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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돼지갈비문화 스토리텔링

현곡 이종수 2018. 12. 21.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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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돼지갈비 문화 스토리텔링

Busan Pork Galbi Culture Storytelling

이종수(중앙대 연구교수)

 

< 요약문 >

본 고는 해방과 한국전쟁(6.25) 전후 부산지역의 음식 문화 변동 분석을 통하여 부산의 음식문화는 어떠한 특성을 띠고 있었으며, 그 특성에 영향을 미쳤던 요인을 알아보고자 하였다. 당시 부산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한 난민과 부산항 노동자들의 식생활에 미쳤던 주요 영향을 규명하였다. 분석의 이론적 측면은 음식문화 적응과 변동 등의 기준을 중심으로 부산음식문화 특성, 변동, 차별성과 시사점 등을 분석하였다. 특히 부산의 자갈치 시장과 부산항은 먹고 살기 위해 전장같은 노동을 하는 장소인 동시에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이중적인 장소로 역동적이고 부산스러운 부산성의 이미지가 읽히는 지역이다. 특정 음식의 섭취는 그 음식이 지닌 상징적 속성을 먹는 사람에게 전달하기도 하며, 그것은 개인의 음식물 섭취와 정체성과 깊은 관계를 갖게 된다. 부산항을 중심으로 한 부산의 대표적인 지역음식 중의 하나가 돼지갈비로 초량의 돼지갈비 문화 특성, 변동과 시사점으로 구분하여 제시한 이후 발전적 정책과제를 3가지로 제기하고,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부산의 음식문화 측면의 차별화 노정과 음식문화관광 프로그램의 유기적 연계 및 그 마케팅을 위한 향토음식 체험스토리텔링 개발과 향토음식 테마촌 조성 등으로 구분, 제안하였다.

 

주제어 : 맥적(貊炙), 항도, 해방과 6.25, ODA, 이주노동자, 돼지갈비

 

目 次

. 들어가는 글

 

. 부산 돼지갈비문화의 이론적 접근

1절 갈비문화의 의의

2절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 부산 돼지갈비 문화특성 분석

1절 부산의 음식문화

2절 현대 부산의 음식문화

. 부산 돼지갈비 문화특성의 시사점

1절 주요 특성

2절 돼지갈비 스토리텔링

. 나가는 글

참고문헌

Abstract

 

. 들어가는 글

 

이 글은 필자의 부산음식문화 선행연구(이종수, 20122017) 등에 대한 후속연구물로서 부산의 돼지갈비 문화 변동과 토착화 과정을 분석하고자 하며, 이를 위한 주요 연구문제는 해방과 한국전쟁 난민, 근대화와 수출단지 기능 수행과 그 와중에서의 부두노동자와 피난민들의 대중음식 문화로서의 돼지갈비 문화 형성과 전개, 토착화 및 현대적 문화정착 배경 등을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선행연구와 기존의 연구들과의 차별성 측면은 1945년 이후의 부산()의 시대적 특성과 음식문화 변동 분석이란 점이다. 당시 부산의 민초들과 그들의 삶에 베어 있는 음식문화의 변동분석으로 곧 본 연구는 부산의 음식 특성을 분석하기 위해 먼저 1945년 이후 인문환경을 등을 분석하고, 부산항 주변의 대중음식문화적 특성을 음식문화의 변동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는 점이다. 부산항의 범주는 자갈치와 초량, 서면지역 등지로 한정하였으며, 시점은 1945년 이후 부산항의 음식문화 변동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은 자갈치 시장과 초량 지역 14부두지역의 항구노동자 등을 대상으로 왜 그들은 그런 음식을 먹게 되었으며, 그곳에서 그러한 특정 음식문화가 형성되고, 유지되었던 이유를 분석하고, 현대적 시사점을 도출한다. 당시 부산의 자갈치 시장과 초량지역은 먹고 살기 위해 전장같은 노동을 하는 장소인 동시에 삶과 죽음이 존재하는 이중적인 장소였다. 생명체의 쌍생아인 사랑과 굶주림의 본능은 생명의 원동력이다. 생명체는 먹을 것을 찾고 번식을 위해 움직인다고 뚜르게네프는 말했다. 문자 그대로 이 지역들은 먹고 살기 위해,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사람들이 움직이는 역동적인 공간이 부산스러운 부산성의 이미지를 읽을 수 있게 하는 공간이었으며, 바로 이와 같은 변동의 원인과 내용, 토착화 배경과 결과를 분석하였다.

부산 돼지갈비문화 음식문화 변동과 토착화 분석을 위한 연구의 방법은 필자의 선행연구(이종수, 20112018)와 전문학술지 등을 참조하였으며, 1960년대 주요 일간지와 시, 구청 소식지, 보도자료 등과 문학적, 민속적 접근, 기타 문서 등에 기초하여 분석하였으며, 분석의 대상은 부산지역의 돼지갈비 문화현상으로 분석의 시점은 1950년대 전후를 대상으로 한다.

 

. 부산 돼지갈비문화의 이론적 접근

 

1절 갈비문화의 의의

 

1. 갈비문화

 

불고기와 갈비의 구분은 원료 요리에 통뼈가 붙느냐 안 붙느냐로 구분한다. 최근의 삼겹살은 불고기의 하위 영역이다. 보통 갈비(구이)는 쇠갈비와 돼지갈비를 구워 만든 요리이다. 불고기는 쇠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야채를 넣고 자작하게 만든 한국의 전통요리다. 불에 구워 먹는 요리라는 의미다. 쇠 불고기와 돼지불고기가 널리 퍼져 있다. 예전 개성의 설야멱은 설상가리라는 이명을 갖고 있다. 서울불고기, 언양 불고기, 봉계 불고기, 광양불고기, 평양불고기가 유명하다. 평양식 불고기는 날고기를 구운 후 양념에 찍어 먹는다는 점에서 남한식과 차별적이다. 모란대 불고기가 유명했다.

한국의 대표음식 불고기의 기원과 역사를 추적하면 불고기의 원조는 맥적(貊炙)으로 추정된다. 갈비(曷非, Galbi)의 기원과 관련 고구려의 맥적(貊炙)과의 동질성과 고구려 맥적이 불고기로 발전함을 논증하면, 3세기 진()나라 搜神記, 高麗史,해동죽지(海東竹枝)의 설하멱 등의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이종수, 2016ab ; 이재규, 2003ab ;禮記, 儀禮, 居家必用, 거가필용사류전집, 飮膳正要, 山林經濟 1,2).

유라시아대륙의 넓은 초원에서 유목을 하던 한 부족이 동쪽으로 이동하여 만주 남부 지방의 토착민과 함께 맥족을 형성하여 우리 조상이 되었는데, 유목민이어서 가축을 조리하는 기술이 뛰어나 유라시아의 대초원에 야생하는 마늘이나 부추 등의 훈채를 장에 섞어 양념으로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맥적을 즐겨먹은 맥족은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무대로 활동하던 종족으로, 부여와 고구려의 구성원이었다. 은 전설에 나오는 동물로 몸은 곰을 닮았고 코는 코끼리, 꼬리는 소, 발은 호랑이를 닮았다고 한다.

3세기경 중국 진()나라 때의 수신기(搜神記)에는 맥적을 만들 때 ()과 마늘로 조리하여 불에 직접 굽는다고 하였으며,의례(儀禮)에는 범적무장(凡炙無醬)’이라 하여 ()은 이미 조리되어 있으므로 먹을 때 일부러 장에 찍어 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이 맥적이 고구려로 계승되어 오늘날 불고기의 원조가 된 것이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육식을 금하고 채식을 장려하여 사찰음식이 발달하면서 육식이 쇠퇴하였다.

간보의 소설을 보면 중원의 귀족과 부자들이 이민족 풍습인 호상맥반(胡床貊槃:호상은 강족이 사용하던 식탁이고 맥반은 맥족의 그릇)을 사용하고 강자맥적(姜煮貊炙:강자는 양고기 백숙)을 즐겨먹는다고 쓰여 있다. 이 기록을 통해 4세기 중국에 우리 선조가 만든 맥적이 크게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이란 글자를 보면 불() 위에 고기()가 올려있는 모양이다. 한나라 때 사전인 釋名(석명)에는 은 고기를 불에 구워 먹는 것이라 했다(이종수, 2016). 그런데 이 석명에 맥적(貊炙)이라는 고기를 굽는 법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고기 전체를 통째로 구워서 먹을 때 각자 칼로 잘라 먹는다고 풀이하면서 북방의 맥족(貊族) 음식이라고 했다. 불위에 고기를 올려놓고 굽는 단순한 조리법과 차별을 둔 것으로 오늘 날로 치면 바베큐 통구이의 일종이라 할 수 있다(한국일보, 2016.7.17).

설리적은 눈()()에서 굽는다()는 뜻으로, 송나라를 건국한 조광윤이 친구이자 신하인 조보와 눈 속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고사의 내용을 풀이한 것이다. 설야멱은 전통적인 고기구이인 맥적(貊炙)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산림경제閨閤叢書에 등장한다. 불천위 제례 제수에서 현재도 전수되고 있다. 물에 담갔다가 굽는 방식인 설야멱은 예로부터 개성에 전해진 명물이라고 옹희잡지, 해동죽지에 기술됐다. 1609년 명나라 사신이 광해군을 책봉하러 왔을 때 대접한 음식이기도 하다. 다른 명칭이 관적(串炙)이다.

 

2. 불고기와 너비아니, 왕갈비

 

조선시대의 호궤(犒饋)란 군사위로용 소고기였다. 오리 이원익대감이 전라좌수영에서 충무공과 군사들에게 소를 잡아 치하한 음식이었으며, 그 일대는 지금도 정승봉(政丞峯)’이라고 하여 회자되고 있다(이종수, 2015.11 : 67).

첫째, 불고기와 갈비의 구분은 원료 요리에 통뼈가 붙느냐 안 붙느냐로 구분한다. 최근의 삼겹살은 불고기의 하위 영역이다. 보통 갈비(구이)는 쇠갈비와 돼지갈비를 구워 만든 요리이다. 불고기는 쇠고기를 양념에 재우고 야채를 넣고 자작하게 만든 한국의 전통요리다. 불에 구워 먹는 요리라는 의미다. 쇠 불고기와 돼지불고기가 널리 퍼져 있다. 예전 개성의 설야멱은 설상가리라는 이명을 갖고 있다. 서울불고기, 언양 불고기, 봉계 불고기, 광양불고기, 평양불고기가 유명하다. 평양식 불고기는 날고기를 구운 후 양념에 찍어 먹는다는 점에서 남한식과 차별적이다. 모란대 불고기가 유명했다.

불고기는 쇠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장에 재웠다가 구워 먹는 음식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 중의 하나이다. 불고기는 고구려의 맥적(貊炙)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맥적은 양념한 고기를 꼬치에 꿰어 불에 구워 먹는 음식이다. 이후 고려시대에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면서 육식을 금하는 풍습에 따라 잠시 사라졌다가, 고려 말기에 몽골의 지배를 받으면서 설하멱(雪下覓)이라는 음식으로 다시 먹기 시작했다. 1800년대에 들어서 석쇠나 번철과 같은 조리기구가 쓰이면서 석쇠를 이용해 불에 간접적으로 굽는 너비아니로 발전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불고기로 이어져 오고 있다(이종수, 2016).

1939년의 조선요리제법에 나오는 우육구이(너비아니)’ 만드는 법을 보면, “고기를 얇게 저며서 그릇에 담고 간장(진간장)과 파 이긴 것, 깨소금, 후추, 설탕을 넣고 잘 섞어서 굽는다고 하였고, 1800년대 말의 시의전서에서는 정육을 잘게 저며 양념한 다음 불에 직접 굽는 것을 너비아니라 하였다. 하지만 요즘 불고기는 훤히 비치도록 얇게 썰어서 질척하게 양념해서 달구어지지도 않은 철판에 올려 굽는다. 불에 굽는 불고기가 아니라 국물에 잠겨서 익는 물고기가 되어 버렸다. 너비아니는 도톰하게 저며서 잔 칼집을 내어 석쇠나 적 틀에 구운 음식이다.

삼국 시대와 고려 시대에는 불교를 숭상하여 육식을 금했으므로 채식을 주로 하였다가 고려 말 몽골족의 침입으로 다시 육식을 즐기게 되었다. 특히 몽골 사람이 많이 와 있던 개경에는 설하멱이라는 고기구이가 명물로 전해졌다.海東竹枝(1925)雪下覓()開城府의 명물이라고 기록했다. 雪後野宴은 개성의 설야멱(雪夜覓) 이야기가 담긴 김홍도의 그림이다.

일제강점기 때 발행된 조선 풍속서인 해동죽지에는 설리적(雪裏炙)이라는 숯불구이가 나오는데 고려의 수도인 개경의 명물이라 했다. 설리적은 소의 갈비 혹은 염통을 기름, 마늘 등과 함께 굽는데 반쯤 익히면 물에 담갔다가 센 불에 다시 구워서 익혀 먹는다고 한다. 이상의 기록을 종합해보면 신라 때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기까지 설야멱 혹은 설리적이라는 숯불구이를 먹었던 것이다.

둘째, 조선시대에는 궁중음식인 너비아니(쇠고기에 잔 칼 질함)로 진화하며, 조선시대 후기 불고기로 정착된다(이재규, 2003a : 22-24). 소갈비나 염통을 기름과 훈채로 조미하여 굽다가 반쯤 익으면 찬물에 잠깐 담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굽는다. 눈 오는 겨울밤의 안주로 좋고 고기가 매우 연하여 맛이 좋다고 하였다. 그 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설야멱적(雪夜覓炙)’은 궁중음식인 너비아니로 발전되었는데, ’너비아니란 말은 소고기를 너붓너붓하게 썰어서 잔칼질을 많이 하여 육질을 부드럽게 하여 굽는 것을 일컫는 것으로 요즘의 불고기와는 달리 구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두툼하게 썰어 만들었다.

1500년대 미암일기(眉巖日記)에 의하면 곡식, 육류, 어패류, 해조류, 과실류, 등의 음식문화가 보이고 있으며, 육식()과 관련해서는 조선시대 소고기 식용 등이 나타난다. 원제국의 영향으로 소고기 식용이 일반화되고, 조선시대에도 소고기가 인기리에 상용한다. 1700년대 청국과 일본의 소고기 식용의 경우 중국은 양고기와 돼지고기 선호를, 일본은 약으로 만들어 환으로 복용했다. 조선은 우심적이 인기였으며, 소고기국(太羹)이 일상화했다. 조선시대 소고기 탐식가는 세종, 연산군, 광해군이었다.

서거정의筆苑雜記(1487) 를 보면 세종 때 직제학 벼슬을 지낸 김문은 정승들과 담소를 나누다가 천하 제일의 요리로 화제가 번졌는데, 그는 천하제일의 요리로 우심적(牛心炙), 즉 소고기 숯불구이라 꼽고, 이에 모든 관리들이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치며 즐거워했다고 나와 있다.

1800년대 말에 쓰여진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정육을 얇게 저며 양념한 것을 너비아니라 하였고,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1939)에는 우육구이(너비아니) 만드는 법에 대하여 고기를 얇게 저며서 그릇에 담고 간장과 파 이긴 것, 깨소금, 후추, 설탕을 넣고 잘 섞어서 굽는다고 하였다. 특히 1600년대에 쓰여진 조리서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설야멱(불고기)을 가지처럼 먹는다'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에 꽤 보편화된 음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중략).

셋째, 조선시대에는 설야멱이 너비아니로 발전하고, 조선시대 후기 불고기로 정착된다. 너비아니는 쇠고기를 너븟하게 썰어 칼로 저며 양념한 불고기이다. 후기에 접어들어 수원 갈비로 발전한다. 정조 시대 화성건립을 계기로 소시장, 불고기 문화 활성화 된다. 정조의 둔전, 국영농장 대유둔 정책으로 농민과 노동자 유입된다. 수원유수부에서 잔치에 소고기 식용 시책으로 소고기소비 활성화, 갈비문화로 정착된다.

수원 갈비는 조선시대 너비아니에서 진화하였다. 정조 시대 화성건립 시에 소시장이 활성화 된다. 정조의 둔전, 국영농장 대유둔 운영으로 농민과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다. 수원유수부에서 잔치에 소고기 식용, 갈비문화로 정착된 것이다. 현대로 들어와 수원갈비와 갈비탕으로 발전(월간조선, 2004.6)한다. 현대의 수원 소금구이 화춘옥 왕갈비와 1970년대 박정희의 시식 에피소드로 유명세를 탔다.

영조가 신하들에게 쇠고기를 먹자고 제안하자 (=임금)께서는 금육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본인은 드신다는 말도 나왔다. 정조도 늦은 밤 규장각의 신하들과 난로회를 즐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이종수, 2015).

정리 한다면, 맥적에서 비롯된 우리의 고기 굽는 방법이 신라, 고려 때는 설야멱이라는 숯불 꼬치구이를 거쳐 철판구이, 석쇠구이, 돌판 구이 등으로 발전했고,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조리기구가 만들어지며 국물과 함께 먹는 현대적인 전골과 불고기, 갈비문화로 발전한 것이다. 수원갈비 특징은 소금 간은 高麗, 元帝國 문화와 상통하는 문화적 특성을 띤다는 점이다(이종수, 2016ab). 간장을 사용하지 않고 소금과 설탕, 후춧가루, 참깨, 참기름, 마늘 등으로 양념하여 느끼하지 않고 색의 변화가 없으며 담백한 맛을 유지한다. 크기는 1017cm 내외로 소금양념과 커다란 갈비 크기가 특징이다(이재규, 2002).

 

2절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1. 선행연구 분석

 

첫째, 부산항과 자갈치 시장 분석 자료는 조갑상(2008), 이종수(2013.12 ; 2013.5 ; 2012.12)등을, 둘째, 지역별 도시음식문화 분석은 이종수(2013.12 ; 2013.8) 등을 들 수 있다. 이종수(2014.4)는 부산과 인천의 음식문화 변동 분석에서 Berry(1980)의 틀을 중심으로 양 지역의 생태, 정치 환경 및 정책을 중심으로 분석하였으며, 동시에 인천과 개성, 한양의 탕 음식 문화 유래와 변동을 분석하였다(이종수, 2014.8). 셋째, 부발연(2011, 2010, 2009)은 부산학과 미래도시 부산의 잠재력 분석, 부산정체성과 미래 전망 부산의 과거와 현재 분석을 통한 미래 방향 제언하였으며, 박훈하 외(2010)부산음식의 생성과 변화 분석에서 부산의 과거와 현재 음식 실태분석, 부산시의 근대, 현대 음식유형 분석과 장소음식, 예술과 관련된 음식문화 분석 등을, 부산발전연구원(2009) 부산음식 관광 활성화 국,외 사례분석 사례와 설문 조사를 통한 발전방향을 제언하였다.

이종수(2009-2017)는 음식문화 스토리텔링(이종수, 2009), 탐라와 몽골의 음식문화(2012), 서울과 교토 비교(이종수, 2012), 인천과 부산(이종수, 2013), 탐라의 몽골문화(2014), 인천과 개성, 한양의 탕국문화(2014), 13세기 고려와 탐라의 음식문화(2014-2016), 수원의 왕갈비문화(이종수, 2016) 13세기 전후 원제국과 고려, 그리고 비교대상지역별로 원 제국 음식문화의 변동과 토착화 배경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차별성 측면은 196070년대의 부산항의 시대적 특성과 음식문화 변동 분석이란 점이다. 당시 부산항 인근의 민초 주체들과 그들의 음식문화의 변동분석이란 점이다. 부산음식 변동분석을 위한 기존연구와 본 연구와의 차별성을 < 1 >에 제시한다.

 

< 1 >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

구 분

선행연구 분석

연구목적

연구방법

주요 연구내용

부산항의 음식문화

부산발전연구원(2009), 부산음식 관광 활성화

국내,외 사례분석

설문분석

국내외 사례와 설문 조사를 통한 발전방향 제언

조갑상(2008), 해방전후 부산의 소시민

질적 분석

행방전후 문학작품속의 소시민 생활 분석

우석봉, 임호(2010), 부산관광스토리텔링

설문분석

부산관광 스토리텔링 활성화 방안

박훈하 외(2010), 부산음식의 생성과 변화 분석

부산의 과거와 현재 실태분석

부산시의 근대, 현대 음식유형 분석과 장소음식, 예술과 관련된 음식문화 분석

부산발전연구원(2011), 부산학과 미래도시 부산의 잠재력 분석

부산정체성과

미래 전망

부산의 과거와 현재 분석을 통한 미래 방향 제언

이종수(2008, 2009, 2010), 음식스토리텔링 분석

질적 분석

음식스토리텔링 소재개발

이종수(2012.2), 해항도시 음식문화 비교분석

마산, 제주, 대마도 해항음식 비교분석

이종수(2012.5), 서울과 교토의 식문화 비교분석

서울과 교토의 음식 스토리텔링 제시

이종수(2012.12), 부산, 울산과 대마도, 나가사키시 음식문화 특성분석

4개 지역 음식의 식민성과 변이분석

이종수(2013), 인천과 부산의 음식문화 분석

인천과 부산의 음식문화 특성

이종수(2014.4), 부산과 인천의 음식문화 변동분석

부산과 인천의 음식문화 분석

이종수(2014.8), 인천과 개성, 한양의 음식문화

3개 지역의 탕음식문화 유래와 변동 분석

이종수(2015), 13세기 고려의 탕문화 분석

13세기 개성, 안동, 탐라의 음식문화

이종수(2016), 13세기 탐라와 원제국 음식문화

13세기 탐라와 원제국의 문화비교

이종수(2016), 조선시대 부산과 왜관의 음식문화

부산 왜관의 음식문화

이종수(2018), 13세기 강화음식문화 스토리텔링

13세기 개성과 강화도 음식문화 분석

본 연구의 차별성

부산의 돼지갈비 문화 변동 분석

질적 접근, 일간지 참조

부산의 돼지갈비 문화 특성

 

2. 분석의 틀

 

해방기 이후 현대의 부산의 돼지갈비문화 주요 내용을 분석한다. 196070년대의 부산(남항)항 주변의 시대적 특성과 음식문화 조명, 변동요인을 분석하기 위하여 자갈치 시장과 초량 지역 14 부두지역 노점상 등과 항구노동자들의 돼지갈비(국밥 포함) 등의 대중음식 중심으로 자리잡은 배경을 분석한다. 1950년대 전후의 자갈치는 상인과 노동자 등이 주류를 이루었고, 초량은 부두노동자들과 컨테이너 하역 관련 피난민 등 196070년대의 부산항 주변의 시대적 특성과 음식문화 조명과 변동요인을 음식문화 특성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 부산 돼지갈비문화 특성 분석

 

1절 부산의 음식문화

 

1. 부산 음식문화의 형성

 

부산은 우리나라 제1의 무역항이자 국제공항을 갖춘 세계의 관문이다. 인구는 2017년 현재 350만 명이며, 기후는 해양성 기후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가 그리 크지 않다.

부산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남해안과 동해안에 좋은 어장을 가지고 있어 각종 해산물이 풍부하고, 낙동강 주위에 기름진 농토에서 농산물이 풍요롭게 생산된다. 또 크고 작은 어항이 50여개가 넘는다. 음식은 천연의 재료를 주로 사용하며 간이 세고 맵다. 8진미와 13개 향토음식이 지정되어 있다.

부산의 음식문화 형성배경적 측면은 첫째, 생태적 환경측면에서 부산은 북으로는 울산, 동으로는 김해와 맞대어 있는 우리나라 제1의 무역항이자 국제공항을 갖춘 세계의 관문이다. 부산(釜山)이라는 지명은 1481동국여지승람에 사용됐다. 기후는 온난하고, 송정, 해운대, 태종대, 송도 등이 모두 바다를 끼고 있다. 해조류 사용도가 높다. 부산의 음식이 지각변동을 일으킨 것은 먼저 외래 식문화와 만나 전통음식이 다양성을 최대한 수용하였고, 이는 일제 식민지, 피난민 문화 등에 기인한다. 동시에 산업화로 인한 이주민과의 만남 등을 통하여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항구음식이 개화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부산은 해양도시, 장터, 일제 식민지, 전쟁과 피난 등과 관련된 음식이 많다는 점에 음식 차별성이 드러난다. 부산의 향토음식 평가에 의하면 부산의 대표 음식은 생선회(33.8%), 돼지국밥(14.9%), 동래파전(12.9%), 곰장어(12.9%) 순이다(부산발전연구원 : 57). 부산거주자들은 부산의 대표음식으로 광어회(16.4%), 돼지국밥(13.9%), 도다리회(12.2%) 등을 들었다. 해항도시답게 단연 수위가 회음식이다.

둘째, 국제화측면에서 보면,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개항한 일본은 1876년 강화도조약을 강요하여 개항하고, 1905년 이후 부산항에 토목, 철도, 전차와 수도, 항만시설을 설치하여 군사, 경제적 요충지로 만들고, 대륙침략의 전초기지화 한다. 일본문화가 급속히 유입된다. 이와 같은 일제의 식민도시 부산은 경성과 평양에 뒤이은 한국 내 3위의 도시로 성장한다(김정하 : 180). 개항기 부산구조계조약초량과 부산진 앞바다 매축, 강점기, 전차, 수도, 항만이 개설되어 문화수입 전초기지가 된다.

셋째, 한국전쟁 요인측면에서 부산은 전쟁과 난민, 항만 개발에 따라 노동자들이 대거 유입된다. 한국전쟁 뒤 부산항 14부두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몰려든다. 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은 1950년 임시수도였으며, 미군의 문화가 이입된다. 1957년 구제 실시 및 1995년 직할시에서 광역시로 개칭한다. 최근에는 국제영화제(BIFF), 2005APEC 정상회담 등을 개최했다. 2014년 현재 부산광역시는 컨테이너 물동량 80% 이상을 차지하는 세계 5대 항만도시가 됐다.

 

2. 부산의 향토음식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Lévi-Strauss)(Lévi-Strauss, Claude, Myth and Meaning(London and New York : Routledge)한 사회의 요리(음식)는 그 사회의 구조를 나타내는 말이라고 하여,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나 다름없다고 하였다. “네가 먹는 것이 바로 너다”(You are what you eat)라는 말처럼, 음식은 우리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이루며, 국가나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곧 전통음식은 각국의 역사와 문화, 생활이 고스란히 녹아 있어 한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핵심 키워드이다. 그의 요리 삼각형은 각 꼭지점에 날것, 구은 것, 삭힌 것으로 구성된다. 대다수 서양과 중국은 불로 구운 것(삶은 것), 일본은 날 것을, 우리는 3가지를 모두 조화롭게 만든 음식이 많다.

음식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고 장기지속적인 연속성을 갖기 때문에 그 속에서 집단적 정서를 읽을 수 있고, 그래서 특정지역(국가)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인이면 밥과 국, 김치, 된장찌개, 김치찌개, 소주, 막걸리 등을 상식하는 문화 등을 들 수 있다. 이런 음식들은 환경에 대한 적응과 문화 속에 굳어지고, 향유되며 전수되는 음식 정체성(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음식문화의 가치는 생명유지와 종족 보존, 오랜 기간 전승되어 오면서 우리 몸에 맞는 과학성 입증, 각 민족의 개선이 담겨 있어 문화적 획일성 해소, 민족 동질성과 소속감 유지, 의식주 중 가장 민족 정체성이 강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Fishler(1988 : 275-292)는 음식이 인간의 정체감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특정 음식의 섭취는 그 음식이 지닌 상징적 속성을 먹는 사람에게 전달한다고 한다. 정체성(identity)이란 변하지 아니하는 존재의 본질을 깨닫는 성질로 사람이나 상품(음식), 장소의 독특한 특성이다. 장소나 음식 정체성은 다른 도시나 지역과 구별되는 성질이며, 많은 사람들이 그 지역에서 느끼는 다른 곳과의 차별성이다. 그것은 그 지역이 보유하고 있는 특색으로 나타나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지역사람들이 고유한 전통문화 속에서 공유하고 형성되어온 문화이다.

필자는 부산의 돼지갈비문화는 부산항 노무자(노무자, 일꾼, 일반시민 등)들인 귀환동포와 6.25 한국전쟁 피난동포, 1960년대 산업체 유입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또한 부산항 14부두 노무자들의 식사해결에 대응하고, 적응하면서 이들 지역에 정착된 시대적인 신종 음식문화로 정의하고자 한다(이종수, 2016).

향토음식은 그 지역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주는 음식으로 음식관광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지금 현재 전해 내려오는 부산의 향토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부산에 전해 내려오는 향토음식이 많지 않은 이유는 항구도시가 가지는 개방성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침입할 때 가장 먼저 풍파를 겪은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제치하 때 일본인들이 대거 부산에 거주하여 향토음식을 제대로 전승할 수 없었다(부산광역시. 2009 : 55-56).

2009년 부산광역시는 부산지역향토음식을 관광 상품화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생선회, 동래파전, 흑염소불고기, 복어요리, 곰장어 요리, 해물 탕, 아구찜, 재첩국, 낙지볶음, 밀면, 돼지국밥, 붕장어요리, 붕어찜 등 13개 음식을 향토 음식으로 지정하였다. 과거에는 게 요리, 생선회(광어회), 염소불고기, 복 매운탕, 동래파전, 주먹찰밥, 고구마 탕, 뚝배기, 재첩 국, 아구찜, 추어탕, 전복죽, 완당, 암소갈비, 민물장어구이 등이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분류되었다.

부산시청 홈페이지에는 부산의 별미로 생선회, 복국, 해물탕, 조개구이, 아구찜, 동래파전, 장어, 곰장어구이, 재첩, 오리불고기, 갈비, (돼지)국밥, 밀면, 낙지볶음 등을 든다. 모두 부산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들이다. 그 중에는 부산에서 태어난 음식도 있고, 부산에서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음식도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서민음식은 돼지국밥과 돼지갈비, 곰장어 구이다.

이것은 지리적인 항구 지역적 특성과 개방적 공간이라는 공간적 특성 및 일정기 기지, 전쟁, 산업화라는 환경적 특성의 혼합적 성격에서 태생된 문화로 해석된다. 개항기와 일제시대 음식문화, 부산과 일식의 혼종 문화, 1950년대의 전쟁음식, 이북음식, 서양음식의 혼종 문화, 혼종과 퓨전음식 문화인 셈이다. 부산항 음식은 국내,외 양식의 통합과 동화적 성격을 띄면서 대중음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돼지갈비, 돼지국밥, 밀면 등은 가난과 전쟁이 만든 서민 음식이었다.

2절 현대 부산의 음식문화

 

1. 부산의 돼지갈비

 

역사적으로 부산 도시공간은 식민화나 근대화로 2회에 걸쳐 왜곡됐다(구모룡 : 65). 본래는 해양문화와 내륙문화가 만나 조화를 이루어오다가, 일제가 중앙동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하여 동래가 주변화되고, 국제시장, 자갈치, 초량 등 등이 중심지가 된다. 근대화 과정에서 부두와 항만 위주의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부산음식은 시대적인 뒤섞임과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음식들이었다(조갑상. 2008 : 42).

전쟁 전후 산업화에 따른 이주민 정착 등의 특성적 측면을 보면 항만 노동자들은 귀환동포, 피난민 등 약 2만 여명이었다(배석만 : 280). 1946년 부산항 항만하역 운송업체만도 60여개 였다. 당시 항구 하역노동종사자등은 운동노무자 13.3%, 공업노무자 6.1%, 일용 노동자 9.7%였다. 기타 항만시설 보수, 노점 행상 등으로 삶을 꾸렸다. 산동네, 일제시대 형성, 전쟁으로 확장된다. 개항 이후 대일무역 확대, 공업 성장, 매축 공사 등으로 노동자 유입, 전쟁으로 산비탈에 주거지 형성된다. 부산항 14부두 맞은편 산동네 초량 2동 일대에 부두 노동자 촌이 형성되어 이들이 퇴근 시 먼지투성이 고된 몸을 돼지고기 안주에 술잔, 돼지국밥에 맡겼다.

그러다가 맨날 돼지고기 국밥인교, 뭐 딴 거 없소?”하는 데서 초량 돼지갈비가 시작되고, 근래는 추억의 연장선에서 부두 노동자의 길이 개발되게 된 것이다.

6·25 전쟁 이후 1950년대 후반부터 외국의 원조 물자가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면서 부산항으로 많은 부두 노동자가 들어오게 되고, 이들은 초량과 수정동의 산복 도로 인근 주택가에 정착하게 되었다. 부두 노동자들은 힘겨운 노동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값싸고 영양 많은 돼지갈비와 반주 한잔으로 피로를 풀었다. 이후 점차 골목을 중심으로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초량 돼지갈비 골목을 형성하게 되었다(오재환 외 : 53).

초량의 돼지갈비는 해방 후 부두노동자들의 영양식으로 발전된 부산항음식이다. 부두 노동자들의 영양식이 초량 돼지갈비였다. 초량동 돼지갈비는 수제비처럼 살코기가 얇고 간장 베이스 양념을 쓴다. 돼지국밥과 돼지갈비문화 관계는 공히 1950년대 전후 피난민들과 부두하역 노무자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 준 식사요, 피로를 풀어 준소주 안주로 정착한 밥과 안주관계로 풀이할 수 있다.

부산에서는 귀한 손님에게 돼지갈비구이에 소주 한 잔 올리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었던 시절도 있었다. 예부터 돼지고기는 발복(發福)의 음식으로 인식되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돼지는 다산(多産), 다재(多財), 다복(多福)’의 상징이므로, 귀한 손님 접대에 안성맞춤인 음식이기도 했을 터이다. 특히 초량돼지갈비구이는 갈빗살에 배여 있는 지방의 구수함과 근막 부위의 쫄깃쫄깃한 육질, 그리고 갈비뼈 속에 배어있는 풍미를 높은 화력의 직화로 제대로 구워내기에 그 맛 또한 월등하기도 했었다.

 

2. 돼지갈비 변천

 

초량돼지갈비의 유래는 한국전쟁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이 끝난 이후 몇 년간 우리나라는 미국을 비롯한 우방들에게 다양한 물자를 원조받았는데, 이 모두가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게 된다. 그 때문에 이 물자를 부리는 부두 노무자들은 당시 꽤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매력 있는 직업이었다. 이들의 생활 근거는 대부분 초량 산복도로 인근이었기에 현재의 초량시장 근처에는 이들을 상대로 술추렴과 요기를 할 수 있는 식당들이 생겨난다(국제신문, 2017.9.12).

1960년대 들어 이곳 몇몇 식당들이 주위 도축장에서 도축하고 남은 돼지부산물 등을 연탄불에 구워 팔았는데, 이것이 초량돼지갈비 골목의 시초이다. 초량돼지갈비 골목에는 30~50년 된 돼지갈비식당을 포함해 20여 집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모두들 초량돼지갈비골목에 대한 자부심들이 대단하다. 당시에는 연탄불에 갈비를 구워 은근한 고기 맛에 불 맛까지 더해 맛의 흥취가 좋았지만, 지금은 가게에 따라 가스나 숯불을 사용한다. 초량돼지갈비의 특징은 우선 고기의 신선도에 있다. 거의가 그날 소비될 고기를 갈비짝 채 주문하여 그날 소비하기에 그렇다. 그리고 가게마다 각각의 조리법으로 갈비를 직접 재우고 숙성시켜, 가장 맛있는 상태에서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도 남다르다.

초량 인근 산복도로는 부산항이 내려다보이는 수정산 산동네에 처음 개설되었다. 192030년대는 부두노동자와 방직 노동자들이, 해방 이후에는 귀환동포들이, 한국전쟁 시에는 피난민들이 살던 곳으로 부산의 원형이다. 이바구길은 지난해 3월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6·25전쟁, 월남 파병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해서 부산은 물론, 전국에서 옛 자취를 따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초량의 옛 이야기길을 따라 추억과 맛, 정성을 안고 들어서 있는 초량 이바구길 맛집들이 산재한다. 천재시인 김민부(19411972)자갈치 아지매이야기와 기다리는 마음도 이곳 일대에서 탄생했다.

초량 돼지갈비 골목은 동구 초량동 중앙 빌딩[옛 중앙 회관]에서 부산고등학교로 올라가는 길에 자리하고 있으며, 골목 안에는 약 20여 개의 돼지갈비 가게가 밀집해 있다. 대표적인 가게로는 50여 년간 한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는 은하 갈비나 부광 갈비, 대성 숯불갈비, 해운대 숯불갈비 등이 있다. 골목 어귀에는 돼지를 의인화한 높이 7m 크기의 대형 홍보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초량 돼지갈비 골목에는 돼지갈비를 전문으로 한 음식점이 모여 있으며, 부산역과 인접해 있고 인근에 상해 거리와 돼지국밥 거리 등이 자리하고 있어 부산을 찾는 외지인이 둘러보는 명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 특히 부산 곳곳에서 초량 갈비라는 상호를 붙인 가게를 찾을 수 있고 심지어 서울에서도 그 상호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명성을 얻게 되었다. 산복 도로로 대표되는 부산의 독특한 고지대 주택가를 주변에서 볼 수 있다. 초량돼지갈비 골목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에 있는 돼지갈비 전문점이 밀집한 골목을 말한다. 건립 경위는 초량 돼지갈비 골목은 부산으로 몰려든 피난민들의 거주지와 도심지를 연결하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1950년대부터 돼지국밥과 빈대떡을 파는 가게가 들어서기 시작하였다(부산역사문화대전).

변천 현황 측면을 보면,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루면서 가게가 늘어났으나, 이후 부두가 옮겨가고 하역 작업이 기계화되면서 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게 되었다. 이후 부두 하역 노동자가 감소하며 초량 돼지갈비 골목을 찾는 주 고객은 가족 단위로 바뀌게 되었다. 현재는 주변의 조방 앞 돼지국밥 골목과 상해 거리와 연계해 외지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부산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한 돼지갈비의 특징적인 맛으로 인해 초량 돼지갈비 골목은 부산 시민뿐 아니라 외지의 관광객들의 맛집 투어 코스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초량돼지갈비는 고기의 두께가 다른 곳에 비해 두툼하다. 두툼해야 육즙이 풍부하고 씹는 식감도 좋아진다. 그리고 육즙이 풍부해야 신선하고 고소한 맛도 도는 법이다. 예로부터 고기는 씹는 맛이라 했다. 부드러우면서도 입안 가득 풍성하게 씹혀야만 고기 씹는 맛이 기꺼운 것이다. 깻잎에 돼지갈비를 두어 점 얹고, 마늘과 땡초를 올려 쌈을 싸 먹는다. 마늘의 향긋하고 개운함과 땡초의 알싸함이, 돼지갈비의 고소한 육즙과 어울리며 맛있는 조화를 이룬다. 더불어 깻잎의 풋내가 뒤를 받쳐주며 개운함으로 마무리가 된다.

1980~90년대까지 부산 최고의 음식으로 전성기를 누리다가, 최근 먹방 시대를 맞아 부산 대표 음식으로 다시 소개되면서, 젊은 층과 가족 단위 가족들이 즐겨 찾는 외식 음식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부산 먹거리 투어의 필수 코스로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핫 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 전쟁 뒤 부산항 14부두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북적였다. 전후 세계 각국의 ODA 원조 물품이 모두 이곳에서 하역됐다. 이곳에 있는 갈비골목은 부두에서 1도 떨어져 있지 않고 노동자들이 많이 살던 주택가와 대략 중간 정도에 있었다. 부두 노동자들의 영양식이 됐다. “갈비에 소주궁합에 맞는 옛 맛 지키는 비결은 신선한 국내산 김해 갈비와 양념이다. 주요 특징은 갈비짝 째 주문하여 직접 부위별로, 맛있는 결따라 고객에게 제공하고, 둘째는 마늘과 생강을 많이 쓰는 양념에 있다. “고기가 두꺼우니 씹는 맛도 좋고, 육즙도 많이 나오지예.”

초량 인근에는 이들이 거주했던 산동네와 일제강점기 건물 등이 곳곳에 근대유산으로 남아 있다. 지난 1년 동안 이바구길에는 10만여 명이 다녀갔다(매일신문, 2014.9.27). 부산의 근대 문화유산을 보존해 원도심 근대역사 골목투어를 만들었다. 그냥 지나치게 되는 평범한 건물도 이야기를 입히면 그 속에 담긴 역사가 보인다.

1960년대 후반 돼지갈비를 굽는 남해집, 울산집 등 3곳이 처음 개업했다. 이후 하나씩 늘어나 38곳까지 늘었다가 지금은 20여 곳이 성업 중이다. 1960년대는 드럼통 연탄화로를 쓰다가 지금은 가스불로 바뀌었을 뿐 쇠구이 판과 조리법은 똑 같다. 2014년 현재는 노동자 대신 가족들과 탐방객, ,장년 등이 주요 고객층이다.

 

. 부산 돼지갈비문화 특성의 시사점

 

1절 주요 특성

 

1. 부산의 돼지갈비문화 토착화

 

삼국시대, 고려시대 이래의 탕과 국물문화, 6.25 전쟁과 구호물자의 집적, 전쟁 이주, 부두 노동자들의 저녁 식사 대용으로 국밥과 돼지갈비가 성행하게 된다.

19601970년대 초량 주변은 첫째,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부산에 임시수도가 세워졌을 때 범천동 인근에 교통부 청사가 자리했다. 고관 앞, 조방 앞, 교통부 사거리 등은 1950년대 후반부터 초량지역 골목주인은 부두 하역 노동자가 되었다. 난민 노동자들이 찾았던 범일동 돼지국밥과 초량 돼지갈비 골목이다.

둘째, 1970년대 중반부터 가족단위 손님이 대세가 된다. 197080년대 부산 인들은 고기 한번 먹자하면 초량으로 왔다. “예전에는 계모임을 초량에서 많이 했다.” 수퇘지는 냄새나서 암퇘지고기만 쓴다. 주인들은 대부분 세대 교체했다.

부산항의 음식문화는 음식재료와 조리법 등의 전통성, 서민들이 부담 없이 억을 수 있도록 저렴해야 하는 경제성, 맛이 있어야, 건강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특성을 띠고 있었다. “시아버지가 부두 노동자였어요. 퇴직금으로 시어머니와 함께 1968년 돼지갈비 식당을 개업했죠. 먼지를 많이 마시고 땀을 많이 흘리는 부두 노동자들에게 돼지고기가 좋다는 것을 알고 개업한 것이죠.”

부산은 자연 환경적 특성에서 자갈치 꼼장어 구이가 출현하고, 사회문화적 특성에 따라 초량의 돼지갈비가 나탔으며, 전쟁 직후부터 피란민 문화인 북한 월남인의 밀면과 돼지국밥 등이 유입 정착된다. 부산은 이러한 국내외 외부문화의 유입과 변형적 융합 등으로 특징적인 향토음식이 계승될 수 있는 토양이 침식당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부산의 돼지갈비와 돼지국밥문화의 결합과 재창조인 융합적 음식문화라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2. 음식문화의 변동과 차별성

 

첫째, 부산에 전해 내려오는 향토음식이 많지 않은 이유는 항구도시가 가지는 개방성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침입할 때 가장 먼저 풍파를 겪은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제치하 때 일본인들이 대거 부산에 거주하여 향토음식을 제대로 전승할 수 없었다(부산광역시 : 55-56).

둘째, 개항 이후 부산은 일본의 영향, 한국전쟁이후 미국의 생활문화와 가치의 혼종과 부조화가 사회속에 파급되어졌다. 폭발적인 인구증가는 만성적 도시문제를 야기하는 한편 문화의 유입과 교류의 기회를 준다. 도항 실패자 이야기인 부산에서는 일본식과 한식이 섞인 정체불명에다 부실하기 짝이 없는 술과 음식(장국밥)이 등장한다. 이에 비해 광석이 아저씨가 이북 출신의 음식점에서 냉면과 술을 사면서, “그저 음식이란 이북 음식이래랴라는 말에서 보듯 냉면과 빈대떡은 매우 안정적인 음식문화로 부산에 자리잡게 된다(조갑상 : 42). 피란민 사이에서 밀면의 부산화로 정착된다.

셋째, 사회 환경측면이다. 어묵과 한정식 등의 일본문화 이입과 정착 이것은 지리적인 항구지역적 특성과 개방적 공간이라는 공간적 특성 및 일정기 기지, 전쟁, 산업화라는 환경적 특성의 혼합적 성격에서 태생된 문화로 해석된다. 결국 부산항 대중 음식문화의 특성은 통합문화, 혼종문화라고 정리할 수 있다. 음식 특성은 한국의 대표적인 개항도시로서 이문화 결집처였다는 점으로 따라서 타 지역과 비교하여 문화유입에 능동적이었던 반면, 급격한 변동보다는 지역적 환경에 대한 대응과 전통의 외래문화의 적응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음식들은 고래의 국물문화 전통의 변형적 수용이라는 점은 조리법과 재료, 숟가락 중시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부산항 음식문화는 이들 외래 문화와의 접촉 속에 충격과 적응을 통해 변용되어진 결과다. 이상의 주요 내용을 < 2 >에 정리한다.

< 2 > 부산항 음식의 변동 및 차별성

구 분

부산항의 음식문화 변동 내용

음식변동(통합, 적응)

통합과 적응의 음식문화 : 부산 고유음식 정체성 미약

일본식 음식인 어묵, , 한정식, 메밀 소바, 오뎅 정착

매운탕() 등 국과 국물 발전

돼지국밥, 돼지갈비

차별성

차별성 : 일본 음식문화의 혼종, 대일본 접점의 도시, 활어회와 매운탕, 쯔게 다시 문화, 오뎅 토착화, 동래의 일본문화와 한정식, 조선시대 왜관문화 융합

자연 환경적 특성 : 자갈치 꼼 장어 구이

사회문화적 특성 : 초량의 돼지갈비

피란민 문화 : 북한 월남인의 밀면과 돼지국밥

향토음식 : 특징적인 향토음식이 적음

이종수(2015 : 190).

 

이렇게 본다면 부산의 대표음식들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환경적, 사회적, 문화적 통합적으로 탄생한 지역음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60년대 이래의 부산음심문화는 전통과 환경, 전쟁, 무역, 근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만들어진 서민문화가 창조해 낸 부산의 현대문화로 해석된다.

특히 부산은 조선시대 왜관교류를 통하여 自主的 문화를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며(이종수, 2016 : 211-214), 일찍부터 음식문화융합의 토대를 구축한 부산음식은 서민문화가 만들어낸 현대문화라는 점이다. 부산에 전해 내려오는 향토음식이 많지 않은 이유는 항구도시가 가지는 개방성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침입할 때 가장 먼저 풍파를 겪은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제치하 때 일본인들이 대거 부산에 거주하여 향토음식을 제대로 전승할 수 없었다(부산광역시 : 55-56).

결과적으로 부산 대중음식은 신라시대 이래 국물문화를 토대로 한 전통의 계승음식이자 또한 북방계 맥적 문화의 변형적 문화 적용으로서의 돼지갈비 문화라는 점과 국물문화의 돼지국밥과 숟가락문화의 전통이 북한 피난민들에 의하여 부산에서 개화되어 전승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부산의 음식문화는 이들 외래문화와의 접촉 속에 충격과 적응을 통해 변용되어진 결과라고 해석된다. 통합문화와 혼종문화로 분석모형별로는 통합과 동화, 적응의 특성이 혼재되어 나타난다.

부여, 고구려의 맥적에서 비롯된 갈비는 고려 때는 설야멱이라는 숯불 꼬치구이, 조선시대 너비아니로 변화하면서 발전했고, 근래 새로운 조리기구가 만들어지며 국물과 함께 먹는 현대적인 전골과 불고기, 갈비문화가 됐다. 원제국의 음식문화는 동서양의 음식문화가 융합된 혼종음식문화로 그런 세계적 혼종성이 고려와 탐라에 전파되어 오늘의 고기국물문화로 변형적으로 정착되어 토착된다.

 

3. 부산음식 평가

 

먼저, 차별화된 향토음식() 개발·관리 부족이다. 오늘날 지역의 향토음식들은 사회의 변화, 세대의 단절, 입맛의 변화, 음식트렌드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전승되고 계승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향토음식이라 하더라도 지역의 특수성을 나타내지 못하고 보편화·일반화되어가는 경향이 있다. 많은 관광객들은 관광을 통해 그 지역의 특수한 음식, 문화 등을 체험하고자 하는데 이때 재료나 맛에서 타 지역과 별다른 차별성이 있어야 매력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향토음식은 그 지역 고유의 색깔을 드러내주는 음식으로 음식관광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지만 지금 현재 전해 내려오는 부산의 향토음식은 그리 많지 않다. 부산에 전해 내려오는 향토음식이 많지 않은 이유는 항구도시가 가지는 개방성과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침입할 때 가장 먼저 풍파를 겪은 곳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제치하 때 일본인들이 대거 부산에 거주하여 향토음식을 제대로 전승할 수 없었다. 과거에는 게요리, 생선회(광어회), 염소불고기, 복매운탕, 동래파전, 주먹찰밥, 고구마 탕, 뚝배기, 재첩 국, 아구찜, 추어탕, 전복죽, 완당, 암소갈비, 민물장어구이 등이 부산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으로 분류되었다.

둘째, 체계적인 음식관광정책 수립 및 추진 체계의 미흡이다. 지역에 다양한 음식관광자원들이 존재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 지역이 관광객들에 의해 음식관광목적지로 인지되고 선호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음식관광자원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음식관광정책이 수립·추진되어야 한다.

셋째, 음식관광자원간의 유기적 연계 부족 측면이다. 음식관광에 있어 향토음식, 음식점, 음식특화시장 및 지구, 음식축제, 음식관련 행사, 지역특산품 등과 같은 요소들은 각기 개별적으로도 중요한 음식관광자원이지만 이들을 바탕으로 음식관광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원들이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춘천의 닭갈비처럼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을 취급하는 여러 음식점들이 한데 모여 특정 향토음식 먹거리 촌을 형성하고 그 곳에서 그와 관련된 음식축제 또한 개최된다면 음식관광지로서의 이미지 각인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2절 돼지갈비 스토리텔링

 

1. 전통적 맥적갈비문화의 근대적 계승

 

부여, 고구려의 맥적에서 비롯된 갈비는 고려 때는 설야멱이라는 숯불 꼬치구이, 조선시대 너비아니로 변화하면서 발전했고, 근래 새로운 조리기구가 만들어지며 국물과 함께 먹는 현대적인 전골과 불고기, 갈비문화가 정착된다.

13세기 전후 원()제국의 음식문화는 동서양의 음식문화가 융합된 혼종음식문화로 그런 세계적 혼종성이 고려와 탐라에 전파되어 오늘의 고기국물문화로 변형적으로 정착되어 토착화됐다. 1314세기 대원제국의 음식문화는 8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지역연대가설을 뒷받침하고, 지역문화로 정착되었음이 확인된다. 몽골제국 유목민들의 양고기 중심문화가 고려의 경우 농경문화에 따른 소와 돼지고기 중심의 육식과 국물문화로 토착화 된다.

우리나라에서 국물()문화의 발달이유는 주식인 밥을 부드럽게 넘어가게 하기 위함이며, 가난한 서민들의 배를 국으로 채워 포만감을 유지케 하고, 온돌의 발달로 남는 열을 이용하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삼국시대 삼국사기국문화, 려말 유목민 음식문화 유입과 채소국과 육류탕문화의 결합으로 인한 육개장, 곰탕, 설렁탕, 고사리 육개장 등으로 발전된다. 조선시대 토착화 이래 현대까지 삼계탕 등으로 탕문화가 전개중이다. 이성우는 원제국의 영향으로 선지국(청진옥, 시골집), 설렁탕(이문설렁탕), 갈비탕, 편육(낙원상가) 등의 전국화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원제국 지배문화의 유입과 영향, 자연환경과 의례적 영향, 기타 등에 영향 받으며 탕 문화로 정착, 토착화되었음을 확인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식문화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갈비문화의 연원과 확산분석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선행연구(필자 포함)들과 차별성이 있다. 주요 내용은 음식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너비아니가 수원 왕갈비로 정착하게 된 배경과 특성 등을 분석하였다. 중세 이래 갈비문화는 고려시대는 몽골 영향으로 쇠고기 문화가 이입되어 확산되고, 조선시대는 개성과 한양의 설야멱, 너비아니와 서울의 설렁탕 문화와 수원유수부의 왕갈비문화가 꽃을 피운다. 개성과 한양에서는 양반과 백성들이 장국밥, 설렁탕을 즐겨 먹었다.

전통적인 제례나 자연지리 조건 등에 따라 음식 정체성이 정립되는 한편 국제화(國際化)의 교류 영향을 받아 강한 혼종성문화로 정착됐다는 점이다. 오랜 세월 동안의 상호 교류 속에 한국적 음식문화로 변동되어 토착화 되었다는 점이다(이종수, 2018.1).

 

2. 부산 돼지갈비문화 융합 스토리텔링

 

우리나라 식문화 특성이라 할 수 있는 갈비문화의 연원과 확산분석이라는 점에서 중세 이래 갈비문화는 고려시대는 몽골 영향으로 쇠고기 문화가 이입되어 확산되고, 조선시대는 개성과 한양의 설야멱, 너비아니와 서울의 설렁탕 문화와 수원유수부의 왕갈비문화가 꽃을 피운다. 개성과 한양에서는 양반과 백성들이 장국밥, 설렁탕을 즐겨 먹었다.

첫째, 음식문화 플랫폼 구축과 스토리텔링 종합계획 수립 및 시법사업 실시 등을 제도화 함. 광역적 대응으로 인천, 강화의 추탕, 부산의 회국수와 밀면 등과 연계한 누들로드 코스를 개발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된다(이종수, 2014).

둘째, 부산 음식문화 발전의 저해요인으로 지적되는 점은 먼저 향토음식 발굴/육성 시책 미흡(11.6%), 음식점의 서비스 미비(10.7%) 등으로 나타났다. 관광 상품화 방안 측면으로 관광 상품화 방안 중요도 중 음식점 접객시설 및 서비스 개선이 4.21로 가장 중요도가 높았으며 재래시장의 향토 먹거리 상품 개발 4.00, 전통조리법 비법 계승 및 육성 3.96으로 관광 상품화 방안 중요도가 높게 나타났다.

관광의 주된 목적으로서 음식관광 장려측면에서는 관광의 주된 목적이 음식과 관련된 식도락관광/미식관광/쿠진관광, 보다 다양한 삶의 경험을 위해 음식관련 활동을 하는 요리관광으로 부산지역을 방문한 관광객 중 50% 이상은 관광 중 하나로 시장/축제/음식점을 방문했다고 응답하여 시장/축제 방문 등이 여행의 주된 목적이라고 응답하고 있다(이종수, 2015 : 191).

셋째, 이러한 저해요인에 대한 정책적 대응과제 측면으로는 먼저 부산의 음식문화 측면의 차별화 노정과 음식문화관광 프로그램의 유기적 연계 및 그 마케팅을 위한 향토음식 체험스토리텔링 개발과 향토음식 등의 테마 촌 조성 등이 대안으로 제기된다.

끝으로, 차별화 측면이다(이종수, 2016 : 214). 왜관의 현대적 복원과 스토리텔링 개발 측면이다.

 

. 나가는 글

 

본 연구는 부산돼지갈비 문화에 미친 정치, 경제, 사회적, 음식 문화적 영향과 파장을 문화변동과 유지 측면, 사회문화적 측면과 음식 문화적 측면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21세기 한식의 일부분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육식문화의 원류를 조명하였다. 이 연구를 통하여 육류의 보편화와 갈비탕 중심 음식문화의 기원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 대원제국 문화에서 유래되어 개성과 한양에서 토착화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며, 특히 고려 후기 몽골의 영향으로 육식과 채식문화가 결합되어 민족의 음식문화 정체성이 형성되고, 조선시대 들어 양반을 중심으로 한 너비아니와 현대의 갈비와 불고기로 자리 잡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

주요 내용은 고대의 맥적과 설야멱, 너비아니가 수원 왕갈비로 정착하게 된 배경과 특성 등을 분석하였다. 중세 이래 갈비문화는 고려시대는 몽골 영향으로 쇠고기 문화가 이입되어 확산되고, 조선시대는 개성과 한양의 설야멱, 너비아니와 서울의 설렁탕 문화와 수원유수부의 왕갈비문화가 꽃을 피웠으며, 그 음식유전인자가 해방과 6.25 전쟁을 전후하여 월남한 북녘동포들에 의하여 돼지갈비(돼지국밥 포함) 문화로 재탄생, 정착한 것이다.

이처럼 부산의 음식문화는 수백 년을 이어온 전통에 의해서라기보다는 개항과 광복, 특히 한국전쟁 이후 팔도 사람들이 뒤섞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정착한 팔도 음식들이 부산 방식으로 변형되면서 정착되었다고 본다면 부산에 정착한 대부분의 팔도음식들은 본래의 맛과 형식을 품으면서 새롭게 전통을 승화시켜 탄생한 재창조된 음식이라는 점에서 항도 부산은 음식문화의 용광로와 같은 도시란 특성을 띤다.

추후 후속연구과제로서 이 부분에 대한 조명을 통하여 항도 부산 음식문화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작업이 수행될 필요가 있다. 해항도시의 전통음식의 유래와 형성, 상호 영향 요인 등 변동 사례 등을 중심으로 비교 천착하는 체계적인 접근이 주요 연구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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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san Pork Galbi Culture Storytelling

< Abstract >

Lee, jongsoo(Chung-Ang University)

 

The article is organized as follows. The first clarifies research questions, the purpose of study and methodology about Busan pork galbi culture storytelling. The second deals with methods of study, literature review, previous research and theoretical background of Busan pork galbi culture storytelling. The comparative variables of a characteristic of food culture are international regional ecology, climate, 6.25 War, industrialization, so forth. This paper analysed effects among food material, recipe, food manners and Busan pork galbi culture storytelling. The third presents comparative analysis about Busan pork galbi culture storytelling. The forth suggests interchange direction for fostering Busan pork galbi culture storytelling. The last concluded. There were research effect & limitations for fostering Busan pork galbi culture storytelling.

 

Key-words : Maekjeok(貊炙), sea port city, liberation & 6.25(Korean war), immigrant worker, pork galb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