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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정도전의 치인관 분석

현곡 이종수 2020. 7. 1. 04:07

  이 논문은 '퇴계학논집' 제26호, 2020.6 게재본임. 무단인용을 금함.

 

                                              삼봉 정도전의 治人觀 분석

 

                                                                                                                           이종수(중원대)*

 

. 들어가는 글

. 삼봉 治人觀의 이론적 접근

. 삼봉의 치인관 實錄내용 분석

. 삼봉 치인관의 현대 인사정책 시사점

. 나가는 글

 

본고는 먼저 조선건국 기획자였던 삼봉의 朝鮮經國典등의 저술과 朝鮮王朝實錄등에 남겨진 그의 조선 개국 전후의 治人觀의 흔적을 찾아보고 치인관의 특성과 현대 인사정책적 시사점을 제시하고자 한다.朝鮮經國典은 정도전의 융합사상적 정치 이론서이며, 조선 왕조 최초의 헌법적 성격을 띤다. 1394(태조 3) 3월에 완성하여 태조에게 바치자, 태조가 정치의 큰 기준으로 삼게 하고, 이 책을 금궤에 보관하게 하고, 정총(鄭摠)으로 하여금 서문을 짓게 하였다. 이로써 조선 왕조는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法治)국가로 출발하게 되었다. 2장에서는 치인관의 이론적 접근으로, 기존의 관련 학술지 분석, 필자의 선행 연구, 삼봉 관련 朝鮮王朝實錄의 분석 등 이론적 측면과 실록자료를 통한 실증적 방법을 병행하여 접근하였음을 밝혔다. 3장은 실록의 관계 내용 분석으로, 삼봉에 관한 朝鮮王朝實錄의 기록은 모두 256건으로 태조(121), 정종(9), 태종(53) 등이나 본 고에서는 256편 중 직접 연관된 76건을 대상으로, 유교의 이념인 五常仁義禮智信 사례를 초점으로 분석하였다. 4장은 치인관의 인사정책 시사점 측면으로, 삼봉의 융합적 치인사상에서 오늘의 정치사회의 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어떻게 접근하고 치유할 것인가를 특히 그의 三敎融合的 철학과 성리학, 사공학, 경세학의 融合的 제도창출에서 시사점, 사회적 활용방안을 제시하였다. 5장 결론에서는 연구의 의의와 한계 및 후속연구과제를 제시하였다. 본 연구의 차별성은 조선 개국기 통치 철학과 주요 내용을 일부분 인지할 수 있는 삼봉의 저술과 행적, 정치 행정사상적 효과를 살피고, 유학, 도학, 불교적 색채를 띠는 삼봉의 융합사상을 토대로 한 治人 사례와 효과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주제어

 

 

三峯, 性理學, 治人觀, 五常, 社會的 活用

 

 

. 들어가는 글

 

본 연구는 三峯 鄭道傳(13421398)의 조선창업 치인사상을 재조명하여 혼란한 사회를 재구조화 시키는 데 있어 삼봉의 治人觀(思想)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제도개혁에 결합시킬 수 있는가를 찾고자 한다.

삼봉 치인관의 기본 틀은 남송과 북원의 실천적 성리학의 고려 유입과 그 융합적 제도 형성과 현장 적용적 측면을 중시하고, 덕치 인사제도와 구체적 실적을 융합한 정치사상이다. 주요 특성이 문무융합과 실덕실천 사상적 학문통합 등 三敎 융합사상(이종수, 2018.8 : 49 ; 강구율, 2013 : 50)이다.

삼봉은 오상(五常)의 가르침을 서울 도성과 4대문에 융합하여 가시적으로 형상화하여 성리학의 이념 실현을 위한 백성의 교화를 이루고자 하였다(이종수, 이병렬, 2014.12 : 138).

삼봉에 관한 朝鮮王朝實錄의 기록은 모두 256건으로 태조(121), 정종(9), 태종(53), 세종(25), 고종(10) 등이 있다(국역 實錄참조). 본 고는 태조태종대까지의 五常 관련 76건으로 한정한다. 주요 분석의 내용은 삼봉의 치인관이 녹아 스며들어 융합형태로 가시화 된 건축물인 한양도성과 경복궁 등의 오상(五德, 五行 )과 치인사례와 오상 실현 효과, 현대 인사제도적 활용방안을 제안한다.

연구의 방법은 기존의 학술지 등의 선행연구와 필자의 선행연구(이종수, 20012019)를 참조하였으며, 전문학술지 분석(김정식, 1994, 유권종, 2014), 일간신문 활용, 전문가 의견 수렴 등 이며, 연구 범위는 修己治人思想의 맥락에서의 법치적 측면과 삼봉의 새로운 융합사상적 통치철학(이종수, 2019.2, 김경수, 2013, 강구율, 2013, 유권종, 2014)을 유교(주자학)의 세계관인 五行(, , , , )五常(, , , , )의 관점을 중심으로 태조태종의 시대(時差) 순으로 분석하여 현대 인사행정적 시사점과 활용방안 측면을 중심으로 제언하였다.

 

 

. 삼봉 治人觀의 이론적 접근

 

1절 성리학과 融合的 치인관

 

1. 삼봉의 수기치인

性理學'性卽理(성은 리다)'라고 해석된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하늘의 이치가 있다'는 사상으로 풀어보면 인간과 세상만물은 상호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할 것인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도덕과 윤리사회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관한 철학 사상이다.

유가적 수양(修養)이란 몸과 마음을 닦아 기르는 일이다. 대학8조목은 수기치인과 관련, 修己(個人)측면을 格物致知, 誠意 正心, 治人(他人關係)齊家, 治國, 平天下로 가르친다(김언순, 2007 : 8). 修身을 통해 본인을 달성하는 교육은 또한 타인을 달성하는 교육이 되니, 따라서 修己治人은 하나로 연결되고, 이러한 삶은 孔子의 삶과 三峯의 삶에서 확인된다(이종수, 이병렬 외, 2017).

성리학의 원리적 측면에서 볼 때는 몸도 融合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음도 또한 리와 기의 묘한 융합으로 이루어졌다(이성무 외, 2011 : 226). 의 융합은 의 원리이며, 그 근본이 太極이다. 성리학의 인격함양법인 수기치인의 기초는 육예였다. 현대적으로 보면 인문, 사회과학과 예술적 훈련이며, 체력단련을 위한 신체훈련이 포함된 커리큘럼이라고 할 수 있다(이종수, 2020.3).

삼봉의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우주를 감싸 안아 밝이 없으며(無外), 털끝까지 들어가서 안이 없다(無內)는 내용이 담겨 있다. 삼봉은 氣一元論道敎 요소, 法家的 요소의 융합적인 특성을 보인다. 삼봉의 호연지기는 時空을 넘어서는 초월적 존재이며, 인간의 마음에서 良心으로 싹튼다고 하였다. 와 같은 개념이다(이원석, 2016 : 80-81).

儒家에서 金科玉條처럼 원용하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은 내성은 정신적인 수기(修己)요 수양론으로서 수양의 성취를, 외왕은 사회관계적인 치인(治人)으로서 경세론 측면으로, 안으로는 성인이요, 밖으로는 임금의 덕을 갖춘 사람, 곧 학문과 덕행을 지닌 인간을 일컬으며, 경세론은 유교의 근본원리와 직결되어 있는 문제로 이해된다.

삼봉의 수기치인과 관련 수기는 선비의 기본책무였으며, 치인은 기회를 얻어야 할 수 있는 선택사항이었다. 시대를 못 만나면 자신의 이상과 포부를 저술로 남겨 후대에 전하는 이들이 선비였다. 대장부의 조건인 , , 를 갖추고도 뜻을 얻지 못함에 따라 出處를 결정한다. 삼봉의답전부에 보면 삼봉은 수기치인 본분에 충실(강구율 : 53, 60-61)함을 본다. 그는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바른 대도()를 행하고자 하였음을 볼 수 있다. 그 가시적 제도개선책이 토지개혁 등이며, 창작물이 朝鮮經國典등 통치 지침서와 漢陽都城四大門 등이다.

 

2. 삼봉의 경세적 업적과 융합적 치인사상

경세(經世)는 세상을 경륜한다는 말로, 국가사회를 질서 있게 영위하는 정치·경제·사회의 활동을 가리키고, 치용은 현실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고 성취해가기 위해 적절한 제도와 방법을 갖추고 실천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경세는 그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사회적 제도와 다양한 수단을 필요로 함으로 치용을 요구하게 되는 것인데, 그러한 두 개념이 결합하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삼봉의 경세관은 이념적 기반의 朱子學, 경제적 기반의 公田制, 권력기반의 宰相制를 주창한다(최상용, 2013). 삼봉의 주자학적 질서관은 현세 내 합리주의 또는 관료합리주의로, 그의 公田制(科田法)는 현재의 토지 공개념으로, 재상론은 분권과 왕권 견제의 제도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삼봉의 법치사상에 미친 주요 영향은 고대 유학과 書經, 周禮등과 중세 성리학, 고려 후기 신 성리학(元代官學的 朱子學)의 주체적 수용 및 유교중심의 삼교회통사상(김정식, 1994 : 57), 유불도 융합적 접근(김경수, 2013 : 250) 등이다.

이렇게 삼봉은 1213세기 주자학을 민본사상적으로 融合하여 조선통치의 골간과 후대의 실학의 토대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측면에서 독창적이다. 그의 민본융합사상의 핵심은 소개동의 民草, 정침의 , 朱子學事功學의 실천적 融合, 기일원론과 도교 요소, 법가적 요소의 융합(이원석, 2016 : 80-81), 불교 축출, 글과 칼의 결합(최상용, 2013 : 117)등 사상융합에 기반 한 백성중심의 정치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삼봉의 융합적 치인관은 수기치인과 국가통치 수단으로 성리학적 철학과 이상의 구현을 위한 고대 전국시대 경서와 사공학(事功學), 경세학(經世學), 주자학의 오상, 정침의 사상을 融合하여 조선건국 법제()에 투사한 제도적 접근이라는 관점에서 "융합적 치인사상이란 文武融合, 學問融合道家, 儒家, 성리학, 주자학, 사공학, 경세학 등을 통합, 성리학적 철학과 이상의 구현을 위하여 조선건국 법제()와 한양 도성 등에 투사한 제도 실천의 기반과 이념으로(이종수, 2018.12 : 519-521) 잠정 정의한다.

 

2절 선행연구와 분석의 틀

 

1. 선행연구

필자의 삼봉 관련 선행 연구를 2가지 통치, 행정관리 측면과 수기치인으로 구조화 한다. 첫째, 통치 행정제도적 측면은 서정화(2017)朝鮮經國典, 이종수의 포폄제도, 민본사상, 포은과 삼봉, 포폄관 분석 등을 들 수 있다(이종수, 2001 ; 2014 ; 2015 ; 2016). 최근 AI시대 공직구조 및 블록체인 시대 삼봉의 융합민본사상과 헤테라키(이종수, , 2017, 2018.5, 2018.11)등을 발표하여 삼봉의 행정창의성을 조명했다. 도현철(2003), 김인호(2005), 김경수(2013) 등은 삼봉의 융합사상적 측면을 주목한다.

둘째, 치인 측면은 삼봉의 정좌사례와 효과(이종수 외, 2017.11 : 164) 등과 이원석(2016)孟子의 이해, 한영우(2010)朝鮮經國典, 최상용(2013)의 삼봉의 정치사상, 교육과 교화(김언순, 2007) 등을 들 수 있다.

셋째, 필자의 선행연구와 본 연구의 차별성은 조선 개국기 통치 철학과 주요 내용을 담은 삼봉의 저술과 행적을 살피고, 實錄의 치인 효과 분석 및 창의성 측면으로는 삼봉의 조선 개국철학의 기저인 주자학의 수기치인 내용 중 치인적, 법치구조적 측면을 주로 그의 융합민본사상을 중심으로 五常내용을 재조명하여 현재 4차 산업혁명과 블록체인 시대 정부 인사제도 운영원리의 시사점(이종수, 2016)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상의 내용을 < 1 >에 정리한다.

 

< 1 > 선행연구 분석

구 분

선행연구 분석과 차별성

연구목적

연구방법

주요 연구내용

 

 

주요 내용

도현철(2003), 삼봉의 事功學

질적 접근

삼봉의 경세학

김인호(2005), 삼봉의 ?經濟文鑑?

질적 접근

삼봉의 국정철학

김광민(2016), 수기와 치인

질적 접근

수기와 치인은 분리되지 않음

김경수(2013), 삼봉의 삼교회통

질적 접근

삼교의 융합적 적용 효과

이원석(2016), 孟子에 대한 정도전의 이해

질적 접근

맹자의 호연지기와 삼봉의 기일원론

최상용(2013), 삼봉의 정치사상

질적 접근

삼봉 정치사상의 독창성

서정화(2017), 삼봉의 朝鮮經國典

질적 접근

朝鮮經國典의 가치

이종수, 이병렬 외(2015), 三峰과 포은의 행정사상

질적 접근

정도전과 정몽주의 혁명과 의리정신 분석

이종수, 이병렬(2014), 三峰의 민본사상

질적 접근

정도전의 민본사상 연원 분석

이종수(2017.8) 장자의 수양법

질적 접근

장자의 심재, 좌망 분석

이종수(2017.12), 三峰의 수기관 분석

질적 접근

삼봉의 수기관 특성과 시사점

이종수(2018), 三峰 朝鮮經國典의 개헌 시사점

질적 접근

정도전 법치사상의 개헌 시사점

이종수(2014) 三峰의 과전법

질적 접근

삼봉의 과전법 집행사례 분석

이종수(2016.12), 三峰의 포폄관

질적 접근

삼봉의 포폄제도 분석

이종수(2017.11), AI시대 공직구조 개편

질적 접근

공직구조 개혁과 삼봉의 정좌 효과

이종수(2018.5), 헤테라키와 三峰 융합민본사상

질적 접근

삼봉의 融合민본사상과 제10차 개헌 시사점

이종수(2018.12), 朝鮮經國典법치사상

사료 분석

삼봉의 법치사상 분석

이종수(2019.2), 삼봉의 融合민본사상과 주민자치

질적 접근

삼봉의 融合的 사상과 현대주민자치 시사점

연구의 차별성

三峰 치인사상의 현대 인사행정적 의의와 활용 분석

사료, 질적 분석

조선 개국기 三峰 치인관의 특성과 영향요인 및 인사정책 시사점 분석

2. 內容 分析의 틀

본고에서는 삼봉의 치인사례인 외적 제도화 측면을 중심으로 치인 측면의 특성과 현대적 시사점, 활용방안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그 주요 내용적 측면은 삼봉사상을 , , , , 사례를 朝鮮王朝實錄을 중심으로 키워드분석을 통하여 추출하고, 5가지 측면을 분석한다. 삼봉 관련조선왕조실록자료를 통한 실증적 방법을 병행하여 접근한다. 삼봉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은 모두 256건으로 태조(121), 정종(9), 태종(53), 고종(10) 등이며, 본고는 태조태종 대까지 76건에 한정하였으며 오상과 실록사례 및 기대효과 측면의 육예와 연결하여 현대적 활용 방안을 체험, 독창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 삼봉의 치인관 實錄내용 분석

 

1절 성리학의 오상

1. 오상의 의의

오상은 인간의 덕성으로 仁義禮智信을 말한다(양승인 : 213 ; 부남철, 2008 : 333). 주자학의 도리(道理)는 인간에게는 오상으로 개인에게 내재하여 질서를 만든다

인의예지는 춘하추동과 연결된다(부남철, 2008 : 333-334). 삼봉은 여기에 천지를 더하여 6(天地春夏秋冬)가 형성된다. 을 정치의 근본으로 적용하였다. “하늘은 사시(四時)를 두고 사람은 사단이 있어 성() 통할한다. 사단이 각각 하나의 덕을 차지하지만 인이 내포되지 않은 것은 없다.” 봄이란 출생이고, 여름은 성장이며, 가을은 성숙이고, 겨울은 수장이다(이종수, 2018.11 : 100).

사람에게 이미 형기가 있으면 리가 그 형기 가운데 갖추어진다. 는 마음에서는 인의예지의 본성과 惻隱, 羞惡, 辭讓, 是非의 감정이 된다.” “()이란 사랑이요, ()란 인의 制斷(제단)이요, ()란 인의 공경(恭敬)이요, ()란 인의 지식(知識)이라는 것이니, 때에는 봄이 되고 성()에는 인이 되는 것이 한 이치인 것이다.” ()은 두루함이다. 신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믿음의 덕목으로 오상의 원동력이다.

朱子四端五行와 같으며, 定位가 없고, 成名이 없으며, 專氣가 없지만 , , , 이 이것을 기다려서 생기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四端에 존재하지 아니함이 없고, 四時에서는 에 부친다. 그러므로 이 없으면 五行四時, 五常이 될 수 없다. 오행과 사시에는 빠짐없이 이 포함된다(春秋左傳). 군주, 군자, 백성들 모두 누구나 신조를 지켜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짊()은 본성이고, 측은은 감정이며, 감정은 마음으로부터 발출해 나온다고 본성과 감정을 구분하였다. 사단은 감정이다. 本性은 리()이고, 한 것이 感情이며, 그 근본은 본성이라고 하여 四端을 엄격히 구분하였다(이원석, 2016 : 91-93).

삼봉의 道理天理, 이다. 이 도리는 人間에게 五常으로 內在하며 秩序를 만든다. 삼봉은 정치의 요체를 禮樂에 두었는데(三峰集2, 樂章 文德曲), 그의 예는 秩序, 禮樂序和, 곧 질서와 평화를 이루고자 했다. 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차이, 善惡의 다양성과 기능이 에 의해 합리적이고 조화롭게 질서화 된다고 본 것이다(최상용, 2013 : 118). 삼봉은 四季四端을 연결시키고 있다(부남철, 2008 : 334). 四季天地를 설정, 周禮의 논리를 적용하여 六典體制를 만들었다.

홍범구주(洪範九疇)書經』「周書홍범편에 수록되어 있으며, 9조목은 오행(五行오사(五事) 및 오복(五福)과 육극(六極) 등이다.

오행은 수((((()를 지칭한다. ()은 물체를 적시고 아래로 흘러 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고, ()은 물체를 태우고 위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으며, 나무()는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는 성질이 있고, ()는 조작에 의해 자유롭게 변형하는 성질이 있으며, ()은 곡식을 길러 거두게 하는 성질이 있다.

물체를 적시고 아래로 흘러 가는 성질은 짠 맛을, 물체를 태우고 위로 올라 가는 성질은 쓴 맛을, 구부러지고 곧게 자라는 성질은 신 맛을, 조작에 의해 자유롭게 변하는 성질은 매운 맛을, 곡식을 길러 거두게 하는 성질은 단 맛을 내게 한다. 오행(五行)의 원리는 방위와 빛깔, 윤리와 음악, 그리고 의학과 맛, 계절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적용된다.

 

2. 오상과 교화 장치

오상과 인, 호연지기와 4단 관계에서 五常의 기본 덕목이다. 三峰集은 사단과 오륜(五倫 : , , , , ) 관계는 (, ), 君臣有義(),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 등이다.

삼봉은 유교 세계관의 五行(火水木金土)五常(仁義禮智信)의 조화, 묘합으로 한양도성과 사대문, 한성부(東西南北中央) 의미의 공간구조를 조성한다(유권종, 2014 : 137). 그는 五常의 가르침을 서울 도성과 4대문에 融合하여 가시적으로 형상화하여 성리학의 이념 실현을 위한 백성의 교화를 이루고자 하였다(이종수, 이병렬, 2014 : 138). 예를 들어 서울의 4대문을 보면, 동대문은 흥인지문(興仁之門)이다. ()이 동쪽을 가리키므로 인()을 일으키는 문이다. 남대문은 숭례문(崇禮門)이다. ()가 남쪽을 가리키므로, 예를 숭상하는 문이라 하였다. 서대문은 돈의문(敦義門), 즉 의를 도탑게 하는 문이고, 북대문은 홍지문(弘智門), 곧 지혜를 넓히는 문이다.

이렇게 동서남북의 4대문에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대응시켰다. 중앙은 보신각(普信閣)의 신()을 쳐서 오상(五常)을 갖추었다. 이렇게 대문 이름 하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에서 오행(五行)의 이치가 베풀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

사단오상(四端五常)은 인간을 변화시키는 데는 교육이 중요하다 여겨 교육이념을 상징화한 조형물을 4대문 안과 사이에 세웠다. 光化門惠化門, 敦化門, 흥화문, 홍화문, 선화문이다. 혜화문은 흥인지문과 숙정문 사이에 경복궁 정문은 광화문을 창덕궁 정문에는 흥화문을 세운 것이다.

 

2實錄五常 구현

 

1. (惻隱之心)

전 정당 문학(政堂文學) 정도전(鄭道傳)을 명하여 도평의사사 기무(機務)에 참의(參議)하게 하고 상서사 사(尙瑞司事)를 참장(參掌)하게 하였다(태조실록1, 태조 1720일 기해).

태조의 즉위 교서(敎書)는 정도전이 짓는다(태조실록1, 태조 1728일 정미).

개국 공신의 위차를 정하다. 공신도감에서 개국 공신의 포상 규정을 상언하니 윤허하다(태조실록1, 태조 1820).

정도전·청성백, 학사 이직 등을 한양에 보내서 종묘·사직·궁궐·시장·도로의 터를 정하게 하였다(태조실록6, 태조 399일 병오).

도성 조축 도감을 설치하고 그 직제를 정하다. 정도전에게 성 쌓을 자리를 정하게 하다. 처음으로 도성 조축 도감(都城造築都監)을 두어 판사·부판사·(使부사(副使판관·녹사 들을 임명하고, 판삼사사 정도전에게 명하여 성터를 정하게 하였다(태조실록8, 태조 4년 윤913일 갑술).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에게 분부하여 새 궁궐의 여러 전각의 이름을 짓게 하다(( 태조실록8, 태조 4107일 정유).

동북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에게 보내는 서신. 옷과 술을 내려 주다( 태조실록13, 태조 725일 임오).

좌정승 조준과 정도전·남은 등에게 초립과 옥영자 등을 내려 주다(태조실록11, 태조 6326일 기묘)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과 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에게 안마(鞍馬)를 내려 주었다( 태조실록12, 태조 672일 신해).

태조가 조준, 임사홍, 정도전 등에게 말 1필씩을 하사하다(태조실록8, 태조 4717일 무신).

과주에 거둥하여 수릉 자리를 물색하니, 정도전이 눈물로 간언하다(태조실록7, 태조 434일 정유 1번째기사). 술상을 차리고 여러 신하들이 차례로 술잔을 올리었다. 정도전이 임금 앞에나와서 말하기를, "하늘이 성덕(聖德)을 도와 나라를 세웠으매, 신들이 후한 은총을 입고 항상 천만세 향수(享壽)하시기를 바라고 있사온데, 오늘날 능자리를 물색하오니, 신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하고 흐느껴 눈물을 흘리니, 임금이 말하였다. "편안한 날에 미리 정하려고 하는 것이다.”

임금이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과 좌사 남재(南在)와 참지문하 남은(南誾)과 중추원사 이직(李稷)에게 명하여 광주(廣州)에 가서 수릉(壽陵)을 살피게 하였다(태조실록8, 태조 4711일 임인).

좌정승 조준(趙浚)과 우정승 김사형(金士衡)과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에게 문충보(文忠甫)가 바친 말 1필씩을 각각 하사하였다(태조실록8, 태조 4717일 무신).

김승(金陞)을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정진(鄭津)을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로 삼았다. 정진은 정도전의 아들이다. 김희선(金希善)을 원주 목사(原州牧使)로 삼았다(태조실록14, 태조 765일 기유 ).

개국 공신들이 정도전, 남은을 용서할 것을 청하다(태종실록22, 태종 11811일 경자)

정도전의 아들인 정진(鄭津)에게 직첩(職牒)을 주라고 명하다(태종실록31, 태종 16626일 병술).

명하여 정도전(鄭道傳)과 황거정(黃居正)의 자손의 금고(禁錮)를 해제하게 하였다(태종실록31, 태종 16610일 경오).

명하여 정도전(鄭道傳)의 손자 정내(鄭來)와 정속(鄭束황거정(黃居正)의 아들 황효신(黃孝信) 등에게 직첩(職牒)을 주었다(태종실록32, 태종 16725일 갑인).

 

2. (羞惡之心)

사헌부에서 문하 찬성사 김주가 시세에 따라 행동한다고 탄핵하자 파직시키다( 태조실록1, 태조 1726일 을사).

임금이 한산백 이색에게 잔치를 베푸니 판삼사사 정도전도 참예하였다. 임금이 문덕(文德무공(武功)의 두 곡조를 듣고서 말하기를, "노래로 공덕을 칭송한 것이 실로 본정에 지나친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내 심히 부끄럽다." 하니, 도전이 대답하였다. "전하께서 이런 마음이 계시기에 노래를 지은 것입니다."(태조실록8, 태조 41225일 갑인).

봉화백(奉化伯) 정도전·의성군(宜城君) 남은과 부성군(富城君) 심효생(沈孝生) 등이 여러 왕자(王子)들을 해치려 꾀하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형벌에 복종하여 참형(斬刑)을 당하였다(태조실록14, 태조 7826일 기사).

정도전·남은·심효생·박위·유만수의 졸기 ; 정도전의 자()는 종지(宗之), ()는 삼봉(三峰)이며, 본관(本貫)은 안동(安東) 봉화(奉化)이니, 형부 상서(刑部尙書) 정운경(鄭云敬)의 아들이다. 고려 왕조 공민왕경자년에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고, 임인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여 여러 번 옮겨서 통례문 지후(通禮門祗候)에 이르게 되었다. 병오년에 연달아 부모(父母)의 상()을 당하여 여막(廬幕 )을 짓고 살았다(태조실록14, 태조 7826일 기사).

정도전·남은의 일파인 오몽을을 목베고 정진을 수군에 충군하다(태조실록15, 태조 71010일 임자).

대사헌 박은과 좌사간 이명덕이 정도전·손흥종 등의 죄명을 밝힐 것을 청하다(태종실록22, 태종 11818일 정미)

대간에서 다시 정도전 등의 일로 상서하다(태종실록22, 태종 11818일 정미). 대간(臺諫)에서 또 상서하였다.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은 힘써 사사로운 원망을 갚으려고 감히 임금을 속이는 마음을 자행하여, 손흥종(孫興宗황거정(黃居正)을 비밀히 사주하여 이숭인(李崇仁)의 무리를 임의로 죽이었고, 손흥종 등은 그 수족이 되어 그 욕심을 이루게 하여 주었으니, 그 형적을 보면 실로 무군(無君)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박경과 정준이 정도전·남은·손흥종·황거정의 죄를 청하다(태종실록22, 태종 1198일 병인). 상소의 대략은 이러하였다. "정도전 등이 화심(禍心)을 마음에 품고 어진이를 투기하고 능한 이를 미워하여 가만히 황거정·손흥종을 사주하여 이숭인·이종학을 사지(死地)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대간에서 정도전·남은·손흥종 등의 극형을 청했으나 윤허하지 아니하다(태종실록22, 태종 11917일 을해). 대간(臺諫)에서 교장(交章)하여 정도전·남은·손흥종·황거정 등을 극형에 처할 것을 청하다.

대간에서 다시 정도전·남은·손흥종·황거정의 죄를 청하다(태종실록22, 태종 111015일 계묘). 정도전은 비록 천주(天誅)에 굴복했다하더라도 말감(末減)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손흥종·황거정은 오히려 머리를 보전하였으니, 어찌 일대(一代)의 신자(臣子)의 마음에 합하겠습니까? 원컨대, 정도전 등은 가산을 적몰하고 자손을 노예(奴隷)로 만들고 황거정·손흥종 등은 전형(典刑)을 올바르게 밝혀서 만새에 명시(明示)하소서.

정도전의 동생 정도복을 인녕부사윤(仁寧府司尹)을 삼았다(태종실록18, 태종 9819일 무오).

정도전의 전민을 적몰하고 자손을 금고하도록 명하다(태종실록22, 태종 1182일 신묘)

명하기를, "정도전(鄭道傳손흥종(孫興宗황거정(黃居正)은 폐하여 서인(庶人)을 삼고, 자손을 금고(禁錮)하고, 남은(南誾)은 논하지 말라." 하였으니, 남은은 개국의 공이 있었기 때문이었다(태종실록22, 태종 11811일 경자).

대왕대비가 정도전에게 공로를 회복시켜주고 시호를 추증하라고 명하다( 고종실록2, 고종 2910일 임신).

이조에서 정도전의 봉사손을 정할 것을 아뢰다. 이조(吏曹)에서 아뢰기를,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에 대하여 공신(功臣)의 칭호를 회복시키고 시호(諡號)도 내려주라고 하다( 고종실록2, 고종 2919일 신사).

봉화백 봉사손을 정하는 것을 빨리 진행하라고 명하다( 고종실록2, 고종 21012일 계묘). 전교하기를, "지난번에 봉화백(奉化伯 : 정도전(鄭道傳))의 봉사손(奉祀孫)을 초사(初仕)에 의망(擬望)하여 들이라고 이미 명령을 내린 바 있건만 아직까지 거행하지 않고 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궁전에 와서 정전(正殿)이 차례로 중건되었으므로 이런 때의 감회는 더욱 특별한 것이 있다.

경복궁에 나가 축하를 받고 사면을 반포하다(고종실록4, 고종 41116일 을축). 정도전(鄭道傳)은 잠규(箴規)를 세우고 여러 당들의 이름을 붙였다. 아름답도다! 역대 임금이 서로서로 이어받아 나갔다. 훌륭하도다! 크고 큰 위업을 함께 받아왔다. 훌륭하고 큰 위업이 지극하니 여러 대에 걸쳐 거듭 빛냈고, 돌아볼 때 그 빛이 환하였으니 신과 함께 교화시켰다. 이것은 만대의 신령이 도와준 것이다.

경복궁으로 이어하다(고종실록5, 고종 572일 정축). 국초(國初)에 영건한 공로가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 의성 부원군(宜城府院君) 남은(南誾), 영의정(領議政) 이직(李稷), 청성백(靑城伯) 심덕부(沈德符)에게 있다는 것을 영원히 잊을 수 없으니, 이제 오랜 나라의 운수가 새로워지는 때를 당해서 성의를 보이는 조처가 없을 수 없다. 그들의 무덤에 다 같이 지방관들을 보내어 치제(致祭)를 하라.

정응기를 봉화백 정도전의 사손으로 정하다( 고종실록7, 고종 7821일 을묘). 아뢰기를, "지난 을축년(1865)에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의 사손(祀孫)을 세우는 일로 예조로 하여금 해당 파()의 문장(門長)을 불러들여 속히 바로잡도록 명을 내리셨는데, 그 당시에 본조에서 올린 초기(草記)로 인하여 시골에 있는 여러 사람들이 와서 모인 다음에 의논하여 결정하도록 윤허를 받았었습니다.

시호를 추증하다( 고종실록8, 고종 8316일 병오). 이개(李愷)는 정혜공(貞惠公)으로,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은 문헌공(文憲公)으로 추증하였다.

봉화백 정도전의 무덤을 잃어버렸으므로 신주를 놓고 치제하게 하다( 고종실록9, 고종 9323일 정미).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무진년(1868) 72일에,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의 묘에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손(祀孫)이 고한 바에 의하면 묘소가 실전(失傳)되어 사판(祠版)으로 제사를 받겠다고 하였는데, 아래에서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니, 하교하기를, "사판에다가 치제하라 ." 하였다.

 

3. (辭讓之心)

정도전이 몽금척·수보록·납씨곡·궁수분곡·정동방곡 등의 악장을 지어 바치다( 태조실록4, 태조 2726). 전하께서 처음 왕위에 오르시매, 상법(常法)을 만들고 기강(紀綱)을 베풀어 백성들과 더불어 혁신(革新)하게 되니 칭송할 만한 것이 많았습니다. 그 큰 것을 들어 말한다면, 언로(言路)를 열고 공신(功臣)을 보전하고,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예악(禮樂)을 정하였습니다.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정도전(鄭道傳)을 동북면(東北面) 도안무사(都安撫使)로 삼았다(태조실록4, 태조 275일 무신).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정도전(鄭道傳)을 보내어 태뢰(太牢)로써 둑()에 제사지내게 하다(태조실록5, 태조 3127일 정묘).

판의흥삼군부사(判義興三軍府事) 정도전(鄭道傳) 등이 상서(上書)하였다(태조실록5, 태조 3229일 기해).

좌시중(左侍中) 조준(趙浚)을 교주(交州강릉(江陵서해(西海경기좌·(京畿左右) 5()의 도총제사(都摠制使)로 삼고, 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鄭道傳)을 경상·전라·양광 3도의 도총제사(都摠制使)로 삼았다(태조실록5, 태조 333일 임인).

정도전이 임금에게 매일 장상들을 불러 군국의 일을 의논하기를 청하니 윤허하다(태조실록5, 태조 3422일 신묘).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이 역대 부병(府兵)의 시위하는 제도를 엮었는데, 부병들의 시위하는 폐단과 지금 시행하는 부병들의 연혁(沿革) 및 해야 할 일들을 논하고, ()를 만들어서 올리었다(태조실록6, 태조 3624일 임진).

음양 산정 도감을 설치하다. 권중화(權仲和)와 판삼사사 정도전, 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성석린(成石璘삼사 우복야 남은(南誾정당 문학(政堂文學) 정총(鄭摠첨서중추원사(僉書中樞院事) 하륜(河崙중추원 학사 이직(李稷대사헌 이근(李懃평원군(平原君) 이서(李舒)로 하여금 서운 관원과 함께 지리와 도참(圖讖)에 관한 여러 책을 모아서 참고하여 교정하게 하였다(태조실록6, 태조 3712일 기유).

정도전(鄭道傳)으로 봉화백(奉化伯)을 봉하고, 설장수(偰長壽)로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임명하였다(태조실록10, 태조 5727일 임오).

정도전에게 명하여 궁궐 감역 제조에게 잔치하다. 영삼사사(領三司事) 이화(李和)와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궁궐의 감역제조(監役提調)에게 잔치하였다(태조실록11, 태조 6421일 계묘).

새로 유비고(有備庫)를 설치하고,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으로 제조관(提調官)을 삼았다(태조실록12, 태조 61016일 갑오).

봉화백 정도전이 전에 천거한 효자 순손 등을 서용하기를 청하다.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이 임금께 상언(上言)하였다. "여러 번 교지(敎旨)를 내려 각각 효자(孝子순손(順孫)과 공정 청렴한 선비를 천거하여 아뢰게 하였는데, 곧 서용하지 않으시니 뒤에 오는 사람을 권하기 어렵습니다. 원하옵건대, 경외(京外)에 서용하옵소서"(태조실록12, 태조 6123일 신사).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으로 동북면 도선무순찰사(東北面都宣撫巡察使)를 삼고, 교서(敎書)를 내리기를, "내가 부덕(不德)한 몸으로 조종(祖宗)께서 쌓으신 덕을 이어받아 동방(東方)을 차지한 지가 6년이 되었다. 그 근본을 잊지 않고 보답하려는 정성이 실로 마음에 간절하므로, 이에 고전(古典)을 상고하여 사대(四代)를 왕으로 추숭하고 첫머리로 침묘(寢廟 )(태조실록12, 태조 61222일 경자).

임금이 송헌 거사(松軒居士)로 호()를 하였다. 임금이 좌승지(左承旨) 이문화(李文和)에게 이르기를, "내가 들으니 전조(前朝)의 충숙왕(忠肅王)이 거사(居士)라고 일컬어 예천군(醴川君) 권한공(權漢功)에게 글을 보내었다. 나도 또한 봉화백(奉化伯)에게 거사(居士)라고 일컬어 글을 보내려고 하는데, 무엇으로 호()를 할까?" 하니, 문화가 대답하였다(태조실록13, 태조 724일 신사).

동북면 도선무사(都宣撫使) 정도전(鄭道傳)이 경원부(慶源府)에 성을 쌓았다(태조실록13, 태조 7216일 계사).

임금이 글과 옷과 술을 내려 준 데 대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이 감사하는 글. 동북면 도선무순찰사(都宣撫巡察使) 정도전(鄭道傳)이 전문(箋文)을 받들어 사은(謝恩)하였다. "글은 일찰(一札)을 전하였으니 성훈(聖訓)의 정녕(丁寧)함을 받자왔고, 옷은 구천(九天)에서 내리었으니 신의 몸의 장단(長短)에 맞았나이다. 또 선온(宣醞)을 붕준(朋樽)으로 내리셨으니, 감사한 것은 부끄러움과 겹치옵고 눈물은 말을 따라 나옵니다. 생각하옵건대, 신 은(태조실록13, 태조 7229일 병오).

정도전 이지란 설장수 성석린 등을 불러 위로하고 잔치하다. 봉화백(奉化伯) 정도전·참찬 문하(參贊門下) 이지란·월성군(月城君) 설장수(偰長壽문하 찬성사(門下贊成事) 성석린(成石璘)을 불러서 명령을 받들어 사신으로 갔던 일을 위로했는데, 판문하부사(判門下府事) 심덕부(沈德符영삼사(領三司) 권중화(權仲和좌정승 조준·우정승 김사형(金士衡의성군(宜城君) 남은(南誾)이 잔치 에 배석(陪席)하여 한껏 즐기다가 헤어졌다(태조실록14, 태조 7년 윤518일 계사).

찬성사(贊成事) 정도전(鄭道傳)이 사시수수도(四時蒐狩圖) 를 만들어 바치었다. 사시수수도(四時蒐狩圖) 춘하 추동(春夏秋冬) 사시의 사냥하는 것을 그린 그림(태조실록4, 태조 2820일 계사).

관습 도감 판사 정도전이 전악서의 무공방을 거느리고 몽금척 등의 새 악곡을 연주하다( 태조실록4, 태조 21027일 기해). 도평의사사에서 임금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관습 도감(慣習都監) 판사(判事) 정도전(鄭道傳왕강(王康)과 부판사(副判事) 정사척(鄭士倜)이 전악서(典樂署)의 무공방(武工房)을 거느리고 문덕(文德무공(武功몽금척(夢金尺수보록(受寶籙) 등 새 음악을 올렸다.

판삼사사 정도전이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어서 바치니, 임금이 이를 관람하고 감탄하여 칭찬하면서 구마(廐馬)와 무늬 있는 비단과 명주·백은(白銀)을 내려 주었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조선(朝鮮) 개국의 기본 강령(綱領)을 논한 규범 체계서(規範體系書). 내용은 정보위(正寶位국호(國號안국본(安國本세계(世系교서(敎書) 등으로 나누어졌다( 태조실록5, 태조 3530일 무진).

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鄭道傳)경제문감(經濟文鑑)을 저술하여 올리었다( 태조실록7, 태조 466일 무진).

밤에 임금이 판삼사사 정도전 등 여러 훈신(勳臣)을 불러 술을 마시고 풍악을 잡혔다. 주연(酒宴)이 한창 벌어질 무렵에 임금이 정도전에게 하는 말이, "내가 왕위에 오르게 된 것은 경 등의 힘이니, 서로 공경하고 삼가서 자손 만대에까지 이르기를 기약함이 옳을 것이다." 하니, 도전이 대답하였다(태조실록8, 태조 41030일 경신).

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鄭道傳)과 정당 문학(政堂文學) 정총(鄭摠) 등이 전조(前朝)의 태조(太朝)로부터 공양왕에 이르기까지 37권의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하여 바치다( 태조실록7, 태조 4125일 경신).

상서사 판사(尙瑞司判事) 조준(趙浚정도전(鄭道傳) 등이 내관(內官)의 호()를 세우기를 청하였다( 태조실록11, 태조 6315일 무진).

가례 도감(嘉禮都監)을 설치하여 영삼사사(領三司事) 이화(李和좌정승 조준(趙浚우정승 김사형(金士衡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으로 제조(提調)를 삼았다( 태조실록12, 태조 6106일 갑신).

동북면 도선무순찰사 정도전이 주···현의 명칭을 정하여 아뢰다(태조실록13, 태조 723일 경진).

사헌부에서 어전 직소 금지 및 수령의 인사 고과 규정 등을 건의, 채택한다(태종실록12, 태종 6122일 을사).

역대 제왕의 일에 대해 정도전이 편집한 책을 인출하게 하다(성종실록262, 성종 23223일 갑자). 우찬성(右贊成) 정문형(鄭文炯)이 그의 조부(祖父) 정도전(鄭道傳)이 찬정(撰定)한 책 1()을 가지고 와서 아뢰다.

 

4. (是非之心)

조준·정도전 등에게 고려사를 수찬케 하다(태조실록2, 태조 11013일 신유). 우시중(右侍中) 조준(趙浚문하 시랑찬성사(門下侍郞贊成事) 정도전(鄭道傳예문관 학사(藝文館學士) 정총(鄭摠박의중(朴宜中병조 전서(兵曹典書) 윤소종(尹紹宗)에게 명하여 고려사(高麗史)를 수찬(修撰)하게 하였다.

정도전이 맹자를 강의하다(?태조실록?7, 태조 4313일 병오). 세자 이사(世子貳師) 정도전(鄭道傳)맹자(孟子)를 강()하였는데, "달아 본 뒤에야 가볍고 무거운 것을 안다."는 대목에 이르러 말하였다.

새 궁궐의 양청(涼廳)에 주연(酒宴)을 베풀었는데, 남양백(南陽伯) 홍영통(洪永通)과 창녕 부원군(昌寧府院君) 성여완(成汝完)이 잠저(潛邸) 때의 친구들로서 참예하였다. 판삼사사(判三司事) 정도전(鄭道傳)이 시()를 지어 올리었다. "금원(禁院)에 봄빛은 깊고 꽃은 한창인데 옛친구 불러서 술잔을 드니 하늘마저 때에 맞는 비를 내리어 이 몸 또한 우로 (雨露)의 은택을 깨달았도다."(?태조실록?7, 태조 4320일 계축).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에게 명하여 새 대궐의 침실(寢室) 사면의 벽 위에 본받을 만하고 경계될 만한 훈계를 쓰고자 하니, 경서와 사서에 있는 좋은 말들을 모아서 올리라고 하였다(?태조실록?8, 태조 4922일 계축).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과 화산군(花山君) 권근(權近)으로 성균관(成均館) 제조(提調)를 삼아, 현임(現任한량(閑良) 4() 이하의 유사(儒士)와 삼관(三館)의 유생(儒生)을 모아 경사(經史)를 강습(講習)하게 하였다(태조실록13, 태조 7420일 병신).

·우 정승 조준과 김사형에게 신도 팔경 병풍 한 면씩을 주다(?태조실록?13, 태조 7426일 임인). 봉화백(奉化伯) 정도전(鄭道傳)이 팔경시(八景詩)를 지어 바쳤다.

좌정승 조준(趙浚)과 판삼사사 정도전(鄭道傳)으로 과거 고시관(科擧考試官)을 삼고, 도승지 민여익(閔汝翼)과 대사성 함부림(咸傅霖)으로 성균 시원(成均試員)을 삼았다( ?태조실록?9, 태조 5316일 계유).

영중추부사 정문형의 졸기를 보면, ()는 야수(野叟), 봉화현(奉化縣) 사람으로, 정도전(鄭道傳)의 증손이다. 정통(正統) 12년에 문과 별시에 급제하여 승문원 정자로 선보(選輔)되고, 사헌부 감찰·예조 좌랑·사간원 사간을 역임했다. 천순(天順) 8년에 공조 참의에 임명되고, 조금 후에 가선 대부(嘉善大夫)로 가자되어 경상도 관찰사로 특별 제수되었다(연산군일기40, 연산 7115일 갑자).

 

5. (眞實, 誠實)

조준·우정승 김사형·봉화백(奉化伯) 정도전이 환자(宦者) 조순(曹恂)을 남은(南誾)의 집에서 접대하고 모두 말 1필을 증여(贈與)하였다(태조실록14, 태조 778일 신사).

 

3절 특성 평가적 측면

 

1. 특성 측면

첫째, 임금의 으로 德治仁政이다. 仁政의 결실은 田制를 바르게 하여 국용(國用)을 풍족히 하여 백성의 생계를 후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仁政은 자연스럽게 德治로 연결된다. 민본주의 실현과 백성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농업부흥과 토지소유 관계가 재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이종수, 이병렬, 2014 : 131). 민에 대한 의 구체적 실천인 것이다. 삼봉의 과전법(이종수, 2014 ; 최상용, 2013)은 경제적 기반의 공전제였다.

둘째, 는 사람이 실행해야 할 바른 도리로 옳은 것이다.孟子』「公孫芻上羞惡하는 마음은 의의 단서이다”(羞惡之心, 義之端也)(양승인 : 213). 을 바탕으로 해서 에 대치되는 人欲, 不仁, 不善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義理라고도 한다(하수호 : 26). 삼봉은 정침의 에서 혁명사상 단초를 다진다. 삼봉은 ()를 위해 죽어야 할 땐 죽어야 한다고 확신한 선비였다(조항덕 : 28).

셋째, 禮治, 대동사회, 법치 등을 내용으로 한다. 는 수기치인에 있어 지켜야 할 의식과 예법이다(양승인, 2015 : 224). 威儀, 恭敬, 制度 등을 포함한다. 주요 사례는 朝鮮經國典,經濟文鑑, 經濟文鑑別集저술을 예시할 수 있다. 삼봉은 정치의 요체를 질서로 파악했다(三峰集2,朝鮮經國典: 268). 정도전은 고려시기 관직을 담당한 이른 시기부터 의식을 정하거나 예악을 정비하는 일을 맡았다. 이를 이어 조선 건국 이후에도 주요한 제문을 짓는다거나 예악을 정비하여 새 왕조의 위엄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1393(태조 2) 726, 문덕곡(文德曲몽금척(夢金尺수보록(受寶錄)의 악사(樂詞) 3편을 지어 바쳤다. 그는 새 도읍이 결정된 후 왕명에 의하여 궁전과 궁문, 그리고 도성문의 이름을 짓고, 도성 내외의 49()의 이름도 지었으며, 아울러 신도팔경시(新都八景詩)를 지어 바쳤다.

넷째, 는 아는 것으로 이다. 선악 판단 등의 앎, 교화 등과 연관된다(양승인 : 226). 맹자는 孟子, 盡心章句上에서 사람이 배우지 않고서도 잘하는 것은 良能이고, 생각하지 않고서도 아는 것은 良知이다.”고 했다. 선천적인 이다. 교화(風敎, 風化)풍속은 국가의 元氣, 교화는 국가의 急務이니 교화가 이루어지면 풍속이 후해지고, 국가가 다스려진다”(태종실록19). 향헌에 의해 실시된 삼봉의 향음주례, 향사례와 백성교화권, 교화 행정 등이다. 유교에서 내세우는 가장 이상적인 통치방식은 교화인데 이 주체는 유자인 사족이다. 儒者 스스로 덕과 예를 갖추도록 노력하고 일반백성을 교화하는 법은 修身 규범으로서 향약시행은 가장 원형적인 통치행위였다.

다섯째, 은 신뢰와 진실을 토대로 한다. 說文은 진실한 것, 誠信한 것, 믿음이 있을 것으로 풀이한다(양승인, 2015 : 231). 周禮』「地官司市質劑로서 믿음을 맺어 송사를 그치게 한다고 소()에 해석하기를孟子』「公孫芻上四端集註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양승인 : 232). 오행과 四時에 빠짐없이 이 포함되어 있고, 五常仁義禮智信에도 이 편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없으면 五行四時, 五常이 될 수 없다. 삼봉의 도성 내 ''의 조형물 보신각은 사대문 中央()이다(위경환, 2020). 이상의 주요 특성을 < 2>에 요약한다.

< 2 > 주요 특성

구 분

五 常(76)

(18)

(22)

(28)

(7)

(1)

태 조

기수참의, 卽位敎書, 공신명단, 궁궐터조사, 전각이름, 수릉터, 중추원부사(정진,아들)

한산백 잔치, 정도전 숙청, 졸기, 정진(수군 배치)

문무융합,

夢金尺 등 악장, 동북면 도안무사, 3도총제사, 봉화백, 태조 호(松軒), 사시수수도, 朝鮮經國典, 經濟文鑑, 高麗史, 嘉禮都監

高麗史, 경연, 시문, 八景詩, 고시관

宦者 조순 접대

태 종

공신 정도전 용서탄원, 정진(아들 직첩), 정내(손자 직첩)

사헌부 죄명과 극형 요구,인영부사윤정도복(동생),

삼봉자손 금고

고과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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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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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찬정서적 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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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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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 증손 정문형 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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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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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추증, 공신칭호 회복, 신주 致祭, 봉사손지정, 사면반포, 정응기 사손결정, 문헌공 추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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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 : 건수)

 

2. 融合정치사상의 五常과 육예적 측면

첫째, 오상, 육예의 융합과 활용측면이다. 육예는 冥想(靜坐)을 토대로 修己와 궁술, 마술을, 禮樂을 토대로 사회과학과 경서, 음악을, 서와 수를 통해서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익혔다. 성리학의 예악과 관련된 (사회과학)智行(사회와 문화), (음악과 예술)禮樂(사회와 문화)의 활용으로 오행과 육예의 효과측면이다(이종수, 2019.12 : 46-48). 거문고나 기타 등 악기연주가 권고될 만하다.

음악과 미술 융합, 야외 수업 등 통합(융합)수업 효과(김윤정 : 220)는 윤리성, 협동과 배려, 휴머니즘, 약자보호, 생태주의, 문화 복원 마인드 등과 자기 표현, 개인 행복성취, 공동체 기여, 공리적 실천 등이다.

둘째, 신체단련인 (弓術, 武道)와 신체단련(체력), (말타기, 운전면허, 체력), 삼봉의 수기관체험관 신설(이종수, 이병렬, 2017 : 116) 등이다. 몸과 마음의 관계와 관련 맹자公孫芻상편에서 마음의 이정표인 가 가면 몸을 채우는 가 따라간다고 했으며, 또한 기가 흔들리면 가 흔들린다고 하여, 마음을 다스리면 건강을 다스리고 건강을 이룩하면 마음 또한 건강하게 된다고 했다. 심신상관성(이성무 외, 2011 : 226)으로. 모든 것은 건강한 체력에서 시작된다. 마음()은 몸을 주재하고, 감정(感情)은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은 마음이 드러난 것이며, 의지(意志)는 마음이 가는 곳인데 감정과 뜻보다 지향적이다. 의지가 가는 곳에 혈기(血氣)가 간다(모인다). 佛家, 道家, 儒家, 仙家의 핵심 가르침으로 단전에 기를 모으는 것이다.

근래의 뇌과학과 정신신경과학, 신경면역학, 감성과학, 인지과학 등에서는 음악과 명상, 체육을 결합한 심신융합적 활동이 우리들의 감성고양과 창의성 신장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결과를 입증하였다(이종수, 2020.3 : 50).

셋째, 기초지식격인 (셈법, 수학), 智行(기초지식)(經書, 人文學) 智行(인문지식) 등이다(이종수, 2019.12). 현대적인 STEAM이나 고전읽기 등을 권고한다.

음악을 통한 소통력으로 소통효과도 찾을 수 있다(이혜경, 2017 : 172-174). 고공가 등의 가사는 화자와 청자 간의 관계를 구체화 한 대화양상이 확인되며, 고공가고공답주인가가 오랫동안 향유될 수 있었던 이유도 작중 인물들의 대화양상과 거문고 연주 등에서 찾을 수 있다.

樂記에는 인간의 감정이 고립되면 마음을 상하게 하기에 음률의 조화인 (조화, 음악)을 통해 다스리고자 했다. 감정의 조화는 건전한 정서에 토대하며, 건전한 정서는 본성에 기인한다고 했다. 인간의 六根의 반응에 따라 感情氣分이 내외적으로 가시화된다. 감정은 본성을 발현하거나 타자에게 느끼는 기질적 반응이며, 감정의 지각을 통해 마음에는 미세한 변화가 생기고 그것은 기분으로 나타난다.

넷째, 창의, 감성 명상융합효과측면이다. 생활 스트레스 해소와 면역력 증대이다. 명상의 건강 증진 효과는 의학적으로도 입증되었다. 몬트리올 대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명상이 면역력을 높이고 암과 심장병 등으로 인한 사망률을 30%가량 낮추며 좌뇌의 전전두엽 활성화를 도와 정신적 몰입, 육체적 이완, 스트레스 해소 등을 돕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종수, 2015 : 56).

 

3. 삼봉의 해방구

첫째, 종로구청 일대에 해방구로서의 三峯 特區를 조성하고, 그곳에 삼봉 흉상을 건립하거나 세종로에 동상 건립을 추진할 것과 피맛골(이종수, 2011) 등과 연계프로그램을 제안한다(이종수, 2016). 예컨대 삼각산 삼봉재 정좌프로그램개설과 활용, 도성 걷기 체험 프로그램 등과 연계한다. 삼각산 삼봉재초막에서 후학을 양성(1377, 36)한 전력을 참조한다. 현대판 삼봉재를 종로구청과 연계하여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육예접근으로서 경서 수학,융합명상, 거문고 연주 등과 궁술과 무예연마(태권도와 국선도 결합) 등이다.

문화예술로 사람을 키우는 이탈리아는 미술, 음악교육을 통해서 수학과 역사, 그리고 과학 등의 창의융합성을 배우게 한다. 인간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예술교육을 융합하여 혁신적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개선이 필요하다(민경훈, 2012, 2013 ; 김윤정, 2018)

현대적으로는지역창의감성센터설치 지역별 창의융합감성센터 설치, 운영을 통하여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는 감성, 창의성을 함양케 도운다(이종수, 2018.8 : 46). 동시에 지역적 문제를 지역 주민 스스로 해소할 수 있도록 지역 플랫폼창의감성센터설치와 활성화가 긴요하다(이종수, 2019.8 : 408).

둘째, 태종은 태종은 삼봉의 罪目無君之心으로 治罪한다(태종실록22). 그러나 實錄에 기록된 삼봉에 대한 죄목은 아주 모호하고 애매하다. 삼봉은 불교퇴폐에 분노하고, 권문세가 등에 치여 유배된다. 9년 여의 유배와 유랑기의 고난을 통하여 형성된 周禮冢宰직 도입은 과 불교 등을 극복하고자 한 제도형성의 토대였기에 자칫 무군지심으로 단정할 수도 있겠으나 권력견제와 왕정의 안정을 기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접근이라고 아니 할 수 있다.

셋째, 삼봉은 유교를 근본원리로 하여 禮樂文化法制를 정비하고, 한양의 공간에 다양한 콘텐츠를 시각화하여 백성을 교화시키고자 했다. 태조나 고종의 儒宗功宗은 그에 대한 합당한 평가라고 판단된다. 따라서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 시대 그의 창의적 융합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명재상으로서의 사회적 복권이 명실공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삼봉 치인관의 현대인사정책 시사점

 

1. 인사행정의 이론적 시사점

 

첫째, 한국행정학에 있어서 인사제도적 골간은 주로 1950년대를 전후하여 도입된 미국식 인사행정제도에 경도되어 그들의 제도를 금과옥조처럼 받아들여 정통이라고 여겼으나 우리 문제는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아 치유해야 맞다. 그런데 외국제도를 우리 문화적 토양에 맞추려니 잘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 문제의 해법을 우리의 전통과 행태에 적합하게 접근해야 답이 얻어질 것은 자명하다.

어떻게 제도화로 연결하느냐가 과제가 될 것이다(이종수, 2018.11 : 110-111). 현대인사제도적 활용측면에서 보면 삼봉의 포폄제도를 통하여 한국인사행정제도의 토대를 구축함과 동시에 우리 것에서 우리 것의 과학성, 독창성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다. 예컨대 삼봉의 포폄법(고과법)德行王道的 요소와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패도적(覇道的) 요소를 조화롭게 정립시킨 제도였다.

둘째, 조선인사제도의 토대인 삼봉 정도전의 성리학 사상을 바탕으로 한 덕()과 실적(實績) 중심 포폄제도의 내용과 실행을 논증한 점이다. 삼봉 치인관의 기본 틀은 남송과 북원의 실천적 성리학의 고려 유입과 그 융합적 제도 형성과 현장 적용적 측면을 덕치 인사와 구체적 실적을 융합한 제도로 구체화하여 통치체제에 적용한다(이종수, 2018.5). 특히 중국의周禮등을 수용하면서도 조선에 적합하게 融合 變容시켜 적용한 인사제도적 개선노력이 돋보인다는 점을 시사받을 수 있다. 이러한 연구가 계속하여 활성화 된다면 한국적인 전통 속에서 한국적 인사제도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발굴하여 일반론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인사행정적 시사점이다(이종수, 2018.12a : 535-536). 삼봉은 경제육전에서 수령을 近民之職이라고 하고, 수령의 자질과 평가덕목을 초안, 시행하였다.

넷째, 삼봉의 치인관은 인사제도의 이론적 출발점을 14세기로 끌어올렸다(이종수, 2018.11:111). , 미 중심의 인사제도의 제도적 틀을 자기화시킬 수 있는 이론적, 실증적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 블록체인 민주주의와 블록체인 정부

유교의 통치 이념에서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정도전은 민본을 강조한다. 블록체인의 특성 중의 하나가 분산화(distributed)이며, 그 기술적 발전이 집권, 분권화를 극복하고 완전한 주민자치시대가 도래함을 예고한다. 현대적인 주민자치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삼봉의 민유방본의 이념에는 은 단순한 교화의 피동적인 객체로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화를 통해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품성을 계발할 수 있다는 주체적 의미가 내포된다(이종수, 2018.5).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가면 국가 권력에 대한 하나의 근본적인 도전이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신뢰의 최종적인 담지자 역할을 했던 국가 등 공공기관의 역할이 점차 축소된다. “투입 비용에 비해 최악의 성과를 내고 있는 집단이 정부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이 정부를 더욱 효율적으로 바꿀 것이다. AI & 블록체인 융합기술은 문자그대로 민본사상의 구현을 예고하고 있다(이종수, 2018.5).

 

3. 융합민주주의와 주민참여

법을 제정하는 것은 국가 통치와 국정운영을 위한 정치적인 권력행사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거버넌스(governance) , 협치(協力的 統治)와 상통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협치란 용어가 사용됐다. 조선왕조실록서 정치를 도와서(영조 1753), 협력해 힘써 다스린다면(순조 1812), 정사가 잘되도록 도와(고종 1899)라는 내용을 살펴 조선후기에 우리조상들은 협력적 통치(協力的 統治)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국정을 운영하였다.

삼봉의 개혁사상과 치인관은 주자학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유불도와 참설 융합과 묘합원리로 적용하였으며(이종수, 2018.11 : 107 ; 김경수, 2013), 그러한 협치측면, 공동결정, 관민 간 소통구조가 香徒, 社長, 상두꾼, 향약, 향헌 등으로 발전되었다(이종수, 이병열, 2017 : 116-117).

융합민주주의의 가능성과 한계 측면에서 보면 헤테라키는 곧 권력 공유현상이다. “블록체인 혁명은 20년 안에 폭발할 것이며, 이 혁명은 사적 이익만 추구해 온 정치인들에게 빼앗겼던 민주주의의 권리를 미래의 시민들에게 되돌려 줄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 같은 거대한 변화를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네트워크 혁명이라고 한다.

관료제는 정보처리 자동화시스템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되면서 '데이터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회자된다(서정화, 이종수, 2019).

지능정보사회는 공유와 연결에 지능이 부가되어 사회의 지배질서는 수직적인 위계적 지배 질서로부터 수직·수평적인 혼계적 질서 위주의 사회의 특징을 갖는다. 연결에 의한 관계는 사회 전반이 개방형 사회로 변화하는 기초가 되고, 통치(command and control)보다는 협치(governance)가 더욱 더 요구된다.

 

 

. 나가는 글

 

조선개국기 삼봉은 조선의 창업을 위한 제도와 문화의 틀을 구상, 제공하여 500여 년간 국가를 유지하게 한 통치체제의 근간을 제안하고, 국가 현장에서 직접 적용, 실천한 혁명적, 창조적 재상이었다.

삼봉의 유교적 이념과 원리에 의한 통치 제도 구축으로 나라 개창과 말기까지 유교적 이념과 원리에 기반 한 통치체제 구축에 기반하여 조선은 이후 500여 년 유교국가로서 기능하였던 것이며, 그 핵심이 삼봉의 융합사상이었다.

조선 전기 太宗實錄에서 확인하였듯이 숙적이었던 태종조차도 삼봉에 대한 명확한 죄목을 회피하고 있음을 보았다. 삼봉의 臣權(宰相權)이 태종의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져 無君의 죄목으로 처단한 것에 불과하다.

이 연구는 조선의 개국기 통치제도의 형성과정에 큰 기여를 한 삼봉 정도전의 국가 통치철학인 법치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그의 치인관을 분석하여 현대 정치, 행정의 시사점을 찾고, 난국돌파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연구의 의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행정학에서 상대적으로 연구가 미흡한 분야인 치인(인사제도)사상과 관련 주요 정치가이자 경세가인 삼봉에 대한 국가통치사상에 대한 연구를 수행함으로서 한국의 인사행정연구의 地平을 확장한 연구로서도 의미 있는 연구로서 삼봉의 조선창업 치인사상을 재조명하여 혼란한 사회를 재구조화 시킬 수 있는 국가제도적 측면의 치인사상을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제도개혁에 결합시킬 수 있는 방안을 포스트휴먼 시대 인공지능과 블록체인 융합정부와 관련 대안을 모색하였다.

본 연구결과의 기대효과로는 제4차 산업혁명 파고에 융합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삼봉의 융합사상은 국가(정부와 공공조직) 관리과정의 재구조화 과정과 개인의 감성과 창의성 함양을 위한 이론적 토대로 활용가능하다는 점이다. 동시에 오상과 실록분석 결과 육예와 연결된 현대적 활용 방안으로 수기치인법과 음악 활동 등은 현대인의 감성, 창의성 함양과 심신건강유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논문은 20200510일에 투고 완료되어,

20200527일부터 0604일까지 심사위원이 심사하고,

20200608일 편집위원회에서 게재 결정된 논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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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People-governing Thoughts of Sambong Jeong-dojeon

 

Lee, Jongsoo*

 

This paper is organized as follows. The first section clarifies research questions, the purpose of study and methodology about modern implication of People-governing Thoughts of Sambong Jeong-dojeon. The second section deals with methods of study, literature review, previous research and theoretical background of modern implication of Sambong's people-governing thoughts. The third section analysed Ohsang(五常, the five constant virtues) : benevolence(), righteousness(), propriety(), knowledge(), and sincerity()) cases in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朝鮮王朝實錄). The cases are seventy six. The forth section suggests implication of public personnel policy. Those implications are theoretical implication of public personnel policy, blockchain democracy & government & convergence, citizen participation, so forth. There are the social use & cases of modern implication of Sambong's people-governing thoughts. The paper suggested research effect & limitations of effect analysis of their bureaucratic behavior in the early era of the Chosun dynasty. There were some suggestion & expectation effect of the study. The distintion of this paper found Sambong's writing, historical tracks, political and public personnel administration effect and his convergence thoughts about Confucianism, Taoism and Buddhism.

 

Key words : Sambong, Confucianism, People-governing thoughts, Ohsang(五常), Social 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