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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과 풍류문화의 상관성」토론문

현곡 이종수 2018. 10. 30. 04:31


이 글은 2018년 10월 27일, 동양대 선비연구원 토론문임.

선비정신과 풍류문화의 상관성토론문

이종수(중앙대)

 

. 토론 전제

 

토론은 발제문 내용을 중심으로 주로 한국적 관점에서(본문은 중국 중심) 몇 가지 느낌을 實用(사례와 현시대적 활용)이라는 측면을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시대 정신적 가치나 본받을 만한 내용을 살펴 보고자 한다.

본 주제 발표는 선비와 풍류 개념화, 유형화 결합과 그 결과 선비와 풍류의 결합을 통하여 정신문화 발전과 안식처로서의 풍류관계를 보여준다. 반면에 먼저 동의하기 곤란한 두 가지 점을 예시하면, 2017 촛불시민 범주에서 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는 견지에서 시민 모두가 선비라는 개념과 1500만 명 시민 의 취미의 개념 설정문제이다. 따라서 선비의 개념과 범주의 재구조화가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논평은 선비문화 제도화, 시책화, 사회적 활용 측면에 토론의 중점을 두고 논평하고자 한다. 토론은 社會科學徒의 관점이기 때문에 인문학자의 시각이나 분석, 의미부여 등에서는 異見이 있을 수 있다. 이하에서는 선비의 修己治人, 13세기 허형의 대원제국의 官學으로서의 주자학의 유입과 선비 정신, 4차 산업혁명시대의 선비문화와 정좌의 계승 등을 사회적 활용 대안으로 제안하여 조금이나마 발제문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풍류란 바람 ()’자와 물흐를 ()’자가 합쳐진 말이다. 그래서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또는 운치가 있는 일로 풀이한 사전이 있는가 하면, ‘아취(雅趣)가 있는 것또는 ()된 것을 버리고 고상한 유희를 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과거에는 풍류도(風流道)라 하여 유((() 3교를 포함한 한국 고유의 정신을 나타내는 말이다. 풍류라는 말은 삼국사기진흥왕조에 화랑제도의 설치에 관한 최치원(崔致遠)이 쓴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에 보면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이를 풍류라 한다.”(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신라 당시에 있었던 현묘지도(玄妙之道)가 곧 풍류인데 그것은 유··선 삼교를 포함한다.

한국적 문화정체성 관련 한국인의 정체성의 한 부분은 神氣文氣. 그래서 선비정신이 필요하다가 74.5%. 선비는 우환의식(민족과 국가, 인류의 곤경에 대한 걱정근심)을 갖는 이들로 수기치인을 통해 벼슬길에 올라 사대부가 되거나, 뜻을 잃으면 초야에서 청담을 즐기거나 후학을 교육했다. 선비는 1039세에 수기치인하고 벼슬에 들었으며, 修己的 측면의 정좌를 생활화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수기와 정좌과목을 프로그램화 하여 신기와 문기를 전수하도록 한다(이종수, 2018.4).

 

. 선비의 수기 치인

 

수면이 뇌의 휴식이라고 한다면, 풍류란 고단한 인생 삶의 휴식이라고 본다. 그래서 풍류는 詩書 등과 유람, 악기 연주, 음주와 가무, 노래방 등 등을 상정할 수 있다.

중국의 한 학자(쑨리췬, 2014)는 선비의 특성과 관련 역사에 대한 사명감과 우환의식, 독서, 벼슬길, 귀적의(貴適意 : 어떤 문제를 생각하고 결정할 때 자기의 간절한 뜻에 부합하는지의 여부), 의식주(헌옷을 즐김, 술과 벗함) 등과 시서화, 악기, 청루(靑樓) 문화 등을 제시한다. 술과 차를 벗하거나 술을 창작의 도구화, 근심에서 벗기(忘憂物), 즐기기 위함 등을 예시했다. 도연명은 반드시 음주 후 詩作했고, 당태종의 諫官 魏徵은 황금항아리에 담은 10美酒를 방문한 이세민에게 제공하여 이세민이 극구 칭찬을 받는다. 소동파도 직접 술을 담그기를 즐겼다. “술은 사람을 아득하고 먼 곳으로 이끌어 를 깨치게 하고, 꾸밈없는 본성에 이르게 한다고 했다.

조선시대는 태조, 태종, 성종, 연산군 시대 등에서 禁酒令이 내려지곤 했다. 큰 가뭄이 들거나 흉작, 기근 시 발령된다. 당시의 선비들은 論語10鄕黨酒量과 관련된 유주무량불급란(唯酒無量不及亂)”을 인용하며 主上에게 항변하곤 했다. 사대부나 관료사회는 잘 지켜지지 않았다.

문인들이 남긴 시문에는 생활 속에서 시(((()를 즐겼다는 내용이 많다. 또한 좋은 경치를 찾아다니며 자연을 즐기는 것을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문인들은 좋은 자연경관 속에서 시···주로 노니는 것을 소위 풍류라 하여 생활의 주요 영역으로 삼는다.

한편 여럿이 어울리는 풍류의 이면에는 또 혼자서 즐기는 풍류의 세계가 넓게 펼쳐져 있다. 홀로 초당에 앉아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조용히 시를 읊조리거나 술 한잔으로 은근한 흥취를 돋우는 조촐한 풍류가 있어 멋진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절제로 얻은 자유의 세계이며 현실을 초월하여 즐기는 관념의 풍류세계로 표출되고 있다.

이규보의 시 적의 適意에서 혼자 즐기는 풍류세계가 돋보인다. “홀로 앉아 금()을 타고/홀로 잔들어 자주 마시니/거문고 소리는 이미 내 귀를 거스르지 않고/술 또한 내 입을 거스리지 않네/어찌 꼭 지음(知音)을 기다릴 건가/또한 함께 술 마실 벗 기다릴 것도 없구료/뜻에만 맞으면 즐겁다는 말/이 말을 나는 가져 보려네(獨坐自彈琴 獨飮頻擧酒 旣不負吾耳 又不負吾口 何須待知音 亦莫須飮友 適意則爲歡 此言五必取).”

이 자리에서는 시서(詩書)의 풍류보다 금주(琴酒)의 풍류를 더 강조하고 있다. “인생에는 술 항아리 앞보다 좋은 것이 없고 인생 백년을 보내는 데 술만한 것이 없으니 술잔이 돌아가거든 남기지 마시라.”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황(李滉)과 같은 도학자들도 풍류를 그의 시에 그려 놓았다. 도산 12중 넷째곡인데, 술 마시면서 뱃놀이 하는 중에 거문고 타고 즐기니 무한지경에 이르렀노라는 내용이다. “창강(滄江)에 달이 뜨니 야색이 더욱 좋다. 사공이 노를 젓고 동자는 술을 부어 상류에 매인 배를 하류에 띄어놓고 초경에 먹은 술이 삼경에 대취하니 주흥(酒興)은 도도하고 풍류는 완완(薍薍)이로다. 그제야 곧추앉아 요금(瑤琴)을 빗겨안고 냉냉한 옛곡조를 주줄이 골라내어 청량한 육륙가(六六歌)를 어부사(漁父詞)로 화답하니 이리 좋은 무한경을 도화 백구 너 알소냐.”

 

. 13세기의 주자학과 선비정신

 

오늘날 우리사회 가치관의 기저를 이루는 유학, 성리학과 구분되는 원대(元代) 주자학(朱子學)의 지향과 특성은 官學, 實踐性, 實學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런 주자학의 학문풍토가 고려 후기, 조선시대의 선비, 풍류 문화와 오늘날 미치는 영향 등에 한정될 필요가 있다.

원대 성리학의 발전계기는 쿠빌라이의 관학 수용과 과거제 채택에서 기인한다. 주자의 四書集註를 과거제도의 필수과목으로 지정한다. 송의 주희(11301200)周濂溪(10171073), 張橫渠, 程明道, 程伊川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이정(二程)의 학문은 양시, 예장 羅從三, 延平 李侗(10931163), 주희 등으로 이어진다. 원대의 성리학은 조복(趙復)에 의해 북방에 전해져 그 후 그의 학문은 허형(許衡, 12091281) 등에게 큰 영향을 남겼다. 허형은 小學四書를 중시하고 성리학에 입각한 강한 실천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 말의 성리학 이해와 많은 연관성을 보인다. 남송의 조복은 주자의 속전제자(續傳弟子)로 도추가 수학, 허형(許衡, 12091281), 유인(劉因) 등이 사사(황공위, 1971 : 277 ; 고혜령 : 443 ; 이원석, 2006 : 228)한다. 당시 안향이 독로화로 대도에 가서 수학하며, 주자학자들과 접했다. 허형의 주장과 논저는 거의 덕성함양과 인륜관계에 관한 것이 대부분 차지했다.

한국 성리학(性理學)의 계보와 특성으로는 우리나라 성리학은 이를 도입하고 육군자를 비롯한 후학과 문생을 기른 회헌 안향으로 시작되어, 6군자(권부, 백이정 외), 익재 이제현(李齊賢), 가정 이곡(李穀), 목은 이색(李穡)을 거쳐 포은 정몽주, 정도전, 야은 길재(吉再) 그리고 양촌 등으로 이어진다. 원 세조(12151294)는 대단한 호유(好儒)의 군주로 유신(儒臣)을 대거 등용하고 학교와 교육에 힘을 쏟았으며, 경세치용(經世致用)의 근거로서 도덕적 수양의 측면을 강조하는 원대의 주자 학풍은 허형에 의하여 원대 유학의 특성으로 기반을 굳힌다. 허형이 小學四書를 중시한 이유는, 거기에는 수신과 치국의 차례와 본말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형의 大元 朱子學朱熹의 주자학과는 완전히 다른 도덕적 실천주의 학풍과 건강한 정신을 요청하는 고려 말 사상계의 바람에 부응하여 신진사류들에게 적극 수용되었으며, 신진사류들은 이를 정치, 사회적 제 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적용함으로써 한국 사상사에 뚜렷한 획을 긋는 사회적, 이념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이 풍조가 안향을 통하여 고려에 유입된다. 안향은 1289(46) 때 원제국 수도 연경에서 주자전서를 접하고, 모두 필사하여 고려에 들여온다. 안향(1243-1306)의 성리학풍은 백이정, 권부, 우탁, 이제현(12781367), 이곡(12981351), 이색(13281396), 정몽주(13371392), 정도전(13421398)등으로 계승 전수되어진다.

따라서 조선의 성리학은 주희의 이론보다는 조복, 허형의 실천적 주자학적 성격이 강하며, 안향은 허형학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노평규 : 168). 그가 37세인 1279년 첫 입원(入元)하여 허형 중심의 주자학을 수학했다. 경학(敬學)측면이다. 공자를 배우려면 먼저 주자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인의 도를 일상생활의 윤리(日用倫理)로 단정했다. 도를 윤리로 규정하면서 바로 오륜의 강상과 경,(,)의 실천적 수양을 언급했다. 공맹과 주자의 도통(道統說)을 확정한다. 도통은 유학의 진수에 대해 신념을 가지고 이를 적극 실천하여 교육으로 전파하고, 한편으로는 이단을 배척하는 교조주의적 성격을 띄고 있다.

신 성리학(大元 官學)은 고려 시대의 국교인 불교를 비판하고 성리학으로서 국가의 통치 이념을 건립함에 따라 성리학은 관학(官學)의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고려사회의 절박한 문제의식과 노재학풍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 실천윤리에 대한 관심이 주자 성리학의 사회기능적 측면으로 수용되는 데, 이는 형이상학적, 사변적 탐구에서의 탈피 요청 측면이다. 고려 말 3(三隱)은 학자이며 문장가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이다. 이들은 중국 원()나라에서 들어온 성리학을 연구하여 성리학의 기초를 확립한다.

정도전은 주자의 사서오경(四書五經)의 주석(註釋)을 받아들이고, 세계와 인간, 사회를 성리학의 리기(理氣), 태극(太極), 성정(性情)으로 설명한다. 대학중용을 통하여 천도(天道)와 인도(人道)를 재확인하고 논어맹자를 통하여 유학의 경세론(經世論)을 이해하였으며, 오경(五經)을 통하여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을 말하고 도통(道統)을 제시했다. 정도전의 삼봉집에는 정치가가 명심하거나 정치 제도에 꼭 반영되어야 할 근본 정신에 관해 보면, (), (), ()을 강조한 용례가 많다. 우선 ()에 대해서 보면, 정도전은 "()이란 바르게 하는 것[()]이니 자신을 바루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오직 자기 자신을 바른 사람이라야 남을 바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재상의 정치를 논함에 있어서 "그 몸이 바르면 ()가 처자에게 미치고, 그 몸이 바르지 못하면 능히 처자에게 행할 수 없다. 至親(지친)도 오히려 그러할진대, 하물며 그 임금이겠는가. 그러므로 輔相(보상)()은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다 하였다."고 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기반은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정도전도 당시의 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正己而正人(정기이정인)"라는 고전적인 정치 인식을 공유하면서 修己(수기)治人(치인)의 유기적 결합 논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기타 領相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작곡과 명산대찰 유람, 퇴계의 호연지기 명산대찰 유람, 무애 양주동의 문주반생기나 수주 변영로의 명정 40등에서 선비들의 음주문화를 엿볼 수 있다.

 

. 4차 산업혁명과 선비정좌 문화의 계승

 

4차 산업 혁명시대 기술의 발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창의와 감성함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태길(2000)조선시대의 선비와 오늘의 한국에서 선비의 특성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1) 인간에게는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도리(道理)가 있다. 그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정성을 다한다. (2) 사사로운 이익보다도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한다. (3) 도리에 어긋남이 없이도 부귀를 누릴 수 있다면, 굳이 그것을 희피할 까닭은 없으나, 현실적으로 불의(不義)를 범하지 않고 부귀를 누리기는 지극히 어렵다. 그러므로 지나친 물욕과 권세욕을 자제하고 깨끗하게 살기를 도모한다. (4)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용감하게 맞서서 싸운다. (5) 자연 또는 예술을 즐기는 풍류(風流)로써 마음의 여유를 갖도록 노력한다.

논평자가 보기에는 오늘날 유효하다고 생각되는 선비문화는 첫째, 양현고, 섬학전 등의 현대적 기금화(재단이나 영주시가 선비기금추진)이다. 회헌의 주자학적 선비 재조명을 위해 창의, 감성 함양을 위한 주자학적 정좌 프로그램을 활성화하여 ‘4차산업혁명기 신인류를 양성하기를 제언한다.

둘째, 정치와 관련하여 특히 강조하였던 "()"이라는 말의 용례를 살펴보면, 수기를 당연히 전제하면서도 "잘못된 사람과 제도를 바르게 하고 절차와 제도를 바르게 세움"이라는 것에 집중된다. 그는 정치의 근본은 ()이기 때문에 거짓과 부정을 끊고 바른 말과 명령 그리고 바른 사람이 들어오게 하는 뜻을 ()의 이름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감사와 수령은 대도(大盜), 향리는 굶주린 솔개와 같다다산은 목민심서에서 조선 관료사회의 총체적 부정을 이렇게 지적했다. 최근 금감원의 전관예우, 강원랜드 부정 채용 등 청탁과 부패 없는 곳이 없는 사회가 한국사회요, 공직사회다. 삼봉 정도전은 贓吏(장리)를 석서(碩鼠)라고 하여 엄히 평가하고자 했다. 삼봉은 뇌물받은 장리(贓吏)는 사람 마음의 커다란 해충이라고 했다. 그 뿌리를 제거하여 뻗어 나가지 못하고 하고, 그 가지를 쳐서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삼봉집, 2011 : 114-115). 탐욕스러움이 이리처럼 많고 미워하고 음흉함이 사나운 짐승같다고 하여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하고, 구체적으로 포폄제도를 개발(이종수, 2001, 2016)하였으며, 경국대전은 이를 법제화 하였다.

삼봉(三峯)의 거의소청(擧義掃淸)은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정의의 깃발을 들고 오랑캐나 소인배를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인, , 바름, 슬기, 배려, 채임, 신뢰 등을 중시했다. 혁명아 三峰포단(蒲團)깔고 앉아 정좌했다. 정좌는 고요하게 앉음이다. 삼봉은 심즉리(心氣理)'에서 호연지기란 의리를 실천하는 정기라고 하였다. 삼봉의 정좌는 끝없이 일어나는 사욕(私慾)을 극복하기 위한 올바른 정신 붙잡기였다는 점이다.

조선경국전에 도입, 시행된 간관제도는 국왕과 고위직을 견제하고, 유교적 덕치행정 구현에 기여하고자 했다. 특히 삼봉은 권력의 폭정방지를 위한 권력균형의 제도화 장치로 간관(언론 포함)제도를 통하여 왕권을 비판, 견제할 수 있도록 사간원 제도를 도입한다. “사대부들의 의심을 體系로 만들 것이다.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기려하고 깎아내리려하는 사대부의 본성 그것을 체계로 만들 것이다. 항상 의심하는 司憲府를 만들 것이고 항상 질책하는 司諫院을 만들 것이며 늘 떠들어대는 弘文館을 만들 것이다.” 삼봉의 비판정신계승 선상에서 간언과 간관제도 등 쓴소리 만을 전담하는 사간원(司諫院)기능을 현대적으로 재조명하여 權府(청와대)를 비판,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융합마인드의 필요성이다. 14세기 전후의 삼봉의 朝鮮經國典융합민본사상은 마키아벨리 정치학이나 헤겔의 지적을 무색하게 한다(서정화, 2017 ; 이종수, 2018.2). 그의 조선경국전법치사상은 전문을 포함한 백성중심의 통치제도를 성리학, 사공학, 경세학을 융합하여 현실사회에 구체화 했다

이질학문간 통섭이다. 朝鮮經國典의 구조가 중국의 주례와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사공학 등을 창조적으로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서정화, 2017.4)는 점이다. 삼봉은 선비나 백성의 집단이 그 주체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김정기, 2007 : 160). 삼봉의 통치, 혁명사상은 철저한 민본정신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민본 중심의 민사상은 현대의 정치 행정사상으로 재조명되어 한국적 민본정신으로 이어져 나갈 필요성이 있다(조항덕, 2012 ; 이원명, 2013). 삼봉의 성리학, 사공학, 경세학의 결합 사상과 헤테라키 기술의 융합적 접근으로 새로운 디지털크라시를 준비하는 정신적 토대로 활용할 수 있다(이종수, 2018.7).

끝으로, 4차산업혁명시대 화두는 창의, 감성이다. 그 대안의 하나가 선비들의 修己法이었던 靜坐이다. 고려 말기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삼봉 정도전 등은 포단깔고 정좌했다. 성리학을 집대성한 朱子의 스승인 이연평과 朱熹, 元帝國의 실천적 성리학자 조복, 허형 등으로 이어지는 주자학의 주요 공부법은 半日 修學, 半日 靜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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