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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조선경국전 법치사상 분석

현곡 이종수 2019. 1. 6. 07:24


이 글은 2018년 12월, '퇴계학논집' 27집 게재본임. 무단인용을 금함.



                                                                                            鄭道傳 ?朝鮮經國典? 法治思想 分析*

 

 

                                                                                                                  이 종 수**

 

 

. 서 론

. ?朝鮮經國典?의 구조와 특성

. ?朝鮮經國典?의 법치제도 분석

. ?朝鮮經國典?의 현대적 시사점

. 결 론

 

 

 

 

조선창업 시 三峯은 국가의 규모와 운영방식을 중국 고대의 다양한 시각을 조화롭게 엮어?朝鮮經國典?을 통하여 제시하고, 조선시대 근본 국가통치 철학과 제도인 ?經國大典?구조 차원의 통치내용과 방법 등에 영향을 미쳤다. ?朝鮮經國典?의 구조가 중국의 ?周禮? 등과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사공학 등을 融合 창조적으로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는 점이다. 이 글은 조선시대 삼봉의 민본사상의 조명을 통하여 민본사상의 근원과 원류, 현시대의 적용방안과 효과 등을 모색한다. 특히 새로운 사상을 ?朝鮮經國典?에 담은 삼봉 정도전의 헌법사상을 재조명하여 국가제도를 정초한 지혜와 시사점을 재조명하여 혼란한 사회를 재구조화 시킬 수 있는 사회변화 대응과 개헌의 초점과 시사점을 백성의 민본사상 측면의 국민기본권, 복지권, 언론권, 지방자치, 시민권 등과 관료제 측면의 상호견제와 균형을, 군주 측면의 仁政王道 사상 등에 초점을 두고, 삼봉의 개혁정신과 사상적 내용을 발굴하여 국정의 제도적 시사점과 활용방안으로 구분하여 제언하였다.

 

     

주제어

 

 


조선, 삼봉, 性理學, 朝鮮經國典, 법치사상

 

. 서 론

 

이 글은 조선창업 사상을?朝鮮經國典?에 담은 삼봉의 국가제도를 정초한 지혜와 시사점을 民本思想과 제도적 왕권 견제책인 臺諫制度(司諫院 ) 및 반 자율적 주민통제 제도인 鄕憲 등의 제도형성에서 찾아보는 데 연구목적이 있다. 삼봉 정도전(13421398, 56)의 권력제도의 근원은 민본(民惟邦本)에서 유래했다(진희권, 2004 : 68 ; 이종수, 2014 : 121). 삼봉은 백성, 국가, 군주의 순으로 그 중요성을 자리매김한다(한영우, 1972 : 788).

조선개국기 삼봉은 국가의 규모와 운영방식을 중국 고대의 다양한 시각을 조화롭게 엮어 ?朝鮮經國典?에서 融合的 대안을 제시하고, 조선시대의 근본적 국가통치 철학인 ?經國大典?의 모체를 제시하여 국가론 차원의 통치내용과 방법 등과 규범서, 법률서로서의 틀을 제시했다(옥영정, 2015 : 8). ?朝鮮經國典?의 구조가 중국의 ?周禮?와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事功學 등을 창조적으로 융합,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는 점이다(서정화, 2017.4).

이하에서는 여말 선초 새로운 사상을 ?朝鮮經國典?에 담은 삼봉 정도전의 법치사상을 治典을 중심으로 재조명하여 국가제도를 정초한 민본사상을 려말 ?周禮?에 입각한 성리학적 개혁사상을 구체적인 민본사상 구현체인 과전법 사례 등을 중심으로 예시하고 현대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

 

. ?朝鮮經國典?構造特性

 

1절 조선 건국과 법제, 사상의 정의

 

1. ?조선경국전?구조적 특징

 

삼봉의 새로운 국가구상은 ?朝鮮經國典??經濟文鑑?에서 구체화 된다. 그는 이 두 권에서 조선이 나아갈 정치철학과 이념, 제도들을 제시하였다. 전자가 제도나 법령, 주체에 주력했다면, 후자는 치자층에 중점을 뒀다(정호훈, 2006 : 192).

삼봉의?朝鮮經國典?(1394)은 상·2권으로 된 필사본으로 치국의 지침을 삼기 위해 六典에 따라 조선왕조의 모든 관제의 대강을 서술했다(정호훈, 2006 ; 정긍식, 2015 : 101-107). 조선경국전의 上卷은 왕과 관련된 사항 및 치전, 부전, 예전을, 下卷은 정전과 헌전의 내용이다.

삼봉이 중시한 건국사상의 핵심은 백성, 국가, 군주 순이었다. 먼저 백성측면의 삼봉의 민유방본(民惟邦本) 본고방령(本固邦寜)’?書經??周禮?에 근거한 말이다. 즉 민본사상(民本思想)은 민심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으로,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며, 이념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에 이르도록 지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둘째, 삼봉은 국가권력의 근원과 관련 권력남용 방지를 위해 여러 기관에 권력을 분배해야 한다고 했으며,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주대의 삼공체제와 유사한 三宰相合議體制를 유지코자 하였다. 재상은 군왕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임명하고, 재정관리권, 군사 통수권 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삼상(領相, 左右相)제도는 조선 500년 동안 시행되었으며, 그의 재상제도는 3정승(,,우의정 : 1), 2명의 좌우찬성(1), 2명의 좌우참찬(2) 7명의 재상이 중심이 되는 구조였다.

군주를 보필하는 재상은 백관을 관리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소임으로 삼았다. 즉 군주의 부족한 부분을 보상한다는 의미의 과 백관들이 자신의 직분에 어긋나지 않도록 제한한다는 의미의 자로 구성됐다. 삼봉이 재상중심주의 제도를 주창한 이유는 자신과 동료들의 권력강화 목적도 있었으나 그것보다는 이 불확실한 세습군주의 전제정치로는 民本政治를 보장할 수 없다는 신념에서 기초한 것이었다(민병학 외, 1998 : 116).

지방통치구조에서 관찰사는 직계권, 국왕직속, 수령에 대한 지도, 감독, 직권남용 견제, 포폄권 등을 보유했다. 贓吏(장리)를 석서(碩鼠)라고 하여 엄히 평가하고자 했으니 삼봉의 법치사상은 순자와 유사하다.

셋째, 군주는 통치권의 제한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이재룡, 1999 : 248-250). 삼봉의 통치체제 구상은 민의 보호를 위해 지방토호에 의한 자의적인 지배를 배제하고 중앙정부에 의한 전국적 지배를 강화하는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했으며, 그 중심은 군주였다(신주호, 2016 : 108). 민본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는 부국강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병농일치를 통한 국방체제의 강화와 중앙군의 증대를 통한 수도치안의 강화를 지향했다.

 

2. 후속 법제

 

첫째,?經濟文鑑?(1395)經國濟世 내용으로 치전을 보강한 내용이다(정호훈, 2006 : 188). 적어도 고려 말의 혼란상의 극복하고 새로운 왕조를 성립시키는 일에 기여하였다. 삼봉이 생각하는 경세제민이란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쉬우면서도 그 혜택이 일반백성들에게 미치는 실용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民本政治賢人政治爲民政治 같은 것이 통치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면, 삼봉이 경제문감에서 고민한 것은 어떻게 그 이상을 성취할 것인가 하는 보다 쉽고도 구체적인 문제였다. 오랜 유배생활을 통하여 백성들이 원하는 세상이 학자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것이라는 점이다.

정도전은 정치란 윤리·도덕을 실현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경제생활의 안정이 필수로 경제생활의 안정이야말로 통치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경제생활의 안정이나 이익의 추구는 반드시 천리가 그 전제가 돼야 하며 인욕은 천리에 반하는 것으로서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정도전이 정치·경제·윤리를 삼위일체로 인식한 경제관을 확인할 수 있다(로쿠단다유타카, 2016).

정도전은 ?朝鮮經國典?에서 조선을 동주(東周)’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즉 동쪽의 주변국 조선을 중화문명의 상징인 주나라와 같은 국가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고조선의 天孫사상 이념인 홍익인간 사상이 그 출발점이다. 檀君조선보다 기자조선에서 국호 조선을 가져왔다. 檀君을 동방의 첫 受命君主로 여겨 평양부에서 祭祀, 해금 時祭 등을 거행 했었다.

둘째, ?經濟文鑑別集?(1397)은 군주론에 초점을 둔다(김인호, 2005 ; 도현철, 2000). 주요 내용은 태조 6(1397)에 지은 것으로, 중국의 요, 순으로부터 원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왕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것과 경계해야 할 것을 서술하였으며, 고려의 30대 동안의 득실을 또한 기록한 후 주역을 인용하여 군주의 도리와 역할 등을 논했다(진희권, 2004 : 59).

?書經?은 동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하··주나라, 이상 삼대 성왕의 공고한 왕권을 기록한 사관들의 기록으로 정도전의 군주론인 ?經濟文鑑別集?에서는 서경에 등장하는 성왕들을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한다. ?書經?은 유교의 십삼경 중에 하나로 요순시대,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의 왕들이 내린 포고문, 신하들의 상소, 왕의 연설문 등 각종 정치문헌을 모아둔 것이다. 공자가 편찬하였다고 전한다. 전한 시대에 유학이 국가이념이 되자 존중의 의미를 담아 상()자를 붙여 상서라고 불렀다. 이후 송나라가 되면 삼경에 든다는 의미로 ?書經(尙書)?이라고 칭해졌다.

셋째,?便民事目?(1392)은 신생 조선 신흥사대부가 국가 운영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유교에 의해 국가를 다스리고자 즉위교서에 포함한 내용이다(정긍식, 2015 : 88 ; 95-102). 이들은 중앙집권적인 문치주의를 표방했다. 이성계의 즉위교서 ?便民事目? 17조에 포함된 내용은 관혼상제, 수령, 전곡, 역관, 호포, 형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새 왕조가 새로운 세상을 열려는 열망을 담은 것으로, 그 일부를 예시한다.

 

3. 삼봉의 융합적 법치사상의 특징과 정의

 

첫째, 삼봉의 ?朝鮮經國典??書經?, ?周禮?에 토대하여 중국 제도를 조선에 적용한 사대주의적 요인을 부정할 수 없으나 그의 위민의식과 자주의식(철령위, 요동정벌)은 오늘날 우리나라 국민의 대 내,외적 자주의식사상의 뿌리가 되었다. 예컨대 그의 법치사상과 관료제 사상에는 성리학적 사상과 유배생활에서 체득한 백성중심 사상으로서의 위민의식이 강하다는 점이다.

둘째, 融合性이다. 한국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孟子?사상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왕도는 치세에 적합한 통치사상이고 패도는 난세에 그 유력을 발휘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국가경영의 치도관에서는 왕도적 비전과 패도적 전망을 사상적 충돌 없이 융합하고 있다(권행완, 2012).

15세기 전후의 삼봉의 ?朝鮮經國典?융합민본사상은 마키아벨리 정치학이나 헤겔의 지적을 무색하게 한다(서정화, 2017 ; 이종수, 2018.2). 그의 ?朝鮮經國典? 법치사상은 전문을 포함한 백성중심의 통치제도를 성리학, 사공학, 경세학을 융합하여 현실사회에 구체화하고 2018년 현재도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朝鮮經國典?의 구조가 중국의 ?周禮?와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사공학 등을 창조적으로 융합,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이종수, 2018.5). 이러한 삼봉의 성리학, 사공학, 경세학의 결합과 융합적 접근은 오늘날 새로운 정치, 행정사상의 개발을 논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삼봉의 융합적 법치사상은 고대 중국과 유학, 사공학, 경세학, 성리학 등의 주요 사상의 융합과 민본주의를 골간으로 한 백성중심의 권력구조의 제도화 였다는 점으로, 삼봉의 인문융합 법치사상은 ?書經?, ?周禮?에 토대한 측면과 그의 법치사상과 관료제 사상에는 성리학적 사상과 유배생활에서 체득한 백성중심의 위민의식이 강하다. 삼봉의 법치사상에 미친 주요 영향은 ?心氣理篇?, 고대 유학(공맹 등)과 중세 성리학, 삼봉의 고려 후기 신 성리학(元代官學的 朱子學)의 주체적 수용 측면과 특성 등 등이다.

넷째, 삼봉은 정침의 에서 혁명사상 단초를 다진다(문철영 : 403). 고려 후기 정침(鄭沉)은 나주(羅州) 사람으로 이 고을에서 벼슬하여 호장(戶長)을 하였는데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잘하고 집안 살림살이는 돌보지 않았다. 홍무(洪武) 4(공민왕 20, 1371) 봄에 전라도 안렴사의 명()으로 제주도의 산천(山川)에 제사를 지내는 축문(祝文)과 폐백(幣帛)을 받들고 바다를 건너 가다가 왜적(倭賊)을 만났다.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의논을 하였는데, 다른 사람 모두는 두려워서 항복하자고 하였지만 오로지 정침은 불가를 외쳤다. 그는 적들과 싸우기를 결심하고 활시위를 잡아당기니, 적들은 활시위의 소리에 따라 거꾸러지고 감히 다가오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화살이 떨어져서 일이 여의치 않음을 알고 관복(官服)과 홀()을 갖추고 바르게 앉아 있다가 스스로 물에 빠져 죽었다. 배안에 있던 사람은 모두 적에게 항복하였고 죽은 사람은 정침뿐이었다(鄭道傳, ?국역 삼봉집?1376 ‘정침전’). 삼봉은 적이 이미 해치지 못하자 자살을 결단하여 헤아릴 수 없는 깊은 물에 몸을 던져 털끝만큼의 더럽힘도 없이 조용하게 의열(義烈)을 이루었으니, 강개(慷慨)롭게 몸을 희생한 것은 옛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 미치지 못할 것이다. 이는 모두가 천품이 아름다운 것에서 나온 것이므로 이름을 좋아하는 선비가 목적한 바가 있어서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고 감탄한다.

이상의 내용을 토대로 삼봉의 인문융합 법치사상을 정의하면, “삼봉의 융합적 법치사상은 수기치인(국가 운영관리의 제도화)의 수단으로 성리학적 철학과 이상의 구현을 위한 고대 전국시대 ?書經?, ?周禮?, 事功學, 經世學, 주희의 주자학, 정침의 사상을 融合하여 조선건국 법제()와 한양 도성 등에 투사한 제도 실천의 기반과 이념으로 정의한다.

 

2절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1. 선행연구

첫째, ?朝鮮經國典??經濟文鑑?내용은 정도전, 經濟文鑑등과 도현철(2003)의 삼봉 사공학, 도현철(2000) ?經濟文鑑? 분석, 도현철(2009)?三峰集?과 신유학 분석 등을 들 수 있다.

둘째, 삼봉의 권력구조 측면은 백완기(1992), 김일환(2008), 정긍식(2015) 등과 법치사상 측면은 이재룡(1999). 김인호(2002), 정호훈(2006) 등이, 김비환(2008), 정긍식(2015), 진희권(2014), 이종수(2018) 등은 주로 ?朝鮮經國典?의 법치내용을 분석하고 있다.

셋째, 이종수의 포폄제도, 민본사상, 포은과 삼봉, 포폄관 분석 등(이종수, 2000 ; 2013 ; 2014 ; 2015 ; 2016 ; 2017)과 삼봉의 포폄관(전광섭, 2016)과 성리학 사상측면(이종수, 전광섭, 2016.2 ; 이종수, 이병렬, 전광섭, 2015.12)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의 주요 내용은 삼봉의 법치사상의 구체적 제도 적용으로서의 褒貶사례의 인사제도적 특성과 현대적 활용방안을 제시하였다.

넷째, 삼봉의 사상 관련해서는 고명완(1991)의 정침에 대한 소고 : 정도전의 나주유배와 관련하여가 참고된다. 조선경국전의 가치(진희권, 2004)와 법치사상 측면은 이재룡(1999), 김인호(2002), 정호훈(2006), 김인규(2014), 김일환(2008), 김성현(1984), 한석태(1980) 등이 기초법으로서의 헌법 측면분석과 김일환(2008)의 삼봉헌법과 법치사상 측면 등 등을 들 수 있다.

이상의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은 조선개국기 통치 철학과 주요 내용을 담은 삼봉의 ?朝鮮經國典?등을 중심으로 현대 법치사상적 시사점 분석이라는 점으로 이상의 주요 내용을 < 1 >에 정리한다.

 

< 1 > 선행연구 분석

구 분

선행연구 분석과 차별성

연구목적

연구

방법

주요 연구내용

주요 내용과 경향

한석태(1980), 조선경국전의 정치직 측면

질적 접근

조선경국전의 정치적 의의

김성현(1984) 조선경국전의 법사상

삼봉의 법치 철학

김인호(2002), 육전체제

선초의 육전 체제

서정화(2017), 조선경국전

조선경국전의 가치

김일환(2007), 조선건국과 법전

조선초기 법전

정긍식(2015), 조선경국전의 체제

조선경국전의 법치구조

신주호(2016.9a), 정도전의 헌법 사상

정도전의 헌법 구조

신주호(2016.9b), 정도전의 헌법 사상

정도전의 통치 체제

진희권(2004), 조선관료제와 삼봉

조선통치제도의 법치사상

이종수(2018), 삼봉의 ?朝鮮經國典?분석

?朝鮮經國典?10차 개헌시사점

이종수(2016), 삼봉의 포폄관

삼봉의 포폄사상과 사례분석

이종수(2014), 삼봉의 민본사상 분석

삼봉의 민본사상 사례 분석

이종수(2014) 삼봉의 과전법

삼봉의 과전법 집행사례 분석

이종수(2016.12), 삼봉의 포폄관

삼봉의 포폄제도 분석

이종수, 이병렬(2017), 삼봉의 수기관

삼봉의 수기치인법 분석

이재룡(1999), 삼봉의 법사상

삼봉의 법사상 특성

정호훈(2006), 삼봉의 학문체계

삼봉의 학문체계

김인규(2014), 주례와 조선경국전의 예

주례와 조선경국전

연구의 차별성

조선개국기 삼봉의 ?朝鮮經國典?법치사상 분석

사료, 질적 분석

조선개국기 삼봉 법치제도의 특성과 차별성 분석

 

 

2. 內容 分析의 틀

 

이상의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은 조선개국기 통치 철학과 주요 내용을 담은 삼봉의 ?朝鮮經國典??經濟文鑑?을 중심으로 사회변화 대응과 개헌 등을 위한 시사점을 백성, 관료제 및 군주 등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제언했다는 점이다. 분석의 틀은 삼봉의 법치사상의 시사점을 중심으로 재조명하여 혼란한 사회를 재구조화 시킬 수 있는 국가 제도적 측면의 제도개선을 위한 백성, 국가(관료), 군주의 순으로 현대적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분석의 틀은 백성관(對民觀), 국가(官僚制), 군주(임금)관 대안분석이라는 점에서 차별적이다(이종수, 2015 ; 2016 ; 2017.1). 군주론, 재상론, 언관론, 감사, 수령론 등 ?조선경국전?의 주요 구조와 내용, 독창성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 ?朝鮮經國典?의 법치제도 분석

 

1절 민본사상의 형성

 

1. 민유방본 사상

 

청년시절 삼봉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은 정몽주였다. 그는 ?大學??中庸?을 권유하고, 후에 ?孟子?를 준다. ?孟子??論語?보다 민본과 민생을 강조하고,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제시했다.

?高麗史?열전및 기타 문헌에 의하면 삼봉의 유배지는 모두 나주목 회진현으로 되어 있다(이우성, 1966 : 264). 소재동(消災洞)은 나주 소속의 부곡(部曲)인 거평 땅이었다. 정도전의 귀양이유는 북원의 사절을 환영하려는 정부의 방침에 반발했기 때문이다. 소재동 주민(백성)들은 황연, 김성길, 김천, 서안길, 김천부, 조송 등으로 이들은 대부분 술을 좋아했다. 황연의 아내는 술을 잘 빚었으며, 그는 술 마시기를 좋아했다. 소재동은 30대 중반의 정도전에게 민본사상의 배움터가 되었다. 삼봉사상의 근원은 바로 위민사상과 민본(民本)사상이다. 위민(爲民)과 안민(安民) 역시 백성을 근본으로 하는 민본사상에서 나아간 것이다. ‘버려진백성에 대한 깊은 성찰이었다.

삼봉의 민유방본(民惟邦本) 본고방령(本固邦寜)’?書經??周禮?에 근거한 말로 즉 민본사상(民本思想)은 민심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으로, 백성과 더불어 함께 하며, 이념적으는 모든 사람이 에 이르도록 지향하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이종수, 2015 ; 김일환, 2008 ; 김인규, 2014 : 29). 삼봉의 사상적 토대는 민본(民本)사상이다.

홍문관 부제학 이언적, 직제학 이준경, 응교 유진동, 부응교 송세형, 교리 권철과 이황, 부교리 김반천, 부수찬 이홍남, 박사 박공량, 저작 민기, 정자 홍담이 상소를 했다. "백성의 고통을 돌보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書經?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굳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했습니다. 경주 주해서에 이르기를 '백성은 나라에 의지하고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니, 백성을 아끼지 않고서 그 나라를 보전할 수 있는 자는 없다' 했습니다."

임금이 명을 내렸다, "통천의 소실된 민가 124호와 평해의 소실된 민가 30호에 이재민 구제를 위해 내리는 특전 외에 쌀 한 석을 더 분급하도록 하라 또 올해 부담해야 할 신역을 줄이거나 면제하도록 하라. (...) 관찰사가 여건을 고려해 공사의 요역 또한 탕감해주어라. 이후 구휼 경위와 결과를 문서로 보고하도록 하라. 엊그제 관찰사가 이미 특별 관리를 현지에 파견했다고 하니, 의정부에서는 향촌 백성이 안정을 찾아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그 임무를 각별하고 엄중하게 수행하라 일러라. 또한 긴급 공문서를 발송해 관아에서 실행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라." 삼봉은 백성을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적인 존재가 아니라 유교정치의 목적으로 상정했다.

 

2. 官僚制(宰相官僚)

 

첫째, 그는 권력남용방지를 위해 여러 기관에 권력을 분배해야 한다고 했으며,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經濟文鑑?(태조 4, 1395)은 경국제세(經國濟世)와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은 上卷은 관리로서의 태도와 책무 및 재상제도의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서술하고, 이어 재상의 직책과 진퇴의 자세를 기술하고 있다. 재상의 역할은 정책의 중심기관이어야 한다고 했으며, 재상은 군왕을 바르게 하고, 백관을 임명하고, 재정관리권, 군사 통수권 등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下卷은 대간(臺諫)위병(衛兵)감사(監司)수령(首領)의 직책을 논했다. ?朝鮮經國典?이 주로 통치체제에 대한 내용이라면 ?經濟文鑑?經國濟世經世濟民을 제목으로 삼은 서적이다.

둘째, 재상(宰相)중심의 중앙집권적 관료체제(이재룡, 1999 : 251) 측면에서 보면 주대의 삼공체제와 유사한 三宰相合議體制를 유지코자 하였다. 三相(領相, 左右相, 1)4명의 左右贊成(1)左右參贊(2) 7인의 재상제도는 조선 500년 동안 시행되었다.

셋째, 조선의 대간제도(臺諫制度)는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장치였다. 臺諫이란 백관들의 감찰 임무를 맡은 대관(臺官)과 국왕에 대한 諫爭의 임무를 맡은 간관(諫官)을 합친 말이다. 주로 군주·백관의 과실을 간쟁 탄핵하며, 관리 인사에 대해 서경권(署經權, 임금의 관리임명에 대한 대간의 동의권)을 행사하는 등의 일들이 주 임무다. 군주 견제장치로서의 諫官의 주 임무는 군주의 비행을 탄핵하는 일이다. 간관은 인신(人身) 과오보다 심술(心術)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을 더욱 중시했다. 간관은 임금이 무엇을 취하고, 버려야 하는지를 충언함으로써 임금을 바르게 하는 일을 한다. 삼봉은 자유롭게 임금에게 말하는 직위는 재상과 간관밖에 없다고 보았다. 諫言은 국왕의 행위나 정책결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데 근본적인 목적을 두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왕권을 규제하는 기능 역시 중요한 것이었다.

?經國大典?에는 사간원 업무를 간쟁(諫爭, 잘못된 일을 고치게 말함)과 논박(論駁, 논하여 잘못을 지적함)으로 규정했다. 諫爭은 국왕에 대한 견제이고, 論駁은 일반 정치에 관한 언론 활동이다. 조선왕조 500년 유지 비결의 핵심 중의 하나인 대간제도는 국왕과 대신들의 독단을 견제하고, 시정의 풍속을 바로잡으면서 관리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감찰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부정부패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간관에게는 신분 보장과 특별한 예우가 제도적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포폄(褒貶, )을 받지 않거나, 당상관도 정중히 답례를 하도록 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의정부나 6조에 얽매이지 않은 사간원은 독립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간관은 재상과 대등하다. 천하의 득실과 생민의 이해, 사직의 대계와 같이 오직 그 듣고 본 바 직무에 얽매이지 않는 것은 오직 재상만이 행할 수 있고 간관만이 말할 수 있으니, 간관은 직위가 낮아도 재상과 대등하다.

넷째, 지방통치구조에서 관찰사는 직계권, 국왕직속, 수령에 대한 지도, 감독, 직권남용 견제, 포폄권 등을 보유하고, 권농과 주민안집, 조세와 전곡관리, 교육 및 기타 업무를 수행했다. 관찰사는 수령을 잘 다스려야 하고, 올바른 고과로서 수령의 능력을 바르게 평가해야 했다. 즉 관찰사는 소관지역을 순력(巡歷, 관찰사의 고을 순회)하여 수령의 성적을 공정하게 고과하고 보고하는 것이 주된 임무 중의 하나였다. 관찰사의 관할수령과 관원에 대한 고과의 기준은 수령칠사(守令七事, 수령의 實績 평가 기준)였다.

 

3. 군주론

 

?經濟文鑑別集?(1398)에서 삼봉은 君主의 지위, 역할과 관련 군주를 국가를 건설하는 데 하나의 구심적 존재로 파악하였으나 실권을 행사하는 군주가 아니라 상징적 존재로서 군주여야 한다고 보았다. 왕은 재상을 선택, 임명하고, 재상과 政事를 협의하고, 결정하는 존재로 보았다. 왕은 세습되어도 가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왕은 오늘날 입헌군주제의 군주나 내각책임제의 대통령과 유사한 지위다.

임금은 선악과 사리를 판별하는 데 항상 세간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진희권 : 61). 비록 아무리 총명한 임금이라 할지라고 여론을 돌아보지 않고 자의대로 판별한다면 위험하다는 것이다. 통치체제로 민의 보호를 위해 지방토호에 의한 자의적인 지배를 배제하고 중앙정부에 의한 전국적 지배를 강화하는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했으며, 그 중심은 군주였다. 민본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는 부국강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병농일치를 통한 국방체제의 강화와 중앙군의 증대를 통한 수도치안의 강화를 지향했다.

정도전은 천지자연의 큰 덕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인()이라고 해석하고, 왕은 바로 이러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으로써 왕위를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 생명을 창조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 왕이 가져야 할 최고의 덕목이며, 그러한 마음을 잃으면 백성이 임금을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형벌이나 법률 위주의 정치는 인간의 범죄를 일시적으로 방지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인간 그 자체를 바르게 만들지 못한다. 이에 비해 덕과 예로써 하는 정치는 인간 그 자체를 올바르게 만들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효과를 가져온다고 하였다.

삼봉이 국체인 왕정(王政)의 근본을 천명하여 역성혁명의 정당성을 규명한 글이 바로 正寶位(?朝鮮經國典?). 이에 의하면 새 왕위(王位)는 천의(天意)와 인심(人心)에 순응한 인의 발로로써 왕정의 큰 근본인 인정(仁政)의 실현으로 규정한 것이다.

 

4. 3대 변수의 시사점 함의

 

첫째, 민본사상 측면이다. 맹목적 충절보다 민본을 중시한 사상이 바로 소재동에서 잉태되었다(이종수, 2014). 백성 측면의 민본적 함흥 향헌 시행 사례로 태조는 1398(7) 그의 향리인 풍패(豊沛)를 위해 향가조목(鄕家條目) 41조를 제정하고, 추후 효령대군()으로 하여금 그것을 증본하여 향리에 반포, 실시하게 하였다.

둘째, 재상중심주의(이진표, 2000 : 202)측면과 관련 참다운 선비(眞儒)가 행정을 맡아야 한다는 점이다(권행완 : 79). ()는 고정된 세습신분이 아니라 자질이 뛰어난 자라면 누구나 교육을 받아서 사가 될 수 있으며, 농사를 겸할 수 있는 계층이라고 역설한다. 관료적 측면은 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군주를 보필하는 재상은 백관을 관리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일을 소임으로 삼았다.

셋째, 군주 측면이다. 군주는 백성을 섬기고, 인정을 베풀고 신하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했다. 통치체제로 민의 보호를 위해 지방토호에 의한 자의적인 지배를 배제하고 중앙정부에 의한 전국적 지배를 강화하는 중앙집권체제를 지향했으며, 그 중심은 군주였다. 민본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는 부국강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병농일치를 통한 국방체제의 강화와 중앙군의 증대를 통한 수도치안의 강화를 지향했다. 통치윤리는 인정(仁政)과 덕치(德治)가 근본이 되어야 하고 형벌은 보조적 수단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의 3변수 측면의 주요 시사점을 <2>에 정리하고자 한다.

 

<2> 분석내용별 특성

구분

특 성

사례와 효과

현대적 시사점

삼봉의 법치 사상

백성측면

민유방본

鄕憲 시행, 과전법

주민복지, 주민자치

관료측면

宰相, 간관, 대간, 탄핵

褒貶, 기관 간 견제

관료 선발과 평가

公遍(公平無私)

군주측면

仁政, 王道

勤政殿, 倫常, 仁政德化

財産 私有 禁止

민본 군주

백성에 책임

 

2?朝鮮經國典?의 독창성과 차별성

 

1. 제도적 독창성

 

첫째, ?朝鮮經國典?의 헌법적 가치 측면이다. ?朝鮮經國典??經濟六典?(1397), ?육전등록?(1426)의 토대이자 조선의 기본법전이며, 국가운영서인 ?경국대전?(1485)의 모체였다.

둘째, 외래사상의 독자적 주체화이다. ?朝鮮經國典?의 구조가 중국의 ?주례?와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사공학 등을 창조적으로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는 점이다(서정화, 2017.4). 朝鮮經國典??周禮?의 육전체제를 조선의 현실에 맞게 조정한 법제정책이었으나?周禮?에서는 재상제도와 科擧制 등을, , 唐制度에서는 집권구조와 군사, 군현 제도 등을, ?大明律?에서는 형법제도를 조선시대에 맞게 제도화 한 우리의 전통적 방법에 기초하여 입법화됐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셋째, 삼봉의 법치체제의 특징과 평가 측면을 보면, 정도전은 ?朝鮮經國典?, ?經濟文鑑?에 중국 남송 대 저술인 ?주례정의?·?산당고색?·?서산독서기?·?주관신의? 등의 내용을 원용했다(도현철, 2000).

넷째, 경세제민(經世濟民)이다. 삼봉이 생각하는 경세제민이란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쉬우면서도 그 혜택이 일반백성들에게 미치는 실용적인 것이었다는 점이다. 삼봉이 ?經濟文鑑?에서 고민한 것은 어떻게 그 이상을 성취할 것인가 하는 보다 쉽고도 구체적인 문제였다. 특히 오랜 유배생활을 통하여 백성들이 원하는 세상이 학자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정도전은 정치란 윤리·도덕을 실현하는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경제생활의 안정이 필수로 경제생활의 안정이야말로 통치의 근본이라고 말했다.

다섯째,?朝鮮經國典?은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1527)?君主論?(1513) 보다도 118년이 앞섰고, 그 내용상의 심오성은 물론 훨씬 진보적이다. 마키아벨리는 정치와 도덕을 구별하고, 군주의 통치술을 강조했지만, 삼봉은 정치와 도덕을 融合하고 연결시켜 도덕정치의 標準을 세웠다는 점이 獨創的이다.

 

2. 삼봉사상의 차별성

 

첫째, 삼봉사상의 차별성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와 제도적 실천이었다. 유학의 비조 공자도, 역성혁명을 주장했던 맹자도, 신유학의 태두 주자도, 그 어느 유학자도, 서양의 정치학자 마키아벨리, 경제학자 마르크스도, 조선시대 퇴계나 다산도 국가를 건국하여 유교이념을 제도적으로 실천하지 못했으나 오직 삼봉만이 유교이념의 정치적 실천과 국가 통치를 현장에서 시현시키고자 하였다. 국가경영의 치도관에서는 왕도적 비전과 패도적 전망을 사상적 충돌 없이 융합한 것이다(권행완, 2012).

둘째, 정침의 의 내면화이다. 삼봉은 정침의 에서 혁명사상 단초를 다진다(문철영 : 403). 정침은 한낱 시골의 아전의 신분으로 적에게 항복하는 것이 의가 아님을 알았으며, 아무리 다급한 상황에서도 그 바른 자세를 잃지 않고 정장을 갖추고 죽음을 기다려 적이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으니, 그 충성되고 씩씩한 기백이 흉악한 적들의 마음을 감복 시켜서이다.

셋째, 조선시대 유학에서 정도전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정치적인 이유 및 사상적인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정통 성리학에서 중요시하지 않거나 논란이 되는 이론을 받아들여 조선사회에 적용했다는 점이다. 정도전은 사서오경 가운데 ?儀禮?보다는 ?周禮?를 강조하였다. 주희는 ?儀禮?를 경으로 보고 중시했으나, 정도전은 주자학적 정치이념을 ?周禮?를 중시하여 신 국가 정치체제 기본골격으로 삼고자 하였다. ?朝鮮經國典?의 구조가 중국의 ?周禮?와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사공학 등을 창조적으로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이종수, 2018.5).

 

3. ?朝鮮經國典?價値

 

첫째, ?朝鮮經國典?은 조선의 최초의 헌법에 해당한다. 유교적 법치론에 토대했다. ?朝鮮經國典?에서 삼봉은 국가제도를 백성중심의 민본사상(民本思想)과 국가, 군주 등의 순으로 중요성을 제시하고, 제도적 왕권 견제책인 대간제도(司諫院, 司憲府 ) 및 반 자율적 주민통제 제도인 향헌(鄕憲) 등을 제도화 하였다.?朝鮮經國典??經濟六典?을 거쳐 뒷날 ?經國大典?이 성립되는 모체가 되었다. 조선이란 국호는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기원한 것으로 곧 조선은 동주(東周)임을 강조한다.

둘째,?朝鮮經國典?은 정치이론서이면서, 동시에 조선왕조의 최초의 헌법에 해당하며, 근대헌법 이념의 핵심적 요소를 구비했다고 평가된다. ?朝鮮經國典?은 한국사상사 상 관념과 의지가 일치를 이룬 대표적인 지행합일의 저술로서 훌륭한 정치학원론이 되었다. 이후 ?經國大典?, ?續大典?, ?大典會通?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은 큰 틀에서의 변화없이 50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F.Hegel(17701831)은 동양에는 헌법(Verfassung)이란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조선에서 14세기에 유교적 통치원리에 의한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가 구상, 실천되었다는 사실은 세계의 법사상사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 ?朝鮮經國典?의 현대적 시사점

 

1절 삼봉의 融合민본사상

 

1. 삼봉의 融合민본사상

 

融合다양한 형태의 만남과 깊이 있는 접촉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면 2010년 스티브 잡스(Steve Jobs)iPad2 발표에서 인문학과 결합된 기술을 강조하는 지점이 융합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세상에 소개할 때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교차하는 지점이라고 했듯이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만나고, '기술과 예술'이 융합하면 개개의 분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창조적인 일들이 만들어진다.

학문통합과 삼봉의 3교 통합사상(이종수, 2018.8 : 49)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학문융합과 관련 공학자와 인문학자, 사회과학자가 합심해 해결해 나가야한다고 강조되는 시점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Consilience'(2007)'통합(Integration), 융합(Convergence), 통섭(Consilience)'을 구분한다. 융합(Convergence) 은 화학적(Chemical) 결합으로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함'이다. 통합이 물리적인 합침이라면 융합은 화학적 합침이다. 학제 간 벽을 허물고 통합하자는 의미가 통섭이다. 이질적인 두 분야를 단순 통합하거나 종합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 학문 분야 간의 소통을 강조한다. 통섭은 생물학적(Biological) 결합으로 전체를 도맡아 다스린다는 뜻으로 학문이 널리 통하는 큰 줄기()를 잡()는다는 의미다.

14세기 전후의 삼봉의 ?朝鮮經國典?융합민본사상은 마키아벨리 정치학이나 헤겔의 지적을 무색하게 한다(서정화, 2017 ; 이종수, 2018.2). 그의 ?朝鮮經國典? 법치사상은 전문을 포함한 백성중심의 통치제도를 성리학, 사공학, 경세학을 融合하여 현실사회에 구체화 했다는 점이다(이종수, 2018.8 : 49)

 

2. 민본법치사상의 현대적 의의

 

첫째, 도덕과 실용의 조화노력이다. 그는 의리론적 도통과는 별도로 경세론적 유교이념의 실천을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하였다(장동희 : 15).

둘째, 수양관 측면이다. 삼봉은 독행, 내실이 중요성을 피력한다(류창규, 2006 : 96-99). 삼봉은 안연을 닮고자 했다(이종수, 이병렬, 2017.12).

셋째, 물질적 기초로서 국가재정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생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농업생산이 진흥되어야 하고, 또한 토지소유관계가 재조정되어야 했다. 전제개혁론의 역사적 측면은 첫째, 고려 후기 원대 성리학 영향측면에 급격한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사전의 공전으로의 변화다. 둘째, 유배시기 촌로들과 애민 체험 및 권문세가들에 대한 분노 측면에서의 민본관이다. 9년간의 유배와 방랑생활에서 백성들의 생생한 애환을 같이 겪으며, 개혁 마인드를 키웠다.

 

 

2절 사회적 활용

 

1. 활용 측면

 

첫째, 종로구청 일대에 해방구로서의 三峰의 거리를 조성하고, 그곳에 삼봉 흉상을 건립하거나 세종로에 동상 건립을 제안한다(이종수, 2016). 삼각산 삼봉재 정좌프로그램개설과 활용, 도성 걷기 체험 프로그램 등과 연계한다.

둘째, 현대사회 공동체 형성 과제측면으로, 현대사회는 개인주의 발호로 공동체정신이 말살된 지 오래다. 따라서 그 회복의 대안으로서의 홍익공동체를 상정할 수 있다.

셋째, 향헌의 토대(주민자치 측면) 정립과 시행이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면서 '데이터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회자된다. 정보 독재 시대에서 정보 통제 시대를 거쳐 정보 개방 시대가 열렸다. 작게 보면 행정 정보 공개 정책부터 데이터 민주주의가 시작됐고, '오픈 거버넌트'(열린 정부) 정책이 본격화 될 전망이다. 블록체인 정부의 토대가 住民原權原理이다. 그 출발점이 삼봉의 민본사상으로 오늘날 지방자치, 주민자치의 토대가 되며, 그 접근 수단이 주민 플랫폼(platform)이다.

 

2. 현대 인사제도적 활용

 

첫째, 삼봉의 치인은 교화를 통하여 접근한다. 교화는 덕치(왕도), 질서는 패도(법제, 강제)로 접근했다. 삼봉의 치인(교화)의 활용 측면은 백성의 교화(정순우, 1999 : 105)와 향약과 향헌을 참조한다(이종수, 2015).

둘째, 인사행정적 시사점(이종수, 2016 : 128-129)이다. 삼봉은 ?經濟六典?에서 수령은 近民之職이라고 했다(권행완 : 236-249). 군수, 현령은 백성의 근본이라는 것이다. 정도전은 한, 당시대의 수령제도를 참조하여 수령의 자질과 평가 덕목을 초안하였다 (권행완 : 246). 그의 관료제 형성과 포폄사상에는 성리학적 사상과 위민의식이 강하다(이종수, 2014).

끝으로, 삼봉의 褒貶, 考課法은 덕행의 왕도적 요소와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패도적 요소를 조화롭게 정립시킨 제도였다. 유자로서의 삼봉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유교국가를 창업하여 유교이념을 현실정치에 적용, 반영하여 실행하고, 명실상부한 이론과 실천적 정치문화로 정착시켰다는 점에 있다.

 

3. 삼봉 치인관의 적폐치유 가능성

 

현 정부의 () 정부 적폐 청산과 관련 삼봉은 첫째, “뇌물받은 장리(贓吏)는 사람 마음의 커다란 해충이라고 했다. 그 뿌리를 제거하여 뻗어 나가지 못하고 하고, 그 가지를 쳐서 싹트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鄭道傳, 삼봉집, 2011 : 114-115). 탐욕스러움이 이리처럼 많고 미워하고 음흉함이 사나운 짐승같다고 하여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하고, 구체적으로 포폄제도를 개발하였다(이종수, 2001, 2016). 삼봉의 법치사상은 순자와 유사하다.

둘째, 군주는 백성을 섬기고, 인정을 베풀고 신하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고 했다. 민본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외적의 침략을 막아내는 부국강병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병농일치를 통한 국방체제의 강화와 중앙군의 증대를 통한 수도치안의 강화를 지향했다.

셋째, 지방 외관과 관련해서 보면 그의 법치사상은 청렴관료와 부패 예방을 위한 단서가 될 것이다(이종수, 2015.12).

 

 

. 결 론

 

조선개국기 삼봉은 ?朝鮮經國典?에서 국가의 규모와 운영방식, 법률적 규범질서 등을 중국 고대의 다양한 시각을 조화롭게 엮어 대안을 조선에 알맞게 엮어 대안을 제시하고, 조선시대의 근본국가통치철학인 ?經國大典?의 모체를 제시하여 국가론 차원의 통치내용과 방법 등을 제시하였다.

이 연구는 조선시대 삼봉의 ?朝鮮經國典?민본사상의 연원 분석을 治典을 중심으로 민본사상의 근원과 원류, 현시대의 시사점, 적용방안 등을 모색하였다. 려말 혼란기적 상황에서 삼봉은 출사 후 9년 간의 유배와 유랑생활 속에서 백성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삶을 목도하고, 백성, 국가, 군주의 순으로 그 중요성을 백성에 두고 백성의 경제적 안정(민생) 수단으로 전제개혁을 실시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려말 대토지 소유문제를 저지하고, 조선개국의 경제적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고, 국가토지지배 체제로서의 과전법이 정비되어 소농민의 안정화를 갖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조선개국기 삼봉은 국가의 규모와 운영방식을 중국 고대의 다양한 시각을 조화롭게 엮어 대안을 조선에 알맞게 엮어 대안을 제시하고, 조선시대의 근본국가통치철학인 경국대전의 모체를 제시하여 국가론 차원의 통치내용과 방법 등을 제시하였다. 특히 그의 사상, 민본사상 등과 국호, 홍익인간 사상 등 이것이 오늘날 민족적 자주의식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토대로 연결된다.

본 연구의 한계로는 역사적 史料를 중심으로 한 실증성이 부족하여 추후 후속연구과제로는 14세기?朝鮮經國典?의 헌법적 가치 국제비교, 치인관 특성 및 과전법 시행과정과 결과, 영향 등과 동시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민본사상의 행정학적 활용 작업 필요성 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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