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2018년 11월 23일 한국인사행정학회 추계대회 발제문임. 무단인용을 금함.
삼봉 정도전 치인관의 인사정책 시사점
- 褒貶사례적 접근 -
이종수(중앙대)
- 목 차 - Ⅰ. 들어가는 글 Ⅱ. 삼봉 정도전 치인관의 이론적 접근 Ⅲ. 삼봉의 치인사상 내용 분석 Ⅳ. 삼봉 치인관의 인사정책 시사점 Ⅴ. 나가는 글 |
Ⅰ. 들어가는 글
본 고에서는 조선건국을 위해 일생을 던졌던 삼봉의 저술, 『실록』등과 시편 등에 남겨진 그의 일상 속의 치인의 흔적을 찾아보고 치인 특성과 현대 인사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조선경국전』은 정도전의 대표적인 정치 이론서인 동시에 조선 왕조 최초의 헌법에 해당한다. 1394년(태조 3년) 3월에 완성하여 태조에게 바치자, 태조가 정치의 큰 기준으로 삼게 하고, 이 책을 금궤에 보관하게 하고, 정총(鄭摠)으로 하여금 서문을 짓게 하였으며, 자손만대의 귀감으로 삼도록 한다. 이로써 조선 왕조는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국가로 출발하게 되었다.
기존의 선행연구로는 이종수(2000.6, 12), 이상윤, 이종수(2006), 이존희(1992), 이종수(2001.6 ; 12), 이희권(1999), 장동희(1985), 정도전「經濟文鑑」下, 監司條), 정시채(1980 ; 1981 ; 1986) 등이 있으며, 이존희(1992)는 조선시대 포폄제도와 수령칠사를, 김동전(1988), 김성준(1988), 이수건(1989), 한종수(2013), 노혜경(2006), 임용한(2002), 김건우(2014) 등은 수령제도와 포폄 내용 등을, 조항덕은 경제문감에 나타난 삼봉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이종수와 전광섭(2016)은 조선 중기 외관 포폄사례, 이종수(2016.6)의 삼봉 포폄관 등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범위는 조선 개국기 삼봉의 포폄관을 중심으로 인사행정적 효과와 한계, 현대적 시사점을 제안하였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며, 특히 기존의 선행연구들과의 차별성은 한국의 인사제도와 관련 관료의 공과(상벌, 포폄) 평가의 기원, 내용, 효과 등에 있어서 서구의 이론보다 삼봉의 融合的 褒貶제도의 장점을 적극 활용하여 한국적 官員 평가제도를 확립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는 점이다.
연구의 방법은 필자의 선행연구(이종수, 2001∼2018)를 참조하며, 범위는 修己治人思想의 맥락에서 治人측면인 포폄관과 그 현대 인사제도, 정책 시사점 분석이다. 그의 고과, 포폄의 기준은 德(德行 : 善, 惡)과 才(實積 : 最, 展) 등 4등급 평가(이종수, 2016: 125)이며, 善과 最가 제도적인 유능한 치인으로서의 관인이었으며, 惡과 展은 무능력한 관원에 해당되어 문책근거가 되었으며, 이후 이원익의 포폄사례(이종수, 2016 ; 2017)에서 검증하였다.
이하에서는 朝鮮개국기의 삼봉의『便民事目』17조,『朝鮮經國典』, 『經國大典』등의 포폄 규정과 관련 삼봉의 포폄관의 融合的 특성을 분석하고, 포폄제도의 활용방안을 인사정책적 시사점을 찾아 보고자 한다.
Ⅱ. 삼봉 정도전 치인관의 이론적 접근
제1절 성리학과 融合的 치인관의 의의
1. 성리학과 삼봉의 치인사상
첫째, 삼봉은 ‘수기’보다는 ‘치인’의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니 정도전의 ‘치인’ 중심적 정치인식은 부당한 왕권을 교정할 지식인의 책임을 강조해 정치의 공공성을 높이려는 발상의 소산이다. 치인은 수기의 “자연적 외부적 표현” 또는 수기하는 것이 곧 치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수기와 치인은 하나로 연결된다.
정도전(1342∼1398)은 『대학』을 통하여 유교의 도를 익히고, 수기치인이라는 유교 본래의 문제의식에 접근한다. 공자는 ‘수기이안인(修己而安人)’이라고 하여 수기(덕치)와 치인(법치), 교화는 뿌리가 같으며, 그 조화는 중용이라고 한다. 수기를 내적 제도화라고 한다면, 치인은 외적 제도화이다. 수기치인은 천성을 자율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수기의 목표는 자기를 이루어 남을 이루게 함에 있으며, 치인의 결과로 비로소 완전한 수기를 이룰 수 있다.
도(道)는 길로 인도는 천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며, 인도를 배워 실천하는 것이 도학(道學)이다. 도학은 유학의 기본정신으로서 요와 순, 공자의 가르침에 기반한다. 공맹지학의 정맥(正脈)으로서의 송대(宋代) 도학은 1) 본령의 계승 2) 노불(老佛)사상의 배척이었다. 도학은 宋代에 들어 유학의 도를 새로운 현실에 맞게 재정립시키고자 탄생했다.
송의 주희(1130∼1200)는 周濂溪(1017∼1073), 張橫渠, 程明道, 程伊川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집대성하였다. 이정(二程)의 학문은 양시, 예장 羅從三, 延平 李侗(1093-1163), 주희 등으로 이어진다. 원대의 성리학은 조복(趙復)에 의해 북방에 전해져 그 후 그의 학문은 허형(許衡, 1209∼1281) 등에게 큰 영향을 남겼다. 허형은 『小學』과 『四書』를 중시하고 성리학에 입각한 강한 실천적 성격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고려 말의 성리학 이해와 많은 연관성을 보인다.
경세치용의 근거로서 도덕적 수양의 측면을 강조하는 원대의 주자 학풍은 허형에 의하여 원대 유학의 특성으로 기반을 굳힌다. 허형이 『小學』과 『四書』를 중시한 이유는, 거기에는 수신과 치국의 차례와 본말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허형의 성리학은 도덕적 실천주의 학풍과 건강한 정신을 요청하는 고려 말 사상계의 바람에 부응하여 신진사류들에게 적극 수용되었으며, 신진사류들은 이를 정치, 사회적 제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적용함으로써 한국 사상사에 뚜렷한 획을 긋는 사회적, 이념적 기능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2. 融合的 치인 사상의 주요 주요 내용과 정의
첫째, 삼봉의 천도사상과 수기치인은『대학』과 『중용』에서 출발하였다. 『대학』과 관련 수신과 제가는 격물, 치지에서 출발해야 하고 이를 기초로 나라와 천하에까지 미쳐야 한다고 했다. 태조 4년(1395)에 정도전이 정한 서울 도성의 궁궐에 대한 뜻풀이는 안에서 밖을 향하고 있는데, 강녕전(군주의 정심, 성의), 사정전(격물, 치지), 근정전(정사), 정문의 순서로 기술되는데 이러한 순서는 『대학』의 단계적, 계기적 수양방법을 제시한 것으로 사물에 대한 이치탐구를 통하여 그렇게 된 이치(所以然)와 마땅히 해야 할 도리(所當然)를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제가․치국․평천하로까지 확산되어야 한다는 유학의 수양론을 군주정치에 반영시킨 것이다.
삼봉은『중용』을 통하여 하늘이 부여한 도와 수기치인의 학으로서 유학을 재확인하고 『논어』와 『맹자』를 통하여 유학의 경세론을 이해하였으며, 오경을 통하여 치인의 전제로서 수기를 말하고 리(理)의 세계를 설명하되, 요순으로부터 파생되는 도통을 통하여 정통, 정학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냈음. 정도전은 『중용』을 통하여 유교의 도, 곧 도통론을 제시하고 정통, 정학으로서의 유학을 인식한다.
수기의 닦음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며, 치인에서 ‘다스림’의 대상은 ‘남’이라고 하겠으나, 수기와 치인을 활동으로 이해할 때 치인은 수기의 “자연적 외부적 표현” 또는 수기하는 것이 곧 치인하는 것이 된다(김광민 : 2). 修身을 통해 본인을 달성하는 교육은 또한 타인을 달성하는 교육이 되니, 따라서 수기와 치인은 하나로 연결되고, 이러한 삶은 공자의 삶과 삼봉의 삶에서 확인된다.
둘째, 삼봉은 12∼13세기 주자학을 민본사상적으로 融合하여 조선통치의 골간과 후대의 실학의 토대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측면에서 독창적이다. 그의 민본융합사상의 핵심은 소개동의 民草, 정침의 義, 주자학과 사공학의 실천적 融合, 불교 逐出 등이 믹서(융합)된 백성중심의 정치철학이었다.
또한 정도전이 經濟文鑑(경제문감) 上(상)에서 재상의 직을 논함에 있어서도 "임금을 바르게 함[格君]"을 강조한 것이나, 관료 중에서도 바른 말을 하는 직책인 諫官(간관) 그리고 수령의 잘못을 바로 잡는 監司(감사)의 역할을 중시하였던 것은 그가 정치에서 正(정)을 개혁적 측면에서 강조하였던 경향을 반영하는 것이다. 正(정)의 대상은 물론 자기가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이 전제되지만 부정과 부패를 바로 잡고 제도적으로 정치가 바르게 운영되게 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이렇게 정치의 의미에서 正(정)을 강조하는 경향성에서 정도전의 유교정치론에서는 개혁성이 한 특성이 된다. 정도전이 反正(반정)과 易姓(역성) 혁명을 정당하게 인식하였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도 정치에 대한 이런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봉 치인관의 기본 틀은 남송과 북원의 실천적 성리학의 고려 유입과 그 융합적 제도 형성과 현장 적용적 측면을 덕치 인사와 구체적 실적을 융합한 포폄사상으로 구체화하여 관원 평가에 적용한 삼봉의 인사정책 사상을 토대로 한다(이종수, 2018.5). 고려사회의 절박한 문제의식과 노재학풍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가운데 실천윤리에 대한 관심이 주자 성리학의 사회기능적 측면으로 수용 형이상학적, 사변적 탐구에서의 탈피, 실천적 주자학, 삼봉은 정침의 ‘義’에서 正을 다지고, 거평부곡 백성교류에서 민본사상의 단초와 경세론적 실천적 적용을 꿈꾼다(이종수, 이병렬 : 141). 그의 三敎融合的 철학과 성리학, 사공학, 경세학의 融合的 제도창출은 실학의 토대로 기능하며 여기에서 융합민본사상으로 발전한다(이종수, 2018.5). 정도전은 특히 ‘산당고색(군서고색후집)’을 토대로 주자의 주례관을 원용하며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와 재상정치론, 감사의 褒貶權 등을 제시했다. 사공학은 왕안석 기준의 국가조직 경영관리 방안으로 경세학적 내용을 주로 한다.
이 글에서는 “삼봉 정도전의 融合的 치인사상(법)이란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그리고 ‘평천하(平天下)’를 실현하기 위하여 유가, 성리학, 주자학, 사공학, 경세학 등을 통합, 融合하여 경세적으로 적용한 백성중심의 融合민본제도적 측면의 치인(인사)관”으로 잠정 정의한다.
제2절 제도적 접근
1. 포폄제도 의의
포폄(褒貶)이란 관리들의 성적을 높이 평가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뜻으로서 한문으로는 전최(殿最)라고도 하며, 관찰사가 평가하고, 이조에 통보하여 인사에 반영되었다. 殿最는 褒貶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뜻과 같다. 대체로 포폄의 방법은 상, 중, 하(上․中․下)의 세 등급으로 구별하고 한문으로 짤막한 평을 붙이는 것이 전래하는 규례로 되었다(한국법제연구원, 『經國大典』; 윤국일, 1986: 262). 이러한 포폄 또는 전최는 관찰사가 각 고을수령의 실적을 조사하여 중앙에 보고하던 일로서 성적을 고과할 때 상(上)을 최(最)라고 하고, 하(下)를 전(殿)이라 하였다. 감사(監司)가 음력 6월과 12월에 관하 수령(守令)의 치적(治績)을 심사하여 보고하던 우열(優劣)평가였다.
즉 중앙관원의 포폄은 영사, 提調(의정부 겸직)에 의해 성적 평가를 시행하였으며,이조 낭관, 정랑, 좌랑 등이 인사를 담당하였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관원들의 褒貶은 상․중․하 3단계로 구분하여 평가되었다. 十考十上이면 당하관 이하는 一階級 승진시켰으며, 十考二中이면 無祿官에 임명하고, 十考三中이면 파면하였다. 또 五考, 三考, 二考 심사를 받은자가 한번 中을 받으면 상위관직에 임명하지 아니하고, 두 번 中을 받으면 파면하였으며, 당상관은 한 번 中을 받으면 파직하였다(『經國大典』, 吏典 褒貶條). 이것이 후기에 가서는 十考十上의 성적을 얻은 수령은 內職으로 轉補되는 우선권을 가졌다(『大典通編』,吏典, 考課條).
매년 6월15일과 12월15일 모든 관원에 대해 포폄을 하게 되는데 수령에 대한 포폄은 관찰사와 병마절도사가 함께 의논하여 결정하게 되어 있었다. 다만 제주도는 목사가 포폄단자를 작성하여 관찰사에게 보고했다. 이때 관찰사는 수령이 칠사를 여하히 했느냐에 따라 상·중·하의 점수를 매겨 인사고과를 하게 되며, 그 성적에 따라 승진이나 파직이 결정되었다. 이조는 문관에 대한 평정을, 병조는 무관에 대한 평정을 관장하였는데 평정결과에 대한 사정은 국왕에게 보고하며, 이를 승진․강등․전보 등 인사관리 용도에 활용하였다.
감사는 수령의 비행을 감독⋅규찰하고 수령의 치적을 평가하여 그 출척(黜陟)을 결정하는 임무를 가지므로 그 品秩을 높이어야 하며, 또한 감사와 수령에 대한 통할권을 재상이 가짐으로써 재상중심의 중앙집권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조항덕, 2007).
수령의 직무는 칠사(七事)를 골격으로 삼고 수시로 내린 수교(受敎)를 수행하며 정립되었는데, 「牧民大方」篇題에 따르면, 목민의 도(道)는 삼경(三經)․육전(六典)이다. 삼경을 치(治)․양(養)․교(敎)라 하고, 육전은 이(吏)․호(戶)․예(禮)․병(兵)․형(刑)․공(工)을 뜻하며, 경은 상(常)을 말하는데 정사의 근본이고, 전은 법으로써 정사의 수단이다. 특히 수령의 능부(能否)는 칠사의 정사실적에 따라 평가되며, 칠사의 해설서로서「守令七事問答」,「七事提要」 등이 나왔다.
수령칠사(守令七事)는 농상성(農桑盛), 학교흥(學校興), 소송간(訴訟簡), 간활식(奸猾息), 군정수(軍政修), 호구증(戶口增), 부역균(賦役均)을 의미하며, 각각 동일한 기준을 사용하였다(『經國大典』, 吏典, 考課條).
외관으로서의 지방 수령에 대한 평정기준도 일종의 결과 요소에 해당하는 七事實績이었다. 처음에는 일반관원에 대한 평정기준과 동일한 잣대를 사용하였으나, 덕행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곤란하고, 수령은 무엇보다도 능력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나타나 태종 6년부터 칠사실적을 기준으로 하게 되었다. 이러한 칠사실적은 수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임무였으며, 지방행정의 정책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이존희 : 164 ; 김성준, 1988 ; 김동전, 1988 : 317 ; 노혜경, 2006 : 18).
2. 포폄제도 집행 사례
1891년 신묘년 추동포폄단자(褒貶單子) 사례이다. 전라도 수령과 찰방 등 63명의 근무성적을 평가와 함께 적은 것으로 이를 근거로 중앙에서는 인사조치를 단행하였다(전북일보, 2004.4.5). 전라감사가 도내 53개 고을의 수령과 역참(驛站)을 관장하던 찰방에 이르기까지 총 63명의 근무실적을 평가하여 1891년 겨울에 올린 이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모든 수령들이 한결같이 “상(上)”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8자로 된 평가내용도 사실은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의 칭찬이 대부분이다. 이 문서에 보이는 감사의 수령들에 대한 평가제도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형식에 그친 것이었으며, 허점 투성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전북일보, 2004.4.5).
조선시대 서울 주둔부대인 금위영의 근무평정 기록인 금위영포폄등록. 대부분이 상(上)등급을 받았지만, 중대장에 해당하는 초관 신응조(왼쪽 끝)가 병법 익히기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중등급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군대에서 진급 여부를 결정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지만 가장 기본 출발점은 역시 근무평정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군대의 ‘포폄((褒貶)’은 매 1년마다 5~6월에 1회, 11~12월에 1회 등 두 번 이뤄졌다. 조선시대 궁중과 행정기관의 고문서를 다수 보관하고 있는 경기도 성남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조선시대 군대의 포폄 결과를 기록한 문서철도 전해 오고 있다. 장서각의 금위영포폄등록(禁衛營褒貶謄)은 경종 신축년(1721년)부터 영조 경술년(1730년)까지 약 9년 동안 금위영에 소속된 무관들의 포폄 결과를 기록해 놓은 문서철이다.
이를테면 어영청의 기병부대 지휘관인 기사장 오만선의 근무평정 결과는 상(上)등급이고, ‘일을 맡음에 걱정이 없다(任事無優)’는 평가가 적혀 있다. 중앙군의 연대장급에 해당하는 어영청 천총 박정희의 평정 결과는 상등급, ‘원래부터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조심한다(本自謹愼)’는 평가가 적혀 있다. 상등급자의 평가 결과를 보면 ‘온화하고 화목하다(귀재화목)’ ‘행동거지가 항상 가지런하다(좌작필제)’ ‘충성스러움이 넘친다(충후유여)’ 등의 평가를 해 놓고 있어 사람을 보는 기준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제3절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1. 선행연구, 분석의 틀
첫째, 삼봉의 통치제도와 관련 김인호(2005)의 경제문감과 삼봉의 역사인식 등을 분석, 조선개국기의 주요 제도와 삼봉의 기여도 등을 분석하였다. 둘째, 수기치인 측면은 주로 삼봉의 저작물과, 시를 중심으로 특성과 내용을 분석하는 데 주로 수행적 호흡법 측면이다(김종진, 2008 ; 조기영, 1997 ; 이종수, 2017). 셋째, 행정제도적 측면은 이종수의 포폄제도, 민본사상, 포은과 삼봉, 포폄관 분석 등을 들 수 있다(이종수, 2000 ; 2013 ; 2014 ; 2015 ; 2016). 이종수는 최근 AI시대 공직구조와 삼봉의 정좌사례와 효과(2017.11 : 164) 및 블록체인 시대 삼봉의 융합민본사상과 헤테라키(이종수, 2018.5)등을 발표했다.
필자의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은 조선 개국기 통치 철학과 주요 내용을 담은 삼봉의 저술과 행적을 살피고, 개인적인 시문에 남겨진 유학, 도학, 불교적 색채를 띠는 삼봉의 치인관을 토대로 한 그의 포폄 사례와 효과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이상의 내용을 < 표 1 >에 정리한다.
< 표 1 > 선행연구 분석
구 분 | 선행연구 분석과 차별성 | ||
연구목적 | 연구방법 | 주요 연구내용 | |
주요 내용 | 김광민(2016), 수기와 치인 | 질접 접근 | 수기와 치인은 분리되지 않음 |
이종수, 이병렬외(2015), 三峰과 포은의 행정사상 | 〃 | 정도전과 정몽주의 혁명과 의리정신 분석 | |
이종수, 이병렬(2014), 三峰의 민본사상 | 〃 | 정도전의 민본사상 연원 분석 | |
이종수(2017.8) 장자의 수양법 | 〃 | 장자의 심재, 좌망 분석 | |
이종수(2014), 三峰의 민본사상 분석 | 〃 | 삼봉의 민본사상 사례 분석 | |
이종수(2017.12), 三峰의 수기관 분석 | 〃 | 삼봉의 수기관 특성과 시사점 | |
이종수(2018), 三峰 『조선경국전』의 개헌 시사점 | 〃 | 정도전 법치사상의 개헌 시사점 | |
이종수(2014) 三峰의 과전법 | 〃 | 삼봉의 과전법 집행사례 분석 | |
이종수(2016.12), 三峰의 포폄관 | 〃 | 삼봉의 포폄제도 분석 | |
이종수(2017), 도가의 선도문화 | 〃 | 도가 장자 치유 사례 분석 | |
이종수(2017.11), AI시대 공직구조 개편 | 〃 | 공직구조 개혁과 삼봉의 정좌 효과 | |
이종수(2018.5), 헤테라키와 三峰 融合민본사상 | 〃 | 삼봉의 融合민본사상과 제10차 개헌 시사점 | |
이종수(2018.7), 안산 『海洋融合人文學』 | 〃 | 안산 시화호 문제의 海洋融合인문학적 접근 | |
연구의 차별성 | 三峰의 치인관과 포폄법 분석 | 사료, 질적 분석 | 조선 개국기 三峰 치인법과 포폄 특성 및 영향요인 분석 |
2. 內容 分析의 틀
정도전은 ‘수기’와 ‘치인’을 유학의 두 중심으로 파악했고 양자가 양립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한다. 삼봉은 ‘수기’보다는 ‘치인’의 문제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으니 정도전의 ‘치인’ 중심적 정치인식은 부당한 왕권을 교정할 지식인의 책임을 강조해 정치의 공공성을 높이려는 발상의 소산이다. 수기를 내적 제도화라고 한다면, 치인은 외적 제도화이다. 수기치인은 천성을 자율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수기의 목표는 자기를 이루어 남을 이루게 함에 있으며, 치인의 결과로 비로소 완전한 수기를 이룰 수 있다. 여기에서는 삼봉의 치인사례인 외적 제도화 측면을 중심으로 치인 측면의 특성과 현대적 시사점, 활용방안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삼봉 치인관의 기본 틀은 남송과 북원의 실천적 성리학의 고려 유입과 그 融合的 제도 형성과 현장 적용적 측면을 덕치 인사와 구체적 실적을 融合한 포폄사상으로 구체화하여 관원 평가에 적용한 삼봉의 인사정책 사상을 토대로 한다. 주요 분석의 내용은 삼봉의 치인(법치)관이 녹아들어 스며든 포폄관의 주요 내용과 현대적 시사점을 찾아 제시하고자 한다.
Ⅲ. 삼봉의 치인사상 분석
제1절 치인(포폄)관 토대
1. 正(政)
유교의 "정치란 무엇인가"와 관련 논어에서 공자는 집안에서 우애있게 행동하면서 잘 지내는 것도 정치하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고 "政者正也(정자정야)"라는 말도 있지만, 정치를 좁게 말한다면 그것은 정치권력의 작용에 관련된 일이다.
정도전의 삼봉집에는 정치가가 명심하거나 정치 제도에 꼭 반영되어야 할 근본정신에 관해 보면, 仁(인), 公(공), 正(정)을 강조한 용례가 많다. 우선 正(정)에 대해서 보면, 정도전은 "政(정)이란 바르게 하는 것[正(정)]이니 자신을 바루는 것을 말합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오직 자기 자신을 바른 사람이라야 남을 바를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재상의 정치를 논함에 있어서 "그 몸이 바르면 道(도)가 처자에게 미치고, 그 몸이 바르지 못하면 능히 처자에게 행할 수 없다. 至親(지친)도 오히려 그러할진대, 하물며 그 임금이겠는가. 그러므로 輔相(보상)의 業(업)은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다 하였다."고 한 것처럼 다른 사람을 바르게 할 수 있는 기반은 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임을 역설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정도전도 당시의 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正己而正人(정기이정인)"라는 고전적인 정치 인식을 공유하면서 修己(수기)와 治人(치인)의 유기적 결합 논리를 이해하고 있었다.
"正(정)"이라는 말의 용례를 살펴보면, 수기를 당연히 전제하면서도 "잘못된 사람과 제도를 바르게 하고 절차와 제도를 바르게 세움"이라는 것에 집중된다. 정도전은 『朝鮮經國典』(下)에서 六典(육전)에 대해 서술할 때 육전이 모두 政(정)이지만 유독 兵典(병전)만을 政典(정전)이라고 한 것은 병전이 "사람의 부정을 바로잡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서 정치의 요점은 부정을 바로 잡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도전이 조선의 새 궁궐의 건물과 門(문)의 이름을 지을 때 남쪽으로 난 문을 正門(정문)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는 정치의 근본은 正(정)이기 때문에 거짓과 부정을 끊고 바른 말과 명령 그리고 바른 사람이 들어오게 하는 뜻을 門(문)의 이름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정치의 公的(공적)인 측면에 대한 강조를 살펴본다. 정도전은 "인군은 하늘을 대신하여 민을 다스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백성이란 나라의 근본이며 임금의 하늘이다"라고 말했다. 재상에게는 "私心(사심)을 버리라"고 충고했다. 정도전의 이와 같은 일련의 발언은 정치권력이 사적인 이익을 위한 도구로 전용되었던 여말의 자의적 통치 문제를 고발한 것이고, 그가 바로 세우고자 하는 정치의 公的(공적)인 측면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이었다. 정도전은 여말에 정치권력이 사유화된 실상을 반영하는 것이 바로 당시에 문란했던 토지제도라고 진단했다. 그런 문제를 고발한 내용이 『朝鮮經國典』(上) 經理(경리) 부분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정도전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이익과 행복이 아니라 특정 집단의 특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권력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권력으로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을 사적인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이런 것들은 정도전에게 제대로 된 정치라고 인정될 수 없는 것이었다. 정도전은 조준 등과 더불어 기존의 보수 세력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전 개혁을 단행하면서 그것을 "정치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과정으로 확신했다. 私田(사전)을 혁파하는 토지 개혁으로 백성들에 대한 착취가 방지됨으로써 그가 말한 바 "옛날의 바른 토지 제도"가 회복되고 정치의 본래 의미도 회복되는 것이었다.
"…천하의 백성으로서 토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고 경작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백성은 빈부나 강약의 차이가 그다지 심하지 않았으며, 토지에서의 소출이 모두 국가로 들어갔으며 나라도 역시 부유하였다…"
그가 조선의 건국과 동시에 강조하였던 민본정치는 한 사람이나 소수가 아니라 정치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해 있는 제대로 된 국가의 목적과 정치 권력의 쓰임새를 말한 것이다. 과거 제도에 의해 선발되는 관료에 행정 절차의 마련, 통치자의 자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법과 제도에 의한 통치 기준의 마련 역시 구성원 전체를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었다. 정도전이 "인군에게는 사유재산이란 없다"고 한 것과 군주에게 좋은 정치란 "능히 개인의 사사로움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충고한 것도 바로 정치가 구성원 전체를 위해 있는 것임을 강조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2. 仁
정도전이 仁(인)을 강조한 것도 위와 같은 공동체 구성원 모두를 위한 정치와 관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바와 같이 仁(인)은 유교의 근본정신이고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개념이다. 정도전의 글에는 다음과 같은 仁(인)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다.
"…하늘이 四時(사시)를 두어 한해를 이루고, 사람은 <仁義禮智> 四端(사단)이 있어 性(성)을 통할한다. 사시가 각기 한 철을 차지하고 있지만 봄은 어느 철이고 끼어 있으니, 마치 사단이 각기 하나의 德(덕)을 차지하고 있지만 仁(인)이 내포되지 않은 것이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봄이란 봄의 출생이며, 여름이란 봄의 성장이며, 가을이란 봄의 성숙이며 겨울이란 봄의 收藏(수장)이라는 것이다. 仁(인)이란 仁(인)의 사랑이요, 義(의)란 仁(인)의 制斷(제단)이요, 禮(예)란 仁(인)의 공경이요, 智(지)란 仁(인)의 지식이라는 것이니, 때에는 봄이 되고 性(성)에는 仁(인)이 되는 것이 한 이치인 것이다…"
정도전도 仁(인)을 일반적인 유학자와 마찬가지로 계절의 봄처럼 만물을 키워주고 사랑하는 것, "천지가 만물을 생육시키는 그 마음을 자기 마음으로 삼아서 만물을 키워주고 사랑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런 마음으로 정치하는 것이 맹자로부터 일반적으로 말해지는 仁政(인정)이다. 이러한 仁(인)은 유교 정치론에서 정치의 근본 정신으로 강조되어 왔었다. 정도전도 仁(인)을 해석함에 있어서 그리고 그 중요성을 강조함에 있어서는 일반 유학자들과 동일하다. 다만 그는 仁(인)을 백성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그들의 복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중요 덕목으로 강조하는데 더 비중을 두었다. 정도전은 周易(주역)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했다.
"…성인의 큰 보배는 位(위)요, 천지의 큰 덕은 生(생)이니 무엇으로 位(위)를 지킬 것인가? 바로 仁(인)이다…"
그러면서 정도전은 군주에게 "자신의 마음을 바루어서 仁(인)을 체득하고, 사랑을 미루어서 인민에게 미쳤으니, 仁(인)의 體(체)가 서고, 仁(인)의 用(용)이 행해진 것이다."라고 하면서 군주에게 仁(인)의 실천을 정치의 근본 정신으로 삼을 것을 충고하였다. 仁(인)을 정치권력의 정당성 근거로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仁(인)은 정도전의 유교 정치론에서 중심적 가치이며 위에서 거론한 바 정치에서의 正(정)과 公(공)의 측면도 仁(인)의 실천에 포함되는 것이다. 다만 정도전의 특색은 그것을 실천함에 있어서 군주와 관료와 같은 정치가 집단의 마음의 수양보다는 법과 제도를 통한 인정의 실천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가 민본정치에 관련된 부분에서 실제로 백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는 경제적 제도와 같은 토지 소유 균등, 부세 경감, 백성들을 동원하는 일을 절제함, 정부의 지출 절약함, 병농일치, 언론 제도의 활성화가 같은 장치의 제도화가 그런 경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현재 오늘날의 시사점으로는 먼저 ‘백성의 복지와 관련된’ 민본사상 측면에서 본다면 서양의 로크보다 300년 앞서 사회계약설을 설파한다(이종수, 2018). 민본, 애민사상을 바탕으로 한 재상중심정치를 주장했다. 삼봉 정치·사회사상의 핵심은 "군주보다는 국가가, 국가보다는 백성이 윗자리에 있기 때문에 백성은 국가의 근본인 동시에 군주의 하늘이므로 군주는 백성을 위하고(爲民), 백성을 사랑하고(愛民), 백성을 존중하고(重民), 백성을 보호하고(保民), 백성을 기르고(牧民) 또는 양민(養民), 백성을 편안하게(安民)해야 한다."는 '민본사상(民本思想)'이었다. 이 내용은 백성들이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약을 맺고 정부를 세운다.'는 계몽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 : 1632∼1704)의 사회계약설보다 무려 3백 년이나 앞서서 이미 사회계약설의 핵심을 설파한다.
제2절 삼봉의 융합포폄사상
1. 포폄 기준
첫째, 정도전은 자기 정체성의 기반인 정통 주자학뿐만 아니라 주자학에서 배격한 사공학(事工學·실제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실용적인 경세치용의 학문) 계열의 사상도 적극적으로 融合하여 활용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의 치전(治典)을 보완해 만든 『경제문감』에 중국 남송대 만들어진 ‘주례정의’·‘산당고색’·‘서산독서기’·‘주관신의’ 등의 내용을 원용했는데, 이 부분이 ‘경제문감’ 전체의 60%, 5분의 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들은 주자학이나 주자학과 일치하는 사공학 계열의 저서들이었으며, 정도전은 특히 ‘산당고색(군서고색후집)’을 토대로 주자의 주례관을 원용하며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와 재상정치론, 감사의 褒貶權 등을 제시했다. 사공학은 왕안석 기준의 국가조직 경영관리 방안으로 경세학적 내용을 주로 한다.
둘째, 삼봉은 고려말의 관료폐단을 “가렴주구, 탐욕, 질투, 무고”등으로 진단하고, 이를 감찰하기 위해 감사에게 수령출척권, 감사선택 제도 등에 대한 제도적 착상을 제안하여 제도화 된 것으로 이러한 내용들은 민본과 위민사상에서 태동하여 제도화 된 것이다(이종수, 2014).
셋째, 삼봉은 수령에 대한 고과법을 만들 대 중국 역대 왕조의 고과법을 활용하였다(도현철 : 72-74). 태조 즉위년에 시행된 수령에 대한 관찰사의 考課基準을 「經濟文鑑」에 제시했다(鄭道傳 「三峰集」卷10, 經濟文鑑 下, 監司條).
평가는 善, 德義, 淸勤, 公平, 恪勤(쉼없이 부지런히 힘씀) 등과 상중하 평가였다(권행완 : 247). 한비자가 실적중심의 평가였다면, 삼봉은 소양과 자질, 재능(실적) 등을 중시하였다는 점에 차별적이다. 最는 獄訟에 억울함이 없을 것, 납세를 받아들이되 백성을 불안하게하지 않을 것, 부세에 흠이 없을 것, 장부를 정제하게 한 것, 부역을 균등하게 차출한 것 등이다(조기영, 2004 : 245-246).
治事(法治)의 最로 하는 것은 / 농토를 개간하고 뽕나무를 심은 것, 들을 넓히고 토지를 개척하는 것, 수리를 잘 다스리는 것. 勸課의 最로 한다. / 간특함과 도적을 없애는 것, 곤궁함을 진휼하는 것. 撫養의 最로 한다. 정사의 업적이 더욱 특이한 자를 上으로 삼는다. 각별하게 직위를 지켜 직무가 대충 다스려진 자는 中으로 삼는다. 일에 임하여 해이하고 태만해서 가는 곳마다 보잘 것 없는 자는 下로 한다.
衣食이 넉넉하여 예절을 알게 되면 스스로 법을 범하지 않고 일에 잘 따를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분수를 차례로 내렸다. 무릇 수령의 善⋅最는 그 실적을 고찰하여 기록하되, ‘한 수령이 있어 어떤 일에는 善이고, 어떤 일에는 最이다.’ 하여, 그 분수의 많고 적음을 고찰하고, 상⋅중⋅하로 구분하여 승진시키고, 善과 最가 모두 없는 자는 축출한다. 또한 善은 德이요, 最는 才이니, 善의 분수는 많고 最의 분수가 적은 것은 德을 우선으로 하고 才를 뒤에 둔 까닭이다.
평정의 항목과 기준이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더라도 매우 합리적이다. 州牧과 郡太守와 현령에 대해서도 같은 체재로 분석하고 있다. 州牧에서 縣令에 이르는 지방 관리들은 임금의 다스림을 나누어 맡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민생의 화복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만큼 임금은 지방관에 대해 개인별로 직접 임명장을 수여하고 인민의 소중함과 수령 직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의식을 행해야 한다. 특히 군수⋅현령 등 일선 수령은 더 이상 직무를 아랫사람에 위임할 수 없다. 인민과 직접 대면하는 이들의 직무 수행은 곧바로 임금과 조정에 대한 민심의 향방을 결정한다. 임금이 지방수령들에 대해 간절한 태도로 격려하고 예우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조항덕, 2007).
2. 삼봉의 褒貶觀과 독창성
첫째, 삼봉은 『經濟六典』에서 수령은 近民之職이라고 했다. 군수, 현령은 백성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정도전은 한, 당시대의 수령제도를 참조하여 수령의 자질과 평가 덕목을 초안하였다 (『군서고색후집』, 권행완 : 246).
삼봉은 백성을 유교정치 목적으로 상정하고, 백성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다스리는 군수와 현령은 백성의 근본으로서 백성의 목자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의 포폄관은 상중하로 평가하는 항목으로 정사의 업적(상), 수성(중), 해이, 태만(하) 등으로 구성하였다(권행완 : 247). 한비자는 관원들의 실적을 중시하였으나, 삼봉은 소양과 자질을 중시한다. 특히 토지개간, 호구 증대, 학교 진흥을 중시한다. 그의 포폄관은 중국의 사공학을 인용하면서도 소송, 납세, 부역을 중시하기보다 토지를 넓히고, 호구를 증대하며, 학교를 진흥시키는 실적을 중시했다는 점이다.
둘째, 그의 관료제 형성과 포폄사상에는 성리학적 사상과 유배생활에서 체득한 위민의식이 강하게 베어 있다(이종수, 2014).
셋째, 지방 외관과 관련해서 보면 그의 법치사상은 淸廉官僚와 腐敗 예방을 위한 단서가 될 것이다(이종수, 2015.11). 효령의 하명을 받아 시행한 함흥향헌 제15조 관사불근(官事不勤) 공직자가 공무를 소홀히 하는 행위 제19조 여사농권(旅師弄權) 군지휘관이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 제22조 간이작폐(奸吏作弊) 간교한 공직자가 민폐를 끼치는 행위 제23조 회뇌간청(賄賂干請)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어 부당한 일을 꾀하는 행위 제24조 이강능약(以强凌弱)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짓밟는 행위 제30조 빙공영사(憑公營私) 공무를 핑계로 사욕을 챙기는 행위 제33조 지비류거(知非謬擧) 그릇된 줄 알면서 남에게 알선하는 행위 제35조 타농허비(惰農虛費) 직무는 게을리 하고 낭비는 헛되이 하는 행위 등의 조목은 현대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끝으로, 삼봉의 고과법은 덕행의 왕도적 요소와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패도적 요소를 조화롭데 정립시킨 제도였다. 유자로서의 삼봉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유교국가를 창업하여 유교이념을 현실정치에 적용, 반영하여 실행하고, 명실상부한 이론과 실천적 정치문화로 정착시켰다는 점에 있다.
3. 교화적 특성
삼봉은 도덕이 몸과 마음에 온축한 것(修己)을 유자라고 이르고, 교화를 정사에 베푸는 것(治人)을 관리라고 하였다. 성리학이 표방하는 ‘수기치인’의 명제로 이념과 현실의 괴리를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첫째, 이상적인 인간관계를 위한 전제는 이선양인(以善養人)이다. 인격이 높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타인을 교화시킨다. 풍화는 강제와 억지 없이 서서히 부지불식간에 변화되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면 마치 봄바람을 맞는 것처럼 함께 있던 사람들에게 부지불식간 변화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화의 과정이다. 군자의 이상적 인간관계는 자신의 인격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양육하는 과정이다.
삼봉의 천도사상과 수기치인은 『대학』과 『중용』에서 영향을 받음. 첫째, 『대학』과 관련 수신과 제가는 격물, 치지에서 출발해야 하고 이를 기초로 나라와 천하에까지 미쳐야 한다고 하였다. 태조 4년(1395)에 정도전이 정한 서울 도성의 궁궐에 대한 뜻풀이는 안에서 밖을 향하고 있는데, 강녕전(군주의 정심, 성의), 사정전(격물, 치지), 근정전(정사), 정문의 순서로 기술되었다.
둘째, 『중용』을 통하여 하늘이 부여한 도와 수기치인의 학으로서 유학을 재확인하고 『논어』와 『맹자』를 통하여 유학의 경세론을 이해하였으며, 오경을 통하여 치인의 전제로서 수기를 말하고 리(理)의 세계를 설명하되, 요순으로부터 파생되는 도통을 통하여 정통, 정학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냈다. 정도전은 『중용』을 통하여 유교의 도, 곧 도통론을 제시하고 정통, 정학으로서의 유학을 인식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철학적 근거를 파악하고 이를 기초로 인간사회의 운영 원리를 궁구하였던 것이다.
셋째, 삼봉의 치인(교화)의 활용 측면은 백성의 교화(정순우, 1999 : 105)와 향약과 향헌을 참조한다(이종수, 2015). 이것은 현대적인 주민자치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삼봉의 민유방본의 이념에는 民은 단순한 교화의 피동적인 객체로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화를 통해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품성을 계발할 수 있다는 주체적 의미가 내포된다.
Ⅳ. 삼봉 치인관의 인사정책 시사점
제1절 특성과 시사점
1. 특성과 시사점
첫째, 정도전은 유교 경전인 사서오경을 현실정치에 활용하여 독특한 경학체계를 수립했다. 또한 경학체계를 근거로 조선 왕조의 건국과 체제 정비에 필요한 정치사상과 법제 개혁을 구상했다.
둘째, 정도전은 성리학을 활용하여 사회변동을 타개하고 조선 왕조의 정치체제를 확립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성리학은 중국 송 사회의 산물로서 14세기 고려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으므로, 당시현실에 맞는 개혁사상의 조절이 필요하였다. 여기에 여말선초 성리학의 특징이 드러난다.
셋째, 『불씨잡변』과 『심기리편』을 통해 주자의 불교비판을 기초로 불교를 비판한다. 정도전과 동시대 유학자인 권근이 평가하고, 500여년이 지난 현재의 정도전 사상 연구에서 평가하듯, 정도전이 불교를 배척하며 성리학을 진흥한 공을 인정해야 한다.
넷째, 정도전은 성리학의 명분론과 의리론, 천리인욕설을 통하여 인위적(비혈연적) 유대감을 중시하고, 이에 파생되는 공적(公的) 관계를 내세워 정치 사회를 운영하고자 하였고, 『朝鮮經國典』과『經濟文鑑』을 통하여, 『주례』를 기초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확립하고 재상정치론을 제시하여 조선건국의 체제 정비에 기여하였다. 정도전은 주자학적 정치이념을 지향하면서 『주례』를 중시하는 가운데 새로운 국가의 정치체제의 기본골격을 제시한다.
다섯째, 태종도 개혁의 기본 방향만큼은 삼봉의 주장을 따라 조선왕조는 세계 왕조 사상 그 유례를 찾기 힘든 500년 역사를 이어갔다. 세조 11년 영의정 보한재 신숙주(保閑齋 申叔舟)는 삼봉의 증손자였던 야수 정문형(野叟 鄭文炯)의 부탁으로『삼봉집(三峰集)』의 후서를 써주면서, 삼봉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격찬했다고 한다. “개국 초에 무릇 나라의 큰 규모는 모두 선생이 만들었으며, 당시 영웅호걸이 구름처럼 모여들었으나 그분과 비교할 만한 이가 없었다.”
여섯째, 삼봉의 조선개창 영향은 숭유배불정책 확립과 한국 성리학 전성기 형성에 기여, 조선개창과 문물제도, 실천적 주자학 창출 등을 든다. 삼봉은 정침의 ‘義’에서 혁명사상 단초를 찾았고, 경세론적 유교이념의 실천적 적용을 시도한다(이종수, 이병렬 : 141).
끝으로, 정도전은 성리학을 활용하여 사회변동을 타개하고 조선 왕조의 정치체제를 확립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성리학은 중국 송 사회의 산물로서 14세기 고려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었으므로, 당시현실에 맞는 개혁사상의 조절이 필요하였다. 여기에 여말선초 성리학의 특징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2. 평가
삼봉은 성리학적 명분주의의 예치국가 사상과 양명학의 실사구시 사상인 실증, 실리라는 실학의 토대를 구축한 『朝鮮經國典』(1394), 『經濟六典(1397)』(최초 법전, 이두문 작성)을 찬술하여 『經國大典』에 지대한 영향(김인호, 2012)을 미친다.
신숙주는 『三峰集』에서 "당시 영웅호걸이 난립했지만 선생 만한 인물은 없었다"라고 그를 높이 평가했고 사림파의 거두인 김종직도 정도전을 최고의 선비로 평가했다. 광해군 때의 허균의 경우 정도전을 현인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내용이 들어간 탄핵하는 상소를 받았다. 이때 정도전이 지은 시를 동인시문에 가장 앞에 놓았다고 하는 내용도 상소에 포함되었는데, 허균은 그저 국초에 인물이어서 시집에 넣었다고 변명하였다. 이를 미루어 보아서 허균이 정도전을 좋게 평가했거나, 시집에 넣을 만한 시를 썼다고 생각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조선 후기의 영조와 정조도 정도전을 높이 평가했다. 공식적으로 역적으로 단죄된 인물이었다면 문집이 편찬되는 것은 물론, 조정의 중신들이 대놓고 서문을 써주거나 문집이 출간되는 등의 행동은 상상하기 힘들다. 즉, 정도전의 위치는 완전한 역적도 아니지만 공식적으로는 상당히 폄하되고 있는 미묘한 상태였다는 얘기이다.
그러나 정도전은 유학 국가의 시스템을 건설한 사람이면서도 고려 왕조를 쓰러뜨림으로써 유학의 제일 원칙인 충성을 저버린 사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공식적인 평가 면에서도 조선 초기의 많은 흑역사들을 모조리 뒤집어쓰고 말았고, 그 행적에 대해서도 많은 사대부들이 정도전은 주군을 배신하고 나라를 멸망시킨 간적이라는 이중적인 평가를 하기도 했다.
삼봉의 삼교관 측면에서 보면(조준하, 1998 : 157-160), 불교의 종지는 바로 마음(心)이기 때문에 심(心)이라 하였고, 도교의 종지는 기(氣)이기 때문에 도교를 대신하여 기라고 하였고, 유교의 종지는 리(理)이 때문에 유교를 대신하여 리라고 했다. 삼봉은 유교를 우위에 두고 도교와 불교는 유교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3. 차별성(思想 融合)
첫째, 삼봉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란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쉬우면서도 그 혜택이 일반백성들에게 미치는 실용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民本政治⋅賢人政治⋅爲民政治 같은 것이 통치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면, 삼봉이 「경제문감」에서 고민한 것은 어떻게 그 이상을 성취할 것인가 하는 보다 쉽고도 구체적인 문제였다. 오랜 유배생활을 통하여 백성들이 원하는 세상이 학자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정도전은 정치란 윤리·도덕을 실현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경제생활의 안정이 필수로 경제생활의 안정이야말로 통치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둘째, 정도전은 자기 정체성의 기반인 정통 주자학뿐만 아니라 주자학에서 배격한 사공학(事工學·실제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실용적인 경세치용의 학문) 계열의 사상도 적극 활용했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의 치전(治典)을 보완해 만든 『경제문감』에 중국 남송대 만들어진 ‘주례정의’·‘산당고색’·‘서산독서기’·‘주관신의’ 등의 내용을 원용했는데, 이 부분이 ‘경제문감’ 전체의 60%, 5분의 3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책들은 주자학이나 주자학과 일치하는 사공학 계열의 저서들이었으며, 정도전은 특히 『산당고색(군서고색후집』을 토대로 주자의 주례관을 원용하며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와 재상정치론을 제시했다. 사공학은 왕안석 기준의 국가조직 경영관리 방안으로 경세학적 내용을 주로 한다. 정통성리학과 경세론 제도론을 확대강화한 조선의 정치체제를 정립코자 한 것이다. 그는 주자학, 사공학, 경세학을 원용하여 왕조의 통치질서 체제를 구축하고자 하였다. 정도전은 조선 왕조의 개국공신으로 토지 국유화와 가구의 크기에 따른 토지의 재분배를 주장했다. 또한 왕권을 제한하고 정치 권력을 수상에게 부여하는 정치구조를 주장한 저명한 성리학자로 근대 역사학자들에게 매우 개혁적인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셋째, 정도전은 유교 경전인 사서오경을 현실정치에 활용하여 독특한 경학체계를 수립했다. 또한 경학체계를 근거로 조선 왕조의 건국과 체제 정비에 필요한 정치사상과 법제 개혁을 구상했다(이종수, 2017.12).
넷째, 고려의 불교 지배올로기에 염증을 느낀 남송의 성리학(理 중심) 수용자(고려후기 고려 관료지배층, 사대부)들은 수전농업(중소지주) 층으로 지배체제에 도전, 성리학적 혁명사상으로 비화된다. 삼봉의 역성혁명(고려 극복)은 거평 부곡의 생활과 맹자의 ‘역성혁명’사상에 토대하였으며, 역성혁명의 목적은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다섯째, 삼봉의 개혁의지와 사상체계는 기본적으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기층신앙으로 굳어진 불교, 도교, 참설 등을 融合과 묘합원리로 적용시켰다. 삼봉의 행정사상의 특징은 유교적 이상국가의 건설, 민본, 혁명사상의 발전적 체계화, 재상중심 통치체제의 구상, 배불론의 체계화, 민족적 자주의식의 고양 등으로 요약된다.
제2절 활용, 과제 측면
1. 삼봉 치인관의 적폐치유 가능성
최근 공정위는 행정고시 출신 퇴직자의 경우 2억5천만 원 안팎, 비 고시 출신은 1억5천만 원 안팎으로 연봉 가이드라인을 책정해 마치 산하조직을 다루듯 해당 민간기업들에 전달하고 취업한 것으로 확인됐다. 근무자가 회사에서 물러나면 후임 퇴직간부에게 자리를 물려준 정황도 파악됐다. 기업들은 2년간 취업 기간을 보장하되 추가로 1년 더 근무 기간을 연장할지를 공정위에 의견을 물어 결정한 정황도 드러났다. 문재인정부가 1년 4개월 동안 모두 365명의 캠코더(대선캠프·코드인사·더불어민주당) 인사를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로 임명했다고 바른미래당이 4일 주장했다(매경, 2018.9.4). 利益앞에 聖人, 君子없다.
근래 5년 간 국가보훈처에서 퇴직한 4급 이상 고위공무원 전원이 산하기관인 공공기관에 재취업한 것으로 드러났다. 27일 국회 정무위원회 자유한국당 소속 김진태 의원이 국가보훈처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국가보훈처 4급 이상 퇴직자의 재취업 현황을 보면 8명 전원이 산하 공공기관에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세계일보, 2018.9.27). 최근 퇴직한 보훈처 소속 공무원 8명은 88관광개발(주)로 3명,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으로 2명, 독립기념관으로 1명 등 모두 산하기관으로 재취업했다. 가장 최근인 2018년 1월31일 보훈처를 퇴직한 A씨는 마지막 직급이 보상정책과장으로 부이사관(3급)이었다. A씨는 퇴직 후 하루 뒤인 2018년 2월1일 88관광개발의 경영관리본부장으로 재취업했다.
인기에 영합한 독주는 견제와 감시를 받지 않으면 부패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 등 3권 분립 구조, 기타 권력기관과 공기업 등의 구조적인 유착과 부패고리를 투명화 시켜야 한다. 4년 이후 ‘이들’도 ‘그들’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문정부의 현직자들에게는 전(前)정부 공직자 유사직책 범죄의 개연성이 상존한다(이종수, 2017.11; 2018.5). 권력 교만의 극치다. 2018년 현재 문재인 정권은 正으로 부정부패, 적폐 해결 등에 앞장서고 있으며, 삼봉의 사상과 흡사한 정책을 펼치며 접근 중이나 아직 그 효과는 미약하게 나타나고 있다.
2. 현대 정치문화적 활용
첫째, 삼봉의 치인(교화)의 활용 측면은 백성의 교화(정순우, 1999 : 105)와 향약과 향헌을 참조한다(이종수, 2015). 이것은 현대적인 주민자치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삼봉의 민유방본의 이념에는 民은 단순한 교화의 피동적인 객체로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화를 통해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품성을 계발할 수 있다는 주체적 의미가 내포된다.
둘째, 향헌 56조의 주요 내용을 지방 외관과 관련해서 보면 그의 법치사상은 청렴관료와 부패 예방을 위한 단서가 될 것이다. 백성들 측면에서는 선목과 악목을 예시할 수 있다(이종수, 2015.12). 豊沛 鄕憲은 조선조 초기에 있어서 향풍을 올바르게 하고자 실시를 명한 태조 친제의 향헌 조목으로, 조선시대 지방자치 사상으로서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겨서는 안된다는 성리학적 사상이었다. 태조가 孝寧大君에게 하명하고, 삼봉이 시행한다. 향헌 56조(善目과 惡目)의 주요 내용을 지방제도와 外官과 관련해서 보면 그의 법치사상은 백성들 측면에서는 선목과 악목을, 公職者에게는 부패 예방을 위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조선의 鄕憲(約)은 유학에 근거한 사회제도로 이를 실천하기 위한 생활, 교육운동의 실천장이었으며, 鄕約과 주민자치 및 민본정치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다. 사회교화와 협동, 사회교육, 공동체 의식 함양, 문맹 퇴치운동이 전개된다. 몇 가지를 예시하면 지신염근(持身廉勤)은 튼튼한 몸과 근면성을 겸비해야 한다. 견선필행(見善必行)은 옳은 일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문과필개(聞過必改)는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등이다(이종수, 이병렬, 2016).
후대 영향 측면으로 극기복례와 공동결정, 공동체부조, 주민 간, 관민 간 소통 구조적 역할을 수행한다. 현대사회 공동체 형성 과제측면으로 현대사회는 개인주의 발호로 공동체정신이 말살된 지 오래다. 따라서 그 회복의 대안으로서의 홍익공동체(한영우, 2010 : 39-43)를 상정할 수 있다. 예전의 선인들은 향도(香徒)와 사장(社長) 전통에 토대하여 상두꾼(장례공동체), 사장(두레패), 향약 등으로 발전시켜 왔다. 따라서 현대 주민자치제도와 접맥시킬 수 있는 접점을 56조와 후대의 대앙한 향약 시행 결과에 따른 사례를 중심으로 유형화하여 개발시킬 필요성이 제기된다.
셋째, 향헌에 의해 실시된 삼봉의 향사례(鄕射禮)와 향음주례(鄕飮酒禮)(1999: 정순우 : 111) 등은『禮記』, 『周禮』에 기초했다. 향약과 향교의 사회교육 목표는 성리학적 이상사회 구현을 위한 백성교화를 통한 위민정치 실현이었다. 위민정치는 세금납부 대상자로서의 백성에 대한 보답 차원의 접근이며, 국가의 권리와 백성의 의무측면에서 보면 『향헌』에 의해 실시된 삼봉의 향음주례, 향사례와 백성 교화권, 교화 행정 등은 성리학적 이상사회 구현을 위한 백성교화를 통한 위민정치 실현이었으며. 위민정치는 세금납부 대상자로서의 백성에 대한 보답 차원의 접근이었다.
3. 제도적 활용방안
조선개국기 삼봉의 포폄이나 현대적 평정제도의 목적은 조직전체와 개인의 발전을 지향, 종류, 항목, 평정요소와 기준, 교육훈련 활용 등의 시사점(남주현, 2005 : 53)이다. 현대적 근평의 문제는 평정오류의 문제와 관대화 경향, 집중화 경향 및 연쇄적 영향 문제 대두 등을 들 수 있다(이종수, 2000).
첫째, 직원의 능력, 자질 함양자료로 이용될 수 있는 평정방법이 개발 시행되어야 한다. 평정결과 활용에 신중해야 한다. 평정자, 확인자, 동료, 부하 평정참여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가발전의 동기 형성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직무목표 달성도에 관심이 두어질 필요가 있다.
둘째, 평가의 신뢰성,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평정자 교육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대적 측면에서 재조명 한다면 평정결과를 교육훈련 수요판단자료로 활용할 필요성을 제기한다(김용린, 2006 : 70). 또한 평가의 신뢰성,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평정자 교육훈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포폄의 용도는 상벌의 목적, 시험의 타당도 특정, 적재적소의 배치, 교육훈련 수요의 측정 및 직무수행능력 및 인간 관계 개선 등에 두어질 필요가 있다. 평정제도의 목적은 조직전체와 개인의 발전을 지향, 종류, 항목, 평정요소와 기준, 교육훈련 활용 등과 관련성이 깊다(남주현 : 53). 또한 평정자 교육 및 적재적소배치와 전문성 중시, 민폐 해소, 국민지향, 평정방법의 지향, 각 조직에 적합한 기법의 개발과 적용방안 등이 요청된다.
넷째, 근평의 효용성 향상책으로는 먼저 활용범위를 능력발전과 행정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한다. 근평의 타당도와 신뢰도,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한 평정자 훈련 강화 및 정확한 직무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섯째, 평정자 교육 및 적재적소배치와 전문성 중시, 민폐 해소, 국민지향, 평정방법의 지향, 각 조직에 적합한 평정, 절차적 합리성, 주관성배제와 다계층 평정 방안 등이 모색되어져야 할 것이다.
4. 삼봉포폄제도의 인사정책 시사점
첫째, 한국행정학에 있어서 인사제도적 골간은 주로 1950년대를 전후하여 도입된 미국식 인사행정제도에 경도되어져 왔으며, 그들의 제도를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 정통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우리 문제는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아 치유해야 맞다. 그런데 외국제도를 우리 문화적 토양에 맞추려니 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문제의 해법을 우리의 전통과 행태에 적합하게 접근해야 답이 얻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 논문은 우리제도의 합리성을 확인해 준다. 어떻게 제도화로 연결하느냐가 과제가 될 것이다.
둘째, 현대인사제도적 활용측면에서 보면 삼봉의 포폄제도를 통하여 한국인사행정제도의 토대를 구축함과 동시에 우리 것에서 우리 것의 과학성, 독창성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긍정적이다.
셋째, 조선인사제도의 토대인 삼봉 정도전의 성리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德과 實績 중심 포폄제도의 내용과 실행을 논증한 점이 獨創的이다
넷째, 현대인사제도의 이론적 출발점을 14세기로 끌어올렸다는 점과 영,미 중심의 인사제도적 틀을 ‘자기화’시킬 수 있는 이론적, 실증적 근거를 찾아 제시했다는 점에서 독창성과 전통성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서 學術的 意義가 크다. 특히 중국의 『周禮』등을 수용하면서도 조선에 적합하게 융합 변용시켜 적용한 인사제도적 개선노력이 돋보인다는 점을 시사받을 수 있다. 이러한 연구가 계속하여 활성화 된다면 한국적인 전통 속에서 한국적 인사제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발굴하여 일반론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Ⅴ. 나가는 글
조선개국기 삼봉은 국가의 규모와 운영방식을 중국 고대의 다양한 시각을 조화롭게 엮어 대안을 조선에 알맞게 엮어 대안을 제시하고, 조선시대의 근본국가통치철학인 『經國大典』의 모체를 제시하여 국가론 차원의 통치내용과 방법 등을 제시하였다.
삼봉 치인관의 기본 틀은 남송과 북원의 실천적 성리학의 고려 유입과 그 融合적 제도 형성과 현장 적용적 측면을 덕치 인사와 구체적 실적을 융합한 포폄사상으로 구체화하여 관원 평가에 적용한 삼봉의 인사정책 사상을 토대로 한다.
본 고는 필자의 선행연구(2000, 2001 ; 2016.4) 등에서 제기한 후속 연구로서 조선 전기와 중기의 특성을 비교 고찰함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 내용에 대하여 이론적, 문헌적, 행태적 고찰을 통하여 과거의 제도적 경험을 찾아본다는 점에 연구 의의가 있다.
한국행정학에 있어서 인사제도적 골간은 주로 1950년대를 전후하여 도입된 미국식 인사행정제도에 경도되어져 왔으며, 그들의 제도를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 정통이라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우리 문제는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아 치유해야 맞다. 그런데 외국제도를 우리 문화적 토양에 맞추려니 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문제의 해법을 우리의 전통과 행태에 적합하게 접근해야 답이 얻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이 논문은 우리제도의 합리성을 확인해 준다. 어떻게 제도화로 연결하느냐가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조선 개국기 포폄제도의 형성과정과 주요 내용을 삼봉의 제도창출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평가를 시도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되며, 현대 인사정책에 수렴가능한 인사제도의 발전방향을 가늠해 보고자 하였다. 삼봉의 포폄사상의 기저에는 민본사상, 백성 중시, 수령점검과 민본보존, 덕행과 실천 점수화, 덕행중시를 제도화 시킨 노고가 묻어 있음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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