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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과 김재규의 혁명정신 비교분석

현곡 이종수 2020. 10. 24. 02:31

   이글의 인용을 금지함.

 

 

정도전과 김재규의 혁명정신 비교분석

 

이종수(중원대)

 

 

연구의 목적, 필요성

 

조선 창업의 주역 삼봉 정도전의 성리학(주자학)과 혁명정신(, 思想)의 정치, 행정철학적 배경, 내용, 결과 및 김재규의 10.26 독재항거 정신과 현대적 의의를 4차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시대 대응을 위한 시대문제 해결과 창조적 적용방안을 조명해 보고자 함.

 

본 연구는 이 두 사람의 사상을 비교 분석하고 한국적 선비정신원류와 비교, 주요 교육문화적 시사점과 현대적 계승점을 찾고자 함.

 

삼국시대 이래 우리나라 역사상 꺼져가는 고려, 불교의 폐단 종식자 삼봉 정도전과 유신 18년 장기 독재자 박정희를 살해하여 유신을 종식시킨 김재규만큼 과단성있는 인물도 찾기 어려움.

 

4차산업혁명시대의 융합사상적 접근의 필요성과 삼봉의 융합사상 및 김재규의 실천정신 접근 필요성

 

연구방법과 범위

 

방법 : 필자의 선행연구와 주요 학술지, 일간지, 김재규 회고록, 법원 판결문, 변호사 면담 내용 등을 참조 분석함.

 

필자의 삼봉 관련 선행연구(이종수, 20162020) 및 전문학술지, 일간지 활용 및 김재규 관련 법원 판결문, 옥중수양록등을 참조함.

 

범위 : 2인의 사상과 혁명 실천적 내용과 현대적 의의 등을 분석하고 활용방안을 제언함.

 

- 청년기 활동,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 2인의 혁명사상, 결과를 비교하고, 현대적 시사점을 제시함.

 

선행연구

 

첫째, 혁명사상과 수기치인 측면임. 이종수.(2019.2), 「「朝鮮經國典융합민본사상의 주민자치 시사점經國大典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주요 내용 중 현대 지방자치의 활용가능성을 분석하였으며, 이종수.(2018.12). 정도전 朝鮮經國典법치사상 분석은 삼봉의 융합적 법치사상과 현대적 시사점을 분석함. 이종수는 최근 AI시대 공직구조와 삼봉의 정좌사례와 효과(2017.11 : 164) 및 블록체인 시대 삼봉의 융합민본사상과 헤테라키(이종수, 2018.5)등을 발표함.

 

삼봉의 통치제도의 융합사상 측면임. 이종수.(2019.2). 「『朝鮮經國典融合민본사상의 주민자치 시사점과 이종수.(2018.12).삼봉의 융합민본사상과 헤테라키, 이종수.(2018.2). 삼봉 朝鮮經國典10차 개헌 시사점등을 참조함. 수기치인 측면은 주로 삼봉의 저작물과, 시를 중심으로 특성과 내용을 분석하는 데 주로 수행적 호흡법 측면임(김종진, 2008 ; 조기영, 1997 ; 이종수, 2017).

 

둘째, 김재규의 10.26 측면과 관련해서는 몇 편 정도가 발표됨. 정주신.(2007). 1026 사건의 배경 분석과 임혁백(2012)의 박정희에 대한 정치학적 평가 리더십, 근대화, 유신, 그리고 몰락을 분석함. 먼저 정주신의 연구는 1026 사건 의 정치적 배경으로서 1979년 말 한국의 정치적 상황과 체제내부의 갈등, 그로 인해 박정희의 사망이 초래될 수밖에 없었던 관점을 유인요인과 촉발요인으로 구별하여 분석함. 1026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이 부하인 김재규 정보부장에 의해 살해된 사건으로, 1인의 장기집권, 즉 권위주의정권을 종식시켰다는 점에서 민주화의 한 과정으로서 큰 의미를 지님(정주신, 2007).

 

- 박명진(1982)은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L'Humanité와 일간지 Le Monde, Le Figaro 등의 심층적 보도사례를 비교분석함. 특히 L'Humanité를 중심으로 동시에 프랑스 공산당(PCF)의 관점을 분석함. 조정관(2009)한국 민주화에 있어서 부마항쟁의 역할에서 광주항쟁과 비교를 통하여 부마항쟁이 잊혀진 이유를 탐문, 사건들의 역사적 순서와 규모의 차이, 부마지역의 기억운동주체와 역량의 문제, 1987년 민주화이후 지역주의 정치 및 삼당합당의 여파 등을 제시함.

 

- 정주신.(2017)은 유신체제시기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욕과 폭압성: 통일주체국민회의대통령긴급조치부마항쟁에서 1970년대 유신체제 시기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욕과 폭압성을 주제로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반민주성, 대통령긴급조치의 위법성, 부마항쟁 진압의 폭압성에 관한 사례로 구성함. 연구방법으로는 인과관계 측면(유신체제의 성립과 붕괴), ·제도적 측면(유신헌법과 대통 령긴급조치), 그리고 행태적 측면(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욕과 폭압성)을 적용함. 시대정신과 민주헌정의 기틀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대학생과 시민들의 반체제운동의 일환인 부마항쟁을 촉발시키면서 유신체제가 붕괴되기까지의 과정을 이 논문에서는 고찰함.

 

- 한국의 산업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정희의 국가주도 산업화 모델을 연구해야하고, 한국형 권위주의의 특이성을 밝히기 위해서도 박정희의 유신체제의 수립과 몰락을 연구해야 함. 한국형 근대화의 역사를 쓰고, 유신이라는 한국형 권위주의를 시도했으나 끝내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박정희에 대한 사회과학적 인과관계를 분석함(임혁백, 2012).

 

문영심이 쓴 김재규 평전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시사IN)19791026일에 벌어진 박정희 암살 사건을 재조명함. 10·26은 유신의 심장이자 종신 대통령을 꿈꾸었던 박정희를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되살리고자 했던 김재규의 의거라고 평가함.

 

셋째, 사회적 활용 측면임. 이종수, 이병렬.(2017.12). 삼봉 정도전 수기관의 현대적 시사점, 이종수.(2017.11). AI시대 공직구조 개편과제, 이종수.(2016.12). 삼봉 정도전의 포폄관 분석,이종수.(2019.12).영상 이원원음악관의 인성함양 효과등을 중심으로 삼봉의 육예 측면의 경서, , 음악, 진도(군사) 등에서 보여준 修己측면을 분석하고, 현대인의 인성함양 방안을 제언함.

 

이상의 내용을 < 1 >에 정리함.

 

< 1 > 선행연구 분석

구 분

선행연구 분석과 차별성

연구목적

연구방법

주요 연구내용

주요 내용

김경수(2013), 삼봉의 삼교회통

질적 접근

삼교의 융합적 적용 효과

이종수, 이병렬외(2015), 三峰과 포은의 행정사상

정도전과 정몽주의 혁명과 의리정신 분석

이종수, 이병렬(2014), 三峰의 민본사상

정도전의 민본사상 연원 분석

이종수(2017.8) 장자의 수양법

장자의 심재, 좌망 분석

이종수(2017), 이원익의 청렴행정

이원익의 청렴행정 사례와 효과 분석

이종수(2017.12), 三峰의 수기관 분석

삼봉의 수기관 특성과 시사점

이종수(2018), 三峰 朝鮮經國典의 개헌 시사점

정도전 법치사상의 개헌 시사점

이종수(2014) 三峰의 과전법

삼봉의 과전법 집행사례 분석

이종수(2016.12), 三峰의 포폄관

삼봉의 포폄제도 분석

이종수(2017), 도가의 선도문화

도가 장자 치유 사례 분석

이종수(2017.11), AI시대 공직구조 개편

공직구조 개혁과 삼봉의 정좌 효과

이종수(2018.5), 헤테라키와 三峰 융합민본사상

삼봉의 融合민본사상과 제10차 개헌 시사점

이종수(2018.12), 朝鮮經國典법치사상

사료 분석

삼봉의 법치사상 분석

이종수(2019.2), 삼봉의 融合민본사상과 주민자치

질적 접근

삼봉의 融合的 사상과 현대주민자치 시사점

정주신(2007), 10.26 사건의 배경분석

10.26의 유인요인과 촉발요인

정주신(2017), 유신체제와 박정희의 집권욕

긴급조치와 부마항쟁

박명진(1982), L'Humnaite보도, 미제국주의 개입

사설 분석

프랑스 신문사설 분석

조정관(2009), 한국민주화와 부마항쟁

질적 접근

부마항쟁과 유신의 붕괴

임혁백(2012), 10.26의 정치학적 분석

박정희 리더십, 유신, 몰락

조갑제(2019), 부마와 10.26

현장 취재

김재규와 10.26

연구의 차별성

三峰과 김재규의 혁명실천사상 비교

사료, 질적, 비교 분석

조선 개국기 三峰과 김재규 10.26의 혁명사상

 

內容 分析의 틀

 

본 고에서는 삼봉과 김재규의 혁명정신 측면을 중심으로 비교 분석하고 현대적 시사점과 활용방안, 대효과 측면의 몇가지 제도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으로 구분하여 제언함.

 

비교 분석의 틀

 

분석의 틀

 

< 2 > 비교 분석 틀

구분

정도전

김재규

출생지

영주(13421398, 57)

경북 선산(19261980, 54)

(박정희, 구미)

청년기

주자학과 육예

나주, 김포 등 유배

교사와 군인 생활,

당시 김재규는 도덕성과 충절을 중히 여기는 선산 가문 전통이 작용했으리라 추정됨.

정치사회적 상황

려말 불교부패와 민생 파탄, 원명교체기

유신장기 집권과 정부 정당성 훼손

혁명사상

- 민본사상

- 동양 정치사상의 뿌리는 요순(堯舜).

- 그 정치철학을 정립한 공자와 맹자 사상의 핵심이 민본정치사상

- 여말 선초에 정치의 요체를 몸소 깨달은 이가 삼봉 정도전임. 젊은 시절 뜻하지 않은 9년간의 귀양과 유랑생활의 고초는 성균관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성현의 사상을 유배지에서 체험적으로 승화시킨 중요한 의미가 됨.

- 민주주의자, ‘주 민권 자유 평등자유민주주의

- ‘비리법권천(()는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이치는 법을 이길 수 없으며, 법은 권력을 이길 수 없고, 권력은 천(민심)을 이길 수 없다)’ 휘호

- 군인의 憂國衷情

결과

이성계, 조준 등과 주자학 기반의 조선건국과 역성혁명 달성

朝鮮經國典經濟文鑑등으로 법치사상 근거 제시,

서울도성과 경복궁 등 교화장치 제도화

참형, 622년 매장됨(고종 대 복권)

10.26 : 독재자(박정희) 사살, 안중근의 이토히로부미 총살과 같은 날임. 40여년 매장됨(2019 복권).

"국민 여러분! 자유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십시오! 저는 먼저 갑니다." - 1980523, 사형집행 유서

 

연구 내용(본문)

 

삼봉과 김재규의 혁명정신과 의 실천의 유사, 상이점, 효과와 계승점 분석

 

내용적 측면의 의와 선비정신, 혁명가 삼봉 정도전의 정침의 의 연계성과 김재규의 정신과 실천적 개혁사상을 비교 조명함.

 

혁명이란 무엇인가 ?

 

주자학의 통치체계 이념은 에 의해 틀지워짐. 仁義를 해치는 군주는 스스로 그 통치의 권위와 정당성을 상실한 개인에 불과함. 백성이 이에 저항하여 통치체계를 전복할 수 있다는 혁명적인 이론임. 불법적인 권력에 맞설 시민의 저항권을 인정하는 현대민주주의와 같은 맥락음.

 

탕무방벌론과 관련 맹자는 현실적으로 제왕인 걸(()의 정권을 탈취한 탕왕과 무왕의 행위를 걸·주 정권의 비도덕성에 근거하여 합리화하고 있으며, 그것이 비도덕적인 정권에 대한 찬탈을 용인하는 혁명사상으로 발전한 것임.

 

유교 하면 '윗사람에게 충성하고...'하는 경직된 권력구조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건 유교가 장기간 지배적인 사상으로 군림하면서 권력자들 입맛에만 맞게 가공되었기 때문이고,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공자마저도 정명정신에서 강조하는 '지위에 맞는 책임', 위계질서의 꼭대기에 있는 왕이 저버렸을 때 어떻게 이것을 바로잡을 것인가를 설명하는, 시스템의 지속성을 위한 주요 개념 중 하나임.

 

이러한 혁명 이론은 주역(周易)에서 그 기초적인 개념을 찾아볼 수 있지만, 그것을 체계화된 이론으로 제시한 것은 맹자임.

 

나라의 선왕宣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과인이 듣기로는, "은 걸을 몰아내고 천자天子가 되었고, 무왕武王은 주를 쳐내고 천자가 되었다" 하던데, 이것이 사실입니까?"

맹자가 답했다.

"전해오는 기록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왕이 말했다.

"신하 된 자로서 제 임금을 시해한 것이 도리에 맞는 일이겠습니까?"

맹자가 말했다.

"을 해치는 자를 적이라 하고, 를 해치는 자를 잔이라 하며, 잔적한 이는 (왕으로써의 권위를 이미 상실한) 필부일 뿐이니, "무왕께서 ''라는 자를 주살하였다"라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라는 말은 들어 본 바 없습니다."( 孟子양혜왕 하 제8).

 

이러한 맹자의 혁명사상은 사실 그의 위민의식(爲民意識)에 기초한 것이며, 또한 위민을 구현하기 위한 보완적 방법임. 즉 백성이 나라의 근본이라고 하는 민본주의(民本主義)에 입각한 맹자의 위민의식은 백성의 온존을 위협할 수 있는 부도덕한 정권을 견제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한 필요로 말미암아 당연히 혁명론으로 전개되지 않을 수 없었음. 이러한 맹자의 이론은 '임금이 신하를 토개(土芥)처럼 여기면 신하는 임금을 원수처럼 여긴다'라는 말이나 '반복해서 간()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갈아치운다(易位)'라는 말에서도 잘 나타남. 맹자는 명분론을 내세워 혁명의 가능성과 그 타당성을 배제하지 않았음.

 

맹자는 이 혁명의 근거를 민의(民意)를 기본으로 하는 천명에 둠. 그것은 서경(書經)의 정치이념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며, 이때의 천도관(天道觀)은 집단적·보편적 권위의 실재를 지향하는 중국 고대의 전통적 천도관의 공통적 성격을 그대로 유지함. 천자가 하늘을 대행하여 백성들을 통치한다는 간접적 천치주의(天治主義)에서는 천자의 개폐(改廢)가 천의 의지에 달림. 천의 의지를 아는 방법은 바로 민의(民意)를 통해서임. 민심이 곧 천심(天心)이란 말과 같이 민의가 곧 천의(天意)의 구실을 하게 되는 것임.

 

혁명의 방법은 천자가 그 자손에게 천위(天位)를 세습하지 않고 다른 성의 유덕자에게 양위하는 방식, 곧 선양(禪讓)과 덕을 잃어버린 천자를 무력으로 추방, 또는 토벌하는 방식, 곧 방벌(탕왕·무왕의 경우).

 

다만 맹자의 혁명론에서는 혁명을 일으키는 주체의 도덕성이 엄격히 요구됨. 즉 탕왕·무왕과 같이 완결된 인격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혁명이 추진되었을 때만이 그 혁명을 정당화됨.

 

선비, 의병정신 개념과 관계

 

선비란 육예로써 백성을 교화할 수 있는 지식인임(김시황 : 105).

 

- 선비의 애국애족(130), ‘실패가 예고된 투쟁에서 목숨을 걸고 모험을 감수하는 정신이 의병정신(방영준 : 34), 불의에 저항하는 정신운동(방영훈 : 35), 정의수호와 국난극복의 원동력이었음.

 

서양은 혁명을 라 함. 동양은 군주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의라 함. 은 마음의 이고, 는 마음의 제어, 일의 마땅함, 또는 마땅하게 함임.

 

선비, 의병정신은 인간의 본성 중 를 바탕으로 한 정신임. 우리나라의 의병정신은 유학 곧 선비정신임(김시황 : 141). 민족의 긍지, 여한전쟁, 려한, 려수 전쟁, 나당전쟁, 려원 전쟁, 항일 독립전쟁, 곽재우 의병정신(김시황 : 144)을 예로 들 수 있음. 의병장 대부분은 선비였음(우인수 : 6). 의병장급 인물 102명 중 선비가 80%.

 

는 사람이 실행해야 할 바른 도리임(양승인 : 221). 환언하면 마땅함과 바름, 공평함 등으로 역사적인 의병 운동, 3.1 운동, 임정 활동 등으로 구체화하여 국가 위난시 마다 자구책으로 작동하였음.

 

삼봉은 정침의 에서 을 다지고, 거평부곡 백성교류에서 민본사상의 단초와 경세론의 실천적 적용을 꿈꿈(이종수, 이병렬 : 141).

 

삼봉은 ()를 위해 죽어야 할 땐 죽어야 한다고 확신한 선비였음(조항덕 : 28).

 

삼봉집혁명의 책’(革命之書). 어쩌면 삼봉은 우리 조선의 역사에서 세계 정치사에 치립(峙立)할 수 있는 인물로 내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혁명아(revolutionary), 프로페셔널 폴리티션(professional politician). 혁명이란 명()을 갈아치우는() 것임(도올 김용옥의 정도전).

 

본 연구를 위한 잠정적 목차를 예시함.

 

목차

 

. 서론

 

. 혁명의 이론적 접근

 

의와 의병, 선비정신

삼봉과 김재규의 혁명정신

려말선초 삼봉의 혁명실천

10.26과 김재규 의거

 

. 혁명의 경과, 사회상황, 혁명의 실천, 결과

 

혁명의 경과

정치사회적 상황

조선 개창

부마행쟁과 유신체제 종말

실천적 측면

결과적 측면

 

. 삼봉과 김재규 혁명과 현대적 시사점

 

삼봉혁명과 현대적 시사점

김재규의 10.26과 현대적 시사점

 

. 결론

 

참고문헌

 

삼봉의 역성혁명(정도전의 反正易姓革命)과 조선개국

 

조선개국 1등 공신 정도전

 

삼봉의 개혁의지와 사상체계는 기본적으로 朱子學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기층신앙으로 굳어진 불교, 도교, 참설 등을 融合과 묘합원리로 적용시킴. 삼봉의 행정사상의 특징은 유교적 이상국가의 건설, 민본, 혁명사상의 발전적 체계화, 재상중심 통치체제의 구상, 배불론의 체계화, 민족적 자주의식의 고양 등으로 요약됨.

 

삼봉은 1213세기 주자학을 민본사상적으로 融合하여 조선통치의 골간과 후대의 실학의 토대를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또 다른 측면에서 독창적임. 그의 민본융합사상의 핵심은 소개동의 民草, 정침의 , 주자학과 사공학의 실천적 融合, 불교 逐出 등이 믹서(융합)된 백성중심의 정치철학임.

 

그의 三敎融合的 철학과 성리학, 사공학, 경세학의 融合的 제도창출은 실학의 토대로 기능하며 여기에서 융합민본사상으로 발전함(이종수, 2018.5). 정도전은 특히 산당고색(군서고색후집)’을 토대로 주자의 주례관을 원용하며 중앙집권적 정치체제와 재상정치론, 감사의 褒貶權 등을 제시함. 사공학은 왕안석 기준의 국가조직 경영관리 방안으로 경세학적 내용을 주로 함.

 

민본사상, 귀민주의 총재 중심 통치 체제와 토지 균등 재분배로 이상국가 건설 추구 : 조선 건국의 주역 삼봉(三峰) 정도전(鄭道傳)은 사회를 유지하는 근본을 백성으로 보았음. 민본사상은 정도전이 추진한 개혁안의 근간임. 정도전은 조선 개국의 기본 정책을 규정한 법전인 朝鮮經國典과 정치 조직 연구 서적인 經濟文鑑에서 백성이 국가의 근본임을 밝힘.

 

정치를 이념과 권력의 끊임없는 교섭의 역사라고 한다면 삼봉은 할 수 있는 이념의 설계를 완성했고, 그 설계를 구체적 현실로 실천할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함. 그는 좌절한 몽상가가 아니라 치열한 현실의 승부사였으며 역사의 승리자였음(도올 김용옥).

 

젊은 시절 뜻하지 않은 9년간의 귀양과 유랑생활의 고초는 성균관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성현의 사상을 유배지에서 체험적으로 승화시킨 중요한 의미가 됨.

 

유교의 통치 이념은 백성은 나라의 근본. 정도전이 민본을 강조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 그럼에도 그의 민본주의가 주목받는 것은 백성들의 생활을 체험해 얻은 결과물이라는 점임.

 

정도전은 오랜 야인생활과 유배 기간에 백성들과 직접 접촉하면서 통치는 백성을 받드는 행위이며, 백성의 뜻을 얻는 것이 통치권의 정당성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됨. 또한 정도전은 민본을 내세우면서 자신과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한 것은 민본에 의한 것이고, 이는 곧 하늘의 뜻임을 주장함. 이 같은 정도전의 민본과 혁명의 논리는 우왕 대의 파행적 정치 현실을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게 하는 기폭제가 됨.

 

정도전은 왕, 즉 군주는 천명(天命)의 대행자이지만, 재상은 국정 전반에 걸쳐 책임을 지는 통치의 최고 실권자로 규정. 따라서 재상은 천명을 받들고 백성을 위해 국정을 책임지는 입장이며, 그 자리에 합당한 인물이 군주에 의해 선택돼 임명됨으로써 민본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봄.

 

정치를 이념과 권력의 끊임없는 교섭의 역사라고 한다면 삼봉은 할 수 있는 이념의 설계를 완성했고, 그 설계를 구체적 현실로 실천할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함. 그는 좌절한 몽상가가 아니라 치열한 현실의 승부사였으며 역사의 승리자임.

 

삼봉은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맹자의 귀민주의(貴民主義) 이념을 표방하고 역성혁명(易姓革命)의 가능성을 무한히 개방함으로써 민의 절대적 가치를 신봉했지만, 민의 주()됨을 보장하는 자치(自治)의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나 입헌주의라는 측면에서 삼봉은 매우 구체적으로 왕권을 제약하는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를 확보함. 단지 재상(宰相)을 선출하는 과정을 보다 개방적으로 제도화했더라면 아마도 그것은 당대의 세계사에서 가장 선진된 형태의 입헌군주제가 되었을 것임.

 

이념적 확신이 없는 제도적 개혁은 반드시 실패함. 삼봉은 결코 실패한 혁명가가 아님. 그는 조선 왕조를 개창한 성공한 정치가요, 사상가임. 레닌이 마르크시즘에 대한 확고한 자기류의 해석을 완성함으로써 볼셰비키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삼봉은 우선 주자학에 촉발받아 이념적 혁명의 틀을 완성함으로써 조선 왕조 개창이라는 눈부신 업적을 이룩함(도올 김용옥의 삼봉 정도전의 건국 철학에서 발췌).

 

고려불교 폐해와 부패를 백성에 대한 민본주의로 승화시킴.

 

삼봉의 선비정신임(강구율, 2013). 수기는 선비의 기본책무였으며, 치인은 기회를 얻어야 할 수 있는 선택사항임. 시대를 못만나면 자신의 이상과 포부를 저술로 남겨 후대에 전함(강구율 : 53). 대장부의 조건인 , , 를 갖추고도 뜻을 얻지 못함에 따라 出處를 결정함. 삼봉의답전부에 보면 수기치인 본분에 충실(강구율 : 60-61). 그는 천하의 넓은 집()에 거처하며, 천하의 바른 자리()에 서며, 천하의 바른 대도()를 행하고자 하였음.

 

김재규의 10.26 의거

 

부마항쟁의 배경 : 19791016, 부산대 상대 경제2 정광민 외 70명이 주도, 5000여명 시위 참여함.

부마항쟁의 진실과 실체 밝힌 다시 시월 1979(연합뉴스, 2019.10.7.)

 

"청년학도여! 지금 너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40년 전인 19791016일 오전 940, 당시 부산대 경제학과 2학년생이던 정광민 씨가 유신헌법 철폐와 박정희 대통령 하야 등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뿌려 부산대 시위를 촉발했다.

"소위 유신헌법을 보라! 그것은 법이 아니다. 그것은 국민을 위한 법이라기보다는 한 개인의 무모한 정치욕을 충족시키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선언문은 식어가는 정열, 잊혀가는 희미한 진실, 그리고 이성을 다시 한번 뜨겁게 불태우자며 청년학도들에게 분연히 진리와 자유의 횃불을 밝히자고 역설했다.

부산대 학생들의 교내 시위의 불쏘시개가 된 이날 선언은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 학생과 시민이 합세하며 민주화 운동의 용광로가 됐다. 불꽃은 급기야 부산을 넘어 마산으로 퍼져나가 부마민주항쟁으로 확산했다. 항쟁 시작 열흘 뒤엔 10·26사태가 발생해 유신정권의 종말을 가져왔다.

닷새 동안 진행된 부마민주항쟁은 1960년의 4·19혁명, 1980년의 5·18광주민주화운동, 1987년의 6·10민주항쟁과 더불어 우리나라 현대사를 장식한 4대 민주항쟁으로 꼽힌다. 하지만 역사적 평가, 제도적 기반, 관련자 예우라는 측면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안타까웠다.

4대 민주항쟁 중 유일하게 국가기념일에서 제외되던 10·16부마항쟁은 그 40주년인 올해 들어 공식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그리고 오는 16일에는 정부 주관으로 경남 창원시에서 '부마1979, 위대한 민주여정의 시작'이라는 주제로 첫 공식 기념식이 개최된다. 만시지탄이자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전개 : 마산으로 확산, 김재규 부장은 계엄령이 선포된 직후 직접 부산에 내려와 현장을 살피고 돌아가 사태의 심각성을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함. 그러나 대통령은 강경 진압 입장을 고수했고, 끝내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대통령을 살해함.

 

결과 : 3.15의거, 4.19정신 계승, 유신독재 항거, 국민주권 회복과 헌정질서 회복

 

김재규의 10·26 동기임. 첫째는 자유민주주의 회복, 둘째는 부마항쟁으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될까 봐 희생을 막자는 게 목적이었다. 세 번째는 북한에 의한 공산화를 막고, 네 번째가 주한 미군 철수 얘기가 나올 정도로 악화한 대미 관계 회복, 다섯 번째가 이승만 12, 박정희 1830년간 독재국가라는 이미지 척결임(김재규, 옥중수양록).

 

한홍구의 유신(한겨레출판)이조시대 이래 2인 이상이 역모를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골똘히 구상했다라고 진술한 김재규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인용하면서, 오랜 기간 정보기관을 거느리며 보안의 중요성과 첩보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혼자 구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해석을 내놓음.

 

혁명의 실천과 결과

 

- 핵심은 김재규가 유신 체제와 박정희를 동일시했으며, 박정희는 자국민을 300만명이나 희생, 자의로건 타의로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고 봤음. 박정희 사후 어느 국민이나 정치인도 유신 체제를 수호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유신 체제가 급격히 허물어져간 것을 보면 유신과 박정희가 한 몸이라는 김재규의 인식은 한 치도 틀림이 없음.

 

고 김재규 전 정보부장은 옥중 수양록에서 10·26사건을 '7년여의 준비끝에 이뤄낸 혁명'이라고 주장함. 옥중수양록에 따르면 그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행위를 '유신독재'를 청산하기 위한 거사라고 의미를 부여함. 그는 197210월 유신과 더불어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는 아무 까닭없이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위해 말살되고 있다고 평가함. 당시 격분한 그는 자신의 한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유를 회복하겠다는 일념에 박 대통령을 납치, 하야시킬 생각을 했고 이후 74년과 75, 794월에 권총을 품에 안고 결행을 하려했으나 정리(情理)가 가로막았다고 고백함. 하지만 그는 이후 7년이 지난 19791026일에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김. 그는 유신체제로 지탱하고있는 박 대통령만 제거하면 다른 것은 손댈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최소의 희생으로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함. 다음은 대학노트 32쪽 분량 옥중수양록의 요약임(한국일보, 2003.10.27).

 

혁명의 성공과 희생

 

- 10.26 혁명으로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었다. 자유가 흐르는 강을 가로막고 있는 보를 지개해서 물을 흘려 보내는 것과 같다. 이제는 천하 누구도 이 자유의 물결을 가로막을 자는 없다. "이는 천명이요. 대자연으로의 섭리이다." 혁명 결행해서 죽지 않고 살아났다는 것은 기적이다. 나는 죽을 가능성을 90%로 보았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살았다. 혁명 결행이 중요하지만은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혁명 과업수행이다. 20년 동안에 어지러진 쓰레기가 산적해 있지 않은가. 혁명적 방법이 아니고 무엇으로 시정할 것인가. 지금도 천하를 활보하고 있는 김종필, 이후락, 박종규, 김정렴 등 수많은 부정치부자의 재산을 혁명적 방법이 아니고 무슨 방법으로 환수하겠는가. 유신 헌법을 기초하여 국민을 우롱한 자. 긴급 조치를 기초한 자, 무슨 방법으로 다루겠는가. 권력과 결탁하여 집중 융자로 특혜를 받은 대기업들, 중소 기업들의 파산을 외면한 처사는 누가 책임지겠는가.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라" 금강경 구절로 인생 정리/종이에 적어 노트에 끼워놓아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옥중 수양록 노트 갈피에 불경의 한 구절을 흰색 종이에 적어 끼워놓음.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은 대승불교 최고의 경전인 금강경에 나오는 구절로 무엇을 행한다는 의식에 얽매이지 않는 무애, 무위의 정신 상태를 뜻함. '세상 모든 일이 인연법에 따라 저절로 일어나고 쇠한다'는 뜻이 담긴 이 불경 구절을 화두로 삼았음.

 

김재규의 총과 안중근의 총(강신옥)

 

내란죄가 아닌 일반 살인죄로 재판을 했다고 하더라도 김재규의 운명은 당시의 시국으로 보아 사형을 면하기 힘들었음. 다만 적법한 절차에 따른 공개 재판이 이루어졌다면 김재규의 뜻대로 유신 체제의 허구가 밝혀지고 거사 동기도 명확해졌을 것이지만 전두환 일당이 권력을 탈취하기 위해서는 유신 체제의 허구성이 법정에서 논의되는 것을 막아야 했음. 이 재판이 얼마나 위법투성이이며 졸속으로 진행되었는지는 바람 없는 천지에 꽃이 피겠나에 자세히 담겨 있는데, 지은이가 이만한 수준의 평전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신군부의 회유와 협박을 물리치고 사법 정의를 위해 싸웠던 강신옥·안동일·고 태윤기 같은 변호사가 많은 재판 기록을 남겨놓았기 때문임(시사인, 2020.1.22.).

 

유신 독재가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흘러온 결과라면 안중근이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인 이토 히로부미를 쏜 날과 김재규가 유신의 심장을 쏜 날이 같은 날이라는 것이 어떻게 우연일 수만 있겠는가?”(강신옥)

 

유신의 심장 쏜 뜻을 왜곡하지 말라”(시사인, 2020.2.22.)

 

- 197910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저격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국선 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를 만남. 그는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2005),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2017)를 집필함.

 

- 잘 안 알려졌지만 김재규 부장 아호가 수리(水理). 무인이면서도 문인의 감성이 있었음. 교사 생활을 해서 그런지 하는 말이 부드러우면서도 호소력과 신뢰감이 있었음. 김 부장은 일본에서 일어난 ‘5·15 사건을 들며 시종일관 자기 변론보다는 자신의 지시로 10·26에 참여한 부하들은 살려달라고 함. 5·15 사건이란 1932년 일본 장교들이 이노우에 닛쇼 수상을 저격한 사건인데, 당시 주범만 사형시킴.

 

- 10·26 사건 사흘 전인 1023일 친척들을 장충동에 있는 공관으로 불러 평소 자신이 써둔 주 민권 자유 평등자유민주주의’ ‘비리법권천(()는 이치를 이길 수 없고, 이치는 법을 이길 수 없으며, 법은 권력을 이길 수 없고, 권력은 천(민심)을 이길 수 없다)’ 등 붓글씨로 쓴 휘호를 건넸음.

 

- 이날 훗날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것으로 확인됨. 궁정동 안가에서 열린 대행사, 소행사 때 거사를 시도하려고 여러 번 망설이다가 1026일 결행함.

 

법률적으로 김재규 부장의 재심 가능성은 국민 저항권을 대신 행사한 거로 해서 무죄 주장 재심 신청은 가능함. 만일 현재 재판을 다시 한다면 최소한 내란 목적 살인이 단순 살인으로 변경될 가능성은 충분함.

 

한홍구(2013)는 김재규를 안중근, 윤봉길, 이봉창, 김구 등과 마지막 대륙형 인간으로 평가함.

 

미국의 개입가능성 관련(박명진, 1982 : 273) 10.25일 미함대 기함 Blue Ridge가 부산항 정박함. 주한 미군은 비상사태를 선포함. 10.26은 미제국주의 세력강화를 위해 꾸며낸 음모(Complot)라고 함.

 

현대적 시사점

 

삼봉의 천명 사상과 창의 융합측면의 활용방안을 제언함.

 

정치를 이념과 권력의 끊임없는 교섭의 역사라고 한다면 삼봉은 할 수 있는 이념의 설계를 완성했고, 그 설계를 구체적 현실로 실천할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함(도올 김용옥).

 

젊은 시절 뜻하지 않은 9년간의 귀양과 유랑생활의 고초는 성균관에서 이론적으로 배운 성현의 사상을 유배지에서 체험적으로 승화시킨 중요한 의미가 됨.

 

광화문광장에서 종로구청 앞을 거쳐 우정국로까지의 도로를 정도전의 호를 따서 삼봉로라고 지음.

 

그의 복권시기는 대원군의 왕권 강화와 관계됨. 당시 대원군은 외세에 대항하고, 노론의 세도정치를 혁파하기 위하여 왕권을 강화하려 하였고, 그 방법으로 경복궁을 중건하던 때임.

 

- 즉 조선 건국 후 한양천도 때 건립한 경복궁이 임진왜란 이후 폐허 속에서 다시 조선의 법궁으로 탄생될 때 정도전도 복권됨. 왜냐하면 한양천도 당시 새로 건립되는 법궁의 위치와 명칭 그리고 주요 전각들에 대한 이름에 정도전의 세계관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기 때문임.

 

김재규의 금강경(불교)과 혁명정신

 

김재규는 정치인도 혁명가도 아닌 군인이었음.

선산과 구미 :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구미 금오산(金烏山) 사람으로 동향임. 하지만 같은 고향사람으로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박정희 대통령는 구미 사람이고, 김재규는 이웃 선산(善山) 사람임.

 

- 박정희와 김재규, 두 사람은 같은 일군 출신으로 해방 후 같은 열차를 타고 군에 입대한 동기생(조선경비사관학교 2)이임. 그 이후에도 박정희는 김재규를 특별히 신임해 3군단장, 유정회 의원, 중앙정보부차장, 건설부장관, 중앙정보부장 등 요직을 맡김.

 

- 당시 김재규 마음속의 밑바닥에는 도덕성과 충절을 중히 여기는 이 고장의 충절 정신과 가문의 전통도 작용했으리라고 추정됨.

 

- 최근 전 국정원장 이종찬 회고록 숲은 고요하지 않다에 보면 10.26 사태 와 관련 "이런 긴장된 시점에서 나에게 또 하나의 외국 문건이 들어왔다. 한국의 정세가 마치 419 혁명 직전과도 같이 혼미한 상황에서 미국의 한국 전문가인 랠프 클러프 박사가 한국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제거(Decapitate)'될 경우 어떤 사태가 일어날 것인지를 분석한 글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물러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글이 미국 조야는 물론 한국 내에서 은밀하게 돌고 있었음.

 

그 글 가운데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클러프가 'Decapitate'라는 단어를 사용했음. '목을 자른다'는 뜻의 이 말은 그냥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강제로, 타율적으로 물러난다는 함의가 강험. , 그 글은 박 대통령이 강제로 물러날 수도 있다는 전제를 담고 있었다."(위의 책 1318).

 

박정희 전 대통령을 총으로 쏴서 숨지게 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진과 약력이 육군 부대 시설과 내부 홈페이지에 올라올 예정입니다. 국방부는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다"는 취지라고 밝힘([JTBC] 입력 2019.05.02.).

 

[김재규/전 중앙정보부장 (자료제공 : 유튜브 AaronSonghoe) : 저는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고 동향이고 동기생이고 이런 관계지만, 그 순간에는 내가 마음을 야수의 마음으로 바꿔서 행동했습니다.]

 

[최현수/국방부 대변인 : 지휘관 사진 게시 관련 훈령 개정의 골자는 내란, 외환 및 비리행위 관련 해임자의 경우에 역사자료로의 게시는 (허용한다는 것입니다.)]

 

김 전 부장의 사진과 약력은 이르면 이달 안에 육군 3군단, 6사단의 내부 홈페이지에 게시되고, 부대 내 역사관과 회의실에도 걸릴 예정임.

 

최근 김재규씨 묘지에 그를 의사라 일컫는 추모비가 세워졌다는 사실은, 그 말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고 평가함.

 

정 기자는 2016년 말~2017년 초 스토리펀딩을 통해서도 김재규와 10·26을 재평가하는 콘텐츠(‘김재규, 역사의 심판대 다시 오르다’)를 공개해 반향을 불러일으킴.

 

강신옥 변호사는 김재규 접견 노트를 갖고 있음. 김재규 자필, 심경을 담은 한시 등을 토대로 김재규 인품과 면면을 알게 됨.

 

강신옥 변호사는 사육신에 빗대어 김재규를 평가함. 김재규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임.

 

안동일 변호사는 지난 20176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라는 책을 통해 10·26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한 의로운 거사라고 평가했다.”

 

김재규는 자신의 의거를 혁명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함. 김재규의 거사를 내란이라고 하기에는 일반 상식으로 납득되지 않는 점이 많음. 김재규로부터 대통령을 처치하겠으니 대통령 경호원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부하 다섯 명은 사건 당일 그것도 저격 30분 전에 명령을 전달받음.

 

- 최근 한홍구의 유신(한겨레출판)이조시대 이래 2인 이상이 역모를 해서 성공한 사례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서 골똘히 구상했다라고 진술한 김재규의 피의자 신문조서를 인용하면서, 오랜 기간 정보기관을 거느리며 보안의 중요성과 첩보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혼자 구상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함.

 

- 핵심은 김재규가 유신 체제와 박정희를 동일시했으며, 박정희는 자국민을 300만명이나 희생시킨 폴 포트가 되면 되었지 결코 자의로건 타의로건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사람이 아니라고 봤음. 박정희 사후 어느 국민이나 정치인도 유신 체제를 수호하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유신 체제가 급격히 허물어져간 것을 보면 유신과 박정희가 한 몸이라는 김재규의 인식은 한 치도 틀림이 없음. 나아가 그는 자신이 박정희를 제거하기만 하면 18년 동안 박정희 1인 통치에 신음해온 국민이 모두 호응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음. 이 때문에 그는 조직을 만든다거나 동지를 규합하는 등의 성가신 내란음모를 꾸미거나 혁명을 준비할 필요가 없었던 것임.

 

어제는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된 10.26 사건, 40년 되는 날이었는데요. 당시 상황을 본국에 알린 주한 미국대사의 비밀 전문이 추가로 공개됐습니다.

미국의 상황 판단은 혼란스러웠고 군사정권을 묵인하는 듯한 흔적도 보입니다. 워싱턴 박성호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한국의 보안사령관이 중앙정보부의 활동을 장악했고 중정 사무실에 요원들을 배치했다('MBC 뉴스데스크(2019.10.27, 20:31).

 

- 당시 전두환의 움직임을 10.26 다음날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주목해서 국무부에 보고했습니다. 그날 바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을 찾아가 군의 중요성과 단결을 강조하며 만일의 사태를 경계한 대목도 보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예상보다 애도의 분위기가 없어 놀랍다면서 더 심각한 피해가 있기 전에 박대통령이 퇴장해 사람들이 안도하는 것 같다고 적었습니다.

미국이 5.18을 묵인했다고 폭로했던 탐사전문기자 팀 셔록이 공개한 10.26관련 기밀해제 문건에 나오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사건 한달 후 보고에서 미국대사는 거세진 민주화 열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유신체제를 즉각 해체하라는 과격분자들의 요구가 반복됐다.' 반체제 인사와 야당의 급진 진영 등 방해꾼들도 집권세력과 함께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표현했습니다.

[팀 셔록/미국 탐사전문기자] "당시 냉전 시절에 긴장이 아주 높아서 미국은 무엇보다 (한국 정부와) 관계를 유지하길 원했습니다." 미국이 10.26 직전 부마항쟁 당시 개입을 꺼리고 오히려 군사정권을 묵인했다는 내용도 원문으로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길 보면 미국 국무부가 성명을 내면 부마항쟁에 불을 지르는 효과가 있을 수 있으니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고 두 차례나 보고했습니다.

 

김재규는 혁명가가 아니라 박정희와의 개인적 의리와 국가 독재화에 대한 우려로 갈등하다 살해함.

 

대법원 소수 의견은 내란죄라기보다 형법의 살인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함.

 

결과 활용방안

 

분석의 틀에서 설정한 2인의 청년기 활동,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 2인의 혁명사상, 결과를 비교하고, 현대적 시사점을 제시함.

 

삼봉의 창의 융합사상과 가시적 교화(서울도성과 사대문의 五常) 방안의 현대화

 

정도전은 '경복궁'이라는 이름을 <시경>에 나오는 "旣醉以酒 旣飽以德 君子萬年 介爾景福(기취이주 기포이덕 군자만년 개이경복)"에서 끝의 두 글자를 따서 "景福宮"(경복궁)이라고 지음. 뿐만 아니라 정전인 '근정전', 편전인 '사정전', 침전인 '강녕전'을 비롯해 '연생전', '경성전', '근정문', '정문'(현재 광화문) 등 초기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의 이름을 지음(實錄참조).

 

서울도성과 사대문, 수기치인과 교화

 

하나의 왕조가 찬란한 문화를 이루며 500년을 이었다는 것은 세계사적으로 대단한 것임. 가능했던 이유는 정도전의 민본주의가 조선을 관통하는 통치철학이었기 때문임. 결국 정도전은 '현실'에서 승리했고, 정몽주는 '관념'에서 승리했을 뿐임.

 

삼봉의 민유방본의 이념에는 은 단순한 교화의 피동적인 객체로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화를 통해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품성을 계발할 수 있다는 주체적 의미가 내포됨.

 

예컨대 주민창의감성센터로서의 지역 향교 復活을 상정함. 4차산업혁명시대형 융합인재는 창의, 소통과 감성, 공감능력이 유효함. 기계가 못하는 자신의 강점을 극대화하여 대응할 것을 요청함(이종수, 2018.8). 예컨대 문제를 찾는 능력, 이질적 내용의 융합과 결합을 통한 해법 발견 능력 등으로 현대적으로는 지역향교의 창조융합적 활용 제도화를 통하여 접근함.

 

김재규의 금강경, 응무소주이생기심 ; "머문바 없이 마음을 내라" 금강경 구절로 인생 정리/종이에 적어 노트에 끼워놓음.

 

강신옥 변호사는 死六臣에 빗대어 김재규를 평가. 김재규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임.

 

안동일 변호사는 지난 20176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라는 책을 통해 10·26역사적 평가를 받을 만한 의로운 거사라고 평가했다.”

 

연구의 기대효과

 

삼봉의 민본사상과 제도화

 

- 블록체인 융합정부의 사상적 토대로 활용

 

김재규의 의거와 독재 종식의 현재화

 

- 현대판 사육신으로 복권

 

- 김재규기념관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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