍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크다는 것을 반증함. 〇 북한 냉면은 ‘쟁반국수’라고도 하며, “평양랭면 제일이야” (냉면 노래)라는 노래가 불려짐. 영국 가디언은 “평양냉면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보도함. 〇 평양의 랭면(冷麵)을 냉면 관련 문헌에서 보면 고려중기에 유래함. ‘찬 곡수(穀水)에 면을 말아 먹는다’고 하였으며, 재료는 메밀 중심임. 1849, 『동국세기시』에 보임. 고종 임금은 냉면애호가였음. 「別乾坤」(1929.12)에도 기록이 전함. 근래 들어 냉면, 설렁탕 등 대중요식업 대표 메뉴가 됨. 전쟁 후 남한식 냉면이 정착함. 〇 본 고는 13세기 고려시대 후기 이래 수원, 개성(이하 개경과 혼용)과 1300년대 후반 이래 조선시대 한양(서울과 혼용)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관계는 무엇일까, 왜 그런 특성을 띄게 됐나, 어떤 요인에 의해 변화가 야기되어 오늘날의 음식문화로 정착되었는가 등을 중심으로 수원, 개성, 한양의 탕 음식문화 변동사례를 규명해 보고자 함이 硏究 目的임. 〇 수원, 개성, 한양(서울)을 연구대상지역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들 지역에 13세기 몽골제국 문화 이입 관련하여 개성은 원제국의 본당이 위치해 있었으며, 수원의 경우 왕갈비 문화의 정착, 한양의 경우 개경의 음식문화가 유입되어 정착된 곳이기 때문이며, 이 시대를 전후하여 우리가 오늘날 향유하는 우리의 음식문화의 원형이 정착되었기 때문임. 즉 음식문화의 동질성 측면임. 〇 본 硏究方法은 필자의 선행연구(이종수, 2012∼2017)와 전문학술지 등을 참조하여 분석하고자 하며,분석의 시점은 원제국과 고려 관계가 밀접했던 13세기 전후를 대상으로 함. 〇 AI, 블록체인시대 남북 음식문화 融合 방안으로 냉면과 설렁탕, 국물과 면을 소재 중심으로 한 음식문화 융합과 스토리텔링을 제안함. 〇 남북 음식문화 융합스토리텔링의 期待 效果로는 첫째, 해당지역 이야기 효과와 역사, 문화 학습장과 장소이미지 제고 효과 등과 둘째, 해당지역 음식 문화와 장소 이야기가 ‘흐르는’ 스토리텔링 이미지 각인 효과와 친근하고 편안한 지역이미지를 전달함. 경제적 측면의 기대효과는 공공, 민간, NGO간의 문화 체계적 교류, 협력을 통합 음식 사업효과성 증대 및 지역 경제효과, 고용효과 등임. 셋째, 기타 효과로는 1) 지역 전통음식 문화자산 활용과 문화콘텐츠 보고 구축 2) 지역문화 개발 사업을 통한 지역인문정신 재 발굴과 수집결과의 다양한 활용 3) 지역인문자료 비축과 지역문화 전파 4) 지역자긍심 고취와 세계를 향한 “특수문화지역” 전파 마케팅 기초자료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임. 주제어 : 음식문화, 탕(湯), 면(麵), 수원, 개성, 한양의 음식문화, 랭(냉)면, 탕음식문화 융합 스토리텔링 |
□ 연구배경과 필요성, 목적
〇 4.27 남북회담, 6.12 북미 회담, 6.21 한러회담 등의 데탕트 물결 속에 국내, 외적으로는 핵시설 파괴, 비핵화 시동 등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 군사 회담, 미국과 한국 연합훈련 중지 또는 연기 등의 국제, 국내적 변화가 촉발되고 있음.
〇 이러한 해빙물결 속에서 “남북통일은 밥상 문화에서”라는 말도 들려옴. 4.27 정상회담에 평양 옥류관 냉면이 전격 등장. 북한은 옥류관의 수석 요리사를 파견, 평양냉면을 만들어 만찬장으로 배달하는 장면을 TV로 중계. 그날 이후 서울과 전국에서 옥류관 냉면이 조명을 받음. 남한의 평양냉면 열풍은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이 크다는 것을 반증함.
〇 북한 랭면은 ‘쟁반국수’라고도 하며, 「평양랭면 제일이야」 (냉면 노래)라는 노래가 불려짐. 영국 가디언은 “평양냉면은 평화의 상징”이라고 보도함.
〇 평양의 랭면(冷麵)을 냉면 관련 문헌에서 보면 고려중기 유래함. ‘찬 곡수(穀水)에 면을 말아 먹는다’고 하였으며, 재료는 메밀 중심임. 1849, 『동국세기시』에도 보임. 고종 임금은 냉면애호가였음. 「別乾坤」(1929.12)에도 기록이 전함. 근래 들어 냉면, 설렁탕 등 대중요식업 대표 메뉴가 됨. 6.25 전쟁 후 월남한 이들에 의해 북한식 냉면이 남한식 냉면으로 정착함.
〇 본 고는 13세기 고려시대 중,후기 이래 수원, 개성(이하 개경과 혼용)과 1300년대 후반 이래 조선시대 한양(서울과 혼용)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관계는 무엇일까, 왜 그런 특성을 띄게 됐나, 어떤 요인에 의해 변화가 야기되어 오늘날의 음식문화로 정착되었는가 등을 중심으로 수원, 개성, 한양의 탕 음식문화 변동사례를 규명하고, 음식문화 융합스토리텔링(이종수, 2018)을 제안함.
〇 수원, 개성, 한양(서울)을 연구대상지역으로 선정한 이유는 이들 지역에 13세기 몽골제국 문화 이입과 관련하여 개성은 원제국의 본당이 위치해 있었으며, 수원의 경우 왕갈비문화의 정착, 한양의 경우 개경의 음식문화가 유입되어 정착된 곳이기 때문임. 이 시대를 전후하여 우리가 오늘날 향유하는 우리의 음식문화의 원형이 정착되었음. 즉 음식문화의 동질성 측면임.
〇 본 연구방법은 필자의 선행연구(이종수, 2012∼2017)와 전문학술지 등을 참조하여 분석. 분석의 시점은 원제국과 고려 관계가 밀접했던 12세기 전후를 대상으로 함.
〇 AI, 블록체인시대 남북 문화융합 방안으로 냉면과 설렁탕, 국물과 면을 소재 중심으로 한 음식문화 융합(이종수, 2018.7)스토리텔링을 제안함.
□ 수원, 개성, 서울 음식융합 문화스토리텔링
〇 국가 지역별 장소자산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의 의의 측면임. 현대는 감성사회임. 감성사회의 트렌드는 환경, 여성, 건강, 가족, 허구 등으로 나타남. 이런 트렌드에 대한 적절한 대응은 웰빙과 건강, 환경, 체험, 6감(六感) 만족이 효과적이며, 그러한 수단 중의 하나가 문화 콘텐츠스토리텔링(이야기) 마케팅임.
○ 스토리텔링의 소재와 내용 및 효과는 지역차별성과 재미, 감동, 교훈 및 지역의 정체성 정립과 자긍심, 경제력 향상에 있음. 따라서 가장 매력적인 지역의 핵심 자원을 찾아 감성적인 문화상품으로 개발할 필요성이 제기됨. 감성사회에서 장소 자산이 중시되는 이유는 세계화시대 지방의 주체화, 개성화 수단으로서 지방정체성을 갖춘 자원의 인식과 개발, 인공적 육성을 통한 주체성 확보 및 음식문화 융합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통한 지역 이미지 전파 효과성 때문임(이종수, 2009.10.20).
〇 몽골 지배 이전과 이후의 고려음식
〇 첫째, 몽골지배 이전의 고려음식은 『고려도경』을 통해 일부 확인할 수 있음(윤덕인 1990). 고려는 불교국가여서 육식을 정책적, 제도적으로 금지하거나 삼가고 채식을 중시함. 도축법도 발달하지 못했으며, 관리들의 봉록도 생쌀과 채소를 줬음.
○ 둘째, 채소음식의 발달과 조미료 사용임. 불교가 융성함에 따라 채소음식의 발달을 가져왔고 침채형 김치의 체계가 잡혀 한국김치의 전통이 확립됨. 오이, 가지, 무, 파, 아욱 등 많은 채소가 이용되었는데 이들 식물성 식품을 더욱 맛있게 먹는 법이 강구되어 기름과 향신료의 이용도 많아짐. 즉, 조미료의 종류가 다양해져 이 시기에 초를 만들어 이용하고 참깨의 재배로 참기름도 사용.
○ 셋째, 차와 과정류 발달. 부처님께 차를 바치는 헌다(獻茶)의 예와 풍류로 차를 즐기게 되어 다도의 예절도 생기게 됨. 차를 마시는 풍습은 과정류의 발전을 가져왔는데 이들 음식은 연등회, 팔관회 등 불사를 위한 국가행사와 혼례, 각종잔치의 필수음식으로 이용되었음.
○ 고려 후기에 몽고의 지배를 받아 도살법과 여러 가지 육식조리법도 배우게 됨. 이 때의 공탕이 지금의 곰탕의 원조인 것으로 추정. 이는 맹물에 고기를 삶는 조리법을 의미. 따라서 고려 후기에 육식이 본격화되면서 개장국, 쇠고기를 쓴 육개장, 설렁탕 등이 나타남. 고기라면 쇠고기라는 육식관이 싹텄음(이종수, 2013). 지금도 갈비탕, 육개장, 설렁탕, 갈비찜 등은 전국적 탕문화의 실예임.
〇 몽골의 탕은 자양두(煮羊頭), 나복갱(蘿蔔羹), 완증양(碗蒸羊), 건함시(乾鹹豉), 양행교(羊䯒膠) 등임. 고려시대 양고기 식육은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난 이후 羊의 사육에 적합지 못한 기후풍토 때문에 쇠퇴(이종수, 2014)하고, 쇠고기와 돼지고기로 변형 정착됨.
〇 상차림의 기본구조 형성과 조리법의 발전임. 고려시대에는 곡류, 채소, 과일 등 이용된 식품이 아주 다양했고 조리법과 상차림이 발달함. 우리나라 상차림의 기본인 밥과 국이 나타나 상차림의 기본구조가 형성됨. 『고려도경』에 최초로 국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데 설농탕 외에도 토란국, 아욱, 다시마국, 미역국 등의 이름이 보임. 콩을 가공한 콩나물과 두부가 이 시기에 이용되기 시작했고 조리기법도 발달하여 기름에 지지거나 튀기는 조리법을 이용함.
□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〇 먼저 윤서석(1997)은 한국의 식생활문화 전반을, 개성과 한양의 음식문화 측면은 손정우(2009), 북한음식문화연구원(2012) 등이 주로 북한지역을 초점으로 삼음. 셋째, 최근 이종수(2012)는 지역음식문화와 특성의 음식스토리텔링 방안을 사례 비교적인 내용으로 제시함. 고려 후기 대원(大元)제국 지배하의 문화적 영향과 관련된 주요 선행연구는 이종수(2010 ; 2012 ; 2013.12a) 등과 설렁탕(이이화 1999 ; 김기선 2008 ; 박원길 2001, 2010 ; 유원수 2004)과 소주문화 연구(김천호 2003 ; 윤서석 2008 ; 이종수 2013.8, 173 ; 박원길, 2010 ; 이종수 2013.8, 167) 및『고려도경』에 기록됨. 『고려사』에는 몽골의 육식풍습이 전국에 파급되었음을 기록함(조원, 2017). 김봉석은 몽골제국의 영향으로 설렁탕과 안동소주가 정착되었다고 분석(김봉석 2014). 최근의 선행연구들은 몽골제국의 음식문화가 고려에 끼친 영향을 상기와 같이 밝힘.
○ 이종수(2009-2017)는 음식문화 스토리텔링(이종수, 2009), 탐라와 몽골의 음식문화(2012), 서울과 교토 비교(이종수, 2012), 인천과 부산(이종수, 2013), 탐라의 몽골문화(2014), 인천과 개성, 한양의 탕국문화(2014), 13세기 고려와 탐라의 음식문화(2014-2016), 수원의 왕갈비문화(이종수, 2016) 등 13세기 전후 원제국과 고려, 그리고 비교대상지역별로 원제국 음식문화의 변동과 토착화 배경을 분석함.
〇 본 고에서는 고려기의 몽고 지배를 전후한 고려 전기는 불교국가로 육류가 금지되다가, 중,후기부터 원의 문화유입으로 쇠고기 식용이 정착되고, 쌈 문화가 발달하면서, 특히 끓여서 나누어 먹는 湯과 麵문화가 주축을 이루게 됨에 따라서 개성과 한양의 탕 문화 토착화(이종수, 2012-2016)와 추어탕, 설렁탕 등 탕 문화와 면 음식 문화의 전개, 특성과 유사, 상이점 및 발전과제를 수원, 개성, 한양의 음식문화 유사, 상이점, 문화융합 스토리텔링 방안을 중심으로 분석함.
□ 수원, 개성, 한양의 음식문화 비교 분석
〇 수원의 왕갈비 문화
- 정조시대(재위 1776-1800) 화성축성에는 모군(募軍) 등 잡부들의 인건비가 70% 이상으로 지출됨. 약 9,779냥임(김균태, 2009 : 4-5). 마소 운임에도 1,169냥이 집행됨. 모군들은 가족들을 데리고 수원지역으로 들어와 천막을 짓고 눌러 앉았으며, 공사가 끝나자 다른 일을 달라고도 했음(이달호, 2007 : 148).
- 백성들에게 논밭을 나누어주고 농사를 잘 짓도록 종자와 소를 나누어 줬다. 1년 도지(사용료를 치르고 빌려서 경작하는 논밭)로 소 한 마리당 쌀 20말을 내게 하는 조건이면서 3년 안에 송아지 한 마리로 되갚는다는 약조 하에 이루어진 것임. 점차 늘어난 소를 팔고 또 송아지를 구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형성, 수원 우시장은 전국 3대 우시장 중 하나로 자리 잡음. 수원에서 갈비가 발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우시장의 영향이 큼. 소 공급이 풍부해 갈비를 구하기가 쉬웠기 때문임. 또한 수원은 예부터 곡창지대가 근접해 있을 뿐 아니라 한양으로 들어가는 농수산물의 집결지여서 먹을거리 문화가 풍부함. 특히 정조의 신도시개발이라는 대규모 국책사업시행에 따라 시전과 상업구조의 변화를 유도하여 백성의 삶의 질을 제고하고, 수원의 음식문화를 정립하는 계기를 열었음.
- 갈비문화의 토대로서의 우시장 형성과 관련하여 정조시대 화성건립을 계기로 소시장, 불고기 문화가 활성화 됨. 정조의 둔전, 국영농장 대유둔 정책으로 농민과 노동자들이 유입. 수원유수부에서 잔치에 소고기 식용 시책으로 소고기소비 활성화, 갈비문화로 정착됨(정해득, 2012).
- 영조가 신하들에게 쇠고기를 먹자고 제안하자 “상(上=임금)께서는 금육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본인은 드신다”는 말도 나옴. 정조도 늦은 밤 규장각의 신하들과 난로회를 즐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옴(이종수, 2015).
- 우시장이 서는 날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소장수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1940년대, 수원문밖 장(지금의 영동시장)의 ‘화춘옥’에서 수원갈비가 탄생. 갈비를 넣은 해장국에서 시작해 커다란 갈비 뼈대에 붙은 갈빗살에 소금으로 양념해 숯불에 구워낸 수원갈비로 발전함. 화성 축성의 전체 투입인원은 약 12만 여명임.
- 수원 왕갈비엔 한반도와 수원의 역사가 흐름. 갈비문화의 핵심에는 고대로부터의 맥적 문화를 각인시켜 온 북방유목계 배달 겨레인 선비, 농민, 노동자들의 땀과 노고가 깃들어 있음(이종수, 2014.4 ; 2015.12).
- 맥적과 설야멱을 거쳐 조선시대의 너비아니는 현대 갈비로 진화. 현대적인 수원갈비는 소금을 위주로 하는 양념갈비와, 간장을 위주로 하여 양념하는 예산갈비로 변화함. 궁중요리와 수원 유수부의 행사 등에서 사용되어진 쇠고기 요리가 수원화성 건설과 관련되어 동원되어진 연간 3천여 명 이상이 모군(募軍)과 막일꾼 등에게 국밥과 함께 제공되면서 확산됨(윤종군, 2013).
〇 수원 갈비의 주요특징
- 수원갈비 특징은 소금 간은 高麗, 元帝國 문화와 상통하는 문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점임(이종수, 2016ab). 간장을 사용하지 않고 소금과 설탕, 후춧가루, 참깨, 참기름, 마늘 등으로 양념하여 느끼하지 않고 색의 변화가 없으며 담백한 맛을 유지함. 크기는 10∼17cm 내외로 소금양념과 커다란 갈비 크기가 특징임(이재규, 2002).
〇 개성의 음식문화
〇 개성은 고려의 수도로서 음식이 사치스러웠고 격식이 까다로웠음. 음식의 양은 적었으나 가짓수는 많았고, 양념을 많이 했으며, 중간 정도의 간을 함. 개성시는 인삼 닭곰, 설렁탕, 추어탕, 약과 등을 지역특산물로 관광객들에게 선보이고 있음.
〇 13세기 개성은 몽골문화 전당이었음. 몽골의 문화와 고려식이 혼존하면서 몽골 만두, 소주, 국수, 육식문화와 후추, 설탕 등이 도시에 퍼짐. 개성은 지금까지도 고유의 음식문화가 잘 보존되고 있음. 조랭이 떡국, 홍해삼, 보쌈김치, 설렁탕, 추탕 등의 귀족문화 음식과 새우젓 다용 등은 음식정체성이 강하였다는 점을 알게 함.
○ 쌍화점의 만두이야기가 대표적임. 『고려가요』에 ‘쌍화점에 쌍화사러 가고 신대 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어이다’라는 대목을 보면 당시 몽골제국의 회회아비들이 고려에 유입되고, 쌍화(만두)전문점이 개점하는 등 개성의 음식문화에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음(손정우, 49). 또 목축기술의 발달과 도살법의 도입으로 육식문화가 일반화되기 시작하고, 소주문화가 정착됨.
○ 『삼국사기』고구려 본기 동천왕조의 기록에도 국(羹)에 대한 기사가 나오는데 그만큼 우리 민족의 국을 먹어 온지는 오래됨. 고려시대의 국은 갱(羹), 탕(湯), 학(矐, 곰국)과 구이(炙), 회(膾), 포(脯), 볶음(炒) 등(윤성재 2003, 131-135)이 발달함. 국의 종류는 뜨거운 국, 냉국, 나물국, 생선국 등이었으며, 고려 후기 몽골조리법인 만두나 설렁탕 등이 유입됨.
〇 한양(서울)의 음식문화
○ 서울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500년 이상 도읍지였으므로 아직도 서울음식은 조선시대 음식풍이 남아 있음. 물론 그 이전 이웃해 있던 고려시대 수도 개성의 음식문화를 물려 받은 경향이 강함. 서울음식의 간은 짜지도 맵지도 않은 적당한 맛을 지니며, 왕족과 양반이 많이 살던 고장이라 격식이 까다롭고 맵시를 중히 여기며, 의례적인 것을 중요시함.
○ 전통음식의 맛은 달지 않고, 짜거나 맵지 않음. 싱거우면서도 시원한 맛인 “슴슴하다”, “삼삼하다”는 특징이 있음. 서울음식의 종류는 흰밥, 굴밥, 설렁탕, 육개장, 비빔국수, 약식, 육포 등과 또는 장국밥, 설렁탕, 신선로, 선지국(해장국) 등이었음.
○ 고려후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울음식은 탕국문화가 중심임. 2011년 KBS 1TV '한국인의 밥상‘ 조사에 의하면 서울4대문 안 토박이들의 대표음식은 설렁탕임(연합뉴스 2012.1.4). 종로 태생으로 4대에 걸쳐 40여년 함께 생활해 온 김숙년씨는 서울음식은 탕국문화가 중심이라고 함. ‘서울 토박이 밥상’은 각 지역에서 올라온 특산물을 이용해 ‘토박이음식’을 만들었음.
〇 서울의 기본음식은 탕국인 설렁탕, 곰탕, 국밥 등임. 13세기 고려후기 몽골지배는 탕국문화와 육식문화를 낳았고, 서울은 설렁탕이, 부산은 돼지국밥이, 제주에선 몸국으로 계승 중임(이종수 2012.6). 현대의 서울음식은 전통식, 고려와 조선음식의 혼합과 조선의 궁중, 반가음식과 백성음식을 중심으로 전수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 설렁탕임. 설렁탕은 결국 고려, 조선의 혼합식문화를 바탕으로 한 고려음식이면서 의례적 측면의 조선음식이 가미된 음식문화의 결정(結晶)임(이종수, 2012-2017).
〇 ‘군포(軍浦, 飽) 양지설렁탕’은 임진왜란 시 승병과 관군 무리가 퇴각하다 군포에 宿營하자, 동네 백성들이 승병을 의식, 소를 잡아 소의 가슴 부위로만 국을 끓여 만든 독특한 설렁탕임.
〇 한양(서울)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몽골, 중원문화, 일본, 미국 등의 영향으로 탕 문화, 일식, 한정식, 양식 혼성문화적 특성을 띠게 됨. 19세기 이래 한양은 몽골, 중원, 일본, 미국 등 탕문화, 일식, 한정식, 양식 혼성문화 쇠고기 탕국 중시 설렁탕, 잔치국수 등의 양반문화 특성을 띰. 숟가락과 젓가락 사용의 탕국문화가 중심에 자리함. 그러면서도 국물문화의 진수인 설렁탕, 곰탕, 갈비탕 등의 국물문화는 여전히 음식문화의 중심에 자리함.
〇 서울음식은 전통식, 고려와 조선음식의 혼합과 조선의 궁중, 반가음식과 백성음식을 중심으로 전수되고 있으며, 그 중 음식문화정체성은 조선보다 고려에 그 원형을 두고 있으며, 그 식문화의 유래는 유목민 음식문화에 뿌리를 두면서도 몽골의 양고기 보다는 쇠고기 중심의 반도적 특성을 가미한 ‘탕 문화’가 가미된 독자적 음식문화라고 판단됨(이종수, 2016). 탕(蕩)의 원류와 관련 유목민들은 초원중심의 식생활 기반인 양과 염소, 소 등으로 발달되고, 한국은 농경문화와 경작문화로 소와 돼지, 닭고기 중심의 음식문화로 발달되었으며, 설렁탕 등 탕 중심의 음식문화가 이어지고 있음.
□ 수원, 개성, 한양 음식문화 특성
〇 우리 조상들이 남겨준 전통문화가 광복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지금도 생성돼 오는 서울문화 평양문화의 단면들을 살펴봄. 밥상 위에서는 누구나 만날 수 있고 소통할 수 있고 서로 즐길 수도 있음.
〇 수원, 개성, 서울의 문화적 연결고리는 탕과 면임. 탕(湯)과 면(麵)은 1200∼1300년대 200여년 동안 대원제국과의 타율적 관계 속에서 문화적으로 정착되어 발전된 한국인의 음식문화 DNA 임. 수원의 왕갈비, 개성 추어탕과 농마 국수, 서울 설렁탕 등임(이종수, 2015 : 202-203).
〇 정리 한다면, 맥적에서 비롯된 우리의 고기 굽는 방법이 신라, 고려 때는 설야멱이라는 숯불 꼬치구이를 거쳐 철판구이, 석쇠구이, 돌판구이 등으로 발전했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조리기구가 만들어지며 국물과 함께 먹는 현대적인 전골과 불고기, 갈비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 김일성의 좁쌀밥과 이면수
○ 김일성이 좋아하는 음식은 좁쌀 밥에 이면수 구운 것 한 토막이면 밥 한 그릇을 다 비웠음. 박정희는 고기반찬보다 채소와 시골에서 먹던 그대로를 좋아함. 한 골프장에 왔을 때 식당 주방장이 호박잎을 밥에 쪄서 된장과 함께 내놨더니 아주 반색을 함.
〇 김일성과 개성(이종수, 2015 :202), 개성 추어탕과 국수집은 민속여관, 민족식당인 통일관과 개성 국수집 등에서 농마국수, 메일국수, 고기쟁반 국수 등을 판매함. 송악소주도 인기가 높음(이종수, 2015 : 202).
〇 북한을 대표하는 음식, 북한지방 전통음식 관련 북한음식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북한음식이냐 북한지방음식이냐를 살펴 봄. 광복 전 북한지방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평양냉면, 평안도 노치, 대동강 숭어국, 함경도 명태순대, 가자미식해, 황해도 농마국수나 해주골동반 같은 것은 북한지방의 전통음식임.
〇 북한정권이 들어선 후에 새로 개발된 요리들은 북한지방음식이 아니라 북한정권음식임(자유아시아방송, 2016.7.8.).
○ 남북회담 시 북한 당국이 남쪽대표들에게 대접한 음식은 대체로 북한정권에서 만들어진 것들인데 가령 게살자반, 닭 마늘탕 밥, 양고기 쌈, 송이 즙 쇠고기 편육, 전복볶음, 사슴고기 구이, 꽃게 즙 구이 같은 것임.
○ 이런 음식들은 새로 개발한 음식이어서 남쪽음식보다 간이 싱거움. 외국인들은 이런 음식에 대해 대체로 맛있다고 칭찬함. 한국에서 한식을 먹어 본 외국인도 남쪽음식보다 맛있다고 함.
○ 지난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가져온 '평양냉면'이 화제가 됨. 평양에는 평양냉면 이외에도 남한과 비슷하지만 다른 음식들이 많음(문화뉴스, 2018.4.30.).
○ 첫째, 남한의 '전주비빔밥'은 나물과 고추장을 비벼서 먹지만 북한의 '해주비빔밥'은 고추장 대신 간장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임.
○ 둘째, 남한의 '김치'는 남쪽 지방일수록 간을 강하게 하지만 북한의 '김치'는 소금 간을 약하게 하고, 고춧가루를 적게 넣으며 젓갈을 구하기 어려워 생태를 사용하기도 함.
○ 셋째, 남한의 전통약과는 동그란 꽃 모양으로 쫀득한 식감이 특징인 반면, 북한 개성 약과는 마름모 모양으로 바삭한 식감이 특징임.
○ 넷째, 남한의 거리 음식은 떡볶이, 어묵, 순대 등의 분식이 대표적이지만 북한의 거리 음식은 튀긴 두부 속에 양념한 밥을 넣어 먹는 두부밥, 콩기름 찌꺼기로 만든 콩고기인 인조고기밥, 도넛과 맛이 비슷하다고 알려진 손가락과자가 대표적인 음식임.
□ 탕과 갈비문화의 주요 시사점
〇 탕, 갈비문화의 근대적 계승
- 원제국의 음식문화는 동서양의 음식문화가 융합된 혼종음식문화로 그런 세계적 혼종성이 고려와 탐라에 전파되어 오늘의 고기국물문화로 변형적으로 정착되어 토착됨.
- 이 연구를 통하여 육류의 보편화와 탕중심 음식문화의 기원은 고려시대 대원제국 문화에서 유래되어 고려와 탐라에 토착화되어 오늘에 이르렀음을 확인함(이종수 2013.8, 138 ; 168).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선조들은 식사시에 국물을 중시해 왔으며, 고려 후기 몽골의 영향으로 육식과 채식문화가 결합되어 민족의 음식문화 정체성이 형성(유애령 1999 )되고, 조선시대 들어 양반을 중심으로 한 곰국과 백성을 중심으로 한 설렁탕 문화가 자리 잡게 됨(이종수, 2014.8 : 67-68).
- 숟가락과 젓가락 사용의 탕국문화가 중심에 자리한 이유는 주식인 밥을 부드럽게 넘어가게 하기 위함이며, 가난한 서민들의 배를 국으로 채워 포만감을 유지케 하고, 온돌의 발달로 남는 열을 이용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임.
- 삼국시대 ‘삼국사기’ 국문화, 려말 유목민 음식문화 유입과 채소국과 육류탕문화의 결합으로 인한 육개장, 곰탕, 설렁탕, 고사리 육개장 등으로 발전됨. 조선시대 토착화 이래 현대까지 삼계탕 등으로 탕문화가 전개중. 이성우는 원제국의 영향으로 선지국(청진옥, 시골집), 설렁탕(이문설렁탕), 갈비탕, 편육(낙원상가) 등의 전국화를 들었음. 결과적으로 원제국 지배문화의 유입과 영향, 자연환경과 의례적 영향, 기타 등에 영향 받으며 탕 문화로 정착, 토착화되었음을 확인함.
- 부여, 고구려의 맥적에서 비롯된 갈비는 고려 때는 설야멱이라는 숯불 꼬치구이, 조선시대 너비아니로 변화하면서 발전했고, 근래 새로운 조리기구가 만들어지며 국물과 함께 먹는 현대적인 전골과 불고기, 갈비문화가 정착됨.
〇 주요 시사점
- 첫째, 본 연구는 수원, 개성, 한양의 음식문화에 미친 정치, 경제, 사회적, 음식문화적 영향과 파장을 문화변동과 유지 측면, 사회문화적 측면과 음식문화적 측면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21세기 한식의 일부분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육식문화의 원류를 이루고 있는 국물(탕국)문화를 조명함. 육류의 보편화와 탕 중심 음식문화의 기원은 고려후기 원제국 문화에서 유래되어 오늘에 이르렀음을 확인함.
- 이 연구를 통하여 육류의 보편화와 탕중심 음식문화의 기원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대원제국 문화에서 유래되어 수원, 개성과 한양에서 토착화되어 오늘에 이르렀음을 확인함.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선조들은 식사 시에 국물을 중시해 왔으며, 고려 후기 몽골의 영향으로 육식과 채식문화가 결합되어 민족의 음식문화 정체성이 형성되고, 조선시대 들어 양반을 중심으로 한 곰국과 백성을 중심으로 한 설렁탕 문화가 자리잡아 현대의 일품요리로 계승되어 속풀이와 해장국 용도 등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됨. 즉 개성과 한양은 소의 뼈를 고은 국물문화가 정착됨.
- 셋째, 본 연구는 우리나라 식문화 특성의 두 주역이라 할 수 있는 탕과 갈비문화의 연원과 확산분석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선행연구(필자 포함)들과 차별성이 있음. 주요 내용으로 고대 맥적문화에 기반한 설야멱, 너비아니가 수원 왕갈비로 정착하게 된 배경과 특성 등을 분석함.
- 끝으로, 음식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보다도 자연과 정치, 사회 환경임. 자연환경과 전통적인 제례 등에 따라 음식 정체성이 정립되는 한편 원제국의 국제화(國際化)의 교류 영향을 받아 강한 혼종성문화로 정착됐다는 점으로 자신의 지역에 맞는 식재료와 문화를 가미하여 독특한 지역음식으로 발전시키게 된 것임.
- 오랜 세월 동안의 상호 교류 속에 제3의 창조적 음식문화로 변동되어 토착화 되었다고 정리됨. 음식문화의 이입과 변동은 고려시대 원제국의 영향에 따른 문화변동과 토착화 현상을 확인함. 음식문화란 경제, 외교, 군사행위를 토대로 한 상호 교류와 지역적 특성 등이 결합되어 지역 환경과 정서에 맞게 토착화되는 상호영향을 받은 결과로 풀이됨.
□ 수원, 개성, 서울 음식문화 융합스토리텔링
〇 4.27 남북회담 이후 평양 옥류관 냉면이 장안에 유행함. 냉면과 설렁탕은 전국적인 음식문화임.
〇 누구에게나 관심이 있는 남북 음식문화의 의의와 특성, 문화적 차별성과 동질성, 융합성 등을 분석함.
〇 문화적인 주요 연결점이 되는 남북 음식을 주제로 하여 통일문화 진흥의 선봉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제안하고자 함.
〇 고려 개성과 조선 한양음식문화 관계를 분석하고, 고려와 원제국의 음식문화 유사 상이점과 고려 음식문화 특성분석을 토대로 현대적인 개성, 서울 음식문화 스토리텔링 방안을 중심으로 음식체험 공감, 심신치유, 휴식과 충전기회의 제공 방안 등을 제안함.
〇 냉면은 겨울 음식으로 북한에서는 영하 20℃ 내외의 강추위 속에서 뜨거운 온돌방에 앉아 몸을 녹여가며 이가 시린 찬 냉면을 먹었음. 온돌방에 불을 많이 때다 보니 방 바닥이 너무 뜨거워 더위를 식히기 위해서 먹었다는 설도 있음(광주일보, 2018.6.5.).
○ 북한 냉면의 양대 산맥인 평양냉면은 메밀과 전분을 사용한 면,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 전분이 들어간 면을 사용하며, 평양냉면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중반 경성의 요정에 처음 진출. 한국 전쟁으로 북한에서 피난을 온 사람들이 냉면집을 차리면서 널리 보급됨.
○ 북한은 1960년대 이후 국가적으로 냉면에 관심을 보여 평양냉면, 사리원냉면, 함흥냉면, 강계냉면, 해주냉면, 평남냉면, 원산냉면, 청진냉면 등 각 지역별로 냉면을 발굴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하고 공훈요리사 제도를 통해 그 명맥이 끊어지지 않게 노력함. 각 냉면의 본산이 되는 식당을 지정하여 중점적으로 지원하기도 함. 평양냉면은 옥류관과 청류관, 함흥냉면은 신흥관이 지정 식당임. 4.27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만찬 음식으로 평양냉면이 TV로 중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겼음.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임.
〇 첫째, 음식문화 플랫폼 구축(김창수, 2015)과 스토리텔링 종합계획 수립 및 시법사업 실시 등을 제도화 함. 광역적 대응으로 인천, 강화의 추탕, 부산의 회국수와 밀면 등과 연계한 누들로드 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한 방안임(이종수, 2014).
〇 육류의 보편화와 탕중심 음식문화의 확산은 고려시대 대원제국 문화에서 유래되어 개성, 강화, 인천, 한양에서 토착화되어 오늘날 전국에 확산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음(이종수 2013.8, 138 ; 168).
○ 몽골에서 양고기를 지금까지 상식 하듯이, 우리는 소, 돼지, 닭고기 식용문화가 보편적임. 개성, 인천, 강화 등의 추탕은 미꾸라지, 두부, 고추를 넣어 끓인는 점이 동일하다. 개성 추탕임(이종수, 2015 : 200).
〇 수원, 개성, 원제국 음식문화의 결합, 융합으로 탕, 추탕 등 탕문화가 정착, 토착화되어 오늘날까지의 문화적 교류와 영향으로 탕 음식이 정착됨(이종수, 2013.12 : 208, 2014). 매운탕도 원제국의 영향으로 지역에 맞게 채소, 된장, 어류 등을 변용하여 정착된 것임.
〇 주요 내용은 음식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너비아니가 수원 왕갈비로 정착하게 된 배경과 특성 등을 분석함. 설렁탕 등의 탕국과 갈비 등의 음식문화 확산 이유도 조명함. 탕과 갈비문화의 고려시대는 몽골 영향으로 쇠고기 문화가 이입되어 확산되고, 조선시대는 개성과 한양의 설야멱, 너비아니와 서울의 설렁탕 문화와 수원유수부의 왕갈비문화가 꽃을 피움. 개성과 한양에서는 양반과 백성들이 장국밥, 설렁탕을 즐겨 먹었음.
□ 연구의 의의, 기대효과
〇 본 연구는 앞으로 무리없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남북관계의 조화로운 관계 개선과 발전, 상호 이해 증진을 음식문화 융합으로 관계개선을 기하기 위함.
〇 개성은 남북 통일 후 ‘통일한국의 수도’로 유력시 되는 도시임(이종수, 이상윤, 2006 : 286), 중국과 지척, 인천국제공항과 인접함.
〇 수원, 개성과 강화, 서울과 평양, 안동과 탐라 등 몽골(원제국) 음식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 현재의 계승 특성을 중심으로 토착화 된 남북한 밥상문화를 접근함.
○ 고려, 강화, 개경, 몽골음식 연결에 다크투어리즘(틈새관광) 방법을 적용. 몽골 흔적과 고려시대 강화도 -> 진도 -> 제주도 항파두리 -> 일본의 대마도 사례와 연계 코스화 함. 예컨대 동북아 역사공동체 조성을 통한 접근임(류지성, 김형수, 2008.12).
〇 서울 광진구의 몽고박물관과 ‘울란바토르시 문화센터’, 화성시의 ‘몽골문화체험장’ 운영, 울란바타르의 ‘서울의 거리’와 ‘남양주의 거리’, 남양주에 ‘몽골문화원’ 과 같은 자원을 상호 활용하여 체험과 음식문화를 연계화 접근함.
〇 남북한 음식문화 공연 상시 체험함(이북오도신문,2016. 9.7). 남북의 음식문화를 한곳에서 비교와 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될 예정임. 통일부와 남북하나재단에 따르면 남북한 음식과 문화가 공존하는 「통일음식문화타운(가칭)」 조성은 탈북민의 안정적 자립을 돕고, 사회통합 및 통일공감대 확산 도모를 위해 추진한다고 밝힘.
〇 여기에서 새로운 南北 飮食融合文化(이종수, 2018)와 그 스토리텔링 필요성이 제기됨. 남북한 음식문화의 원류와 문화변동과 적용 및 새로운 융합방안과 프로그램 개발이 요청됨.
〇 남,북 음식문화 융합스토리텔링의 기대 효과로는 첫째, 해당지역 이야기 효과와 역사, 문화 학습장과 장소이미지 제고 효과 등과 둘째, 해당지역 음식 문화와 장소 이야기가 ‘흐르는’ 스토리텔링 이미지 각인 효과와 친근하고 편안한 지역이미지를 전달함. 경제적 측면의 기대효과는 공공, 민간, NGO간의 문화 체계적 교류, 협력을 통합 음식 사업효과성 증대 및 지역 경제효과, 고용효과 등임. 셋째, 기타 효과로는 1) 지역 전통음식 문화자산 활용과 문화콘텐츠 보고 구축 2) 지역문화 개발 사업을 통한 지역인문정신 재 발굴과 수집결과의 다양한 활용 3) 지역인문자료 비축과 지역문화 전파 4) 지역자긍심 고취와 세계를 향한 “특수문화지역” 전파 마케팅 기초자료로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 등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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