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2021년 2월, 한국지방자치학회 동계학술대회 발표문임. 무단 인용을 금함.
삼봉의 冢宰(宰相)制度 연구
이종수(중원대)
- 목 차 - Ⅰ. 서 론 Ⅱ. 宰相(冢宰)의 제도적 접근 Ⅲ. 삼봉의 재상제도 운용 분석 Ⅳ. 주요 시사점과 현대적 활용 Ⅴ. 결 론 참고문헌 |
Ⅰ. 서 론
본 연구는 삼봉의 冢宰(宰相, 臣權)제도적 근거, 사상, 구조 등의 이론적 토대였던 『朝鮮經國典』, 『經濟文鑑』의 내용 및 그 법제화인 『經國大典』 규정과 조선 초기 의정부 집행사례, 결과를 『實錄』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현대적 시사점을 탐색함을 목적으로 한다.
본 연구 분석 결과의 시사점과 관련 2021년 현재 한국의 정치와 권력기관 獨走를 어떻게 극복하나(정정길, 2020.12) 등과 관련 권력투쟁과 당파 싸움 등을 극복한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사건과 사례를 통하여 성리학의 효용과 한계, 현대적 시사점을 再照明하였다.
『經濟文鑑』상권은 재상제도(宰相制度)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서술하며, 이어서 재상의 직책과 진퇴의 자세를 기술하였다. 정도전은 재상제도가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된 시대는 당우 삼대(唐虞三代)로서 이 시대에는 현명한 재상이 실권을 쥐고 제왕을 보필하여 이상적인 정치를 실현하였다고 봤다. 정도전의 통치체제론의 핵심은 군주와 신하의 지위와 역할을 규정한 군신 관계 구도였으며, 그 가운데서도 재상(宰相)의 권한과 지위에 대한 설정은 정도전이 세운 개혁 구도와 관련해 대단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주요 내용은 정도전의 왕정체제의 문제점으로서 '王의 자질이 어둡고 현명하고, 강하고 약함이 한결같지 않아 천하의 인재 가운데서 선발된 宰相이 도와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연구의 대상과 주요 내용으로는 조선초기(태조∼태종) 재상제도 집행실태 분석이며, 대상과 내용은『실록』분석, 조선전기 議政(府) 활동 실태를 분석한다.『실록』의 키워드(의정부)는 국역 13,583건이다. 조선시대의 三議政의 총수는 363명이다(김영모 : 438). 태조∼예종대는 領議政 32, 左議政 21, 右議政 8명 등 모두 61명이다. 태조(12), 정종(8), 태종(1,369), 3대의 1,389건의 사례를 분석의 기준(正己·格君·知人·處事)에 따라 분석하고, 정책참여 방식(입법, 행정, 인사, 재정권) 시사점을 제언한다. 의정부의 정책참여(박창진, 1997 : 98)는 체제, 인사, 대외, 대내 효과 등을 들었으나 본 고에서는 입법, 행정, 인사, 재정권(이종수 외, 2016 : 77)으로 구분하여 분석한다.
본 연구의 방법은 주요 학술지 선행연구, 필자 연구, 『經濟文鑑』,『經國大典』규정에 의거 『實錄』의 사례를 분석하고, 현대 정치, 행정, 사회, 인성측면의 시사점을 제언하며, 연구의 범위는 조선시대 개국이후 제상제도를 태조∼태종대 약 1389 건 중 議政의 자질 측면 4개 범주와 정책참여 부문을 입법, 행정, 인사, 재정권으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Ⅱ. 宰相(冢宰)의 제도적 접근
제1절 의의
1. 총재(재상)의 의의
(1) 정도전 재상론
정도전이 구상한 재상 제도는 근대 입헌군주제의 총리 제도와 유사한 면이 있다(『經濟文鑑』上卷). 冢宰(宰相) 제도적 접근(부남철, 2008 : 338-345)과 관련 재상론은 고려 공양왕(1389) 시기 삼봉의 상소에서 제기되고, 1394년 『朝鮮經國典』에 반영된다(김인호, 2002 : 16). 군주와 재상론은 『경세대전』, 『朝鮮經國典』의 총재제도(김인호, 2002 : 16-21) 등은 『書經』과『周禮』에 의거했다.
재상이 해야 할 일을 예시한다(김보정, 2013 : 176-178). “자신을 바르게 하여 임금을 바르게 하고(宰相의 행동규범은 正己·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 格君·군주를 바르게 하는 것), 인재를 잘 알아 일을 잘 처리하는 知人·인재를 잘 가려 쓰는 것, 處事·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등을 들었다.
태조 3년에 지은『朝鮮經國典』은 통치체제를,『經濟文鑑』은 經國濟世와 經世濟民, 관리로서의 태도와 책무를 강조한다(조항덕, 2007).
上卷은 宰相제도의 역사적인 변천과정을 서술하고, 이어 재상의 직책과 進退의 자세를 기술함. 宰相中心論이란 국가의 정치를 전적으로 재상에게 위임한다.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자신을 바르게 하여 임금을 바르게 하는 것”은 곧 치전(治典)의 근본이고, “사람을 잘 알아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은 치전으로 말미암아 행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삼봉집』권7, 『조선경국전』상, 치전, 총서).
이 사료는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이 편찬한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치전(治典)」 ‘총서(總序)’에 있는 내용으로, 재상의 직분과 비중을 언급하고 정치는 재상 중심으로 이끌어야 하는 까닭을 밝힌다.
正己 格君 知人 處事 등은 나를 바로 하고 임금을 세우고 사람을 알아보고 일에 능숙하다. 삼봉이 꼽은 재상의 네 가지 업무다. 오늘날 국무총리와 장관 임명이 어려운 이유를 600년 전에 알고 있었다.
삼봉이 든 재상의 업무는 이 네 가지 외에 임금을 인도해 도덕에 합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인군당도(引君當道), 옳은 것을 바치고 그른 것을 바꾼다는 헌가체부(獻可替否) 등 43가지를 더 들었다. 정도전이 꼽은 세칙에는 오늘날 바라는 모든 게 담겨 있다. 대통령을 바르게 이끌고(보좌), 널리 인재를 구하고, 일도 잘하는 것이다.
삼봉은 조선건국의 시기에 “왕권의 정상화”와 관련 삼봉은 한편으로 군주를 중심으로 하는 위계적 권력구조의 확립을, 다른 한편으로 국가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했던 관료들에 대한 권한의 규정과 제한을 모색한다(송재혁, 2016).
정도전이 『朝鮮經國典』, 『經濟文鑑』등을 저술함에 있어서 『周禮』에서 영향받은 내용들이다. 먼저 정도전은 『周禮』에서 "정치의 공공성" 측면을 주목한다. 이는 국가, 정치, 권력과 같은 것이 사적인 소유물이 아니라 공적인 것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조선에서 표방하는 유교정치에서 그런 측면을 강조하고 그런 근거와 사례를 『周禮』에서 찾았다(부남철, 2008).
다음은 『周禮』의 "冢宰"에 관한 것으로, 정도전은 『周禮』의 천관총재에서 설명된 총재정치론을 전적으로 참고하여 『朝鮮經國典』과 『經濟文鑑』을 저술한다.
정도전은 이러한 총재정치에 입각하여 『周禮』의 기본적인 틀인 天, 地, 春, 夏, 秋, 冬의 "육전체제"를 『朝鮮經國典』에 도입하면서 조선의 상황에 맞는 유교국가의 통치구조를 설계한다(부남철, 2008).
(2) 의정부
국가의 대소사는 王과 三政丞의 합의가 있어야 시행될 수 있는 구조였다. 또한 9경이라 불리는 정2품의 6조 판서와 한성부의 장인 판윤, 의정부의 좌참찬과 우참찬을 발탁하는 것도 의정부의 권한아었다. 그래서 의정부를 정부(政府)라고 칭했으며, 지금으로 치면 내각과 같다. 의정부는 영의정과 좌의정, 우의정으로 구성되었으며, 합의체제로 운영되며, 영의정은 수상으로 불리었으나, 실제 좌우의정과 같은 정1품의 품계로서, 영의정이 특별히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한 건 아니다.
이처럼 의정부는 조선시대 국정을 주관하고 백관을 통솔하고 서정을 총리하던 조선시대 최고의 정무기관으로 괴부(槐府), 괴청(槐廳), 남당(南堂), 낭묘(廊廟), 도당(都堂), 묘당(廟堂), 상부(相府), 암랑(巖廊), 정부(政府), 황각(黃閣), 태각(台閣) 등으로 불리며, 조선초 개국공신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도평의사사를 대신해 설치된다.
의정부가 정식 관서로 설치된 것은 1400년(정종 2) 4월임. 의정부가 설치되기 전까지 국정을 총괄하던 기관은 도평의사사로 도평의사사는 고려 말 국정의 최고 의결, 집행 기관으로 문하부·중추부·삼사(三司)의 2품 이상 관리들로 구성된 합좌기관이었다. 따라서 조선 건국 초에 그 인원이 많게는 50여 명에 이름. 이렇게 많은 인원이 도평의사사의 구성원이 되었던 것은 개국 직후 책록된 많은 개국공신들을 대우하기 위함이었다.
육조를 강화하려는 태종의 의도에 따라 1405년(태종 5) 의정부의 서정을 기능별로 육조에 분속하였고, 1408년(태종 8)에는 의정부에서 육조의 업무 집행을 감독하여 착오나 지체가 있으면 그 정상을 참작하여 시비를 가리고 조치하도록 함. 이를 통해 국왕↔의정부↔육조라는 관계가 성립되었는데 이것이 의정부서사제임. 결국 의정부는 서무를 육조로 나누고, 그것을 감독함으로써 국정의 모든 분야에 걸쳐 참여한다.
1414년(태종 14) 4월에는 좌·우정승을 판의정부사(判議政府事)로, 의정부 찬성사를 동판의정부사(同判議政府事)로 개칭하면서, 참찬(參贊)·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참지의정부사를 폐지했다. 그로부터 2개월 뒤에 다시 판의정부사를 좌·우의정으로, 동판의정부사를 좌·우참찬으로 환원한다. 이후에도 일부 관직에서 인원 변동이 이루어지는 등의 변동을 거쳤고, 1437년(세종 19)에는 찬성과 참찬 벼슬을 각각 좌·우로 체계화하였다.
의정부는 왕권과 의정부·육조 기능 등과 관련되어 몇 차례 변동을 거치다가 1466년(세조 12년) 영의정부사를 영의정, 검상조례사 녹사를 사록(司祿)으로 개칭하는 과정을 거쳐 결국 『經國大典』에는 정1품의 영의정·좌의정·우의정 각 1명, 종1품의 좌·우찬성 각 1명, 정2품의 좌·우참찬 각 1명, 정4품의 사인 2명, 정5품의 검상 1명, 정8품의 사록 2명으로 규정하였다(윤극일, 『國譯經國大典硏究』,1986 : 189).
2. 構造
(1) 제도(구조)
의정 298명 중 문과 출신 273명(91.6%), 무과 6명(2%), 문음 13명, 유일(遺逸, 명망선비 6인), 정인홍, 송시열, 허목, 박세체, 윤증, 권상하 등은 신권정치의 白眉이다(정재훈, 2012).
출신 코스는 30세 전후 문과 급제, 홍문관, 승문원, 예문관, 승정원, 사헌부 경유한다. 三議政(相臣)의 사회적 배경(김영모, 1977 : 437) 참조. 議政府는 正一品이 領議政, 左議政, 右議政과 從一品인 左贊成, 右贊成과 正二品인 左參贊, 右參贊, 2명의 舍人(正四品), 1명의 檢詳(正五品), 1명의 司祿(正八品)으로 구성된다.
構造측면은 三政丞(正一品), 2贊成(從一品), 2參贊(正二品)의 의정(議政)이 모든 관리들을 통솔하고, 일반정사를 처리하며, 음양을 고르게 하고(理陰陽), 나라를 운영하며, 7인 議政체제이다. 王과 臣僚, 각 기관들(國王·議政府·六曹·承政院·弘文館·司憲府·司諫院)간의 권력관계 연구결과 중종대는 王과 臣僚 사이에서는 王이, 각 기관들 사이에서는 議政府가 정국을 주도한다(박창진, 1996). 조선시대의 三議政의 총수는 363명임(김영모 : 438). 태조∼예종대는 領議政 32, 左議政 21, 右議政 8명 등 모두 61명이었다. 의정부 정승의 경우 세조∼고종(정재훈, 2012)사례를 참조한다.
선출방식 관련, 김용옥은 선출방식의 민주화 미흡, 비제도화가 맹점이라고 지적한다. 의정의 출신경로는 대체로 과거시험 합격자 -> 대간 -> 승정원 -> 議政 등이며(정재훈, 2012 ; 김영모, 1977), 출신 코스는 30세 전후 문과 급제, 홍문관, 승문원, 예문관, 승정원, 사헌부를 경유하였다.
議政 298명 중 문과 출신 273명(91.6%), 무과 6명(2%), 문음 13명, 유일(遺逸, 명망선비 6인), 정인홍, 송시열, 허목, 박세체, 윤증, 권상하 등은 신권정치의 白眉였다(정재훈, 2012).
정도전이 생각한 이상적 국가 운영의 형태는 『朝鮮經國典』, 『經濟文鑑』과 『經濟文鑑別集』을 관통하는 것은 ‘재상중심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를 확립임. 그러나 권력이 집중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관권 남용’의 문제해결을 위하여 권력 상호 간의 견제와 감독 기능을 부여. 언관과 감사의 중요성 등이다.
오로지 天官冢宰라는 재상적인 특수한 기능에 착안한다. 그리고 주관은 근원적으로 인민의 삶을 제도적 장치를 통해 철저히 통제하려 했다. 인민의 통제의 효율적 방법이 막연한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구체적 제도 즉 관의 질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주관]의 기본철학을 삼봉은 날카롭게 간파하고 수용, 제도화 한다.
(2) 職制
재상제도의 주요 직책은 三政丞(正一品), 贊成(左右贊成, 從一品), 參贊(左右參贊, 正二品)으로 구성됐다. 議政府는 正一品이 領議政, 左議政, 右議政과 從一品인 左贊成, 右贊成과 正二品인 左參贊, 右參贊, 2명의 舍人(正四品), 1명의 檢詳(正五品), 1명의 司祿(正八品)으로 구성됐다. 王과 臣僚, 각 기관들(國王·議政府·六曹·承政院·弘文館·司憲府·司諫院)간의 권력관계 연구결과 중종대는 王과 臣僚 사이에서는 王이, 각 기관들 사이에서는 議政府가 정국을 주도한다(박창진, 1996). 조선시대의 三議政의 총수는 363명임(김영모 : 438). 태조∼예종대는 領議政 32, 左議政 21, 右議政 8명 등 모두 61명이다. 의정부 정승의 경우 세조∼고종(정재훈, 2012)사례를 참조한다.
(3) 정승의 재임
첫째, 임용측면측면이다. 조선시대 삼정승·육판서와 같은 고위관료의 인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하나는 薦望을 들이게 해서 적격자를 선발하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왕의 특명으로 관직을 제수하는 방식이다. 조선중기에는 천망에 의한 선발과 특명에 의한 선발이 모두 이용된다. 이렇게 볼 때 조선중기 고위관료의 임용은 천망에 의한 공론 수렴과 국왕의 의견이 반영된 特旨에 의한 선발이 절충된 형태였다(최동원, 2009 : 243-272).
다음으로 조선중기 삼정승·육판서의 인사실태를 보면, 삼정승은 연평균 0.8회 인사를 실시해 평균 390일을 재직했다. 한편 육판서는 연평균 1.8회 인사가 이루어져 약 170일을 재임한다. 즉 육조판서에 비해 삼정승은 인사횟수가 적었고, 장기간 재직함. 특히 삼정승 중에서도 영의정은 소수의 특정 인물이 장기간 재직하는 형태를 보였다.
초기 재상은 왕명에 따라 선발됐지만 간혹 대신의 의견을 물었다. 성종 대엔 대신과 논의를 거쳐 선발했다. 그러다 중종 대에는 시임 대신의 의견을 묻는 ‘천망(薦望) 방식’이 생겼다. 후보를 올려 낙점을 받는 제도다. ‘조선 중기(선조~현종) 3공·6경직의 인사운영’(최동원, 2005)에 따르면 선조~현종 시기 삼정승·육판서의 인사는 80% 가까이 천망에 의해 결정됐다. 당의(당쟁)가 심했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반대파의 의견도 들었다는 의미다. 일종의 정치적 타협이자 공론의 반영인 셈이다.
영의정에는 소수의 인물이 장기 재직하기도 했다. 최동원의 연구에 따르면 선조 때 박순은 2272일(6.2년), 유성룡은 1813일(약 5년) 재임했다. 인조 때 윤방은 1852일(5년), 이원익은 1216일(3.4년), 현종 때 정태화는 4135일(11.3년). 영의정의 평균 재임기간은 3년이 조금 넘는다. 영의정에 거듭 기용된 사례도 꽤 된다. 이원익·노수신·윤방 등이 그랬다.
둘째, 경력이다. 대부분의 삼정승 역임자는 入仕路 중 문과를 통해 관직 활동을 시작한다. 그 이후 分館을 하거나 한림직을 제수 받았으며, 出六 후 육조의 낭관이나 삼사의 참상·당하관직을 거쳐 당상관으로 승진했다. 그 중 홍문관직을 거치는 비율이 압도적임. 당상관에서는 승정원의 승지를 거쳐 삼사의 장관, 육조의 판서를 역임한 이후 정승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으며, 특히 입상직전의 관직 중 이조판서는 전체의 32%를 차지할 정도로 높았다.
3. 현대적 구조
(1) 총리
흔히 총리를 가리켜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이라 한다. 조선시대 영의정(領議政)에 견주는 표현이다. 조선 초부터 시행된 영의정 직제는 『경국대전』(1466년)에서 성문화됐다. 재상·정승이란 말도 사용됐다. 그러다 갑오개혁(1894년) 때 영의정은 총리대신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의 총리가 그 시절의 영의정과 같을 수는 없겠지만 그 뿌리는 영의정에 닿아 있다. 영의정이란 단어가 갖는 무게와 의미는 오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조선시대의 영의정(재상)에 새삼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무총리(國務總理)는 대한민국의 정무직 공무원으로 현행 헌법 하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령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통괄 및 관할)하는 역할을 맡는다(헌법 제86조 제2항)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궐위나 사고 시 권한대행자로서의 지위, 대통령의 보좌기관으로서의 지위,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의 지위, 중앙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 국무회의의 부의장으로서의 지위를 가진다. 행정부의 제2인자로서의 지위로서는 각부장관보다 상위의 지위로서, 행정각부의 장을 지휘 감독하나 중앙행정관청으로서의 지위로서는 행정각부의 장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다.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회의장,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함께 5부요인이라 한다.
(2) 부총리
대한민국의 부총리(副總理)는 국무총리가 특별히 위임하는 사무를 처리하는 정무직 공무원이다. 특정 부처의 장관이 겸임할 수 있으며, 주로 경제나 상공 등 정부의 주요 시책 담당 부서의 장관이 겸임한다. 1963년 처음 제도가 도입되어 사라졌다 부활했다를 반복하는데, 박정희 대통령 이후 부총리를 한명도 안 두고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현재까지 이명박 대통령 뿐이다.
대한민국에는 기획재정부 장관이 겸직하는 경제부총리와 교육부 장관이 겸직하는 사회부총리가 존재한다. 부총리제가 시행되는 동안 통일부총리, 교육부총리, 사회부총리, 과학부총리 등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부침을 겪었지만 경제부총리만큼은 부총리제가 도입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사라지지 않은 직제다.
부총리라는 호칭을 쓰진 않더라도 국가의전서열에서 부총리와 동급인 직급들도 존재한다. 여당 대표, 제1야당 대표, 국회부의장, 감사원장 등이 부총리급 대우를 받는다.
제2절 선행연구와 분석 틀
1. 선행연구
필자의 선행 연구를 3가지로 통치 행정측면으로 구조화 하고 본 연구의 차별성을 예시한다. 첫째, 삼봉의 통치제도와 관련 김인호(2005)는 『經濟文鑑』과 삼봉의 역사인식 등을 분석함. 조항덕(2007)은 『經濟文鑑』에 나타난 삼봉정도전의 정치사상을, 이종수와 전광섭(2016)은 조선 중기 외관 포폄사례, 이종수(2016.6)는 삼봉 포폄관 등을 분석하였으며, 이종수(2017-2018)는 최근 AI시대 공직구조와 삼봉의 정좌사례와 효과(2017.11 : 164) 및 블록체인 시대 삼봉의 융합민본사상과 헤테라키(이종수, 2018.5)등을 발표하여 삼봉의 행정창의성을 조명하였다.
둘째, 재상제도 측면은 백완기(1992), 부남철(2008), 조항덕(2007), 김석근(2008) 등과 왕권과 신권의 상호 견제(김석근, 2008 ; 이윤복, 2020 ; 백완기 ; 민병학 외, 1998) ; 김인규(2017), 남지대(1993), 박창진(1996), 한충희(1992), 부남철(1990), 최연식(1998), 송재혁(2016) 등에 천착한다. 冢宰(宰相) 제도적 접근(부남철, 2008 : 338-345)과 재상론은 고려 공양왕(1389) 시기 삼봉의 상소에서 제기되고, 1394년 『朝鮮經國典』에 반영된다(김인호, 2002 : 16).
셋째, 수기치인 측면은 주로 삼봉의 저작물과, 시를 중심으로 특성과 내용을 분석하는 데 주로 수행적 호흡법 측면이다(김종진, 2008 ; 조기영, 1997 ; 이종수, 2017). 삼봉의 수기치인과 내면적인 정신함양 등을 살필 수 있다.
넷째, 본 연구의 기존 선행연구와의 차별성 측면이다. 본 고는 기존 필자의 연구재단 선행연구(이종수, 2017∼2019)인 삼봉의 수기관(2017), 삼봉의 치인관(2018), 삼봉의 법치사상(2018), 삼봉의 대간제도 효과분석(2019), 삼봉의 대간제도 집행사례(이종수, 2020.12)에 이은 의정부 기능분석으로 확대하여 삼봉의 통치사상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자 하는 순차적 접근이다. 이종수(2020.6) 치인관 ; 이종수(2020.8) 대간제도 ; 삼봉과 이원익의 창의 융합성 효과(이종수, 2020.12) 등을 참조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 표 1 >에 정리한다.
< 표 1 > 선행연구 분석
구 분 |
선행연구 분석과 차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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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목적 |
연구방법 |
주요 연구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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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내용 |
최승희(1995), 개국초의 왕권 |
질적 접근 |
태조의 왕권과 정치 운영 |
최승희(1987), 태조와 왕권 |
사료 분석 |
태조의 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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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충희(1982), 조선 초기 의정부 |
〃 |
왕권과 신권 분석 |
|
조항덕(2007), 『經濟文鑑』과 재상의 진퇴 |
〃 |
경제문감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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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근(2008), 군권과 신권 |
질적 접근 |
재상제도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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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복(2020), 태종의 대간관 |
〃 |
왕권과 신권 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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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2017), 재상제도 |
〃 |
『周禮』와 재상제도 |
|
이상백(1947), 정도전론 |
〃 |
정도전 평가 |
|
한영우(1973), 정도전 사상 |
〃 |
정치, 경제, 철학측면 조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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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철(2003), 삼봉의 事功學 |
질적 접근 |
삼봉의 경세학 |
|
김인호(2005), 삼봉의 『經濟文鑑』 |
〃 |
삼봉의 국정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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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민(2016), 수기와 치인 |
〃 |
수기와 치인은 분리되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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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2013), 삼봉의 삼교회통 |
〃 |
삼교의 융합적 적용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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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7.8) 장자의 수양법 |
〃 |
장자의 심재, 좌망 분석 |
|
이종수(2017), 이원익의 청렴행정 |
〃 |
이원익의 청렴행정 사례와 효과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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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7.12), 三峰의 수기관 분석 |
〃 |
삼봉의 수기관 특성과 시사점 |
|
이종수(2018), 三峰 『朝鮮經國典』의 개헌 시사점 |
〃 |
정도전 법치사상의 개헌 시사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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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4) 三峰의 과전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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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의 과전법 집행사례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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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6.12), 三峰의 포폄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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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의 포폄제도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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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7), 도가의 선도문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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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장자 치유 사례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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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7.11), AI시대 공직구조 개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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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구조 개혁과 삼봉의 정좌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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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8.5), 헤테라키와 三峰 융합민본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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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의 融合민본사상과 제10차 개헌 시사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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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8.12), 『朝鮮經國典』 법치사상 |
사료 분석 |
삼봉의 법치사상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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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19.2), 삼봉의 融合민본사상과 주민자치 |
질적 접근 |
삼봉의 融合的 사상과 현대주민자치 시사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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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20), 치인관 분석 |
사료 분석 |
삼봉의 치인관 사례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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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20.8, 12), 삼봉의 대간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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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의 대간제도 집행 사례 분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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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수(2020.12), 융합행정제도화 |
질적 접근 |
AI & 블록체인융합행정 제도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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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차별성 |
三峰의 王權, 臣權 相互牽制의 현대적 의의와 활용 |
사료, 질적 분석 |
조선 개국기 삼봉의 재상제도 특성과 영향요인 및 현대(부)총리제 시사점 분석 |
2. 분석의 주요 내용적 측면(분석 틀)
본 고에서는 삼봉의 재상제도와 제도화, 집행 측면의 특성과 현대적 시사점과 활용방안을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삼봉 재상론의 기본 틀은 『周禮』에 기반한 실천적 성리학의 (고려) 조선 유입과 그 融合的 제도 형성과 현장 적용이며, 그 주요 내용적 측면은 삼봉의 『經濟文鑑』등에 나타나며, 구체적 집행사례는 『朝鮮王朝實錄』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행위규범 4가지 측면과 정책참여 4가지 실행 결과를 정승, 찬성, 참찬의 사례를 중심으로 분석한다.
『실록』분석 : 조선전기 議政(府) 활동 실태를 분석한다. 훌륭한 宰相의 행동규범으로는 정기(正己·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 격군(格君·군주를 바르게 하는 것), 지인(知人·인재를 잘 가려 쓰는 것), 처사(處事·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를, 의정부의 정책참여(이종수 외, 2016 : 77)는 입법권, 행정, 인사, 재정권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이상의 내용을 중심으로 분석의 틀을 < 표 2 >에 예시한다.
< 표 2 > 분석의 기준
구분 |
척도 |
3정승 |
2찬성 |
2참찬 |
행위규범 |
正 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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格 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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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 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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處 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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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참여 |
立 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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行 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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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 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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財 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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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삼봉의 재상제도 운용 분석
제1절 제도와 실천
1. 4대 행위규범
『실록』분석측면이다. 조선전기 議政(府) 활동 실태를 분석한다. 훌륭한 宰相의 행동규범으로는 정기(正己·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 격군(格君·군주를 바르게 하는 것), 지인(知人·인재를 잘 가려 쓰는 것), 처사(處事·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를 들었다(정도전, 『경제문감』). 의정부의 정책참여(이종수 외, 2016 : 77)는 입법권, 행정, 인사, 재정권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2. 4대 정책참여
의정부의 정책참여(이종수 외, 2016 : 77)는 입법권, 행정, 인사, 재정권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조선시대와 현대의 유사, 상이점 및 주요 시사점과 적용방안을 찾고자 한다.
3. 사례적 교훈
(1) 황희
黃喜(1363∼1452, 90卒)는 87세에 파주 반구정 생활로 노후를 보냈다. 갈매기와 친구삼을 것이다. 우의정(60), 좌의정(65), 영의정(69) 역임한다. 파주는 고래로 전통향토음식이 어죽, 도리뱅뱅이, 민물새우튀김 등으로 황희는 기름진 음식을 피하는 섭양법을 실천하여 90세까지 장수한다. Covid-19 면역 증대에도 蔬食이 효과적이다.
한강 건너 이웃해 있는 광명시의 領相 梧里 李元翼(1547∼1634)은 돼지고기 물김치와 톳나물 김치 등으로 攝養했다. 반찬을 3가지 이상 못하게 하여 88세까지 장수한다(이종수, 2019).
청백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재상이 황희다. 그의 정치적 삶은 두문불출(杜門不出·한곳에 박혀 나오지 않음)에서 출발했다. 혼란기였던 여말선초(麗末鮮初·고려 말 조선 초) 새 왕조를 거부하며 경기도 광덕산 기슭 두문동에 숨었던 120여 선비·무인 중 한 명이었다. 나중에 조선에 출사(出仕)한 황희는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 태종·세종·문종에 이르기까지 승승장구했다. 세종 31년(1499년) 실록에는 “너그럽고 후한 데다 분경(紛更·뒤헝클어 고침)을 좋아하지 않고 여론을 잘 진정시켜 참된 재상(眞宰相)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나온다.
황희는 소신과 원칙을 지키는 강직한 선비였다. 1418년 태종이 장남인 세자 양녕을 폐위시키고 3남 충녕(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했을 때다. 당시 이조판서였던 황희는 폐장입유(廢長立幼·장자를 폐하고 아랫사람을 세움)를 반대하는 직언을 했다. 이 일로 황희는 귀양을 떠나게 된다. 성군은 충신을 알아보는 법. 이 사실을 잘 알았지만 세종은 재위 13년(1431년) 황희를 영의정에 발탁했다. 영의정을 지낸 18년 동안 조선의 기틀을 튼튼히 다졌던 황희는 가히 대한민국 총리의 롤모델로도 손색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황희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문종 2년 실록에는 뜻밖의 글이 나온다. “성품이 지나치게 관대해 단점이 있었으며, 청렴결백한 지조가 모자라서 자못 청렴하지 못하다는 비난이 있었다.” 황희의 두 얼굴이다.
취임 4년 전인 세종 9년, 황희의 사위 서달이 ‘나를 몰라본다’며 지방 아전을 때려 죽인다. 황희는 맹사성에게 아전 가족을 달래서 사건을 무마해 달라고 부탁하고 담당 관리에게도 청탁했다. 그 일이 들통나 파직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10여 일 후 세종은 그를 다시 등용한다.
재상에 취임한 뒤 아들 문제가 터졌다. 우선 내섬시(內贍寺)의 여종을 첩으로 삼아 낳은 아들 중생(仲生)이 사고를 치는데 중생이 동궁의 금붙이를 훔친 일이 들통났다. 그러자 황희는 “내 아들이 아니다”고 해 버렸다. 황중생은 조중생으로 이름을 바꿨다(세종 22년, 10월 12일).
세종 11년(1429년) 기사에는 “호조의 담당자 정랑 황보신(黃保身) 등이 묵은쌀이 아닌 것을 묵은쌀이라고 성상께 아뢰고는 모두 스스로 거듭 받았습니다”고 했다. 착복 관리 황보신은 황희 본부인의 아들이었다. 믿기지 않는다. 아마 오늘날이라면 총리 청문회에 발도 들여놓지 못할 것이다.
(2) 이원익
광해군 북인정권, 남인 이원익 파격 발탁된다. 황희의 사례에서 보듯 조선의 영의정도 당연히 완벽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조선 재상이 갖춰야 할 덕목은 무엇이었을까. 새 왕조의 이념적 기둥을 세우고 태조 이성계 때 영의정을 지낸 정도전은 『경제문감』에서 재상의 자질과 소업을 네 가지로 정리했다. 정기(正己)·격군(格君)·지인(知人)·처사(處事)가 그것이다.
정기(正己)는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용퇴(勇退·물러남)를 제대로 할 것’이라는 권고가 세부 사항에 포함돼 있다. 격군은 임금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임금을 도(道)로 이끌고, 옳은 것은 하고 그른 것은 바꾸며 도리를 굽혀 비위를 맞추지 않아야 한다. 지인은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다. 강명·정직한 인물 가려 뽑기, 어진 이를 나오게 하고 간사함을 물리치기, 천하의 인재에게 널리 묻기 등이 필요한 덕목이다. 처사는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다. “한 가지라도 실수가 있게 되면 환란이 일어난다. 옛말에 일을 잘 처리하는 자는 반드시 기미가 있는 곳을 삼갔으니 쉬운 데서 어려움을 도모하고, 미세한 것에서 큰 것을 했다”고 썼다.
당쟁이 격렬했던 선조·광해군·인조 3대에 걸쳐 여섯 차례 영의정을 지낸 이원익은 정도전이 제시한 바람직한 재상상의 사표라 할 만하다. 선조 수정실록 10년(1577년) 7월 1일자에는 “(휴가를) 아예 청탁하는 일이 없어 아전들이 성인이라 칭찬했으나 동료들은 비웃었다”는 기록이 있다.
화합형이었던 그는 남인이었음에도 광해군 북인정권의 첫 영의정이 됐다. 광해군은 “영상의 직임은 경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다. 귀양에서 돌아온 뒤 궁핍한 형편에 대해 『오리선생문집』은 “초가 두어 칸에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고 처자들은 하루 걸러 끼니를 먹을 정도로 빈한했다”고 전한다. 반정(反正)으로 왕이 된 인조도 전 정권의 정승이었던 그를 영의정으로 불렀다.
(3) 권중화, 이준
청빈 분야에서 필적할 만한 정승이 또 있다. 태종 때의 권중화. 86세에 기용돼 이듬해 사망했다. 재산으로 늙은 말 한 필과 한 되의 이(蝨)를 남겼다고 한다. 용맹함 때문에 영의정이 된 최연소 재상 이준(李浚)도 있다. 28세였다. 이시애의 난(1467)이 일어나자 세조는 함길도·강원도·평안도·황해도 4도 병마도총사로 임명, 토벌을 명한다. 난을 평정한 이듬해 영의정이 된다.
제2절 삼봉 평가
1. 삼봉의 융합사상
첫째, AI 정책결정과 관련 신라의 화백의 결정사례를 참고하고, 조선시대 의정부는 7인의 議政構造였다. 국가 주요 정책들이 이곳의 7인 중심으로 결정됐다(이종수, 2020.12).
조선창업 사상을『朝鮮經國典』에 담은 삼봉의 국가제도를 정초한 지혜와 시사점을 融合的 民本思想과 제도적 왕권 견제책인 臺諫制度(司諫院 등) 및 반 자율적 주민통제 제도인 鄕憲 등의 제도형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삼봉 정도전(1342∼1398)의 권력제도의 근원은 민본(民惟邦本)에서 유래했다. 삼봉은 백성, 국가, 군주의 순으로 그 중요성을 자리매김한다.
朝鮮經國典의 구조가 중국의 『주례』와 차별적인 점은 무엇보다도 민본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과 王의 규정과 재상론(三政丞)등으로 이는 성리학을 주로 하면서도 사공학 등을 창조적으로 반영하여 조선에 적용시켰다(서정화, 2017.4).
한국문화사에 있어서 융합의 관점에서 가장 연대가 빠르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은 원효의 화쟁회통(和諍會通) 사상이다. 원효의 전기에 나타난 정황으로 보아 당시 신라에 수용되었던 유교와 도교에 대해 원효는 상당한 이해를 갖고 있었다. 원효대사는 불교 이외의 참기, 잡문, 외서 등을 모두 읽었으며, 988년에 중국의 찬녕(贊寧)이 지은송고승전(宋高僧傳)에는 원효는 삼학(三學)에 두루 달통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효가 살았던 당시의 종교적 상황은 신라 토속의 천신신앙을 비롯하여 불교, 유교, 도교가 공존하던 시대였다(김용표 2010:52).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불교사와 신라의 당대 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사상의 틀을 원효는 창출해 냈던 것이다. 불교를 바탕으로 하여 원효는 자신이 터득한 몇 가지 사상을 융합하여 화쟁회통의 사상체계를 이루어냈다. 이 사상은 불교철학의 위대한 정점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신라의 삼국통일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이는 원효의 깊은 학문과 불교적 수행이 어우러져 빚어낸 위대한 성취라 하겠다(이종수, 2020.12).
둘째, 블록체인 신뢰장치가 두레, 향도, 鄕憲 56조(이종수, 2016.6) 등이다. 향헌은 향약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한 최초의 성문법 형태의 자치규점이었다(이종수, 2015 : 107-135 ; 이종수 외, 2016 : 113). 향헌의 후대 영향은 극기복례, 공동체 부조, 민관관 소통 구조역할과 공동체 의식, 결사체 형성역할을 수행한다.
셋째, 한국문화의 특성은 융합성에 있다(정경조, 2016). 한국인의 기질은 양극단을 조화시키고, 모순을 화합시키는 중용의 문화 양단불락(兩端不落)과 양자병합(兩者竝合)을 특성으로 한다. 모순의 융합은 內面에서 그 모순을 會通시켜 새로운 조화와 균형을 창조하는 에너지와 동인이 된다. 그 근저에 삼재사상(三才思想)이 자리한다. 자연과의 합일, 공동체 사상이다. 그 외부적 표현이 관용, 나눔, 어울림 등이며, 언어적 측면은 여닫이, 승강기 등과 비빔밥과 한상문화 등이며, 전통 한옥의 구조에서 가장 특징적인 온돌과 마루를 들 수 있다. 온돌은 추운 북방의 생활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겨울을 나기 위한 주거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에 비해 마루는 더운 남방에서 여름을 나기 위해 습기 제거와 통풍이 잘 되도록 설계된 것이다. 겨울에는 따뜻한 온돌방에서 생활하고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하는 시원한 마루로 설계된 것이 한옥의 기본 구조이다.
2. 삼봉사상의 차별성과 시사점
정도전은 사서오경 가운데 주자학적 정치이념을 지향하면서 첫째, 『주례』를 중시하는 가운데 새로운 국가정치체제의 기본골격을 제시하였다.『주례』를 중시하고 법과 사공을 강조하였으며, 주자의 재상보다 강한 한나라 재상을 말하고, 군주 성학론보다 범용적 군주론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둘째, 성리학에서는 성(性)과 심(心)을 분리하여 본다. 심즉기(心卽氣), 성즉리(性卽理)의 관념이다. “心(氣)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가지고 태어난 기로서 허령하여 어둡지 않아 한 몸의 주인이 되는 것이요, 性(理)이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어가지고 태어난 리로서 순수하고 지극히 착하여 한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라는 것이다.
삼봉의 삼교관 측면이다(조준하, 1998 : 157-160). 불교의 종지는 바로 마음(心)이기 때문에 심(心)이라 하였고, 도교의 종지는 기(氣)이기 때문에 도교를 대신하여 기라고 하였고, 유교의 종지는 리(理)이기 때문에 유교를 대신하여 리라고 했다. 삼봉은 유교를 우위에 두고 도교와 불교는 유교의 명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셋째, 삼봉(三峯)의 거의소청(擧義掃淸)은 국운을 바로잡기 위하여 정의의 깃발을 들고 오랑캐나 소인배를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인, 의, 바름, 슬기, 배려, 채임, 신뢰 등을 중시했다.
Ⅳ. 주요 시사점과 현대적 활용
제1절 시사점
정치, 행정규범적 측면
첫째, 규범성 측면의 正己, 格君, 知人, 處事사례를 분석한다. 훌륭한 宰相의 행동규범으로는 정기(正己·자신을 바르게 하는 것), 격군(格君·군주를 바르게 하는 것), 지인(知人·인재를 잘 가려 쓰는 것), 처사(處事·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를 들었다(정도전, 『경제문감』). 의정부의 정책참여(이종수 외, 2016 : 77)는 입법권, 행정, 인사, 재정권을 중심으로 분석하여 시사점을 찾는다.
둘째, 의정부의 정책참여(이종수 외, 2016 : 77)는 입법권, 행정, 인사, 재정권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정책참여 4가지 측면과 7인 구조의 시사점을 도출한다.
선행연구에 의하면 삼봉사상의 주요 시사점은 먼저 인공지능 입법과제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과 생활영역 침투는 인간의 사고와 판단을 중시하던 구조 속에 새로운 행위주체가 개입되기 때문에 예측불가능한 위험에 신속, 정확하게 대응 할 수 있는 것과 관련된 입법정책이 요구된다. 예시하면 IT 융합생태계 규제 체제 정비와 소프트웨어 안전관리, 상시적 위험평가 체계 구축, 사회적 가치 합의 및 소통기반 대책 등을 들 수 있다.
2. 제도적용적 시사점
첫째, 의정제도의 시사점을 행위 규범측면에서 삼정승 2찬성 2참찬의 사례를 참조한다.
둘째, 정책 참여와 의정부의 정책 주도 사례를 삼정승 2찬성 2참찬 등과 삼사, 대간의 재상, 고위관료와 사간원의 임금(王) 견제적 효과와 현대적 시사점을 찾는다
셋째, 공직자의 소명과 행정학자의 소명(정정길, 2020.12 : 5). 권력기관 통제제도 개혁 필요성과 직언과 상호견제 필요성, 성리학의 접근법 재조명. 성리학적 규범중심 접근, 성리학과 동료들의 참여, 사헌부와 사간원의 삼사의 재상과 임금 견제 사례를 예시한다.
넷째, 삼봉의 융합민본사상과 민본법치사상의 현대화(이종수, 2018.12 : 533-534)와 적용방안을 제시한다.
제2절 사회적 활용(적용가능성)
정치, 행정 제도적 활용
2021년 현재 한국의 정치, 행정과 권력기관 獨走를 어떻게 극복하나(정정길, 2020.12) 등과 관련 권력투쟁과 당파 싸움 등을 극복한 조선시대 성리학(자)의 사건과 사례를 통하여 성리학의 효용과 한계, 현대적 시사점을 再照明한다.
현대 총리와 부총리제도의 시사점과 활용임. 2020년 현재 총리제, 부총리제와 연계하여 4가지 측면의 효과성을 비교 천착한다.
2. 사회적 활용(융합성)
첫째, 삼봉의 수기(내면)의 활용이다. 성리학에서의 ‘수양’이란 공정, 무사한 마음씨를 확보하려는 일을 말한다. 정신수양의 기초로는 삼봉의 호연지기와 맹자의 “義를 모으고 배양하여 양성된다”고 하였다(민찬, 1999 : 93-94).
둘째, 삼봉의 치인(교화)의 활용 측면은 백성의 교화(정순우, 1999 : 105)와 향약과 향헌을 참조한다(이종수, 2015). 이것은 현대적인 주민자치의 토대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삼봉의 민유방본의 이념에는 民은 단순한 교화의 피동적인 객체로서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화를 통해 인격적이며 도덕적인 품성을 계발할 수 있다는 주체적 의미가 내포된다.
셋째, 종로구청 일대에 해방구로서의 ‘三峰의 거리’를 조성하고, 그곳에 삼봉 흉상을 건립하거나 세종로에 동상 건립(이원명, 2013 : 124 ; 이종수, 2016)을 제안한다. 동시에 종로구청 일대에 ‘피마촌’(避馬村)을 건설한다. 피맛골 인근의 인사동과 북촌, 청계천, 남산골과 연계한 코스 개발, 인왕산, 나주목 초사, 단양 도담 삼봉, 영주 사택, 평택 문헌사, 종로 삼봉거리 연계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삼각산 ‘삼봉재 정좌프로그램’ 개설과 활용, 도성 걷기 체험 프로그램 등과 연계하고, 영주시 고택과 평택시 교육관과 연계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AI시대의 교육 창의성과 관련「삼봉수기체험 프로그램과 체험관」(가칭)’을 건립하여 삼봉의 수기법을 현대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넷째, 향헌 56조의 주요 내용을 지방 외관과 관련해서 보면 그의 법치사상은 청렴관료와 부패 예방을 위한 단서가 될 것이다. 백성들 측면에서는 선목과 악목을 예시할 수 있다(이종수, 2015.12). 豊沛 鄕憲은 조선조 초기에 있어서 향풍을 올바르게 하고자 실시를 명한 태조 친제의 향헌 조목으로, 조선시대 지방자치 사상으로서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겨서는 안된다는 성리학적 사상이었다. 태조가 孝寧大君에게 하명하고, 삼봉이 시행한다. 향헌 56조(善目과 惡目)의 주요 내용을 지방제도와 外官과 관련해서 보면 그의 법치사상은 백성들 측면에서는 선목과 악목을, 公職者에게는 부패 예방을 위한 단서가 될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었다. 조선의 향헌(약)은 유학에 근거한 사회제도로 이를 실천하기 위한 생활, 교육운동의 실천장이었으며, 향약과 주민자치 및 민본정치의 이념적 기반을 제공했다. 사회교화와 협동, 사회교육, 공동체 의식 함양, 문맹 퇴치운동이 전개된다. 몇 가지를 예시하면 지신염근(持身廉勤)은 튼튼한 몸과 근면성을 겸비해야 한다. 견선필행(見善必行)은 옳은 일은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 문과필개(聞過必改)는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등이다(이종수 외, 2016).
공직자 자세와 관련하여서는 함흥향헌 제15조 관사불근(官事不勤) 공직자가 공무를 소홀히 하는 행위, 제19조 여사농권(旅師弄權) 군지휘관이 직권을 남용하는 행위, 제22조 간리작폐(奸吏作弊) 간교한 공직자가 민폐를 끼치는 행위, 제23조 회뢰간청(賄賂干請) 공직자에게 뇌물을 주어 부당한 일을 꾀하는 행위, 제24조 이강능약(以强凌弱)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짓밟는 행위, 제30조 빙공영사(憑公營私) 공무를 핑계로 사욕을 챙기는 행위, 제33조 지비류거(知非謬擧) 그릇된 줄 알면서 남에게 알선하는 행위, 제35조 타농허비(惰農虛費) 직무는 게을리 하고 낭비는 헛되이 하는 행위 등의 조목은 현대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섯째, 서초구는 반계 유형원의 『동국여지지 과천현』편에 ‘삼봉 정도전의 묘는 과천현 북동쪽 18리이다(현 서초구청 일대)’란 기록에 근거하여 2013년 10월 서울시사편찬위원회의 고증을 받아 기념비를 세웠다. '삼봉‘을 상징하는 세 개의 봉우리로 빗돌을 형상화했다(경향신문, 2013.11.10.).
2017년 5월 평택시는 삼봉 정도전의 애민정신과 사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이 진위면 은산리에 위치한 삼봉정도전 유적에 조성됐다(평택시사신문, 2017.5.17). 5월 15일 준공식을 가진 ‘삼봉 정도전교육관’은 경기도유형문화재 제132호로 지정된 삼봉집목판과 시문·문집 등의 유물을 보관 전시하고 있는 삼봉기념관 주변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3. 인성함양적 활용(수기치인)
유가 심성수양법의 현대적 의의로는 세분화, 세계화, 개성화, 정보화 사회의 대두와 갈등과 소외, 범죄, 인공지능 사회에서의 내면수양을 통한 개인의 정신적 안정 희구, 마음의 평화와 육신의 건강 등을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이윤희, 2008 : 167).
한국적 문화정체성 관련 한국인의 정체성의 한 부분은 神氣와 文氣다. 그래서 선비정신이 필요하다가 74.5%다. 선비는 우환의식(민족과 국가, 인류의 곤경에 대한 걱정근심)을 갖는 이들로 수기치인을 통해 벼슬길에 올라 사대부가 되거나, 뜻을 잃으면 초야에서 청담을 즐기거나 후학을 교육했다. 선비는 10∼39세에 수기치인하고 벼슬에 들었으며, 修己的 측면의 정좌를 생활화하였다는 점에 착안하여 수기와 정좌과목을 프로그램화 하여 신기와 문기를 전수하도록 한다(이종수, 2017.11 : 163-164).
주희(朱熹)는 이연평에게 靜坐를 배우고, 정주(程朱)의 주정(主靜)은 맹자의 ‘夜氣章’에 나옴을 알았다. 정좌는 마음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다. 목은 이색(牧隱 李穡)은 “정좌하니 명리를 쫒는 것 모른다네”라고 했듯이 이색의 정좌가 佛家와 다른 점은 먼저 남들에게서 방해받지 않고 앉아 궁리하는 것이고, 둘째,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해 고요히 명상하는 것이며, 마음의 상태는 물과 같다거나 높은 산봉우리 같다고 했다. 主靜이 선불교의 방법이라면 주경(主敬)은 성리학의 접근으로 심학의 출발점이 된다. 고려말 이입된 실천적 성리학은 안향, 이색, 포은, 삼봉, 사림파 등과 연계된다.
Ⅴ. 결 론
본 연구는 삼봉의 冢宰(宰相, 臣權)제도적 근거, 사상, 구조 등의 이론적 토대였던 『朝鮮經國典』, 『經濟文鑑』의 내용 및 그 법제화인 『經國大典』 규정과 조선 초기 의정부 집행사례, 결과를 『實錄』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현대적 시사점을 탐색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주요 내용은 정도전의 왕정체제의 문제점으로서 '王의 자질이 어둡고 현명하고, 강하고 약함이 한결같지 않아 천하의 인재 가운데서 선발된 宰相이 도와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분석의 대상은 조선초기(태조∼태종) 재상제도 집행실태 분석이며, 『實錄』중 조선전기 議政(府) 활동 실태를 분석하였다. 議政 선출방식 관련, 김용옥은 선출방식의 민주화 미흡, 비제도화가 맹점이라고 지적한다. 선출방식과 입사과정, 출신 등을 참조하였다.
주요 결과적 측면은 유학치유의 의의와 평가, 삼봉사상의 차별성, 제도화, 사회적 활용 측면과 한국적 문화정체성 등을 구체화하여 제시하였다. 먼저 유가적 인문치유의 의의와 평가, 삼봉 사상의 차별성과 시사점 등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접근과 활용방안으로는 정좌 프로그램의 제도화와 사회적 활용 방안, 한국적 문화정체성 및 개헌의 시사점 등을 제안하였다. 앞으로의 후속연구과제로는 삼봉의 『조선경국전』헌법사상, 법치사상, 치인관과 민본사상에 투영된 수기치인의 사례와 효과를 백성과 관료제, 군주를 대상으로 분석할 필요성이 제기되며, 또한 동시대에 이루어진 제 외국의 역성혁명과의 관련성을 밝힐 필요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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