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8월 한국해양인문학자학술대회 발표문임. 인용을 금지함.
13세기 탐라와 몽골의 음식문화
□ 들어가는 글
이 글에서는 대원제국(이하 몽골과 혼용) 문화가 탐라지역 음식문화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고찰하고, 탐라(이하 제주와 혼용) 식문화가 주체적으로 변용시키면서 생존을 유지시켜 온 변동 과정을 찾아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고려시대 탐라는 몽골의 직접 지배기간이 가장 길었으며, 그들이 직접 관료를 파견하여 지배하므로서 타 지역에 비하여 몽골문화가 가시적으로 남아 있는 지역이기도 한다. 예컨대 1276년 탐라 다루가치가 둔전병(屯田兵)과 주민에게 호마, 우량소 목장을 개설하여 사육하게 하였다(이성우, 1984 : 31).
주요 연구문제는 어떻게 해서 게데스가 순대(김천호, 2012), 수애(제주농업기술원, 2007)가 되었으며, 슐렝(šűlen)이 몸국으로, 마유주가 ‘쉰라락크’가 되었는지(이종수, 2010) 등을 분석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방법은 13세기 고려에 대한 몽골지배의 선행연구 분석 및 문헌연구(김천호, 1997, 1999, 2002, 2003, 2012)와 필자의 음식문화 선행연구(이종수, 2009 ; 2010 ; 2011 ; 2012a,b) 결합을 통한 양 지역 음식문화 비교분석이다.
12∼13세기 팍스몽골리카와 그들의 음식문화는 『몽골비사』, 『飮膳正要』, 『居家必用』, 『거가필용사류전집』등과 조선시대 『林園經濟志』, 『山林經濟』등에 전해지며, 기타 관리와 이주자들이 지배지 전파 및 그 문화는 현재습속에도 동일하게 확인되고 있다.
본 고에서는 문화변동이란 상이한 문화를 가진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이 계속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양방이 집단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문화형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으로 보고, 탐라의 음식문화변동이란 탐라지역민과 내방자(지역민과 군인, 목자 등)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음식이 대원제국의 목마장과 군대 주둔지로 종속되면서 다양한 몽골인들의 내왕과 교류에 따라 탐라지역으로 모여든 유입인구가 급격하게 불어나면서 또한 이들의 식사해결에 대응하고, 적응하면서 탐라지역에 정착된 시대적인 변동 음식문화로 정의하고자 한다. 그것들이 몸국, 고소리술, 만두, 수애, 쉰다리, 빙떡, 상외떡 등이다.
□ 음식문화 변동과 몽골음식
음식문화변동의 구분은 통합, 동화, 분리, 주변화 등으로 구분된다(전경수, 1999 : 224). 사람과 관습 등의 문화가 접변속에 상호영향을 주고 받는다. 영향이 크면 흡수하고, 적으면 동화되면서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게 된다. 문화인류학의 문화변동 연구 개념은 문화접변 또는 변동(acculturation)이다(Berry, 1980). 문화변동과 변용 또는 문화접변은 상이한 문화를 가진 개인들로 구성된 집단이 계속 직접적으로 접촉함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양방 집단이 가지고 있던 원래의 문화형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이다. 문화의 종족성(ethnicity)을 특징지우는 경계(boundaries)는 타집단과의 만남을 통하여 서로 대조되는 상황에서 타집단과의 상호작용 과정에서 부각되고, 구성되고 유지된다.
13세기 전후 몽골음식문화의 패턴을 몇가지 살펴보면, 『몽골비사』에 보면 몽골의 음식문화 변천이 (1) 몽골의 전통식생활에서 (2) 대외적 정벌에 따른 문화교류와 상호 영향, 변동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13세기 이후 현대까지 몽골은 원제국의 전통적인 의식주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음식도 차강이데와 올랑이데를 유지한다.
먼저, 차강이데문화다. 음식 특성으로는 유목을 생업으로 삼기 때문에 유목의 산물인 젖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것이 한랭기후와 척박한 토양에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젖을 이용한 음식(수우, 으름 등), 육류 음식(삶은 음식, 말린 음식, 만두)와 찜, 순대 등이 발달하였다. 차강이데의 타라크(요구르트)는 유제품으로 만든 발효 식품으로 보관과 운반이 용이하다. 제주의 ‘쉰타라크’(쉰다리, 필자주, 먹다 남은 밥류에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음식)가 유사하다(서혜경 외, 2000).
둘째, 올랑이데문화다. 몽골주식의 패턴을 일별하면 여름의 ‘하얀 음식’(차강이데 : 유제품, 흰색, 여름 주식)과 겨울의 ‘빨간 음식’ 올랑이데(육류, 붉은 색, 겨울 주식), 곡류인 밀가루 음식으로 구분된다. 음식 특성으로는 유목을 생업으로 삼기 때문에 유목의 산물인 젖과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것이 한랭기후와 척박한 토양에 안정적으로 식량을 제공받을 수 있었다. 따라서 젖을 이용한 음식(수우, 으름 등), 육류 음식(삶은 음식, 말린 음식, 만두)와 찜, 순대 등이 발달하였다.
□ 13세기 몽골음식문화 특성
13세기 이후 현대까지 몽골은 원제국의 전통적인 의식주 패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여름철의 하양음식(차강이데)는 가축의 젖 및 유주 등이며, 겨울철의 빨강음식(올랑이데)은 각종 고기류다. 의식주 등 옛관습이 타국가들에 비하여 적잖이 원형으로 남아 있다.
마유주와 양고기문화다. 『몽골비사』에는 마유주와 양고기 이야기가 가장 많이 실려 있다. 13세기 몽골 지배영역이 확장되면서 동서문화 교류의 확대 및 상호간 영향이 증대된다(김천호, 2003 : 184-199). 몽골족의 『몽골비사』에 나오는 음식 중요도는 (1) 마유주 (2) 양고기(슐랭), 제사(음식) 등이다. 13절, 19절, 보르츠와 병사식량 43절, 70절(飮福), 124절(마유주), 193절(국, 슐랭, 설렁탕과 동일), 229절(슐랭), 279절(슐랭)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13세기 음식의 특성과 오늘날의 음식패턴과의 연관성을 유추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고릴(면)문화다. 몽골인들은 국수도 즐긴다. 양고기를 넣고, 소금을 간하여 먹는다(김광언 외, 1993 : 245). 몽골에서는 면(麵)을 고릴이라고 하고, 밀가루로 만든 요리를 고릴타이숄(GoriltaiShol)이라고 한다. 칼국수보다 가는 건면을 고에몽이라고 한다. 고기우동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으로 면을 먹는 형태이고, 이것을 숄테이홀이라고 한다. 제주의 고기국수와 일맥상통한다. 숄테이홀은 양고기 국물에 면, 고기 조각, 만길이라는 야생파, 후무루라는 부추를 넣고 끓인 것이다. 조미료는 소금이며, 저녁에 먹는다(서혜경 외 : 258). 한편 고릴테 슬은 감자, 양파, 파, 양고기에 칼국수를 넣은 것으로 거의 매일 먹는 대표적인 음식이다.
거세한 2년생 양고기는 맛있고 국물도 일품이다. 뼈, 내장, 고기 등을 통째로 넣고, 끓여 먹는다. 우리의 설렁탕과 같다. 슐랭은 몽골인들의 아침 주식이다(김천호, 2003 : 193-195). 탕은 주로 소의 뼈, 내장, 고기 등을 통째로 넣고 끓이는 조리법이 동일하다(『몽골비사』 124절 ; 이종수, 2012.9 : 20). 아침식사를 고기국물인 슐렁이라고 할 정도로 유목민들에게 아침에 먹는 뜨거운 탕이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몽골비사, 192절). 탕(湯)은 주로 소의 각 부위를 이용하고 통째로 끓이는 방법을 쓴다.
□ 탐라 음식문화 융합
첫째, 고려와 탐라는 13세기 중반 이래 몽골의 침입으로 그들의 식육문화가 유입되고 고려 음식문화가 정립된다. 13세기 세계의 중심지였던 대원제국의 大都(캄발룩, 북경) 새벽거리는 북적대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뜨거운 양고기와 거위고기, 여러 가지 탕 종류와 뜨거운 음식으로 요기한다(김종래, 2009 : 200). 몽골의 공탕(šǜlen)문화는 양이 으뜸이다. 공탕은 양고기 국물로 스프(탕)국이다(Buell, 2003). 국물문화의 중심이다. 공탕선호는 『몽골비사』에도 자주 나온다. 몽골의 설렁탕 유사 음식은 ‘막흐테셜’과 반탕이다. 이 둘의 조리법이 한국 설렁탕과 같다. 오늘날 몽골의 설렁탕 유사음식 반탕(Bantan)은 몽골해장국인 양고기 스프죽이다.
찜요리는 몽골의 대표 음식이다. 『거가필용』의 철속탕(撤速湯)은 우리의 설렁탕 조리법과 유사하다. 몽골인들은 양고기 국(羊羹)을 가장 선호했다(國學基本叢書本, 『飮膳正要』卷 第1, ‘驟珍異饍’ 19, 34쪽). 유목 생활을 했던 원나라에는 채소나 곡식보다는 고기를 사용한 음식이 많이 발달했다. 요즘 우리가 즐겨먹는 설렁탕과 순대, 만두는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음식 중의 하나다.
구이보다 찜음식이 주류다. 백성들은 양고기 탕, 백숙 등 찜을 선호했다. 백숙이나 찜이 다(김천호, 2003 : 199). 군인들은 굽기를 선호했다. 편리해서다. 식재료는 목축 외에 사냥을 통해 획득했다. 사냥은 생계수단임과 동시에 군사훈련으로도 행해졌다. 이성우는 조선시대 『산림경제』(1715)의 육류조리법은 60% 이상이 『거가필용사류전집』에서 인용하였다고 한다.
둘째, 소주 문화다. 소주는 고려시대 몽골 군인들이 일본 원정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했을 때 개성, 안동, 제주도 등 주둔지에서 처음으로 빚기 시작했다. 소주는 페르시아, 몽고, 만주를 거쳐 고려후기에 유입된다(김삼수, 1980 : 43). 칭기스칸이 적의 화살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부하가 먹여서 살려낸 것이 아이락(마유주)다.
셋째, 羊 直腸(게데스 순대)문화다. 몽골(군)인들이 한경(고산아이막)과 성산(수산아이막) 전마장(戰馬場)에 100여년 이상 거주하며 자기들의 고유음식을 먹었다. 양의 내장인 직장으로 ‘게데스’라는 순대를 만든다. 제주의 ‘수애’와 같다. 피와 곡식가루도 함께 넣는다. 양의 피를 넣고, 소금 간을 해서 솥에서 삶아 낸다. 매우 부드럽고 구수하고 영양도 풍부하다. 양의 직장으로 만드는 게데스는 양의 피와 약간의 메밀가루를 넣고 소금 간을 해서 솥에서 삶아 낸다. 야생 파나 마늘, 메밀 등 곡식가루를 넣기도 한다. 1960-80년대 까지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만드는 방법이나 과정이 똑 같다. 다만 제주에서는 돼지의 직장을 사용하는 것만이 다르다.
원나라의 요리서 『거가필용』은 순대를 관장(灌腸)이라 부르는데, 순대를 만들려면 먼저 창자를 씻어냈기 때문이다. 몽골에는 게데스라고 하는 순대요리가 있는데 군대의 전투식량으로 많이 먹었다. 조선시대 순대고찰(2012)에서 순대의 기원을 『제민요술』과 『거가필용』에 기인한다고 하였다. 서긍은 『高麗圖經』에서 멥쌀, 보리, 밀, 수수 등을 먹었고, 면은 잔치음식으로 썼다고 밝혔으며, 고려도경에서 국(羹)이 처음 언급된다. 순대문화의 기원은『제민요술』과 『거가필용』,『임원십육지』에서 찾아진다.
6세기 저술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는 순대를 ‘관장(灌腸)’이라고 했다. 『제민요술』은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 농업기술서로써 북위의 가사협(賈思勰)이 저술한 책이다. 『제민요술』에는 양의 피와 양고기를 다른 재료들과 함께 양의 창자에 넣어서 삶아먹는 요리가 소개되어 있다(가사협, 2006). 원대의 『음선정요(飮膳正要)』에도 ‘호포육(胡炮肉)’이라고 하여 페르시아에서 전래됐다고 한다. 몽골인들은 양의 피에 소금, 밀가루, 천초가루를 섞어서 선지순대를 먹는다.
□ 13세기 탐라 음식문화 영향
첫째, 몽골지배 이후 고려와 탐라는 목축과 육식문화 영향을 크게 받는다. 몽골 전통식과 전쟁음식이 탐라에 유입됐다. 1271년(원종 12) 김통정이 삼별초를 거느리고 제주에 들어와 약 2년 반 동안 항전하다가 여·몽연합군에 의해 토벌되었다. 당시 군사들을 위한 단체 급식, 각종 의례 음식 등 일련의 음식 만들기가 행해졌다. 이 과정에서 지역 주민이 조리에 동참하여 육지의 음식 문화를 집단적으로 학습함으로써 고려 말 대원제국 문화를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한국향토문화대전, 2014.4.14.).
둘째, 1300년대 수도 개경에는 탐라인 1000여명이 거주했다. 제주인구의 약 1/10(당시 제주인구는 약 1만여명)이다. 개성과 탐라의 활발한 문물교류를 암시한다(진영일, 2008 : 250-252). 당연히 제주에 고려 개성과 대원제국의 문화가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몽골군 병참관리가 주된 일들이었다. 병참은 군사들의 음식, 의복, 거주지 및 말(馬) 사육과 마료(馬料) 등의 생산, 관리가 주된일이었다. 말은 戰馬, 驛馬, 外交, 農耕 등에 사용되었다(『高麗史』, 卷 27, 世家 27 元宗 13년 正月 辛未條). 목장업은 국가와 관인지배자가 독점했다(남도영, 1969 : 669). 몽골식 목장 설치는 목장관리제도가 크게 발전하고 마종(馬種)의 개량으로 양마(良馬)가 산출되는 등 마정사(馬政史)상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셋째, 탕(국)문화다. 고려 후기에는 몽고풍의 요리가 전해져 고기를 물에 넣고 삶아 그 우러난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는 지금의 설렁탕, 곰탕이 생겨났다. 고려 후기에 들어온 공탕은 『거가필용』에 소개된다(작자미상, 1200년대). 고려 후기에 육식이 본격화되면서 개장국, 쇠고기를 쓴 육개장, 설렁탕 등이 나타났다.
유목민인 몽골인들이 제주에 들어오면서 고기음식이 성행하였고, 양고기를 이용한 ‘슐루’가 유래된다. 몸국 등 육류, 채소류, 어패류, 해조류를 이용한 ‘국문화’가 더욱 활성화된다. 2015년 9월 제주국제공항에서 먹어 본 말고기탕은 곰탕 맛과 비슷하였다. 몽골인들은 고기우동(숄테이홀)을 양고기 국물에 말아 먹는다. 탕(湯)이란 국을 높여 이르는 말이다. 고기, 생선, 채소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이다. 다른 점은 몽골은 유목민이라 양을, 제주는 농경민이라 돼지를 쓴다는 점 뿐이다.
넷째, 메밀칼국수 전래측면이다. 먼저 메밀칼국수는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 지역에서 메밀반죽을 얇게 밀어 편 다음 손가락 길이로 굵게 썰어서 무채와 함께 끓인 음식을 말한다. 문화는 돌고 돌다가 변동되다가 섞이고 특성화되고, 또 그러다가 언젠가 토착화되고, 또 다시 섞이면서 변동된다. 서울에도 ‘제주식 고기국수, 제주식 해장국’이 선보이고 있다.
다섯째, 소주, 오메기술문화다. 소주는 고려시대 몽골군인들이 일본 원정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했을 때 개성, 안동, 제주도 등 주둔지에서 처음으로 빚기 시작했다. 소주는 페르시아, 몽고, 만주를 거쳐 고려후기에 유입된다. ‘아이락’이란 명칭은 훌레그 서정군이 압바스조 이슬람제국을 공략할 때 그곳 증류주인 ‘아락’을 맛보면서 그것에 빗대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짐작된다. 원대 홀사혜(忽思慧)가 펴낸 궁중 식보(食譜)인 『음선정요(飮膳正要)』(1330)에 의하면 당시 몽골에서는 발효한 젖술(마유주)을 증류시켜 무색투명하고 알코올 농도가 높은 술을 빚는데, 아랍어의 증류란 의미의 ‘아라끼’를 따다가 ‘아랄길’(阿剌吉, 아라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마유주 말고도 요구르트를 끓여서 증발시킨 후 액화시킨 아르히라는 술은 알코올 농도는 약하지만 은근히 취하게 하는 마법의 술이다(경향신문, 2009.6.17.).
군이 가면 음식이 따라 간다. 안동에 원나라 군대가 오래 주둔하면서 안동에 몽골소주가 전해진다. 고려시대 몽골 군인들이 일본 원정을 위해 한반도에 진출했을 때 개성, 안동, 홍도, 제주도 등 주둔지에서 처음으로 빚기 시작했다. 소주는 페르시아, 몽고, 만주를 거쳐 고려후기에 유입된다. 탐라는 아자길주가 유입되어 고소리술이 된다. 홀사혜의『飮膳正要』와 『거가필용사류전집』은 아자길주 증류법을 기록한 최초의 저작물이다.
여섯째, 상애떡과 빙떡문화다. 상애떡은 몽골인들이 목마장 작업중 휴식시간에 먹던 음식이다. 탐라는 부조음식문화가 발달했다. 걸명(멩)도 특이하다. 제사 후 음식(初食)을 가옥 입구에 일정시간 비치했다. 몽골에서는 말고기를 식용하고, 마유(馬乳)를 즐긴다. 마유로 차, 치즈, 과자, 부식들을 만들어 먹는다. 제주인들도 말고기를 식용하는데 몽골식(食)의 제주 전이다. 제주인들이 즐기는 빙떡도 몽골에서 전래된 메밀을 재료로 하여 만든 음식이다. 제주인들은 2013년 현재도 막걸리로 상애떡을 만들어 먹고 있다. 대정현은 ‘빙떡’, 정의현은 말아놓은 멍석과 같다하여 ‘멍석떡’, 서귀포 지역은 ‘전기떡’이라고 했다. ‘걸명’도 특수하다. 상애떡은 몽골인들이 휴식시간에 먹던 떡이다.
일곱째, 순대(수애=게데스)문화다. 양의 直腸으로 만드는 게데스는 양의 피를 넣고 소금 간을 해서 솥에서 삶아 낸다. 야생 파나 마늘, 메밀 등 곡식가루를 넣기도 한다. 1960〜80년대 까지 제주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만드는 방법이나 과정이 똑 같다. 다만 제주에서는 돼지의 직장을 사용하는 것만이 다르다. 탐라의 ‘수애’는 돼지의 내장(장)에 피와 약간의 메밀가루 그리고 소금간만으로 섞어서 삶아 낸다. 지역과 종교에 따라 가축과 사용하는 향신료나 곡류, 채소류가 다를 뿐이다. 반농반목지역(탐라, 고려 등) 몽골족은 돼지나 말에 찹쌀이나 밀가루, 잡곡류, 그리고 파, 마늘, 부추, 숙주나물 등을 넣기도 한다.
여덟째, 고시레 풍습이다. 고수레(高壽寬), 또는 고시레란 산과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나 이바지가 왔을 때 음식물을 조금 떼어 던지면서 외치는 소리, 또는 그렇게 하는 행위이다. 흔히 '고시래'라 하고, 강화도 지역에서는 '퇴기시레'라 한다. 이는 신에게 바치는 공희(供犧) 의식인데, 잡신에게 제물을 떼어주고 달래어 쫓는 한편, 먼저 제물을 바쳐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고수레는 주언(呪言)과 공희 행위가 함께 이루어지는 주술이다. 마치 주문(呪文)처럼 "고수레!" 하고 외치는 소리가 곧 고수레다. 몽골인들은 술을 마실때도 새끼손가락에 술을 묻혀 하늘을 향해 세 번 튕긴다. 제사 후 신과 산 자가 하나가 되면서 복을 받는다는 음복(飮福)습성이다. 특히 제주사람들은 지금도 제사 후에 복을 받는다고 음식과 술을 조금씩 나누어 먹고 집에 가지고 간다.
아홉째, 쉰다리=타라크문화다. 누룩을 이용한 쉰음식의 재활용 습속으로 제주음식 ‘쉰다리’가 있다. 몽골비사 145절에도 유사한 타라크 음식이 전해진다.
끝으로, 마구(馬具)와 허벅, 아기구덕문화다. 여자들이 물긷는 허벅은 몽골의 가죽 물병 ‘허버’에서 유래했다(국립민속박물관, 2008 : 95)는 설이 있다. 아기 구덕은 대나무로 만든 아기 요람이다. 흔들어 잠재우는 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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